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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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 사이의 터울 #2
: 공감의 한계
1.
마음이 지쳤다는 신호들이 있다. 마음에도 엄연한 용적이 있어, 힘을 퍼쓰다보면 금세 고갈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땐 주로 자극적인 것을 본다. 인터넷과 나무위키를 돌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기이하고 추악한 것들을 캐보기 시작한다. 아우슈비츠 옆에서 유대인의 멸절에 최종 성공한 수용소라든지, 중세 일본에서 천주교도들을 고문·살해한 방법이라든지, 연쇄살인마들의 범행 수법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눌러보며 별반 놀라지 않는 스스로를 신기해하고는, 지쳐 잠들 때까지 그 일을 반복한다.
극단적인 것을 볼 때는 마음의 힘이 많이 소요된다.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며 연거푸 그런 걸 보는 일 역시 그러하다. 말하자면 이 버릇은 내 공감능력을 바닥까지 까내려 그 밑바닥이 어딘지 보고 싶다는 욕망에 가깝다. 네가 이걸 보고도 안 충격받을 자신 있어? 이래도 네가 여기에 관심 안 쏟을 거야? 애초에 마음이 지쳐 메마른 신경줄을 다시 잡아당겨 못살게 구는 것은, 세상에 이미 내가 감정이입하고 신경써야 할 게 너무 많다는 낙담과 자포자기에 대한 묘한 복수를 닮았다.
세상엔 참으로 신경쓸 것들이 많다. 대학 교양수업에서 주로 가르치는 것은 사회의 소외된 약자와 소수자에게 공감의 폭을 넓히라는 주문이다. 물론 그것은 올바르고 정당하다. 그리고 공감해야 마땅할 가짓수는 쉽사리 악무한으로 늘어난다. 온라인 상에는 반절만 옳거나 아예 틀려먹은 것 같은 수십 수만가지의 악다구니가 있다. 좋은 시민이라면 모름지기 그것 모두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감정이입해야만 한다. 하지만 저 숱한 체구멍같은 귀신의 눈들과 구더기같이 버글대는 들꽃 하나하나에 무슨 수로 모두 공감하고 산단 말인가. 실은 열려본 적도 없는 마음이 지레 겁을 먹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타자에 공감하려는 노력은 일종의 사치같은 게 아닐까. 내가 아무리 진을 쏟아도 그것이 내게 돌아오지 않고, 심지어 그렇게 마음 쓸 곳이 저렇게 수천 수억가지면 대체 난 무얼 바라 이 한 세상 남 사정 봐가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게 애초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던가. 다 소용없는 짓이다. 몰라서 관심끊는 게 아니라 알아서 더 관심끊고 싶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몇만이 죽었든 누가 얼마나 강간을 당했든, 애초에 유희로 즐길 수 없는 남의 이야기가 있기나 하던가. 나는 당신의 시퍼런 사연에 한 발짝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타자에 공감하라니, 인간이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마침내 하지 않기로 한 나를 신께서도 용서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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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공감받아본 기억은 주로 따뜻하다. 까페에서 술자리에서 마주보며 흉금을 터놓고 서로 이해를 주고받는 것 같은 그 때의 느낌이란 소중하다. 나는 잠시 온라인에 널린 트롤과 레밍의 악무한의 세계를 벗어나, 좀더 내 몸의 온도에 가까운 세계로 돌아오기로 한다. 내 옆에 있는 어떤 사람, 처음에 낯설다 못해 개새끼일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던 어떤 이와 어느새 친구가 되었을 때, 그 때 느끼게 되는 사람에게 공감해야 하는 이유란 아주 명확하고 직관적이다.
