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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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문화운동' #3]
벌써 9년차, 책읽당의 발자취와 문화운동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모임, 책읽당을 아시나요?
‘책읽당’은 책읽기소모임으로, 2010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친구사이의 어엿한 모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느새 9년째 활동하고 있는 바, 현재 총재로서 이번 기회를 빌어 책읽당의 발자취를 한 번 쭉 정리하면서 어떻게 문화운동으로 연결시켜 나가고 있는지 썰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태초에 책읽당은 2010년 여름 교육팀에서 운영하던 시즌제 책읽기 모임이었다고 해요. (필자는 2013년 초에 처음 나와서, 시조새라 불리는 라떼님에게 들은 얘기를 잠시 옮겨봅니다.) 그때 참가한 분들이 소위 말하는 ‘케미’가 잘 맞아서, 몇몇 언니들의 권유를 등에 업고 책읽당을 만들었는데요. ‘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운영자는 총재로 추대(?)됐는데, 1대 총재에 미카님, 총무에 라떼님, 운영진에 창현님이 뽑혀 닻을 올리게 됩니다.
사실 어떤 모임이든 처음이 가장 힘들죠. 아무래도 사람이 모여야 모임이 운영될 텐데, ‘책’이라는 콘텐츠가 얼마나 성소수자(특히 게이)에게 먹힐지 반신반의했을 거예요. 비록 오는 사람이 얼마 없었음에도 꿋꿋이 1대 운영진들은 모임을 이어나갔습니다. 한 고비를 넘으니 서서히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저도 그때 운좋게 들어와서 참 좋은 느낌으로 재미를 붙였던 것 같아요. 책 보는 거 좋아하고, 수다 떠는 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저에게 책읽당은 맞춤형 옷처럼 느껴졌거든요. 책과 사람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요. (알고보니 오랫동안 활동 중인 친구사이 회원들 중에 책읽당으로 데뷔한 분들도 꽤 있더라구요!)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니 이것저것 해볼 여력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모임은 누가 앞에서 끌고 어떤 사람들이 뒤에서 밀고 하냐가 중요한데, 발기인이자 가장 오랫동안 활동 중인 2대 총재 라떼님의 공이 참 컸죠. 현재는 유일하게 초창기 멤버로서 활동하는 그의 빅 플랜이 결국에는 낭독회와 문집발간회로 이어지고, 각종 행사도 치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니까요. 결국 책읽당은 우리나라 게이 커뮤니티 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개적인 책모임으로 남아있으며, 여전히 책을 매개로 활동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꽃을 피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 2013년 창당 3주년 및 제1회 낭독회 포스터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 책을 만들고 관객과 만나다
그런데 사실, 책읽당에 나와 활동한지 얼마 안됐을 때 일부에서 들었던 얘기가 ‘책읽당은 자기네들끼리만 논다’였어요. 그도 그럴 것이,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기에는 모임의 특성과 모이는 사람들의 마음 등이 쉽게 영글기 어려웠거든요. ‘지_보이스’를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었어요. 지_보이스는 벌써 10주년이 돼서 기념공연까지 준비한다는데, 우리는 이렇게 우리끼리 주구장창 책만 읽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도 이제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이고 창당한지 3년이 됐으니 기념 잔치겸 책 낭독회를 열어보자는 얘기에 비로소 다들 환영했고,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소박하지만 보람찬 시간으로 채울 수 있었습니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 어울린 경험은 참 특별했어요. 그 다음해는 한발짝 더 나아가 우리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문집을 발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도 자체 편집 및 제작까지 내부에서 도맡았죠. 부족한 재정에도 언니들과 당원들의 십시일반 도움 끝에 책이 세상에 나왔고, 그 책을 바탕으로 두 번째 낭독회는 정말 세상 밖으로 나온 듯 오픈된 공간에서 열렸습니다.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걱정도 잠시, 자리를 꽉 채운 100여명의 관객들 덕분에 제2회 낭독회이자 첫 번째 문집발간회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지요.
▲ 책읽당 역대 문집 모음
그렇게 낭독회&문집발간회는 책읽당에서 성소수자/비성소수자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과 만나며,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준비하는 가장 큰 연례 행사가 됐습니다. 문집은 책읽당 당원들이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또 다른 손을 내미는 기회가 되었으며, 2014년 이후 매년 발간해 낭독회 당일뿐 아니라 각종 행사에 얼굴을 비추었죠. 작년에는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책이 읽히고 선한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최초로 ISBN등록을 마쳤습니다. 이를 통해 문집을 각종 성소수자 관련 행사, 성소수자 인권 단체, 그 외 각종 소수자 인권 관련 단체 등에 배포했지요.
낭독회 또한 그해 발간된 문집을 중심으로 개개인의 마음을 꾸밈없이 드러내며, 편집장/작가 인터뷰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공연 등으로 서로를 다독이는 자리가 됐습니다. 장소는 시 단위나 시민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간을 대관하여 개최하고 있고, 매년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같이 호흡하며 행사를 즐기고 있지요. 2015년, 2016년에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성평등도서관 ‘여기’의 공동주관프로그램 ‘잇다’에 참여했고, 작년에는 공동문화활동공간 W-Stage에서 진행, 스태프 포함 약 90여명의 참여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독서의 계절 가을의 분위기를 만끽했습니다.
