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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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1]
친구사이 회원 교육프로그램
: '커뮤니티와 폭력'
2018년 3월 28일, 친구사이 교육프로그램 '커뮤니티와 폭력'이 서울청소년수련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교육은 친구사이 정회원·준회원 및 소모임원을 대상으로, 게이커뮤니티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폭력을 재인식하고, 커뮤니티의 구성원들 각자가 "존중과 지지에 기반을 둔 평등한 관계 맺기"를 고민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강사로는 언니네트워크의 더지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폭력이라 하면 대개 압도적인 크기와 스펙터클이 떠오르지만, 사실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고, 이를 당하거나 목격하고도 그것이 폭력이라 인식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교육의 첫머리에서는, 커뮤니티 내 어떤 행위들이 폭력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일 먼저, 흰 종이에 자신의 이름과 활동 연차·데뷔 연차, 단체 내 직책을 쓰고, 각자가 친구사이에 처음 들어오는 신입회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생존팁"을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신입회원은 대개 단체에 대한 정보나 인맥이 적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기존에 활동했던 회원에 비해 더 낮은 위치에 있기 쉽습니다. 이를 적어보는 와중에, 각자가 이 단체에 처음 들어왔을 때 겪었던 소외를 떠올려보고, 그것이 혹여 폭력일 수도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그런 경험들이, 앞서 써두었던 자신의 활동 연차나 단체 내 직책에 비추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다음으로 일상에서의 폭력의 양상을 좀더 체계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강사님은 다음 세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시했습니다. 첫번째는 무엇이 '권력'인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계급, 나이, 인맥, 젠더, 미모(!) 등이 권력의 유무를 가르는 기준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두번째는 그 권력에 맞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협상력'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부당함을 느낄 경우 그 자리에서 당장 항의하거나, 개인적으로나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는 방법이 제시되었지만, 그렇게 하기 어려워서 닥친 상황을 그저 회피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이것이 개개인이 가진 협상력의 차이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폭력적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삼각관계(triangulation)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뿐만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각자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폭력과 그에 얽힌 권력 및 협상력은, 비단 피해자와 가해자만의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공동체의 구성원,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도 연루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커뮤니티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이 될 수도 있을 상황 세 가지를 돌려 읽고, 그 상황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제3자의 입장에서 각자는 어떻게 그 상황에 개입할 것인지를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번째는 공동체 구성원의 학벌과 직업이 공공연히 알려지면서 소외를 느끼는 상황, 두번째는 사업 기획 과정에서 활동 연차가 오래된 회원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거칠게 재단하는 상황, 세번째는 술자리에서 성적 농담을 주고 받다 상대방의 목덜미를 잡고 성폭력에 가까운 말을 한 상황을 가정해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가 억압이자 폭력으로 느껴졌을 지점들을 고민해보고, 그 가운데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나아가 개인에 따라 그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지적과 더불어, 제3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나갈 수 있을지를 함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 와중에 당장 이렇다할 확실한 처방이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것이 모두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만큼은 대강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본래 이 교육은 올해 1월 초 LT 때 반성폭력 교육의 일환으로 기획된 바 있습니다. 그러다 최근 미투 운동이 대두되면서,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례들 또한 하나둘 알려지기 시작했고, 따라서 계획했던 교육 또한 그 취지와 입장의 무게를 새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섹슈얼리티의 가시화와 성적 활력을 중요한 동력으로 삼아온 게이커뮤니티에서, 성폭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정의할 것이며, 이에 대응하여 커뮤니티의 문화를 어떻게 성찰해나갈 것일지는 현재도 그 언어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실시된 이 교육이, 게이커뮤니티에 고유한 퀴어스러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커뮤니티 내의 일상적 폭력들을 어떻게 바꾸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밑거름이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마지막에 터울의 개인적인 의견에 대해서 많이 공감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