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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커버스토리 '가족구성권' #2] <新 가족의 탄생> 좌담회 (2) : 우리 안의 차이와 퀴어함들
2018-05-31 오후 18: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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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5월 

[커버스토리 '가족구성권' #2]

<新 가족의 탄생> 좌담회 (2)

: 우리 안의 차이와 퀴어함들

 

 

1. 2018년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의제의 현주소 
2. 성소수자가 겪는 원가족과의 경험
3. 친밀성과 돌봄에 대한 성소수자의 욕구

4. 가족구성권 제도화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
5. 성소수자 가족구성권에 개입되는 젠더 문제 
6. 성소수자커뮤니티의 독특한 당사자성과 그 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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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사이+가구넷, 『新 가족의 탄생 : 유별난 성소수자 가족공동체 이야기』, 시대의창, 2018.

(구매 링크 : 알라딘YES24)

 

 

 

 

"제가 허리 디스크로 병원에 갔을 때가 제일 그랬어요. 전화로 물어볼 때는 분명 된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안 된다고 한 거죠." (정남, 162쪽)

 

"숨이 꼴딱 넘어가는 상황에서 당장 수술이 필요한데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동성 커플이라는 이유로 도움이 안 된다고 하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가족들은 다 시골에 있는데 언제 와서 동의해주냔 말이죠. 분명 문제가 있어요." (승정, 162쪽)

 

"나라에서 부부에게 주는 혜택을 하나도 못 받는 거죠." (무밍, 239쪽)

 

 

 

 

4. 가족구성권 제도화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

 

 

터울 :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성소수자 가족구성권에서 핵심으로 두고 있는 것이, 이 문제가 긴급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거든요. 가령 성소수자 파트너 간의 상속, 수술동의서가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 등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 이 책이 건드려주고 있어서 좋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혹시나 이런, 가족 단위로 쏟아지고 있는 복지 혜택에서 소외된 경험이 혹시 있으신지 궁금해요. 사실 나이가 좀 있으셔야 보다 체감되는 이슈일 텐데, 저는 이게 가족구성권에서 가장 중요하고, 선결과제란 느낌이 있거든요. 

 

심기용 : 저는 올해 25살인데, 친구들이 위아래로 20대 중반 넘어가고 대학교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라, 그 때 결혼이라는 제도가 눈앞에 자꾸 밟히는 거예요. 얘네들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실제로 20대 초반에 게이커뮤니티에서 놀면, 결혼이고 뭐고 눈앞에 없는 애들이었거든요. 그런데 20대 중후반이 되고, 취업이 되고 하니까, 뭐 어디 가면 파트너 얘기가 나오고, 그 관계가 어떻게 안정적으로 변할까가 나오고, 결혼 얘기가 나와요, 계속. 그리고 제가 인권활동이나 이런 것에 관련돼있는 걸 아는 사람들이 술마시면 다 그 얘길 해요. 레즈비언이랑 게이의 경우에 자기 연애 관계가 잘 되고 있을 경우에는, 나 결혼하고 싶으니까 동성결혼 법제화 시키라고, 저한테 술 사주고 그러거든요. 내가 시킬 수 있는 게 아닌데, 술을 왜 나한테 사주는 거야? (일동 웃음) 단체를 후원하지? (웃음)

 

아까도 얘기 나왔지만, 가족이란 개념이 폐기되어야 한다고 급진적으로 얘기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가족이라는 의미가 다양해지고, 이 책에서도 계속 주장되거든요. 결혼이라고 하는 제도가 퀴어 입장에서 없어져야 하는 개념 아냐?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지만, 형식적인 평등과 선택권에 있어서는 보장되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이미 필요성이 있고, 수요가 있어요. 옛날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제가 친구사이와도 같이 연대하는 가구넷에서 활동하면서 알게 된 법적인 피해 사례들이 있는데, 이게 너무 황당한 경우들이 있는 거예요. 

 

사실혼 관계가 인정받지 않았을 경우에, 아까 '혜택'이라는 말을 쓰셨지만 사실은 혜택이 아닌 권리라고 해야 하나? 파트너십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혜택이라면 왜 그런 것 생각하잖아요. 집? 세금? 이런 것에 대해서만 혜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그렇게만 생각했거든요. 그게 약간 이성애자와의 차별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어떤 경우가 있었냐면, 성소수자 부부가 난민 신청을 받는데, 외국에선 결혼을 했는데 우리나라 오니까 그 법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난민이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부부가 될 수 없는 거죠. 그런 경우를 보면서, 동성결혼이나 혼인평등이란 게 단순히 권리고, 혜택인 것보다도, 관계를 법이 해석하는 것에 있어서 성소수자의 삶에 근거가 되어주는구나, 저 사람들의 존재를 법률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거예요, 제도적으로. 

 

그래서 가족이라는 의미가 다양화되는 것, 그리고 다양화되는 걸 보장해주는 정책들과 제도가 필요하죠, 1인 가구의 지원이라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평등이라는 것 자체가 퇴색되지 않는구나, 가족 제도가 있는 한에는. 그 가족 제도 안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라 부과되는 통제와 차별이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구나, 아직 연구가 덜 된 거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랬어요. 

 

터울 : 가구넷 활동가로서 이슈에 대해 잘 정리해주셨네요. (웃음) 동의하고요, 이 책에서 돋보였던 것 또한, 한국에서 혼인평등 담론이 어디에 와있는지에 대한 현주소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성결혼이란 말에서 혼인평등으로 바뀐 맥락이 있는 것이고, 한국에서 활동가들이 노력 끝에 혼인평등이란 말 안에 대안적 가족구성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집어넣으려고 했던 시도들이 하나둘씩 꽃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거든요.

 

심기용 : 그리고 결혼을 못해서 지금 저 개인적으로도 빡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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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네트워크, <비혼여성‧1인가구를 위한 가이드북 'PLAN B'>, 2014.

 

 

나기 : 그런데 한국에서는, 제가 이런 포지션으로 섭외된 것 같긴 하지만, (일동 웃음) 언니네트워크 안에도 입장이 다양해요. 단체 회원들의 정체성 구성도 다양하고 비혼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할 때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있으니까요. 비혼식에서 비혼 선언문 읽으신 분 중에 현재는 '법적으로' 결혼을 하신 분도 있지만 비혼 운동에서 비혼을 이야기한다는 건, 가족이라고 하는 개념에 굉장히 (개인과 개인 사이에 있어야 하는)거리감각이 필요하고, 그것이 어떤 역할이나 구조가 아니라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었죠. 지금에 와서는, '비혼'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있어요.

 

얼마 전에 기사를 하나 요청받아서 썼는데, 비혼의 페미니즘적인 의미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비혼은, 누가 결혼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 제도가 이성애중심적이고 성별이분법적으로 짜여있는가에 대한 문제이고, 이 사회가 얼마나 그 이성애중심적이고 성별이분법적인 결혼, 가족제도와 연동되어 있는가에 대한 문제예요.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비혼이란 말을 꺼냈고, 그 제도 안에, 결혼 제도 안에서 차별받는 사람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차별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비혼이라는 이야기를 썼는데, 기사에서 성소수자에 관련된 부분이 싹 날아간 거예요. (웃음) 

 

터울 : 흔히 겪는 일이죠. 

 

나기 : 네, 흔히 겪는 일이고, 그리고 내가 쓰면서도 문제가 뭐냐면, 결혼 제도의 문제에 대해서 쓰려고 하니까, 통계가 다 결혼 제도 안에 있는 사람들 간의 정보밖에 없잖아요. 가사노동의 문제라든가, 결혼 제도 안에서 어떤 종류의 차별을 겪고 있는지 같은 것들은, 가구 통계라는 것이 전부 다 이성애중심적인 가구를 중심으로 통계가 나와있기 때문에, 나조차도 그걸 인용해서 쓸 수밖에 없고, 그걸 인용해서 쓰다보니까 이성애자 얘기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왜 사람들이 결혼에서 탈주하는 것 같냐고 물어보니까 애초에 결혼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비혼을 택하는, 비혼 상태를 유지하는 원인에 대해서 계속 쓰게 되는 거죠.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에서 이성애와 성별이분법을 떨어뜨려놓고 싶은 마음이 큰데, 잘 안 떨어지는 거예요. 잘 안 떨어지고, 결혼이라는 것에서 이성애와 성별이분법이 그렇게 강력하게 붙어있는 건, 사실은 재생산과 출산, 양육, 그것이 결혼 제도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결혼과 분리시키고 싶어하지 않고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이거든요. 저는 사실 그게 가장 먼저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혼인평권을 이야기하면서, 더 들어갔으면 좋겠는 이야기는 사실 재생산에 관한 이야기인 거죠. 이 사회가 누군가를 생산해내고 양육하는 그 권리를 어떤 섹슈얼리티에 부여하고 있는가가, 저는 결혼 제도에서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그것을 가장 떨어뜨리기 어려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은 그런 얘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터울 : 그 이슈가 국가의 낙태 반대와, 장애를 가진 태아 등 선별된 경우에만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의 문제와 사실 다 연결되어있는 거죠. 

