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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게이커뮤니티의 컨텐츠' #2] 이반시티 공동대표 박사이먼님 인터뷰 - 2. 서킷 파티·LGBT 파티 문화의 변천
2017-08-31 오후 14: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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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8월 

[커버스토리 '게이커뮤니티의 컨텐츠' #2]

이반시티 공동대표 박사이먼님 인터뷰

- 2. 서킷 파티·LGBT 파티 문화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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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문화축제 무지개2005 포스터 (2005.5.27~6.10.)

 

 

 

 

퀴어문화축제 공식 후원파티 기획 (2005~2015)

 

터울 : 이제 파티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박사이먼 : 내가 파티를 10년이상 할 줄이야. (웃음) 지금도 생각해보면, 전 알다시피 나를 드러내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어쩌다 파티를 기획하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터울 : 2005년에 처음 시작하신 거죠?

박사이먼 : 전 이태원도 자주 안 나가는 사람이었어요. 남들처럼 이태원을 좋아해서 주말마다 클럽을 가든가, 아니면 사람들도 많이 알아서 해외 파티도 많이 다니고 그랬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오프라인에도 늦게 나오고, 그 흔한 클럽, 스파르타쿠스, 파슈, 그런 데도 한번도 안 가봤어요. 나의 첫 클럽은 이태원 게이 골목의 와이낫(why not)이었어요.
아무튼 클럽하고는 전혀 매치가 안되는 사람이었는데, 내 기억으로 2004년에 시드니 마디그라를 다녀왔어요. 그 당시 호주에 “시드니 친구사이”라는 인터넷카페 운영자와 좀 알고 지냈는데, 그의 제안으로 시드니 게이프라이드 주간에 이반시티 회원 중 같이 참여 할 사람이 있으면 같이 가자고 모집을 했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웃음) 공격적으로 홍보를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 호주 게이 퍼레이드에 참여할 목적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이 좀 시기상조였나봐요.
그래서 저와 파트너 둘만 갔어요. 그래서 저는 그 때 처음으로 마디그라를 본 거죠. 한국의 퀴어문화축제도 경험했지만, 마디그라를 본 순간 눈이 뒤집혔죠. 그러면서 나도 한국의 퀴어문화축제를 좀더 화려하고 크게 키우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그 퍼레이드 끝나고 나서 공식파티도 갔었는데 완전 어마어마한 거죠. 한 공간도 아니고 여러 개의 공간에서 컨셉이 다른 파티가 열리고, 그런 걸 보는데 저한테는 문화적인 충격이었어요.
지금은 서킷 파티란 말을 쓰지만 그 때는 그런 말도 몰랐던 때였어요. 그러면서 한국에도 이런 파티가 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갖게 된 게 2004년이었어요. 그 이후에 퀴어문화축제와 파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터울 : 퀴어문화축제 공식 후원파티를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거의 11년 기획하지 않으셨어요?

박사이먼 : 2015년까지 제가 팀장 역할을 했었어요. 2015년 그 해에, 이제 나도 11년 했으니 할 만큼 했다, 너무 오래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당시 이태원의 클럽 s-cube에서 열린 PRIVATE BEACH 1회 파티까지만 하고 넘겨주었죠.
PRIVATE BEACH 1회 때부터 같이 합류한 Ethan(이든)이라는 친구가 믿음직하고 열정도 많고 욕심도 많고 해서 그 자리를 넘겨주었는데, 지금까지 잘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Ethan이 파티 책임자로서 역할을 하고, 저는 조언자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터울 : 그러니까 11년 동안 한 파티를 계속해오셨다는 게 너무 놀라운데, 사실 퀴어문화축제 파티라는 게 게이 파티와는 다르잖아요. LGBT가 다 들어와야 되고, 남녀 차등 입장 문제가 없어야 되고, 그러면서 수익이 나야 되고, 굉장히 달성되기 어려운 목표들인데 이걸 어떻게 조정하셨는지 궁금해요.

박사이먼 : 퀴어문화축제는 퍼레이드팀, 파티이벤트 팀, 영화제 팀. 그리고 사무국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매년 같이 일할 스탭을 공개모집해서 자발적인 지원과 참여로 구성하는 행사예요.
저도 2005년에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에 합류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파티팀이 재미있고 퍼레이드팀보다는 일이 수월하겠다 싶어 시작했던 거죠. (웃음) 그래서 그 해부터 파티를 기획하고 준비했었는데, 처음 준비하는 행사니 얼마나 욕심도 많고 의욕에 불타 올랐겠어요.
그래서 좀 욕심을 내서 행사장을 게이클럽이 아닌 홍대 O2에서 했어요. 그 당시 홍대 O2클럽은 장소도 크고 핫한 클럽으로 유명했었어요.

터울 : 일반 클럽에서 박사이먼님이 기획하신 퀴어문화축제의 첫 파티가 열렸던 거군요. 되게 상징적이네요.