하여 내가 건사할 수 있는 감정이입의 폭은 남이 아닌 내가 정한다. 나는 내 감정과 공감 능력의 주인이며, 그것이 필요할 때는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이 고갈되었을 때는 앉아서 쉴 것이다. 내 감응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내 혼은 아무 것이나 비추어도 그것을 참아넘기는 영사막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순간에 당신의 어떤 삶과 고통과 죽음은, 미안하지만 나에게 끝내 무의미할 것이다. 다만 그 때의 내가 지친 것일 뿐, 한번에 모든 것을 향해 나를 열 수는 없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삶의 축선 위에서 언젠가 우리는, 서로를 다시 공감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서야 막혔던 숨이 좀 쉬어진다. 물론 내 공감 능력은 내가 끝내 컨트롤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도무지 인간의 몫이 아닌 것만 같던 공감의 길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로 눈앞에서 다시금 새로이 닦이는 광경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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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 낯선 사회를 마음의 힘을 기울여 감정이입하고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리 올바르더라도 기본적으로 그것이 쉬운 일일 수는 없다. 더불어 그 공감의 한계는 넓어지더라도 서서히 넓어지고, 넓어지는 계기 또한 어떤 대단한 가르침이 있어서라기보다 사실은 사소한 것들이기 쉽다.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어떤 사람의 사정이 내 마음 속을 때리는 순간이 사람에겐 반드시 있다. 그 한끗의 계기, 그를 위해 소요되는 얼마간의 시간, 그 시차를 기다려주는 일은 당장 공감을 주고받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저것들은 죽어도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되는 때가 있다. 세상에 개새끼들은 공기 중의 바이러스처럼 늘 존재하는 상수이고, 다만 그것들 중 하나에 유독 매콤하게 반응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런 위악적인 단절 뒤에는 대개 그것과 관련된 공감이 좌절되고 마음을 다친 기억이 도사리고 있다. 그 기억 속에서 혼자 외롭던 당신을 한번쯤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 때 당신은 마음의 힘이 없었고, 필시 당신은 그 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번에 모든 걸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우리는 앞으로 살면서 숱한 타자를 만나고 그것들에 좋든 싫든 공감해가며 살게 될 거다. 그러니 네깟 것 알고 싶지 않다며 스스로를 미워하는 일일랑 그만두고, 오늘은 그루터기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신발끈을 고쳐 매두자. 힘이 없는 건 죄가 아니므로, 우리는 수명이 정해진 이 몸과 마음을 때론 이 풍진 길가에 뉘어 잠시 쉬어도 된다.

2.
'퀴어'라는 말은 1996년경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것은 "이성애 제도에서 소외된 성적 소수자"1), 이성애자와 다른 성소수자 고유의 문화적 다양성2) 등의 맥락으로 쓰였고, 1997년 제1회 퀴어영화제 기획을 통해 이 단어는 처음 공식 행사명으로 사용되었다.
'퀴어'가 성소수자 정체성을 아우르는 말이면서, 동시에 그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는 말뜻을 지닌 까닭에, 이 말은 이른바 LGBT 안에서 거듭 발생하는 권력의 차등과 소외를 설명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가령 동성애자에 의해 "변덕스러운 연인", "어느 순간 이성애자로 변해버리는 퀴어들의 배신자"로 여겨지는 바이섹슈얼은 다름아닌 "퀴어 속의 퀴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3)
더불어 레즈비언은 게이와 달리 "여성으로서, 동성애자로서" "이중의 탄압"을 받고 있고,4)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게이들이 여성학을 "성정치"의 일환으로 사고하지 않으며,5) 게이들이 "여성 억압과 차별 경험"에 대한 의식이 없어서 "연대하는 데 장애로 작용"한다는 증언도 잇따랐다.6) 한편 레즈비언을 포함한 동성애자들이 트랜스젠더를 소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분석한 글에서는, 동성애자는 정체화 이후 "자기 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반면, 트랜스젠더는 "자기 성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며, "뭔가 문제점을 가진 사람이 아닌지" 생각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는 오늘날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한국에서의 '퀴어'는, 첫째로 각각의 정체성이 가지는 성적 실천의 비규범성을 가리키고, 둘째로 그 다양한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그룹들 서로를 이해하고 상호 존중하는 감각을 뜻하는 맥락으로 사용된다.8)
1) 「알고 갑시다」, 『레즈비언잡지 또다른세상』 3, 1996, 4쪽.
2) 「다시 쓰는 사전 - 알고 씁시다(3)」, 『부산경남지역동성애자동아리 같은마음』 1, 1996, 6쪽.
3) 「퀴어 속의 '퀴어'들 - '바이섹슈얼'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 『레즈비언독립잡지 니아까』 5, 1997, 14쪽.
4) 이종국, 박성미 정리, 「레즈비언, 이 모호한 여자들의 진실(여성지 엘르)」, 『부산경남여성이반인권모임 안전지대 정보지』 5, 1998, 18쪽.
5) 정혜등, 「게이에서 남성으로, 여성에서 레즈비언으로」, 『레즈비언잡지 또다른세상』 2, 1996, 6쪽.
6) 이해솔, 「한국 레즈비언 인권운동의 역사」, 『레즈비언잡지 또다른세상』 7, 1999, 20쪽.
7) 이해솔, 「동성애 관련 용어, 개념 알기」, 『부산경남여성이반인권모임 안전지대 정보지』 5, 1998, 55-56쪽.
8) 터울, 「퀴어문화축제의 터울을 넘나들며」, 『퀴어페미니스트매거진 펢』 4, 언니네트워크, 2018,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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