 

나기 : 그렇죠. 이게 사랑하는 것, 두 사람만의 관계가 아니라, 성소수자인 두 사람이 결혼을 못하게 하는 제도라는 게, 동성애자라서, 어떤 정체성이라서-라고 사람들이 대부분 생각하는데, 결혼 제도 자체가 어떤 종류의 섹슈얼리티를 재생산해내는 구조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존재가 차별받을 수밖에 없는 결론이 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존재의 권리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이 제도가 우리를 어떤 식으로 안 보이게 만드는지에 대해 얘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터울 :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흐르는 것 같아요. 좌담회 전반부는 파악하셨다시피 이 책의 의의와 이 책이 잘된 점에 대해 얘기나눴다면, 후반부는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적대에 대해 이야기나누려고 하는데, 포문을 잘 열어주신 것 같아요. 제가 동성결혼 법제화 문제에서 늘 머릿속에 하나 남는 것이, 작년에 대만의 혼인평등이 실현되고 난 다음에 한국에서 난리가 났죠. 그런데 언니네트워크 난새님께 얘기를 들었는데, 동성결혼이 법제화되기 위해서 버려졌던 가능성이 있다는 걸 들었어요. 1:1 혼인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그 전부터 얘기되고 있었던 다자 가구에 대한 가족구성권 법안 등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측면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혼인평등만 떴던 맥락이 있다고 들었어요. 

 

심기용 : 법이 세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 된 게 동성결혼 법인 거예요. 나머지 법 중에는 아예 가족관계를 내가 선택해서 가족을 꾸릴 수 있는 법이 있었고, 그렇게 혈연과 혈연, 가문과 가문 간의 결합 형태가 아닌 가족구성에 대한 법이 있었는데 법제화가 좌초되었다고 들었어요.

 

터울 : 네, 잘 말씀하셨는데, 이 부분이 실은 폴리아모리 가족구성권과도 너무나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기용님도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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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UN여성차별철폐협약, CEDAW)
(채택일 1979년 12월 18일, 발효일 1981년 9월 3일, 대한민국 적용일 1985년 1월 26일)

 

 

심기용 : 그런데 UN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에서는 폴리가미에 대해 부정적이고, 폴리가미는 여성혐오적이라고 하는 게 UN기구의 입장이에요. 그리고 그건 역사적으로 통계적으로 사실이에요.

 

나기 : 처첩 제도를 얘기하는 거죠. 

 

심기용 : 네, 첩 제도를 얘기하는 거예요. 그리고 일부다처제는 굉장히 많은데 일처다부제는 별로 없고, 정말 소수, 몇 개 안돼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예요. 그러니까 이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거죠, 여성에게. 

 

터울 : 그 부분을 기용님께서 짚어주시니 감사하네요. (일동 웃음) 

 

심기용 : 저도 한국 뿐만 아니라 외국도 폴리아모리 운동은 대대로 커뮤니티 내에서 합의되어본 적도 없고, 이야기도 많이 나온 적이 없어요. 폴리가미를 원하는 게 아니라, 폴리아모리는 옛날 표현을 쓰면 일종의 자유연애를 원하는 거예요. 프리 러브, 프리 섹스에 대한 그것.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 독점당하고 싶지 않다가 끝이에요.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합의라는 건. 그런데 폴리아모리라고 하는 것에 대해 나라당 하나씩은 책이 나오기 시작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물어보는 거죠, 사람들이. "그래서 결혼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하고, 이 사람도 결혼하고 싶고 저 사람도 결혼하고 싶고 이렇단 얘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했죠. 왜냐하면 대부분이 같이 살고 있지 않은 사람하고 연애를 다양하게 하고 있으니까. 같이 한 군데 모여서 폴리아모리 집단 공동체를 만드는 건 역사 속에서나 나오고, 현대에서는 그런 경우를 찾기가 힘들죠. 

 

그런데 최근에는 슬슬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사실 저도 어떻게 하면 저 형태의 가족구성에 대한 권리 실현이 가능할까, 폴리아모리를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끔 인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면, 결국은 1:1이 문제가 아니라 혈연이 문제거든요. 가족이 혈연 중심으로 되어있는 게 문제인데, 그걸 뜯어내려고 하면 우리나라 가족법이 바뀌어야 해요. 가족법의 모든 컨셉이 밑바닥부터 바뀌어야 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그런 운동을 먼저 하는 게 맞는가 하는 약간의 의문이 있고, 

 

그리고 폴리아모리 당사자를 인터뷰하고 다니다보면, 일단 기본적으로 폴리아모리는 외국에서 헤테로, 이성애자의 담론이에요. 성소수자의 담론이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보면 제가 제일 만난 경우가 중년 남성·여성, 결혼한 부부들이 고민하는 걸 제일 많이 만나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또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과 결혼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관계를 하고 싶은, <아내가 결혼했다>의 손예진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결혼을 두 번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복수의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만든다는 정도인 거죠. 그래서 폴리아모리 관계로 살림살이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우리나라도 그렇고, 외국에서도 아직 별로 없어요. 그러나 이게 만약 모이게 되면, 아까 난새님이 말씀하셨던 맥락 대로 논의가 복잡해질 것 같아요. 

 

나기 : 혼인평권이 대두되었을 때 대만에서 나왔던 법률이 세 가지인데, 첫 번째가 혼인평등이었고, 두 번째는 파트너십이었고, 세 번째가 가족 조합이었어요. 

 

백퍀 : 한국에서 준비 중인 생활동반자법은 어디에 들어가나요?

 

나기 : 두 번째가 동반자법이고, 세 번째의 가족 조합은 가족구성원이 성애적인 관계가 아니어도 되고, 정말 친구 셋이 모여 살아도 우릴 가족으로 인정해라, 약간 엄마 셋이어도 되고, 아빠 넷이어도 되고. 

 

심기용 : 네, 일종의 협동조합이에요. 

 

나기 : 그리고 생활동반자법은 사실상 사실혼 관계를 대상으로 한 거나 마찬가지에요. 사실혼에 준하는 종류의 생활동반을 하고 있는 자들을 생활동반자로 등록하자는 거죠.

 

백퍀 : 아, 그럼 어쨌든 2명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거군요. 

 

심기용 : 그리고 생활동반자법은 무조건 주거를 같이 해야 해요. 동거를 같이 하고 있어야 해요. 그게 '생활'이라는 개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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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iwan LGBT Family Rights Advocacy.

 

 

 

터울 : 폴리가미와 여성 인권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시피, 퀴어에 대한 억압을 이야기할 때, 아주 고전적인 의미에서 젠더 억압을 같이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 현재의 억압이 과거의 억압과 중첩되어 있는 것이고, 이런 맥락에서 1:1관계나 일부일처제가 어떤 맥락으로 역사 속에서 구성되어왔고 지금까지 유령처럼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한때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간통죄라는 것이 곧 여성 인권 보장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명백한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성소수자 인권운동에서도 중요한 딜레마이자 고민거리란 생각이 들어요. 

 

심기용 : 실제 예시를 하나 들어드리면, 호주에서 그런 일이 있었어요. 폴리아모리도 육아를 할 거 아녜요. 그럼 한 3-4명 정도가 아이를 하나 키우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득이 항상 있는데,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있는 건, 4명이면 서로 결혼하고 그러면 돼요. 그런데 3명이다, 홀수다 그러면 완전히 골치가 아파지는 거예요. 남은 한 사람은 권리가 분담이 안돼있는 거예요. 만약 그렇게 가족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사실혼이란 관계에서는 이 사람은 가족으로 인식이 안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또 폴리아모리가 웃기는 게, 이성애 관계에서의 3명의 폴리아모리의 경우, 그걸 사회적으로 저 사람들은 그냥 3명이서 같이 사는 관계, 그러니까 두 명은 부부고 한 명은 동거로 인정이 돼요. 그런데 성소수자가 되면 그런 관계가 인지가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게이 폴리아모리, 레즈비언 폴리아모리 등 성소수자 폴리아모리를 안 다루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가족으로 포섭이 안되는. 그래서 되게 걱정되는 건, 가족법이 변할 때, 가족관계에서 성별을 따져묻지 않는 제도의 정착이 폴리아모리에게도 되게 중요한 지점인 거죠. 그리고 콜롬비아에서는 2017년에 게이 3명이 결혼했어요. 

 

정숙조신, 백퍀 : 네, 기사 봤어요. 본 기억 나요. 

