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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활동스케치 #2] ‘제주 4·3 70년, 인권으로 역사를 여행하다’ : 제15회 전국인권활동가대회 참관기
2018-03-31 오후 19: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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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 

[활동스케치 #2]

‘제주 4·3 70년, 인권으로 역사를 여행하다’

: 제 15회 전국인권활동가대회,

제주 4·3 평화기행 참관기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2박 3일간 제주에서 열린 제15회 전국인권활동가대회에 다녀왔습니다. ‘제주 4·3 70년, 인권으로 역사를 여행하다’라는 제목으로 전국의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에 모여, 제주 4·3을 주제로 인권포럼과 한국 인권운동의 역사와 현재를 짚어보는 토론회와 함께 제주 4·3 평화기행에도 참여하는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무엇보다 쉼과 힐링으로 대표되어 왔던 제주 천혜의 자연경관 너머 지금껏 알지 못했던 제주의 새로운 얼굴은 보고나니 다녀오길 참 잘 했다는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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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쏟아지는 김포공항

 

사무국의 일정상 후발대로 제주로 향했는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제주에 갑작스레 쏟아진 폭우와 몰아치는 강풍 때문에 뭍에서 제주로 향하던 비행기들이 회항과 지연을 거듭하는 사태가 발생!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고 더군다나 제주에 근접할 때쯤엔 세찬 바람에 비행기가 위아래로 풍랑을 만난 배처럼 울렁이기를 반복하다 겨우 제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에 도착하여 전날의 여독을 채 풀지도 못한 채 바로 제주 4·3 평화기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버스마다 코스가 조금씩 달랐는데 제가 탄 버스는 알뜨르 비행장 - 섯알오름 - 송악산 입구 일제진지동굴 - 백조일손지지 - 진아영 할머니 삶터를 거치는 제주 서남부 쪽 4·3 유적지를 둘러보는 코스였습니다. 

 

첫 번째 장소인 알뜨르 비행장으로 가기 위해 숙소에서 좁은 길을 빠져나와 넓은 도로위에 올랐을 때, 평화기행의 가이드분께서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도로의 이름이 ‘평화로’인데 지어진 이름과는 다르게 도로 주변 지형의 특성상 안개가 자주 끼어서 야생동물들과 자동차 간의 충돌사고가 잦은 편이고 또 이 길을 통해 강정해군기지 설립을 위한 장비들이 반입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들을 시작으로 날이 다르게 상승하는 제주지역의 땅 값으로 인한 주거 빈부격차 문제와 교육도시를 빙자해 마구 지어지고 있는 국제학교 설립문제, 해외 자본의 유입 등 제주의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미 여러 기사로도 접했던 이야기이지만 현지인의 입으로 듣는 제주의 이야기는 또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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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뜨르 비행장에 설치된 조형물(좌) 국방부의 표지판(우)

 

버스로 30여분을 달려 첫 번째 장소인 알뜨르 비행장에 도착 했습니다. 바다를 눈 앞에 두고 평평하게 펼쳐진 알뜨르 비행장은 원래 제주도민들이 농사를 짓던 땅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인근 모슬포 지역 주민들을 동원하여 비행장으로 만들고 일본군의 전초 기지로 쓰이다가 그 땅이 다시 도민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지금은 국방부의 부지로 속해 있다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무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비행장 옆 돌담 사이로 잘 닦여진 길 끝에 보이는 섯알오름 학살터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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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섯알오름 학살터 

 

섯알오름 학살터는 제주4·3 이후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예비검속(‘미리 검사하여 단속 한다‘라는 뜻)이라는 법을 악용하여, 4.3사건 당시 관련해 재판을 받았거나 수형 사실이 있는 사람들이 단지 불법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데려와 무참히 학살을 벌인 현장이었습니다. 추모비 앞에는 여러 켤레의 고무신이 올려져 있었는데, 이것은 트럭에 실려 학살터로 끌려가던 이들이 죽음을 직감하고 자신들의 옷가지며 혁대, 고무신 등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물건들을 길 위에 던졌던 것을 상징하여 올려둔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폐지된 예비검속이라는 법을 악용하여 죄 없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학살의 현장을 은폐하고 유해조차 찾아갈 수 없게 만드는 정권의 극악무도함 앞에서 유족 분들의 끊임없는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와 또 긴 시간 싸워 되찾은 유해들을 백조일손(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죽어 누구의 시신인지도 모르는 채 같이 묻혀 무덤도 같고, 제사도 같이 치르니 그 자손은 하나다)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기억해 나가는 과정들을 보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마음과 자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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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섯알오름 고사포 진지