박사이먼 : 네. 그 당시 저는 젊고 일욕심도 많고 열의에 불타올랐던 때였어요. 홍대 O2클럽은 공간도 넓고 공간이 두 개로 나뉘어 있어서, 서로 다른 컨셉의 음악으로 파티를 진행할 수가 있었어요.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분위기니 선택의 폭이 넓고 참여자들도 만족도가 높았던 거죠.
기존에는 이태원 게이클럽이나, 레즈비언 클럽인 라브리스 등지에서 했는데, 일반클럽에서의 첫 시도였고 파티도 대박이 나고 해서 그 때부터 힘을 받은 거죠. 그 파티부터 계속 당연한 파티 담당이 돼 버린 거예요. 첫 해에 빵 터뜨려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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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퀴어문화축제 애프터파티 홍보물 (2009.6.13.)

 

 

 

터울 : 수익이 안 났던 적이 없으신 거잖아요. 거의 매번 흑자이지 않았나요?

박사이먼 : 거의 그랬죠. 축제 규모가 커지면서 파티 수익도 매회 조금씩 증가했어요. 그런데 몇 년도인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이태원 업소 몇 군데와 조인해서 클럽데이처럼 운영한적이 있었는데, 너무 안일하게 준비한 탓인지 수익이 거의 없는 해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파티도 그냥 되는 게 아니구나, 제대로 준비해야 된다는 교훈을 남기면서, 계속 운영해 나갔죠.

터울 : 파티에서 수익을 남기는 게 되게 중요하잖아요. 최근의 이유도 마찬가지지만, 수익을 많이 내려면 게이 파티로 가야 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왜냐하면 차별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 현실적으로 하위문화 자체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게이 파티의 규모가 훨씬 크고, 레즈비언 파티는 규모가 작고, 트랜스젠더퀴어 파티는 아직 가시화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수익 면으로만 보면 게이로만 파티를 묶는 게 좋을 텐데, 퀴어문화축제는 LGBT를 다 품고 가는 이상이 있으니까, 이걸 어떻게 안에서 조율하셨는지가 궁금해요.

박사이먼 :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의 생각은, 공식파티는 LGBT가 모두 모여서 즐겨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통상 파티 장소가 이태원 게이클럽에서 하다 보니, 레즈비언 언니들은 초저녁에만 있다가 홍대로 빠지고, 게이들은 초저녁에 재미없어서 안 들어오다가 늦게 들어와서 놀고 하니 모두에게 만족도가 떨어지는 거죠. 그래서 게이 파티, 레즈비언 파티를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가지게 되었는데,
그러면 게이·레즈비언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하냐, 또 미성년자는 어떻게 하냐 등등, 매년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었고, 조율하기가 쉽지가 않았어요. 퍼레이드는 미성년자부터 시작해서 남녀노소 다 참석할 수 있는데, 왜 파티에는 미성년자들이 출입을 못하냐, 그래서 한 해에는 미성년자들을 위한 파티를 따로 한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2013년도에는 파티를 LGBT 모두가 출입가능한 공식파티와 only 게이만 입장 가능한 형태의 파티-당시 제가 기획하던 Velocity를 동시에 진행한 적도 있었어요. 그 때 홍대 일반클럽 'Factory Underground'와 그 당시 제가 운영하던 이태원 클럽 'CIRCUIT' 두 장소를 오가며 고생한 기억이 나네요.

터울 : 청소년이 들어갈 수 있는 파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건 퀴어문화축제에서 고려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언이 들어올 수 있는데, 그런 인권적인 부분과는 별개로 파티가 사실 수익이 나야 하잖아요. 퍼레이드 등 다른 행사에 소요되는 예산을 이 파티 수익으로 다 메꿔야 하는 상황인데, 그런 재무적인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박사이먼 : 가장 큰 문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퍼레이드 참가 인원이 증가하면서 파티 참가 인원도 많아지는데, 그 인원을 수용할 공간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작년에는 새로운 시도로 넓은 세빛섬에서 했었잖아요. 그러나 새로운 공간에서 파티 준비를 하면 또 지출이 많기 때문에 힘들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다시 이태원 클럽 펄스에서 진행했는데, 공간이 좁아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는 불만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문제가 게이들은 파티에 대한 욕구가 많아서 준비할 사람이 그나마 있는데, 레즈비언들 중에는 파티를 책임지고 준비할 사람이 부족한 것 같아요.

터울 : 기존에 있던 게이·레즈비언 클럽들이, 그날만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게, 입장료 차등 없애고 오갈 수 있도록 하는 모델도 좋을 것 같거든요. 억지로 한 공간에 모아놓는 것보다는,

박사이먼 : 그래서 제가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으로 있을때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지금도 저는 게이 파티와 레즈비언 파티를 분리해서 따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제대로 놀 수 있고, 공간 확보도 수월하고 수익면에서도 2배나 적어도 1.5배는 늘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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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퀴어문화축제 당일 개최된 Velocity 5 (2013.6.1.)