 

심기용 : 그런 식으로 약간 여러 시도들이 되고 있는데, 대한민국에선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어떤 걸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왜냐면 눈에 띄는 수요가 부족하니까. 원하는 사람이 부족한데 뭘 가서 내가 먼저 얘기할 수도 없고, 지금 동성결혼도 안돼있는데 가족관계·혈연 전체의 제도를 들어엎어야 되는 얘기를 하자니 제가 너무 전문성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나기 : 대만에서 법적으로 인정하는 동성결혼이 되기 전에도, 여러 가지 운동이 있었던 것은 그 기반에 또 다른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나름의 커뮤니티를 꾸리고 운동을 해왔기 때문이거든요. 세 번째 법안을 많이 지지한 사람들은 레즈비언 엄마들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론 금지가 안 되어있는데 약간 관행적으로 금지되어있는 게 결혼을 안하면 정자 기증을 못 받고, 레즈·게이 커플 사이에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걸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홍석천 씨가 입양을 하긴 했지만, 입양은 어느 정도 비혼에게 제한적으로나마 허락되어 있는데, 동성 커플 중 일방이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 자체를 인정 못하더라고요.

 

대만에서도 비슷했는데, 그래서 일단 낳아라, 낳는 법을 알려주겠다 해서 레즈비언 엄마들이 단체를 만들었어요. 아이 낳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가족을 그냥 만드는, 애부터 낳고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지금 단체 이름은 Taiwan LGBT Family Rights Advocacy이고, 처음에는 이성파트너와 이혼한 레즈비언 엄마들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LGBT를 포괄하여 재생산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어요. 그래서 그 단체가 주축이 되어서 가족 조합의 운동을 했죠. 한마디로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욕구 집단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 식의 가족을 만들고 싶은. 이후에는 그렇게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성소수자 커플이 생기니까 그 성소수자 부모 밑에서 자라는 자녀가 있잖아요. 그 자녀가 교육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교육부랑 이 가족 조합에 대해 인정하고 교육에 포함시키라는 운동을 또 엄청 한 거죠.

 

터울 : 한국에서도 수요가 없다기 보다, 사실 수요란 건 창출되는 것이고 구성되는 것이기에, 언젠가는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해봅니다. 

 

 

 

 

"전 이성애자로 다시 태어난다 해도 결혼 같은 건 생각 없어요. 뭔가 그런 약속을 한다는 게 제게는 짐처럼 느껴져요." (범석, 214쪽)

 

 

 

 

5. 성소수자 가족구성권에 개입되는 젠더 문제 

 

 

터울 : 자연스럽게 다음 얘기로 넘어가 보죠. 가족 얘기를 하려면 젠더 얘기를 안할 수가 없죠. 그리고 젠더는 어쨌든 이원 젠더이지만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이원 젠더 안의 억압이 있고, 그 다음에 시스젠더·트랜스젠더 사이의 젠더 억압 양자가 교차적으로 작용하는데, 전자를 먼저 얘기해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결혼이라는 말 앞에 남성과 여성이 갖게 되는 위치성은 확연히 다르잖아요. 헤테로들이 주위에서 결혼하면 남성들은 보통 투정을 부리죠. 드디어 매인 몸이 되었어, 더 이상 놀지 못해! (웃음) 거기에 물론 부양에 대한 고민이 있고, 여성의 경우에는 그 때부터 많은 고민이 시작되죠. 시월드와, 출산에 관해서 그다지 사회화되어있지 않은 지식에 봉착하는 문제들과, 여러 가지 억압들이 있을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비혼이 갖게 되는, 여성에게 결혼이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해주시면 좋겠어요. 

 

나기 : 저는 바이섹슈얼이라, 남성 파트너랑도 굉장히 긴 시간 연애를 했었어요. 8년 사귀었었는데, 저는 한번도 남성 파트너가 있을 때는 같이 살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같이 살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 안했고, 처음 만날 때부터 나는 너랑 같이 살 일이 없다고 얘기했었어요. (웃음) 지금 여성 파트너랑 같이 살고 있는데,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성별적으로 해석되는 것 자체가 문제예요. 내가 똑같이 밥을 해도, 이 파트너랑 있을 때 하는 거랑, 이 파트너랑 있을 때 내가 밥하는 행위, 청소하는 행위, 이런 것들이 의미가 전혀 다르게 부여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내가 밥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 밥을 하는 행위가 어떤 행위인지 사회가 부여하는 의미가 나에게 가장 좌절감을 많이 주고, 그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갈등이었던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항상 싸웠고. 관계에서의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하는 그 노력 자체도 '여성적'인 것으로 해석되는 것, 성역할로 해석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결혼이라고 이름붙여지지 않더라도, 어떤 종류의 공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성역할이라고 하는 것이 그 관계를 해석하는 데 주는 압력이 굉장히 강한 것 같고, 그것이 좀 깨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 

 

터울 : 요새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현상을 보면, 기혼 여성이 갖는 어마어마한 정동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을 둘러싼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이걸 내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이 엄청난 것들을, 이런 동력들이 보이거든요.

 

나기 : 그런데 우리는 항상 얘기하거든요. 그래서 결혼 제도를 바꿀 사람은 이성애자다. 왜냐하면 나는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웃음) 모든 문제는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가 가장 강력한 동력을 가지게 마련이고, 그 사람들이 싸웠을 때 가장 많이 바꿀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기혼 페미니스트야말로 최고의 전사라고 생각해요. 

 

심기용 : 최전방에 있는, (웃음) 

 

나기 : 나는 이제 이성애자 남성하고 싸울 일이 없어요. 말 섞을 일도 별로 없거든요 사실은. (웃음) 그런데 그 사람은 매일매일 일상에서 부딪쳐야 하는 거고, 시월드와 계속해서 부딪쳐야 하는 사람인 거고. 지금 의미 있는 컨텐츠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도 다 기혼 페미니스트예요. '며느라기'라든가, 'B급며느리'라든가, '며느리사표'라든가, '졸혼'이라든가, 온갖 종류의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건 기혼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결혼 제도 안에서 느끼는 불합리함 같은 것들을 가장 많이 이겨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은 사실 결혼 제도에서의 불합리함을 타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그 결혼 제도가 얼마나 이성애중심적이고, 성별이분법 중심적인 지를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것인 거죠. 그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혹은 딸로서 겪게 되는 문제가, 그 정체성이어서 그 역할이어서가 아니라, 여자여서가 아니라, 우리를 이 제도가 어떻게 여자에 위치시키고 어떻게 아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의미화하는지를 같이 얘기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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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툰 '며느라기'.

 

 

 

터울 : 비혼 페미니스트로서, 기혼 여성 페미니즘에 대해 정중히 정리해주신 것 같아요. (웃음)

 

나기 : 그런데 항상, 언니네트워크는 친구사이나 어떤 특정한 정체성을 내세우는 성소수자 단체와는 다르게, 굉장히 정말 오만 정체성이 다 있단 말이에요. 이성애자 남성, 이성애자 여성, 시스젠더,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 레즈비언 할 것 없이 다 있는데, 비혼 얘기를 하면 우리는 그런 이성애중심주의와 성별이분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고 퀴어페미니즘으로서 비혼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데, 비혼을 이야기하면 혼인이라는 것에 대해 가장 직접적으로 고통을 떠올리는 사람은 기혼자이기 때문에, (웃음) 혹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이성애자들이거나, 그런 분들이 되게 많이 와요. 보통 적응을 못하고 가죠. (일동 웃음)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혼의 이야기와 우리가 생각하는 비혼의 이야기가 결이 다른 거거든요. 그래서 많이들 가죠.

 

 

 

 

"“게이들 중심이라서 이런 집을 만들 수 있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돈이 있다는 거죠. 그건 현실인 것 같아요. 레즈비언들은 같이 살아도 빈곤하게 사는 모습을 많이 봤거든요." (오김현주, 66쪽)

 

 

 

 

터울 :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게, 무지개하우스 얘기에서 오김현주님께서 무지개집은 게이가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집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건 게이들이 돈이 있다는 거고, 그건 현실인 것 같다, 레즈비언들은 상대적으로 빈곤하게 사는 모습을 많이 봤다,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이건 굉장히 중요한 얘기 같아요.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LGBT라는 엄브렐러 텀을 만들어내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기초적인 상식을 공유할 수 있는 성소수자 공동체라는 기본적인 구상이 있었고, 게이인권운동단체라 하더라도 레즈비언이 어떻게 살고 있고, 거기에서 나오는 젠더적 권력이 무엇인지를 아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여성 성소수자들이, 논바이너리 분을 옆에 두고 계속 이렇게 호명하는 게 좀 죄송스럽긴 한데, (웃음) 바로 다음에 관련 질문이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시고, (웃음) 관련해서 주위의 여성 성소수자, 레즈비언들이 어떻게 살고 계신지에 대한 사례를 한두 개만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나기 : 무지개집 만들어지기 전에, 함께주택협동조합이 1호 주택을 비혼 1인 가구를, 비혼이라고 붙이진 않았지만 어쨌든 1인 가구를 위한 협동주택으로 만들었는데, 그걸 보고 나서도 바로 우리끼리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가 집을 지으려면 실질적으로 돈이 얼마가 드는 건지 감도 안오는 거죠. 그리고 무지개집이 실제로 지어진 후에, 게이라서 지을 수 있는지는 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레즈비언들이 돈이 없냐 그러면 난 솔직히 말하면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거든요, 요새 보면. 월퀴모(월급쟁이퀴어모임)이 잘되는 것도 그렇고, 직장인 퀴어모임도 그렇고, 

 

터울 : 부럽다...