 

섯알오름 학살터를 너머 올레길로 접어들어 걷다보니 올레길 옆 풀숲에 지어진 고사포 진지와 그 너머로 내려와 송악산 입구 일제진지 동굴까지 둘러 볼 수 있었는데 두 곳 모두 일제 강점기 시절 지역의 모슬포 지역 주민들이 만든 진지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두 곳 다 그냥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너무 평화로운 익히 우리가 생각하던 제주의 모습이었지만, 조금만 더 다가가서 바라보면 제주의 곳곳마다 전쟁과 학살 등 비극의 상처들이 곳곳에 오롯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가이드님의 인솔에 따라 송악산 입구 일제진지 동굴에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군들이 이 동굴에 잠수정과 어뢰 등을 정박 시켜놓고 미 함정을 폭격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굴이었다고 합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잠시 드러난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눈앞에 보이는 산방산의 모습을 보다가 당시 이 곳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봤을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떠올리자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렁거림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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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악산 입구 일제진지 동굴에서 바라 본 산방산

 

이후 동굴을 빠져나와 송악산 입구에서 점심을 먹고 백조일손지지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바로 섯알오름 학살터에서 발견된 200여구가 넘는 유해들 중 2차로 발견된 유해들을 모셔놓은 곳이었습니다. 묘지 앞에는 부서진 비석 조각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유해를 수습한 뒤 유족들이 세운 비석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과거 군경이 저질렀던 만행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비석을 파괴하고 묘지를 훼손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 부서진 비석의 파편들을 유족들이 하나씩 각자의 집으로 몰래 가져갔다가 시간이 흘러 다시 이렇게 모아놓은 것이었습니다. 죄 없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도 모자라 힘들게 되찾은 유해를 모셔놓은 곳의 묘비를 파괴당하고 묘역을 훼손당하는 수모를 감내해야 했던 이들의 마음은 어땠을지 제주의 비극이자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 이들을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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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조일손묘역 앞 전시된 5.16군사정권에 의해 파괴된 비석 

 

백조일손지지에서 묵념의 시간을 가지고 기행의 마지막 장소인 진아영 할머니 삶터로 이동했습니다. 과연 변덕스러운 제주의 날씨답게 흐리다 개다를 반복하다 진아영 할머니 삶터가 있는 월령리에 이르자 파란 하늘을 내비치며 맑은 얼굴을 보여줬습니다. 돌담 아래로 빛을 밭아 울긋불긋 자리잡은 선인장의 모습 때문에 이국적인 정취가 돋보이는 마을이었는데 이곳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선인장이 자생하는 동네라고 가이드분께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진아영 할머니는 제주 4·3 당시 밭일을 하다 턱에 총상을 입어 여생을 턱에 천을 덧 댄 채 사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명천 할머니라고 불리기도 하고 실제 마을 입간판에도 무명천 할머니 라고 적혀 있기도 했습니다. 소담한 집 앞마당을 들어서면 할머니가 사셨던 집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는데 집의 내부도 역시 할머니가 돌아가실 당시 물건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앞서 다녀왔던 유적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곳은 펄럭이는 국기나 비석의 무궁화 대신 집 벽에 예쁜 새가 새겨져 있고 할머니 생전의 삶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바로 진아영 할머니 삶터는 국가가 아닌 제주 4·3을 기억하고자 하는 민간에서 맡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역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바라보고 또 유적지를 보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생각 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를 지나 월령리의 바다를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제주 4·3 평화기행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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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영 할머니 삶터 

 

돌아가는 버스 창밖의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이 아침에 출발할 적과는 달리 보였던 것은 단지 기분 탓만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저 푸른 자연의 곳곳에 새겨진 한국 근현대사 속 비극의 흔적들과 제주 4·3을 잊지 않고 진실을 알리기 위한 이들의 노력들을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더불어 지금까지도 이 사회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갈라놓으며 억압하고 갈등하게 만드는 것들 속에서 인권의 역사는 늘 이 사회의 약자들과 비시민들의 목소리에서 시작되었고 또 투쟁하고 맞서 왔다는 것입니다. 인권의 역사 안에서 제주 4·3이라는 비극을 기억하는 것, 또 그것을 대한민국의 역사로 오롯이 남기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끔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며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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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대표 /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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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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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8-04-02 오후 18:11

힐링하러 간줄 알었는데, 배움의 시간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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