 

 

 

터울 : 어려운 얘기를 나눴는데요, 그래도 파티 기획 11년의 무게가 크기 때문에, 퀴어문화축제 후원파티를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보람있던 순간을 여쭙고 싶어요.

박사이먼 : 일단 저는 처음 준비했던 2005년 파티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데요,
그 파티를 준비하면서 나와 서킷 파티 Velocity를 처음 준비했던 DJ KONG이라는 동생을 그 때 알게 됐어요. 제가 클럽을 다녔던 사람이 아니었고, 클럽 파티 세계를 잘 몰랐죠. 그러나 KONG은 어릴 때부터 홍대나 이태원에서 DJ일도 하면서 파티를 잘 아는 사람이었죠. 그러면서 그 친구도 알게 되고, 친분이 생기면서 저한테 Velocity 제안도 했고, 그렇게 인연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2005년의 파티가 저한테는 기억에 많이 남고,
그리고 2013년 파티가 기억에 남는데, 가장 힘들었을 때인 것 같아요. (웃음) 솔직히 게이 클럽이나 레즈비언 클럽에서 파티를 준비하는 건 조금은 수월해요. 왜냐하면 익숙하고 친분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일반 클럽 대관은 조건을 맞추기가 상당히 힘들거든요. 2013년은 이태원 클럽 CIRCUIT을 할 때였고, 게이 서킷 파티로 Velocity도 할 때였고, 거기에 퀴어문화축제 파티도 해야 했어요.
같은 날에 두개의 파티를 동시에 준비하면서 홍대와 이태원을 오가며 고생한 기억, 머리 복잡했던 기억이 많이 나요. 그런데 보람은 가장 컸었고요. 그 때 양쪽에서 수익을 내서, 퀴어문화축제에도 많이 도움이 됐을 거예요.

터울 : 그 때 한 쪽은 LGBT가 다 있는 거고, 한쪽은 게이 파티로 운영하셨던 거군요.

박사이먼 : 네. Velocity에서 나온 수익금 일부를 퀴어문화축제에 후원하고, 또 홍대 메인파티에서도 수익이 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규모가 커졌죠.

터울 : 그러니까 Velocity 5회 파티를 퀴어문화축제 후원파티 명의로 묶으신 거군요. 이것도 처음 알았네요.

박사이먼 : 네, 5회 때 그랬어요. Velocity 5회 파티가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당일 열렸었어요. 그래서 왔다갔다 하면서 준비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두 파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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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퀴어문화축제 후원파티 PRIVATE BEACH (2017.7.15.)

 

 

 

터울 : 퀴어문화축제 파티 관련한 마지막 질문인데, 올해 퀴어문화축제 파티에서 성별별 입장료 차등 부과로 난리가 났잖아요. 보시면서 어떠셨어요?

박사이먼 : 작년의 세빛섬 파티는 지출이 많아서 수익을 별로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 다시 펄스에서 했잖아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장소가 좁아서 준비하는 스탭들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다음 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힘빠지는 일들이 있어서, 많이 안타까웠어요. 전 처음 생각에 설마 업소와 계약을 그렇게 한 건가 했어요. 그런데 확인해보니 그렇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했을 리도 없고. 계약 사항이 12시 반을 기준으로 그 전 입장은 퀴어문화축제 측에서 관리를 책임지고, 12시 반 이후에는 입장 체크를 펄스 측에서 했던 거죠. 이 인수인계 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났던 건데, 그 잠깐의 실수를 너무 크게 가져가서, 고생한 사람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이 돼서 너무 안타까워요.

터울 : 잘못한 것보다 더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죠.

박사이먼 : 제가 준비해본 사람이라 아는데, 정말 힘 빠지는 일이거든요. 후원파티이기 때문에 개인 사비 들여가면서, 돈 한푼 안 받고 하는 자원봉사인데, 더구나 업소와 계약을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한 순간의 실수를 가지고 확대해석해서 이야기하는 걸 보니 안타깝더라고요.

터울 : 결국 그래서 파티기획단이 불명예 퇴진을 한 상태라, 내년이 어떻게 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잖아요.

박사이먼 : 그렇죠, 그런 상황을 저도 전해 듣고, 내년에 진짜 어떻게 되나, 좀 걱정이 돼요.

터울 : 사실상 박사이먼님의 후임 격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이라, 부채감이 남다르실 것 같기도 해요.

박사이먼 : 파티를 준비하는 기획단이 힘을 받아야, 준비도 원활하게 되고 그런데, 그 일로 해서 파티를 준비했던 책임자와 스탭들이 많이 힘 빠진 상황이라 내년은 어떻게 될지 걱정이 많이 돼요. 그런데 한 해 두 해 했던 행사가 아니고, 다시 내년 기획단 모집하고 다시 가다듬어서 잘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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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퀴어문화축제 후원파티 PRIVATE BEACH (2016.6.11.)