 

심기용 : 기득권 기득권. (일동 웃음) 

 

나기 : (웃음) 그리고 가구넷에서 강의하는 것 때문에, 세무 강의 떄문에 한번 갔었는데, 정말 레즈비언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거든요. 열린 강의였는데, 

 

심기용 : 패싱돼 보이는 기준으로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이었어요. 99%. 

 

나기 : 물론 그게 돈이 있다는 증거는 아니고, 어쨌든 가족구성권에 대해 레즈비언들의 욕구가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죠. 그래서 뭐가 실질적으로 차별인 것 같냐, 불평등한 상황에 놓인 것 같냐는 걸 알려면, 무지개집을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를 알아야 될 것 같아요. (일동 웃음) 그 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 어느 정도의 평형으로 어느 정도의 공간과, 어느 지역에 만들면 되는 건지, 지금은 되게 핫한 지역에 만든 거잖아요.

 

백퍀 : 그 땐 쌌대요. 

 

나기 : 땅이 쌌겠죠. 

 

터울 : 그쵸, 건물 짓는 데는 비쌌죠. 

 

나기 :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우리 단체 사람들이 제일 많이 궁금해하는 영역이고, 

 

백퍀 : 그건 와서 보시면 돼요. 자료가 많아요. 보고서나 자료집으로도 나와있고, 

 

터울 : 접근 가능하신 것 같아요.

 

백퍀 : 얼른 지으세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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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다가구주택 1인실로 구성된 함께주택협동조합 1호주택.

 

 

 

나기 : 그런 것들을 같이 공부하고 싶어해요. 그러니까 꼭 돈이 많아서 좋은 곳에 좋은 집을 짓는 게 아니라, 그 돈이 없다면 가능한 지역에 가능한 예산으로 지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꼭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아까 말한 대로 동네 커뮤니티가 되면 좋죠. 여성성소수자들이 공동체 집을 안짓는 것은 (못짓는 게 아니라)어쩌면 개인으로서 살 수 있는 공간, 거리감을 더 원해서일지도 몰라요. 이번에 사업지원금을 받아서 '독고다이(독거를 고민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라는 프로젝트를 하는데, 이 여자들이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거든요. 우리는 독거를 원하고, 수용할 수 있는 거리감은 동네 커뮤니티 정도인 거죠. 그런데 나는 사실 그 동네 커뮤니티가 되게 힘든 발상이라고 생각해요. 

 

심기용 : 엄청 힘들어요. 이상이죠, 이상.

 

나기 : 왜냐하면 돈 버는 지역이 달라서, 제일 문제되는 게 그거죠. 비혼인 사람들이, 특히 레즈비언들이, 레즈비언이라서 돈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좀 나는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레즈비언 클럽이 잘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레즈비언들이 돈을 안 써서 클럽도 잘 안되고 술집도 안되고 게이들에 비해서 그런 게 안된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그건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의 차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터울 : 심지어 최근에는 퀴어여성 전용 파티가 만들어져서 꽤 성황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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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주요결과보고서>, 2014, 71쪽.

 

 

 

나기 : 그래서 돈이 막 절대적으로 어떤 집단에 비해서 적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아까도 말했듯이 이성애중심적이고 성별이분법적인 결혼, 가족제도가 온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여성성소수자가 가계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포착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는 분명 있죠. 성차별적 환경에 노출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고.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별 이분법에 어긋나는 논바이너리 정체성이라든가, 트랜지션 이행 중이어야 하는,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는 직업 선택과 유지에 굉장히 위협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정말 계급적으로 문제적 차이가 있다면 그 집단이 그렇지, 레즈비언들은 패싱을 정말 성별이분법에 들어맞게 할 수 있다면 직업적인 선택이라든가 그런 것에 상대적으로 별 문제를 안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레즈비언이나 바이섹슈얼이나 성적 지향과 상관없이 젠더표현에 있어서 사회가 그 사람을 인식하는 성별과 어긋한 젠더표현을 하는 사람은 문제를 많이 겪을 수 있죠. 2016년 삼성에서 트랜스젠더가 트랜지션 중 퇴사압박을 받고 퇴사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계급적으로 유의미하게 차이가 생기는 집단으로 더 드러나야 하는 쪽은 논바이너리나 트랜스젠더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가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충분히 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걸 위해서 더 많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심기용 : 그건 통계자료가 있어요. 제가 알기로 친구사이에서 수행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보면, 연봉이나 소득수준이 게이와 레즈비언은 비슷해요. 그런데 트랜스젠더에서는 확 떨어져요. 물론 남성에 비했을 때 여성의 임금격차가 심한 건 사실이지만, 성소수자 인구 센서스랑, 정말 거시적인 입장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인구 센서스를 그냥 비교하면 곤란한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걸 그냥 대입시키기에는 이 커뮤니티의 지형이 너무 달라요. 

 

나기 : 누군가는 이런 좌담회에 자기 상황을 대입했을 때 "뭐 헛소리하고 있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얼마전에 1972년에 쓰인 '레즈비언 선언문'을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더지가 공유해줘서 읽었는데, 거기에 되게 웃기면서도 의미있었던 이야기가 뭐였냐면, 여성 성소수자, 레즈비언이야말로 직업을 계속 유지하기 때문에, 출산과 육아를 하지 않고, (웃음) 경력단절의 기간을 겪지 않고, 우리의 정체성을 가지고 기존의 여성들이 가지 않았던 영역에 우리도 갈 수 있기 떄문에, 우리야말로 노동 전선에서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데 가장 기여할 집단이라고 쓰인 선언문이었거든요. 나는 되게 웃기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맞다고 생각해요. (웃음) 돈벌기 좋은 집단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생물학적 비율" (46쪽)
"생물학적 성sex" (243쪽)

 

 

 

 

터울 : 좌담회의 흐름이 너무나 아름답게 가고 있군요. (일동 웃음) 시스젠더 여성 당사자로서 품격있는 정리를 해주신 것 같아요. 이제 젠더퀴어 얘기로 넘어갈 텐데요.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 사이의 불균등한 위치에 대해서요. 이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전에 꼼꼼하게 읽긴 했었지만 다시 읽으면서 걸렸던 게, "생물학적 비율", "생물학적 성(sex)"이라는 말이 몇 번 나와요. 뭐 사실 편의적으로 쓸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그게 언피씨(un-PC)할 수 있는 이유는, 어쨌든 '생물학'을 정하는 다양한 기준이 있고, 가령 호르몬, 외성기, 염색체 등이 있는데, 성을 확정할 때 그 기준이 때로는 자의적으로 적용될 때가 있죠. 우리가 흔히 '생물학적 성별'이 아니라 '지정 성별'이라고 쓰는 이유도, 태어나서 아이의 성별을 결정하는 의학 권력이 대단히 전문적이거나 꼼꼼해서가 아니라 그냥 외성기를 쓱 보고 성별을 지정해버리는 문제, 그래서 간성(intersex)의 성별 지정 문제도 나오는 것이겠고요. 그런 문제들을 환기하기 위해 '지정 성별'이란 말을 쓰는데, 정숙조신님께선 혹시 괜찮으셨어요, '생물학적'이란 표현이?

 

정숙조신 : 안 괜찮죠. (웃음) 제가 그런데 사전에 그 대목을 못 봐서, (일동 웃음)

 

백퍀 : 그래서 이렇게 표정이 좋으셨구나, (웃음) 

 

터울 : 원래는 젠더를 생물학적 성과 구별되는 사회적인 성으로 정의했다가, 사실은 이제는 그 생물학도 젠더다, 성기도 젠더다, 이렇게 가는 게 트랜스젠더퀴어에서의 흐름인 것 같아요. 

 

정숙조신 : 네, 맞아요. 

 

심기용 : 그래서 옛날에 성별정체성을 설명할 때, 젠더랑 섹스(sex)를 구별하게 되는데, 섹스를 굳이 쓰는 이유는 간성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환기하기 위함이죠. 그건 gender identity와도 다르잖아요. 그래서 저 sex라는 말을 어떻게 번역해야되나, 저걸 성별, 이렇게 번역하는 것도 웃기고, 성별정체성도 웃기고, 생물학적 성별이라고 하니까 그것도 웃기고, (웃음) 

 

터울 : 맞아요, 그게 되게 고민돼요.