▲ 책읽당 역대 낭독회&문집발간회 풍경
한발짝 더, 소통과 연대를 꿈꾸며
이처럼 낭독회&문집발간회를 매개로 당원들은 성소수자로서의 삶과 생각들을 진솔하게 보여주면서 관객과 하나 되어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참여한 당원들 중에는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마주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한 마음’, ‘문집을 읽은 사람들에게 작은 용기를 싹 틔울 힘이 생기길 바라본다’라는 소감을 남긴 당원들도 있었고, 제 지인은 이 행사를 통해 본인의 성정체성/성적지향을 돌아보게 됐다며 바이섹슈얼로 정체화하기도 했습니다.
책읽당은 여전히 평소에는 퀴어, 페미니즘, HIV/AIDS 담론뿐 아니라 각종 사회적 이슈(반성폭력, 소수자 인권, 노동권, 동물권,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등)와 관련된 주제를 바탕으로 선정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성소수자로 살며 보고 겪은 많은 것들이 어우러져 각자의 이야기장을 펼치며, 그 자체로 한 편의 또 다른 책을 만들어내는 기분으로 함께 하고 있는 것이죠. 그 결과 총 110여권의 책을 함께 읽었고(2018년 4월 기준), 155회 동안 모임이 진행됐습니다. 특별한 문턱 없이 책읽기에 관심 있는 성소수자들이 ‘책’과 ‘사람’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며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문화운동이 아닐까요.
○ 샘이 나는 세미나 - 시즌 1: 철학강좌 총 4회 (강사: 소피아님/ 2014. 7. 5., 7. 12., 7. 19., 7. 26.) - 시즌 2: 영화강좌 총 2회 (강사: 손태겸님/ 2015. 2. 14., 2. 28.) - 시즌 3: 건축강좌 총 2회 (강사: 왁킹님/ 2016. 1. 23., 1. 30.) - 시즌 4: 헌법강좌 총 2회 (강사: J님/ 2017. 3. 4., 3. 11.) - 시즌 5: 풍속강좌 총 2회 (강사: 공을기님/ 2018. 3. 31., 4. 7.)
○ 작가초청 모임 - 이채(이야기채집단),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 2015. 8. 1. - 터울(친구사이 소식지팀), <사랑의 조건을 묻다> / 2015. 10. 17. - 노유다(출판사 움직씨 공동대표), <코끼리 가면> / 2017. 2. 4. - 김현(작가), <걱정 말고 다녀와> / 2017. 11. 4. - 김승섭(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아픔이 길이 되려면> / 2018. 3. 22.
○ 글쓰기 강좌 - 2017 글쓰기 강좌 (강사: 김현 작가/ 2017. 7. 1., 7. 8., 7. 22.)
○ 연대 세미나 - 책읽당&퀴쓰 연대 세미나 (2017. 5. 27., 6. 17.)
○ 퀴어문화축제 부스운영 - 2016 퀴어문화축제, '친구사이 그리고 읽고 쓰는 게이들' w/소식지팀 (2016.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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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당의 다양한 활동들 목록
이외에도 좀 더 색다른 방식으로 커뮤니티에 손을 내밀고자 했던 다양한 시도들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한 ‘샘이 나는 세미나’는 지금까지 철학, 영화, 건축, 헌법, 풍속을 주제로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활발한 교류의 장을 마련했어요. 2016년에는 3대 총재 제이미님의 제안으로 소식지팀과 연대해 ‘친구사이 그리고 읽고 쓰는 게이들’이라는 이름의 퀴어문화축제 부스운영을 하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책읽당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또 가능할 때마다 ‘작가초청 모임’을 통해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고, ‘글쓰기 강좌’를 실시해 진솔한 자신을 발견하고 젠더/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죠. 작년에는 모임의 확장 및 연대 기회 모색을 위해 다른 모임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연대 세미나’를 기획했고, 행성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책읽는소모임인 ‘퀴쓰(퀴어들의스터디)’와 함께 책모임에 대한 이야기, 같이 읽고 싶은 책에 대한 이야기, 그 외 성소수자로서 자기표현과 삶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아낼 수 있는 세미나를 열어 약 30여명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뤘습니다.
▲ 책읽당의 다양한 활동들 풍경.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퀴어문화축제 부스운영, 작가초청 모임, 타 단체와의 연대 세미나, 글쓰기 강좌
그렇다면 앞으로 책읽당은 또 어떤 문화운동 성격의 활동을 펼치게 될까요. 사실 대부분이 그렇듯이 우리가 ‘문화운동을 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무언가를 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좋아서, 원해서, 자발적으로 하나하나씩 구상하며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선한 영향을 끼치고, 어떤 이에게는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저 바랄 게 없지요. 책을 통해 사람과 소통하고 함께 연대하길 원하는 한, 여전히 책읽당은 건재할 것이고 커뮤니티와 어떻게 만날 것인지 고민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책읽당이 걸어갈 행보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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