 

 

 

 

터울 : 기획단장 Ethan 형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해주시죠.

박사이먼 : 제가 2015년에 처음으로 PRIVATE BEACH를 같이 준비하면서, Ethan은 뜨는 해였고, 전 10년 이상 해왔기 때문에 지는 해였던 거죠. (웃음) Ethan을 보면서 제가 2005년 처음 파티 준비했을 때가 기억났어요. 나도 저 당시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욕심도 열정도 넘쳤었는데-싶더라고요.
같이 일하면서 여러 부분에서 Ethan은 답답한 점도 많았을 거예요. 기존에 내가 해 왔던 진행방식과 맞지 않아 의견 충돌도 가끔 있었고 부딪치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래도 잘 마무리지었고 작년부터 책임자로 일하게 되어 정말 고맙고 흐뭇했었어요.
그런데 작년 파티에서 새로운 시도도 하고 파티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지만 예상보다 수익을 많이 못 내서 힘이 빠져 있는 상태에서, 또 올해 다른 문제로 상처를 입게 돼서 많이 안타까워요. 그래도 또 축제가 슬슬 준비되는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몸이 근질근질해서 나오게 돼요, 진짜로. 그러니 당분간 좀 쉬고, 다시 기획단들이 모일 때 Ethan도 같이 다시 참여하길 바래요. 여러 경험을 발판 삼아서, 더 디테일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서 더 멋진 파티 만들어 줄 거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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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locity 1 (2011.8.13.)

 

 


게이 서킷 파티 Velocity (2011~2013)

 

터울 : 이제 Velocity 얘기로 넘어갈 게요. 2011년에 런칭하셨고, 총 6번의 파티를 개최하였는데요, 처음에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어요?

박사이먼 : 퀴어문화축제 파티를 계속 진행하면서 KONG이 자주 DJ로 참여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었는데, 그 당시에 대만 G5, 일본 아게하, 방콕의 송크란 파티가 있었잖아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서킷 파티가 있으면 좋겠다고, 함께 만들어보자고 2011년 KONG이 저한테 제안했었어요. 그 해 퀴어문화축제 파티도 잘 끝낸 상태고, 어느 정도 파티에 흥미도 있었고 물이 올랐던 상태라 겁도 없이 KONG과 둘이서 준비를 시작했었죠.

터울 : 그 분도 거물이시군요. (웃음)

박사이먼 : 파티컨셉. 음악, 사운드 파트는 KONG이 맡고, 저는 예산관리, 장소, 재정, 홍보 등의 업무를 맡아서 준비했어요. 당시 이태원 IP 부티크 호텔 지하에 Rococo란 클럽이 있었는데, 규모있는 서킷 파티를 하려면 작은 클럽은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클럽이 장소도 넓고 분위기도 고급스럽고 컨디션이 좋았어요. 그래서 첫 파티를 그 장소에서 하게 됐죠.
도와주는 몇 명의 스탭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준비를 저와 KONG 2명이 했었어요. 그 당시 대만에서 제일 잘 나가는 DJ Head도 섭외하고, 식성도 다양하게 배려해서 통통한 일본 DJ도 섭외했었어요. 그 당시 이태원에 논다는 게이들은 아게하나 G5, 송크란 파티등 아시아 서킷 파티를 이미 즐기고 있던 터라, 그 눈높이에 맞춰야 했던거죠.
그리고 Velocity란 파티 네이밍은 이반시티의 city에, 가속도, 스피드를 뜻하는 velo를 합성해서 정한 것입니다.

터울 : 아, Velocity가 이반시티의 city인 건 처음 알았어요. (웃음)

박사이먼 : 네, 파티에 이반시티가 묻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해서 Velocity로 정한 거죠.
KONG은 당시 해외 서킷 파티를 자주 경험해 보고 음악을 틀고 싶은 요구도 강했고 사기가 높은 때였고, 그러던 차에 나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어렵게 준비해서 파티를 열었는데, 성공적으로 됐죠. 잘됐어요, 첫 해부터. 큰 수익을 바라고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다음을 준비할 돈도 생기고. 그래서 한국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이후의 파티도 기획했죠.

터울 : 그러다 5회에는 퀴어문화축제 후원까지 하게 되셨고요.

박사이먼 : 네. 퍼레이드 당일날 해서 후원도 했었죠. 처음 파티가 잘되서 초창기엔 3-4개월마다 하다가 행사 장소 대관 문제로 1년에 한번으로 바뀌었죠. 마지막 6회 행사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려고 한강변의 배에서 선상 파티로 기획했고요.
원래 계획은 6회 이후로도 계속 하려고 했었는데, 선상 파티 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힘들었어요.