 

심기용 : 그래서 저걸 어떻게 번역할까 하다가, 그냥 '생리학적 성차'라고 해놓고, 정체성이란 말을 쓰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비껴가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트랜스젠더들도 자기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의 문제잖아요.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그들이 제일 잘 알잖아요. 트랜스젠더 커플이나 트랜스젠더인 사람과의 연애 관계에서, 그걸 외부 사람들이 해석하는 것에서 아까 그 섹스에 대한 부분이 나오잖아요. 저 질문이 그런 맥락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도대체 트랜스젠더들이 섹스를 어떻게 해?" 약간 이런 느낌. 그리고 그들은 자기의 몸을 특정한 방식으로 싫어할 거라는, 특정 방식의 위화감(dysphoria)이 있을 거라고 하는 역설적인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체성을 다르게 생각하는 이유가, 성기에 대한 혐오가 있기 때문이라고, 위화감의 방식을 정해놓고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제 주위의 무수한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자기의 성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요. 그러니까 어떤 섹스를 할 때, 아까 그 말이 딱 맞는 거예요. 있으니까 쓰는 거고, 쾌락을 주는 기관인 거예요. 다만 난 외부로부터 개입되는 해석과는 다르게 내 몸에 대한 젠더를 해석할 뿐인 거죠. 

 

터울 : 이것도 사실은 바이너리 트랜스젠더에서 트랜스젠더퀴어로 넘어갈 때 등장할 수 있는 담론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진행을 하고 있다보니까 가족구성권에 대해 질문할 때 어떤 고충이 드는 것이, 트랜스젠더퀴어라고 하면 끊임없이 자기의 경험이 뭐고 뭐가 다른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지, 트랜스젠더퀴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관계의 특수성이 있나요-로 대화가 이행되기가 힘든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정숙조신 : 연애는 악의 축이에요. (웃음) 트랜스젠더퀴어의 상당수가 무성애자거든요. 여행자에도 왠지 무성애와 유성애가 반반일 것 같을 정도로, 무성애자가 유의미하게 많아요. 그러다보니까, 이건 무성애자 커뮤니티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인데, 사람들이 그 안에서 연애 드라마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잘 상상을 못해요. 그런데 물밑에서는 생기고 있거든요. 물밑에서는 정말 유성애자들 모임이랑 별로 다를 바 없거나, 어떤 의미로는 더 복잡할 수 있어요. 

 

나기 : 연애는 단체 입장에서 참 어려운 일이죠. (웃음) 

 

정숙조신 : 네, 그게 더 문제가 되는 게, 사람들이 잘 상상을 못하고 대비가 안돼있다 보니까, 

 

터울 : 각본이 없으니까, 

 

정숙조신 : 네, 각본이 없으니까 그런 사건이 터졌을 때 주변 사람들도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은 다른 무성애 커뮤니티에서 케이(무성애 커뮤니티에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됨-편집자 주)가 깽판을 칠 수 있었던 것도 그거예요. 그 안에서는 사람들이 로맨스 관계나 섹스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상상을 잘 못하니까. 하지만 그레이에이섹슈얼이라든가, 그냥 에이로맨틱이기만 하고 섹스는 한다든가, 그 반대라든가 그런 케이스들도 얼마든지 있고, 그 안에서 퀴어 플라토닉도 있고, 어떤 종류의 관계는 일어날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게 치정이 될 수도 있고, 섹스랑 얽힐 수도 있고, 얘랑은 섹스하고 얘랑은 연애할 수도 있고, 그런데 이제 그걸 감정으로는 못 받아들여서 난리가 날 수 있고.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 그 주변의 사람들은 자기는 무성애자이기 때문에, 연애 각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의 흐름이라든가, 가령 얘랑 얘가 사이가 좀 수상한 것 같다고 알아차리면 뭔가 거기에 맞춰서 행동하는 게 있잖아요. 그게 안되는 사람이 대부분인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물밑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문제를 키우는 경우도 많아요. 

 

터울 : 이 말씀을 들으니까, 제가 유성애자로서 성애의 각본을 얼마나 유용하게 이용하며 살고 있는지 절감되네요. 

 

정숙조신 : 무성애자 집단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고요. 여행자같은 트랜스젠더퀴어 집단에서도 어느 정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서, 성별 위화감이 자폐 스펙트럼이랑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 아시죠? 자폐 스펙트럼의 대표적인 증상 중의 하나는 눈치 없는 거예요. 비언어적 신호를 잘 못 읽고, 하나에 집착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감정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른다는 뜻도 돼요. 역시 물밑에서 문제가 커지는 걸 주변에서 아무도 모르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 거죠. 

 

터울 : 퀴어문화축제에서 무성애자 부스에 가면, 무성애라는 게 성애-없음, 성애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움-이 아니라, 성애에 대한 입장이 다른 거라는 걸 계속 설명해주시는데, 그 부분에 대한 지적이신 것 같아요. 

 

정숙조신 : 어쨌든 성애적 관계는 계속 있고요. 심지어는 성행위가 동반되기도 하고요. 그게 조금 패턴이 유성애자들 모임이랑 다를 뿐? 그런데 그걸 당사자 집단들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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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x'를 '생물학적 성별'로 번역한 나무위키 항목.

 

 

 

 

터울 : 트랜스젠더퀴어 집단을 보면, 동성애자인권운동 초기에 언어없음에 시달리던 현상들과 오버랩되기도 하고요.

 

정숙조신 : 그리고 현재 성별 위화감이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어있기도 한 만큼, 실제로 정신질환을 앓는 분들이 많은 편이에요. 또 요즘은 트위터에서 젠더퀴어 담론을 접하고 온 사람들이 많아서, 소통을 한다기보단 실시간 트윗을 하듯이 저마다 말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심기용 : 집단적 독백 같은, 

 

정숙조신 : 네, 집단적 독백을 하고 있어요. 그게 이제 자폐 스펙트럼과도 맞물리죠. 

 

터울 : 성소수자의 정신질환에 대한 얘기는 사실 이 책에도 잠깐 나오죠.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말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젠더퀴어의 일상으로 돌아가자면, 가족을 이루거나 공간을 꾸리고 동거를 하려면 돈과 계급이 중요하잖아요. 왜냐하면 굉장히 직업 차별에 시달리는 인구군이고, 

 

정숙조신 : 취업을 잘한 모범적인 사례가 주변에 잘 안 보여요. 이 안에서 서로의 퀴어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지정 성별을 상관하지 말고 잘 만나서 살자는 케이스가 가끔은 보이는데, 그런데 또 그런 커플들은 보면 약간 좀 대안적 헤테로 커플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지정 성별 남성인 사람과 여성인 사람이 만나서, 90-00년대 페미니즘 운동에서 약간 그 전까지의 헤테로 커플의 상을 벗어나서 대안적이고 평등한 사이를 추구하자, 그런 것의 약간 변형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요. 정리하면,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커플이 된다는 게, 대안적 이성애 커플 같다는 게, 사회적으로 전제된 이분법적 성역할을 수행하라는 기대를 안 깔고 가는 관계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터울 : 트랜스젠더퀴어의 관계에서는,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친밀성의 필요 만큼 심리적 거리가 필요하다는 구도 안에서, 그 심리적 거리가 굉장히 큰 곤경이 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젠더는 바깥에서 온 것이고, 그것에 내가 따라가면서 자의적으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재단되면서 곤란해지는, 그러니까 친밀성 자체도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지러지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정숙조신 : 예를 들면 제가 게이 남성을 만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제가 저를 어떻게 정의하든, 어떤 젠더표현을 하든 어떻게 패싱되든지간에 결국은 그냥 여자같은 남자로 보는 거예요. 그 기준에서 이 사람이 파트너로서 합당한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수 있다고 하면 자는 거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나의 '식'은 아니야-가 되는 거죠. 그래서 그런 사람이랑 만나려면, 시스젠더로서 역할을 강요받는 상황이 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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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성애 깃발.

 

 

 

터울 : 이런 걸 보면 참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가 얼마나 많은 규범에 기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이 책이 말하지 않고 있는 중요한 지점을 말씀해주고 계신 것 같아요. 논바이너리가 가족구성 이전에 파트너링 차원에서도 이런 문제를 겪는다고 말씀해주신 셈인데요. 

 

정숙조신 : 터울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네요. 파트너를 찾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힘든 사람이 많으니까, 그 파트너와 가족을 구성해서 사는 일은 그냥 남의 일로 느껴지는. 파트너십에 대한 모델이나 상이 없고, 너무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지레 그런 류의 관계를 포기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아까 동거 관계나 그 공간에서 느낀 거 얘기하는 질문에서 제가 별로 할 얘기가 없던 이유도 그래서였나 싶고.

 

터울 : 그게 무성애와 연결이 되기도 할까요?

 

정숙조신 :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어쩌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저는 많이 해요. 나는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시작으로 무성애 정체성으로 넘어간다든가. 저는 육욕은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웃음) 성향은 에이로맨틱에 가까워요. 그게 굉장히 그런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인 것 같아요. 