터울 : 어떤 스트레스를 받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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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킷 파티 VELOCITY 2013 "THE WHITE BOAT" 포스터 (2013.11.2.)

 

 

 

 

박사이먼 : 일단은 그 장소가 선상 클럽이라 분위기도 좋고 크고 좋았어요. 지금의 세빛섬처럼요.
여기서 파티를 한다는 게 당시 큰 이슈였어요. Velocity가 알려지면서 장소 섭외도 우리에게 먼저 제안이 들어오더라고요. 마침 당시 그 선상클럽이 무슨 문제가 있어 영업을 중단했을 때라 가능했던 거죠. 당시에 장사를 안하던 때였어서 술, 직원, 무대 등 모든 걸 우리가 준비해야 했어요. 그래서 너무 할일도 많아지고 힘들었던 거죠.
선상 클럽이라 장소에 대한 기대도 높고 해서 파티에도 사람이 많이 왔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시끄럽다는 민원부터 시작해서, 마약 신고 등으로 경찰차가 몇대나 들어왔어요. 별 문제 없이 마무리는 되었지만. 행사 이후 조사받는 과정이 귀찮고 힘들었어요. 그래서 화려하게 선상에서 한 파티로 Velocity를 마무리지었죠.
이후에 재정비하고 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뒤로 I:M 파티도 생기고 해서 굳이-란 생각도 들었고요. 주위에서 Velocity 언제 다시 하냐고, 이 브랜드 너무 아깝지 않냐고, 어떻게 보면 한국 서킷 파티 중에 최초인 격인데, 주변에서 다시 해 보자는 제안도 많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젠 다른 서킷파티도 있고 그 파티들이 잘 되고 있으니까, 굳이 할 필요가 없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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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Justin 님, 박사이먼님 (2013.6.2.)

 

 

 

터울 : 故 Justin님 이야기를 안 여쭤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박사이먼 : Justin은 한창 어릴 때부터 이태원에서 놀던 친구였고, 펄스의 화이트 파티 등 파티 기획자로 일을 했을 때였고, Velocity 이후에 소개를 받은 거죠. Velocity 1을 하고 나서, 파티를 더욱 발전시키려면 일 잘하고 똘똘한 기획자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Velocity 2부터 Justin이 기획자로서 합류하게 됐죠. 간혹 이태원에서 Velocity를 Justin이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터울 : 결국 지금은 한국에서 서킷 파티는 I:M이 대세가 됐는데, 지금은 고인이 됐잖아요. I:M 파티를 보시면서 소회가 어떠신지,

박사이먼 : 음...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죠.
Justin은 Velocity로 인연이 되어 클럽 CIRCUIT의 매니저 역할까지 한 친구였어요. Justin을 CIRCUIT 사장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저는 Justin에게 클럽을 거의 맡기다기피 했었죠. 그렇게 CIRCUIT도 같이 Justin이랑 했었고 보통 친한 관계가 아니었어요. 그 이후에도 I:M 파티 할때나 르퀸, 루킹 클럽 오픈할 때도 서로 의견도 나누고 하는 좋은 관계였어요.
그리고 올해 I:M 파티 전에 저한테 투자 제안 브리핑을 하겠다고 했던 친구가 갑자기 그렇게 되니까... 너무 놀라고 상황이 믿기지 않았고, 안타까웠죠. 장례식에 참석해서 들은 생각이, 우리나라의 서킷 파티가, 클럽 문화가 후퇴하는 게 아닌가, 한창 잘 나갈 때인데... 소중한 자산을 잃은 기분이었죠.
그런데 이번에 I:M 파티에 가보고, Justin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잘하는 듯해서 마음이 놓이긴 했었어요. Justin의 역할이 엄청 컸거든요. 그래서 많이... 많이 그립고 잊을 수가 없어요. Velocity부터 클럽까지 같이 했던, 아끼는 동생으로 생각하는 친구여서, 더 안타깝죠.

터울 : 전 I:M을 올해 갔을 때 되게 놀랐거든요. 너무 쾌적하고 좋고. 티켓이 비쌌는데 별로 안 아깝더라고요. 앞으로도 잘 됐으면 좋겠어요.

박사이먼 : 나도 앞으로 더 잘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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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RCUIT 홍보물 (2012.11.16.)

 

 


클럽 CIRCUIT 운영 (2012~2013)


터울 : CIRCUIT 얘기로 넘어갈 게요. 2012년에 개장하셨잖아요. 클럽을 운영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박사이먼 : 2011년에 Velocity 2를 예전 G-Spot 자리에 일반 클럽에서 했었는데, 그 행사 이후 그 클럽 사장에게 제안이 들어왔어요. 여기가 예전엔 유명한 게이 클럽 자리였지 않냐고, 자기가 인수해서 일반 클럽으로 영업하고 있는데 잘 안됐대요.
제가 이태원에서 Velocity나 퀴어문화축제 파티 등을 하다 보니까 그때는 좀 알려진 상태였죠. 그래서 이 클럽을 게이 클럽으로 바꿔서 동업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 때 저는 전혀 클럽 운영에 경험이 없던 터라 많이 고민되고 망설였죠. 그 당시 Justin이랑 게이 클럽 오픈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눴어요.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하다, 클럽을 하게 됐어요.