 

터울 : 알겠습니다. 그래도 방송은 끝이 아름다워야 하기 때문에, (일동 웃음) 여행자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트랜스젠더퀴어들 사이의 친밀성의 전범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논바이너리 분들이 모여서 자조모임을 만들었을 당시에는, 트랜스젠더 자조모임이 예전에 있었지만 맥이 끊겼던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여행자가 나타났고, 그래서 바이너리 트랜스젠더가 포함된 행사들도 적극적으로 개최하셨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가 같은 커뮤니티성이나, 어찌보면 의사-가족 형태의 친밀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정숙조신 : 같은 욕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모였다는 게 중요하죠. 

 

터울 : 네, 그 점이 동성애자 커뮤니티와는 확연히 다른 것 같아요. 

 

정숙조신 : 근본적으로 달라요, 네. 

 

터울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어쨌든 서로 친해지고, 그래서 성소수자 인권포럼의 여행자 세션에 가보면, 뭔가 전우들 같아요. 군대 비유를 써서 좀 그렇긴 한데, (웃음)

 

정숙조신 : 왜냐하면 처음부터 서로가 너무 다르다는 걸 전제로 깔고 들어가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이는 걸 자연스럽게 연습하게 돼요. 그리고 그게 이 커뮤니티에 적응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에요. 가령 게임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언제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트렌드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건 기본적인 필수조건이에요. 

 

 

 

"인권 운동 판에서 사람이 없어 힘든 점을 몸소 느끼다 보니 저희라도 하고 싶었던 거예요." (갱어, 101쪽) 


"활동이 있으면 데이트와 활동을 동일시해서... 뭔지 아시죠?" (이경, 175쪽)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 이런 커플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하나, 179쪽)
 

 

 


6. 성소수자커뮤니티의 독특한 당사자성과 그 음영

 

 

터울 : 마지막 질문을 드리도록 할 게요. 저는 이 책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게,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독특한 당사자성에 관한 것인데, 다들 활동가예요, 보면. 활동과 일상이 다 겹쳐 있으시잖아요. 사실 이 책에서 나왔던 모든 커플들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이런 커플도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일상임과 동시에 거기에 붙는 활동성을 어필하는 것이고요. 그게 사실은 성소수자 운동이나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되게 큰 힘이기도 하죠. 퀴어문화축제에서 내 존재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운동일 수 있는.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갖는 피로감이나, 그것으로 인해 일상이 사라지는 문제들도 동시에 겪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축제에서 다들 건강한 것만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뭔가 이렇게 정신질환이 있는 성소수자들이 끊임없이 재현에서 밀려나게 되는 상황들.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가령 제 주위의 성소수자들이나 게이들이 많이 자살하는데, 그 자살 소식을 접하고 난 다음에 게이스북을 보면, 최대한 이 슬픔과 이 파괴적인 감정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묵계가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걸 보면 오히려 스스로의 소수자성에 대해서 더 절감하게 되는, 죽음을 죽음으로 이야기하기가 힘든,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기가 힘든 어떤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가 멀쩡하고 건재하다는 걸 강박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느낌이 있는 거죠. 

 

사실 여기 계신 분들도 다 그런 것들을 공유하시는 것 같아요. 내가 당사자고 내가 운동의 주역이고 한 게 되게 좋지만, 어떤 의미에선 내 일상과 내 활동이 분리되지 않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으실 것 같거든요. 다소 복잡한 질문이지만, 저는 이게 이 책의 중요한 함의이자, 이 좌담회의 중요한 함의라고 생각해요. 이에 대해 좀 풀어주실 수 있을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정숙조신 : 저희 어머니가, 퀴어활동 하는 거 다 좋은데, 시간 좀 덜 쓰래요. 뭐 어쩌라고. (웃음) 

 

심기용 : 저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분명히 저의 맥락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게 어쨌든 얼굴이 알려지거나 하면, 저 사람이 이 광의의 성소수자 운동의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거라든가, 나의 인생을 약간 소거하고, 보편적인 말만 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했을 때 저건 비판 지점이 있고, 아니면 내가 반대로 잘못된 지점이 있고 해서 의견 교환을 하든지, 아니면 서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게 있어야 되는데, 저 사람이 활동가야-라고 하게 되면 그럴 여지가 없어져요. 저 사람은 보편적인 말을 잘 해야 되는 거예요. 

 

정숙조신 : 완성되어 있어야 하고. 

 

심기용 : 네. 발언문 같은 걸 쓸 때마다 정말 내가 포괄적인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그런데 이게 포괄적인 말이 되면, 재미가 없어지고 내용이 없어지고 구체성이 떨어지고, 점점 절실해지지 않거든요. 그 포괄적인 말을 절실하게 하는 법을 배우는 중인데, 사실 만약에 제가 이런 책을 써서 인터뷰를 하게 되면, 아까같은 말을 하게 될 것 같은 거예요. 폴리아모리 운동의 상황, 내가 연구한 커뮤니티의 성격, 이걸 막 분석하고, 정작 내 삶은 얘기하지 않고, 

 

나기 : 내 삶만 얘기하면 너무 특정해지는 것 같으니까,

 

심기용 : 네, 그래서 인터뷰를 하게 되면 간단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내가 이러한 것은 어떤 사회적 관계망에서의 일이고, 다른 운동과의 관계는 이렇고, 그래서 발언 하나 할 때마다 논문 한편을 써야 돼. 그래야 욕을 안 먹고, 그래야 인터뷰에 실리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고, 이런 강박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점점 나의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 때가 많아요.

 

나기 : 완전 동감해요.

 

터울 : 그게 되게, 한국에서의 퀴어운동이 가진 특성이고, 한국의 퀴어운동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퀴어하지 못한, 퀴어의 원의로서는 퀴어하지 못한 결과가 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규범력이라는 게.

 

심기용 : 맞아요. 그러니까 퀴어규범성이란 게 있는 거예요, 나름.

 

터울 : 그렇죠. 한국에서는 분명히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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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queer'에 대한 영문 위키와 한국 위키의 정의 (2018.5.30.)

 

 

 

나기 : 저도 정말 지엽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고 있어요. (일동 웃음) 정말 지엽적이고, 정말 상스럽고, 그런 얘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이고 있고. 그리고 저는 그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저 이번 주에도 일주일 내내 회의가 있었거든요. 저는 전업 활동가가 아니고, 직장이 있는 직장인이고, 거기서의 직업 활동에서도 계속해서 발전을 이루어나가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그런 걸 내팽개치고 저녁 시간 뿐만 아니라 출근해서도 거의 한 1/3은 단체의 일을 위해 시간을 써요. 그리고 애인이랑도, 회의에서 만나거나, 아니면 둘다 다른 회의가 있거나, 그래서 같이 자는 것만이 유일하게 공유하는 시간인 거예요. (웃음) 그래서 거의 제가 파트너를 만나고 나서 3년 동안 거의 매년 그랬어요. 그래서 정말 너무 사생활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게 이게 마음처럼 안돼요. 

 

그리고 워낙에 관계가 없어요. 저는 이 파트너 관계 외에도 이걸 지켜봐주고 공동의 커뮤니티에서 동네 이웃이나 어른처럼 우리 관계를 아는 사람이 너무 필요한데, 그걸 만들려면 또 운동을 해야 하거든요. 왜냐하면 그걸 해줄 사람은 어차피 이 단체에 있는 언니들밖에 없고, (웃음) 내가 가지고 있는 사적 연결망이라는 것도 운동에서 나오고, 이 단체에 속해있기 때문에, 내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 자체가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분리하고서는 상상이 안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터뷰하고 얼굴을 드러내는 것, 혹은 내가 심지어 우리 부모님께 커밍아웃한 것조차도 활동 때문에 한 거거든요. 우리 아빠가 내가 만든 <퀴어페미니스트매거진 펢>을 봤기 때문에. (일동 웃음) 내가 성소수자로서 살아오게 된 면면들이 다 활동가로서 살아온 역사랑 너무나도 일치하고 있어서, 요새 고민은 뭐냐면, 내가 언니네트워크를 그만두고 잘 살 수 있을까, 약간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터울 : 사실 이건 무지개집에 사시는 당사자들도 되게 많이 느낄 것 같아요. 저는 되게 걱정이 되는 게, 이 책과도 연결되어있는 부분인데, 사람이 사적 영역에서 길어올릴 수 있는 자원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는데, 활동 때문에 이 사적인 영역들을 퍼가잖아요. 이것은 커밍아웃이고, 운동적인 당위성도 있고 하니까 어쨌든 계속 끌어서 쓰는데, 

 

심기용 : 무지개하우스 고양이도 인터뷰 나가고. (일동 웃음) 

 

백퍀 : 걔네들도 운동하는 것 같아요. (웃음) 

 

터울 : 뭐 일상이 정치고, 운동이 생활과 분리되어있지 않고 다 좋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개집 사람들의 사적인 생활이 걱정될 때가 있어요. 뭔가 이렇게 이야기가 다 빼앗겨나가는 듯한 어떤 고민이 없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백퍀 : 저 약간 방금 좀 뜨끔하다고 해야 하나, 번쩍 뜨인 게, 저는 제가 활동가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활동가가 아니고 그냥, 뭐라고 하지? 그 생각을 안하고 있었는데, 나기님 말 듣다보니까 나도 이 정도는 활동가라고 해야 되는 건가? 이런 되게 애매한 지점이 있는데, 

 

나기 : 이 책에 등장한 이상, (일동 웃음)

 

백퍀 : 스스로 언어화하고 정의하지는 않았는데, 이 고민이 공감이 된다는 걸 생각하니까 내가 활동가인가? 약간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저도 제가 원래 어떤 공동체 안에서 그렇게 마음을 잘 붙이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되게 어딘가에 속하고 싶었지만, 내가 성소수자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항상 나는 이성애자들 사회 속에 있으니까 완전히 속하기 힘들다는 게 잠재의식 속에 있어서 그런지, 친구가 굉장히 많고 친하게 지내도, 그런 이질감을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다 처음으로 이렇게 생활까지 깊숙히 들어온 공동체가 생겼는데, 터울님이 걱정하는 그런 부분이 지금 진짜 걱정을 하고 있다기 보다는, 비슷한 생각을 해요. 내가 친구사이나 무지개집 없이 살 수 있을까? 심지어 저는 제가 혼자서 자립을 하기도 전에 이런 커뮤니티를 만난 거란 말이에요. 내가 무지개집 없이, 친구사이 없이 내가 그냥 또 그 사회에 나갔을 때, 그건 상상이 안 가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은 거예요. 예를 들어 지보이스 활동을 하거나, 친구사이 활동을 하는 게, 그냥 어쩌면 전 의식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기 : 투자야?

 

백퍀 : 내가 살기 위해서 하는 투자, 혹은 기회비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최근에 제가 어떤 합의점을 찾은 게, 저 올해 초에 정말 힘들었거든요. 너무 스트레스 받는 거예요. 지보이스 총무하고, 또 무지개집 대표예요, 제가. 그리고 그 때만 해도 친구사이의 어떤 팀에 소속돼있었고, 그리고 나는 커리어 전환을 하면서 밥벌이 걱정을 해야 되고, 이런 고민이 너무나 많은데, 이걸 내가 왜 하필 해야 돼?-라는 생각에 멘붕이 올 때가 있잖아요. 내가 하겠다고 했지만, 어느 순간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화가 나는 순간이 왔었는데, 그걸 한두 달 지나면서 약간 내려놓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어쨌든 내가 이 공동체에서 받고 있는 혜택에 대한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자, 누군가는 사실 살 곳이 없어서 하루종일 알바해야 되고 등록금 벌어야 되고 빚 갚아야 되고 하는데, 그런 노동을 나는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자-라는 생각을 전 하고 살고 있거든요. 

 

터울 : 그럼 본인은 당연히 엄청나게 훌륭한 활동가 아닌가요? (일동 웃음) 

 

백퍀 : 그런데 나는 활동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생계를, 내가 살아가기 위해 하는 행동인데, 그게 그러면 공동체의 힘인가? 그런데 이건 사실 맞는 거잖아요. 내가 살려고 하는 거잖아요, 이걸.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터울 : 그러니까 단체 외부로 나갔을 때의 자신을 상상할 수 없는 건, 사실 되게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유의미한 거고, 성소수자인권운동, 퀴어운동의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인데, 그럼에도 자기가 따로 지켜내야 할 사적 영역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백퍀 : 사실 사람이 완전히 혼자 살 수 없고, 다만 개개인마다 그 거리를 어느 정도로 잡고 싶은지가 다른 거고, 그런 게 좀 있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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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하우스 모형.

 

 

 

심기용 : 활동가의 다섯 가지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외면, 체념, 분노, 슬픔, 수용. (일동 웃음) 맨 처음에 외면해요. 내가 활동가라고 인식을 못해.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막 얘기하면 막 그럴 수도 있겠다 체념하는데, 갑자기 생각하면 화가 나. 내가 활동가라고? 내가 왜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러면서 슬퍼져요. 나 지금 돈벌어야 되는데 뭐하는 거지? 그러다가 나중에는 담담해져요. (웃음) 정숙조신님은 일하면서 활동하시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정숙조신 : 힘들죠. 처음 커뮤니티에 나왔을 때, 운동단체를 통해서 나오다보니까, 옆에서 활동하는 걸 많이 봐왔단 말이죠. 학생운동 같은 것도 옆에서 봐오기도 했었고, 옛날에 학교 다닐 때. 그러다보니까 이제 이쪽도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이 굉장히 중요하구나-라는 걸, 

 

터울 : 너무너무 중요하죠. 
 
정숙조신 : 그걸 일찍부터 인식하고, 노동력을 많이 안 투입하는 쪽으로 살았었는데, 여행자 같은 경우에는 회원들은 사실상 손님인 구조예요. 그냥 정기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이고, 카페나 대화방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고, 실제로 일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운영진이 다 하거든요. 회원들에게 뭔가 시킬 수 있는 구조가 아니고. 그러다보니까 저는 일반회원으로 2년 정도 있으면서 왜 이렇게 일반 회원들에게 뭘 안 시키지 여기는? 궁금해가지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물어보다보니까 결국은 운영진을 하는 수밖에 없구나, (일동 웃음) 

 

심기용 : 질문하는 순간 잘못되는 거야. (웃음)

 

정숙조신 : 그랬는데, 어쨌든 이 운영진들도 다들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운영진들이 학생운동이나 인권운동을 한 경력이 다들 없는 사람들이거든요, 여행자 이전에는. 그러다보니까 다른 데랑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하긴 했어요. 그 와중에 일을 많이 만들지 말고, 갈아넣지 말자는 걸 첫번째 모토로 잡아서, 뭔가 일을 많이 했다 싶으면 격려금도 조금씩 주고, 몇 만원씩이라도. 그리고 갈려나가지 않게 하고 쉬고 싶으면 쉬게 하자는 것에 되게 신경을 많이 쓴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점점 쌓여가고 있어서, 이걸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지? 라는 생각이 요즘 고민이긴 해요. 일 자체도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 특히 바깥을 향한 활동을 계속 하려면, 그만큼 새로운 노하우도 필요하죠. 저희가 퀴퍼 때 금속 배지 나가려고 오늘부터 텀블벅 펀딩을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그 과정이 다 하나하나 일인 거죠. 그래서 프로젝트를 하나 하려고 하면 노동력과 돈과 기타 등등이 들어가는 거고, 이걸 어떻게 분량 조절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좀 없어지고 있어요.

 

심기용 : 사적 생활이 없어지는 것 중 하나가, 이런 운영진 마인드. 이게 문제예요. (웃음) 정숙조신님도 계속 얘기하시다가, 어떻게 하면 더 지속 가능하게 할까, 거기서 이미 단체 고민을 하고 있는 거죠. 

 

나기 : 저도 운영진이 된 계기가 그거였거든요. 왜 여기는 팀 활동가들에게 결정권을 안 주고 운영진들이 다 결정하고 일을 하지? 그래서 운영진들은 뭘 하지? 하고 들어가봤는데, 

 

심기용 : 들어가봤는데 운영진이 되셨군요. (웃음) 

 

나기 : 다른 활동가가 다 그만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긴 하지만요. 헌데 질문하신 건 그거였던 것 같아요. 계속 커밍아웃해야 되고, 가족으로서 혹은 커플로서, 사적으로서 누려야 할 공간 같은 것들이 운동을 위해 드러나야 했을 때,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어보셨던 것 같은데요. 나는 아직 많이 안 드러낸 것 같아서 잘 모르겠네요. LGBT라고 방송쯤은 나와야 그런 고민이 들 텐데, 


심기용 : 저는 제 친구들이 대학생인데, 인권활동 이러면 그 친구들한테는 생소한 영역 같아요. 시민사회 활동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그러니까 소개할 때 이렇게 소개하는 거죠. "그 왜 무지개 흔들어." 이런 식으로 막, 

 

백퍀 : "무지개 흔들어"는 뭐야. (웃음)

 

심기용 : 그러니까 모르니까, 인권활동, 사회운동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게이들한테 설명하면, "아 인권운동하는 사람이다" 이러고 부담스러워하고, 공적 인간으로 보는 거죠. 사적 인간으로 보지 않아요. 무슨 정치인처럼 보고, 게다가 저도 당적이 있으니까 더욱이 '저 사람은 공적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연애할 때도 개입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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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조신 : 얘기 들으니까 생각났는데, 여행자 같은 경우에는 트랜스젠더퀴어 가시화를 위해서 뛰어야 한다는 당위가 있기 때문에 되도록 많이 드러내려고 하거든요, 저도 그렇고. 그래서 드러내는 것에는 별로 거부감이 없는데, 이제 제가 점점 더 대표성을 띠게 되면 어떡하나-라는 것에 대한 걱정은 계속 들어요. 이 집단은 너무 사람들이 다양하고 모습도 다른데, 나라는 사람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면 큰일나는데, 

 

터울 : 그렇죠, 성소수자들 거의 모두가 겪는 문제죠. 