터울 : 저는 지금도 CIRCUIT 클럽 엔트랜스 팔찌를 갖고 있어요.

박사이먼 : 아직도? (웃음) 혼자는 엄두를 못 냈을텐데, Justin도 있고 동업 사장도 있으니 하면 되겠다 싶었죠. Justin에게 매니저 역할을 주고, Justin은 투자는 안했지만 거의 사장처럼, 자기 일처럼 클럽을 운영했어요. 그렇게 CIRCUIT을 2012년 7월에 오픈했어요.

터울 : 그렇게 운영하시다가, CIRCUIT과 함께 Velocity도 진행하시고, 이태원 클럽씬의 한 획을 그으신 격인데요. 운영하시면서 좋았던 순간이 어떤 게 있을까요.

박사이먼 : 파티를 계속 하다보니 재미도 알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Velocity를 알아주고 하니 보람도 있었어요. 클럽 운영 경험은 없었지만 그동안 파티를 많이 성공시켰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되겠다 싶었죠. 파티 준비의 가장 큰 문제가 장소 대관인데, 내 클럽이 하나 있으면 작은 서킷 파티는 계속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CIRCUIT을 오픈한 이후 이벤트로 두 달에 한번씩은 해외의 DJ나 고고보이를 초청해서 작은 서킷 파티를 계속 했었는데, 처음에는 오픈 빨도 있는 거고, 잘 되었어요.
그러나 클럽을 운영하면서 다른 문제점들에 봉착한 거죠. 주위의 신고라든가, 그런 부분들이 있었어요.

터울 : 그 얘기로 넘어가면, 결국은 그 클럽의 자리가 1종 유흥허가가 없었던 것이고, 당시 클럽을 합법적으로 운영하려면 1종 허가가 있어야 한다는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잖아요. 제가 좀 찾아보니, 1종 유흥허가는 여성접객부를 대동할 수 있는 룸싸롱 같은 곳에 해당되고, 2종 유흥허가는 술을 팔 수 있는 단란주점에 해당되고, 3종 유흥허가는 술을 못 파는 일반노래방에 해당되는 건데요. 기준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클럽은 그 중 어디에도 끼지 않는 느낌인데, 1종으로 취급을 받으면서, 당시를 기준으로 비합법적으로 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상하거든요. 일반 상식으론 클럽과 룸싸롱은 완전히 다른 곳이잖아요.

박사이먼 : 이태원이 당시엔 사실 그랬어요, 관광특구인데도 불구하고, 킹클럽 자리나 해밀턴호텔 지하나, IP 부티크호텔 자리 등 정상적으로 클럽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몇 군데 안돼요. 주위에 초등학교도 있고 해서, 클럽으로 유명한 핫한 장소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럽을 할 수 있는 허가가 안 나왔죠. 그래서 알게 모르게 묵인하면서 영업을 하는 상태였어요. 일반 호프집 허가로 무대를 만들고, 공연을 하고, 노래를 크게 틀면 불법이거든요.

터울 : 그게 이해가 안돼요 사실은.

박사이먼 : 그게 법적으로 그렇게 돼있기 때문에, 제가 CIRCUIT를 하던 2012-2013년을 기준으로 그 당시의 모든 게이 클럽이 불법이었어요. 그래서 신고 들어오거나 민원 들어오면 중간에 음악을 끄기도 하고. 아마 클럽 갔을 때 중간에 음악 꺼진 경우를 한번은 경험했을 거예요. 그게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 거예요. 물론 DJ가 실수로 끈 경우도 있겠지만, (웃음) 왜냐하면 신고 때문에 경찰이 왔는데, 그 때까지도 음악이 크게 켜져 있으면 문제가 커지니까요. 그리고 무대도 일부러 크게 못 만들고, 간이 무대로 만드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그런 약점들이 있기 때문에, 당시 이태원의 게이 클럽 뿐만 아니라, 일반 유명 클럽들도 신고가 들어오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였죠. 신고가 없었으면 용산구청도 그동안 해오던 영업관행이니 넘어가는데, 민원이 들어오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CIRCUIT도 손님 제일 많을 때, 신고 들어와서 경찰이 와서 허가증 보여달라고, 사진 찍어가고, 그리고 그 다음날 경찰서로 오라 그러고, 일반음식점 허가인데 왜 클럽 음악 크게 트냐고 하고. 그러면서 경고가 누적되다보니 문을 닫게 되는 상황까지 갔죠.

터울 : 이건 상업관행이 문제가 아니고 법이 문제인 것 같아요.

박사이먼 : 그래서 그 당시에 잘 되던 클럽이, 한번 문을 닫고 나니까, 장사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잘 나가다가 한번 문을 닫고 나면 기운도 빠지고, 또 그대로 하기엔 뭐하고, 그렇다고 재투자를 하기도 뭐해서 애매모호하게 다시 오픈하다보니까, 옛날의 기운들도 떨어지고, 연결이 안되다보니까 장사가 덜 되더라고요.
그 당시 CIRCUIT을 살려보려고 정말 많은 이벤트를 했었어요. 잘 되는 클럽은 그런 이벤트 안 해도 문만 열어놔도 사람들이 모여야 잘 되는 클럽인데, 그래도 우리는 사람 오게 하려고,

터울 : 그러니까 한번 닫고 나서 두번째 열었을 때 말씀이신 거죠?

박사이먼 : 그렇죠. 그래서 1주년 때는 김완선도 초청하고 응답하라 가요파티도 해보고, 클럽을 살려보려고 이벤트를 엄청 많이 했어요. 이벤트를 그렇게 많이 했던 클럽은 CIRCUIT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게 일으켜보려고 노력해 봤지만 기대만큼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닫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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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RCUIT 홍보물 (2013.8.31.)

 

 

 

터울 : 묘하게 시기가 겹치는 것 같아요. 2013년 9월에 CIRCUIT이 닫고, 2013년 11월에 마지막 Velocity가 있었는데, 그 때쯤 뭔가 만정이 떨어지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되었던 거군요.

박사이먼 : 클럽 문은 닫았지만 Velocity라도 잘 유지하고 이어나가려고 했는데, 완전 어렵게 준비했던 행사가 끝이 안좋으니까, 끝나고 난 다음에 여러 신고와 민원과 경찰조사, 이런 것들이 겹치니까, 솔직히 내가 이렇게까지 파티를 해야 될까란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사실 2013년 11월 Velocity를 끝내고, 전의를 가다듬고 2014년 봄에 다음 파티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때 다들 스탭들도 힘이 빠지고, Justin도 다른 파티를 기획하던 단계였기 때문에, Justin이 르퀸도 운영하고 Velocity를 이을 다른 파티를 준비한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I:M이 더 잘되기를 바랬고요.

터울 : 파티를 기획하시면서 제일 중요한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DJ, 고고보이, 음향, 컨셉, 다 중요할 텐데,

박사이먼 : 다른 여러 가지 부수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그 당시의 클러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가를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 우리 서킷 파티할 때는 스타 고고보이가 위주였는데, 지금은 고고보이가 무대 구성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고, 갈수록 음악이 부각되는 방향으로 바뀌듯이 흐름을 잘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리고 중요한 건 장소 같아요. 올해 I:M 파티장소가 넓고 쾌적했잖아요. 얼마나 놀기 좋은 장소인가가 중요하죠. 그 다음엔 그걸 뒷받침하는 음악, 사운드, 조명 등이 중요하고요.

 

터울 : 장소 섭외가 많이 어려운가 보네요.

박사이먼 : 파티 준비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게 장소섭외였어요. 솔직히 모든 파티는 장소만 픽스되면 50%는 된 거예요.

터울 : 그만큼 후보지가 몇 군데 없는 건가요?

박사이먼 : 파티 규모에 맞는 적당한 장소도 별로 없을 뿐더러, 규모가 좀 있는 일반클럽 대관은 게이 파티라고 하면 싫어하는 곳도 많죠. 그래서 I:M 파티도 그동안 거의 비어있는 공간에서 했을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기존에 영업하는 곳에서 하면, 주말에는 게이 파티에 공간을 안 줘요. 그래서 I:M 파티도, 처음에 이태원 크라운호텔 지하의 클럽 MECA에서 했을 때도 그 클럽이 영업을 안할 때였고, 이듬해 Ellui도 쉴 때였고, 올해 세빛섬은 원래 정통클럽이 아닌데 빌려서 클럽으로 꾸며서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가장 큰 어려움은 장소 섭외예요. 파티를 평일에 할 수는 없잖아요. 금요일 아니면 토요일에 해야 하는데, 기존의 클럽을 그 날 통으로 대관하려고 하면 안해주는 거예요.

터울 : 그러니까 그게 게이 파티여서 그런 건가요?

박사이먼 : 일반 파티는 문제가 안돼요. 기존 손님과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고 파티를 하면 더 사람이 차서 파이가 커지는 거잖아요. 그러나 게이 파티는 기존 오는 손님들과 섞이기 힘드니까 클럽 입장에서는 그만큼 손해를 본다 이거죠. 그래서 서킷 파티 장소가 곧 문 닫을 가게, (웃음) 아니면 문 닫힌 가게, 그런 데만 찾아다니다 보니 힘들었던 거죠.