 

백퍀 : 그게 약간 집단에서 한번씩은 겪는 과정일까요?

 

정숙조신 : 그런데 이 집단은 좀더 심한 것 같아요. 

 

나기 : 또 누군가는 대표가 되길 원하고. 

 

백퍀 : 옛날에는 홍석천이 처음 나오니까, 그냥 다 게이가 다 그런 줄 알았는데, 누구나 처음에는 한발짝 나가는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정숙조신 : 게다가 저는 나이가 좀 많은 편인데, 특히 트랜스젠더퀴어 집단은 평균 연령이 낮아요. 왜냐하면 자기 성별정체성이 형성되는 기간이 대개 청소년기인데, 그 개념이 2010년대 초중반에 걸쳐 알려지기 시작했단 말이죠. 그리고 그게 트위터로 퍼져나가면서, 트위터를 하는 중고등학생들이 그 개념을 처음 접하기 시작해서, 나는 젠더퀴어인가봐-라고 생각하면 그런 사람이 여행자로 들어오고, 그래서 20살 언저리인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청소년들도 있고. 그래서 20대 중반만 돼도 수가 확 꺾이고, 나이가 많을수록 수가 적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되게 이 나이까지 살아남은 트랜스젠더퀴어의 롤모델같은, (웃음) 그런 게 되기 너무 쉬운 위험이 있는 거예요. 그걸 저는 정말 경계하고 있는데, 심지어 저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웃음) 

 

나기 : 마지막이 되니까 생각났어요. 언니네트워크에서 가족구성권 책 기획을 했다면 이렇게 안나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니네트워크에서 전 커플로 지탄을 받고 있거든요. (웃음) 언니네트워크라는 단체는 페미니스트 단체다 보니까, 커플로서 묶이는 것보다 개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중요하게 지켜주려고 하고, 가족 사이의 거리감을 지키는 것처럼, 언니네트워크라는 단체 내, 커뮤니티 내에서 개별적인 존재들의 거리감을 지켜주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굉장히 안에 커플이 많은데, 커플로서 드러나는 걸 경계해요.

 

터울 : 알더라도?

 

나기 : 네, 알더라도. 커플이라는 걸 알고, 그 사람이 등장하면 당연히 파트너의 안부도 묻고 하지만, 커플로서 주목받는 건 그렇게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한번 캠프 갔을 때 커플 이야기방을 했었는데, 정말 우리가 만약에 책을 썼더라면, 집안일 얘기가 너무 많이 나왔을 것 같아요. 부치 정체성과 펨 정체성과, 집안일 나눔과, 살림부치와, 페미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성역할 구분이 일어나는가,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가족공동체에 대해서 언니네트워크 내부에서 하게 된다면 그런 얘기가 더 중점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터울 : 그런 책이 꼭 나왔으면 좋겠어요. 

 

심기용 : 맨 처음 커플에서도 그 얘기를 먼저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레즈비언 커플이고 소수자 커플이니까 이런 걸 더 경계해야 돼-라는 말이 전 약간 슬펐어요. 물론 당연히 그 경계의식이 있으면 좋은 거지만, 우리는 레즈비언 커플이니까 이래야 돼-라고 하는 윤리와 당위성에 대한 집착과 강박, 여기 모든 커플이 다 있더라고요. 

 

터울 : 전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이성애자에게 읽히기엔 참 좋은 책인데, 퀴어 당사자들에게 읽히기에는 좀 뭔가, 

 

심기용 : 재미가 없어요. 

 

터울 : (웃음) 좀 그런 느낌이 있는 거예요. 

 

백퍀 : 이거 타이틀로 나가나요? "재미가 없어요." (일동 웃음)

 

심기용 : 지금 3시간 동안 얘기했는데, (일동 웃음) 

 

터울 : 사실 사람들이 드러내는 사적 영역은 각자 취사선택된 거예요. 이 책도 마찬가지고, 오늘 좌담회에서 말씀하셨던 것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런데 성소수자들은 그 취사선택된 사적 영역들을 뭔가 자기 마음대로 얘기하고 자기 마음대로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이성애자들보다 훨씬 더 선택권이 좁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적 영역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는 균등하게 배분되어있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성소수자의 사적 영역은 거의 모든 것들이 전면적으로 정치화되어서 바깥에 드러나있는 상황이고, 

 

물론 그 사적 영역이라는 자원이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게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지금까지 잘 되고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고, 커밍아웃이나 존재의 자연스런 드러냄이나 이런 것들이 핵심적인 동력이기도 한데, 저는 다만 아까 말씀하셨던 규범들이나, 내가 어떤 대리인(agent)으로서 어떤 뭔가를 해야 한다는 내적인 규범성들이 사실 퀴어 주체들 모두를 괴롭히고 있는 어떤 초자아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사실은 우리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조형되었던 그런 강박들에서 자기 사적 영역을 부디 잘 지켜내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이 책을 보면서도 들었고, 오늘 얘기하면서도 들었던 거예요. 그리고 한마디만 더 붙이자면, 그 사적 영역이 부디 '퀴어'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중요한 힘이 아닌가 싶어요. 

 

백퍀 : 정리 발언 하셨는데 저 한 마디만 더 할 게요. (웃음) 사적 영역에 대해서 제가 계속 생각해봤는데, 무지개집에 살다보니까 이런 일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얼마 전에도 경향신문에 났고, 이게 이제 일상이 됐는데, 사실 활동가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내가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가 점점 깊어지고 단단해지니까, 기사가 나가는 게 두려운 마음이 점점 적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전엔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어도. 

 

나기 : 사람들이 이거 보고 빨리 단체에 많이 들어와야 돼. (웃음) 

 

백퍀 : 네. 그래서 나는 피곤한 마음도 있지만, 사실 삶은 원래 피곤한 것 같아요. (웃음) 누구와 관계를 맺는다는 게, 

 

터울 : 정말 훌륭한 활동가이지 않습니까? (일동 웃음)

 

심기용 : 처음 들어왔을 땐 체념 단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수용 단계야. (웃음) 

 

터울 : 이 중에 제일 활동가야. (웃음) 

 

백퍀 : (웃음) 어쨌든 자기를 지키는 게 중요한데, 저는 커밍아웃에 대해서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최근에 저 혼자 뭘 해보려고 전화영어도 하고 하는데, 이전에 남자가한밥에서 일할 때는, 내가 퀴어라는 걸 까먹고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이성애자랑 얘기할 기회가 1도 없는 거야, 그냥. 그러다가 이제 약간 밥벌이를 하려고 뭘 하려고 하면 채이는 게 이성애자인 거죠. 약간 총알장전해서 전쟁터 나온 기분인 거죠. (웃음) 그런데 내가 여기서 내 삶을 이 정체성을 빼놓고 얘기하려면 또 수도 없는 거짓말, 혹은 돌려말하기 이런 걸 해야 되는데, 그걸 하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커밍아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터울 : 중요한 동력을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사실 퀴어들은 사적 영역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치열하게 논쟁하고, 섹슈얼리티를 포함해서.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건강한 것 같아요. 그게 퀴어 커뮤니티의 건강함에 대한 중요한 이유 같아요. 사적 영역을 끄집어내서 계속 들여다보고 논쟁하고 바깥에도 보여주고, 안으로부터도 성찰하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퀴어뽕으로, (일동 웃음)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정숙조신 :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정말 노력 많이 하셨군요. (웃음) 

 

 

 

 

녹취,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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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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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8-06-01 오후 18:56

정숙조신의 유머 재밌네 마지막 ^^
다들 만난적이 있어서 현장에 있는 듯이 재미나게 읽었고요.

저는 파트너와 지낸다는 것은 " 못 볼 것, 안 드러내도 되는 것, 매우 원시적인 것들까지도 공유하는
관계란" 면에서, 다른 관계들 하고 다르다고 생각해요.
성정체성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생활방식으로서 ....

그런 관계맺음이 가족을 형성했을 때, 종종 서로에게 갈등을 일으키게 하고, 서로를 증오하게 하고,
꼴도 보기 싫게 하지만,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은, 나의 존재가 거기서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내가 그 자리로 돌아 갔을 때는, 의존적이지 않게, 지배적이지 않게, 서로가 상호 독립된
상태로, 그냥 삶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노력과 슬픔으로, 가족들을 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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