터울 : 그렇다고 해서 일반 입장을 허용하자니 애매하고, 그러면 또 서킷 파티가 아니게 되니까,

 

박사이먼 : 그렇죠. 파티는 어디서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데 섭외는 힘들고. 장소만 정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발빠르게 진행할 수 있어요. 컨셉 정해서 DJ나 고고보이. 공연팀 섭외하고 공간에 부족한 걸 채워넣으면 되니까요.

터울 : 올해 I:M 가서 놀랐던 게, 여성들이 은근히 있었어요. 입장을 막지는 않았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것도 새로운 흐름이다 싶더라고요. 게이들이 별로 불편해하지도 않고. 그렇게 서로 양해가 되면, 그런 섭외 상의 난점도 차츰 쇄신되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 어떻게 바뀔지 또 두고볼 문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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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RED PARTY (2013.11.30.)

 

 

 


HIV/AIDS 후원파티 RED PARTY 기획 (2013-현재)

 

터울 : 그럼 레드파티 얘기로 넘어갈 게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시기에 힘들었다고 하셨는데, 2013년 12월에 첫 레드파티를 또 시작하신 거잖아요. (웃음)

박사이먼 : 진짜 내가 어쩌다가, (웃음) 2013년 11월에 Velocity를 끝내고, 12월에 바로 레드파티 1회를 했잖아요. 이유가 뭐냐면, 제가 그동안 iSHAP 자원봉사를 2004년부터 했어요. 그러면서 동료홍보요원도 하고 여러 활동들을 했었는데, 레드파티는 솔직히 정욜 활동가 때문에 하게 됐어요. (웃음)
어떻게 시작했냐면, 우연한 계기로 에이즈의 날이 12월에 있잖아요. 그전에 어떤 모임이 있었는데, 정욜 활동가가 우리도 후원파티 하나 했으면 좋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돈벌려면 클럽이지, 이런 얘기를 한 거예요. 왜냐하면 기존의 일일호프나, 종로에서의 행사들은 모금에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후원금을 많이 모으려면 클럽행사다. 그리고 HIV/AIDS 후원파티도 재미있는 컨셉으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내가 제안했는데 그럼 형이 파티도 많이 하셨으니까 준비하시라, 이렇게 된 거죠.
그러고보니까 Velocity 마지막 파티와 레드파티 1회를 같이 기획했네요. 그 때는 솔직히 큰 서킷 파티 경험도 있어 레드파티 정도야-라고 쉽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의미가 좋은 행사이고 퀴어문화축제 파티도 오래 해왔으니 이 정도 후원파티는 할 수 있겠다 싶었죠. 대신 컨셉을 잘 잡고, HIV/AIDS 파티라고 해서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컨셉으로 잡지말고 해외의 레드리본 파티처럼 즐겁게 노는 게 후원이 된다는 컨셉으로 가보자, 그렇게 해서 각 단체, 친구사이, 행성인, 이반시티, iSHAP, 퀴어문화축제 등의 단체들이 딱 뭉쳤어요.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게 레드파티예요.

터울 : 저는 2013년 클럽 Action에서 했던 1회 때부터 촬영 스탭으로 참가했거든요. 그래서 사진이 다 남아있는데, 인상이 되게 깊어요. 레드파티 기획하시면서 어떠셨어요? 다른 파티랑 유사했는지, 아니면 다른 구석이 있었는지,

박사이먼 : 서킷 파티는 후원파티 성격은 아니어서 와서 즐겁게 놀고, 욕구를 풀어주면 되는데, 후원파티는 돈을 모아야 하는 파티니 퀴어문화축제 파티와 유사한 셈이죠. 대신 축제파티는 퍼레이드 끝나고 하는 파티라 인원 유입이 쉽지만, 레드파티는 추운 겨울 12월에 하는 파티라 흥행이 될지가 부담스럽죠. 그리고 후원파티라고 하면 재미없다, 인권단체에서 준비하면 재미없다는 이미지가 있을 수 있는데 최대한 그런 부분을 바꾸려고 노력했었어요. 할 얘기는 하지만 최대한 재미있는 파티로 준비했었어요.

터울 : 제가 레드파티를 계기로, PL을 처음 뵙게 되었었어요. 그분이 좀 안타까웠던 게 뭐냐면, 그러니까 이건 사실 레드파티가 거기 PL들을 오라고 만든 파티는 아닌 것 같거든요. PL이 특별히 편할 공간은 아니고, 게이들이 즐겁게 와서 후원조로 돈을 많이 쓰고, 그 기금을 PL들에게 드린다는 컨셉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분이 난 여기 오면 편할 줄 알았는데 편하지는 않다고 토로하는 얘기를 들었었어요. 그리고 1층에 iSHAP에서 HIV/AIDS를 검진하는 분들이 나와계신 걸 힘들어하시는 PL분들도 있었고, 그런 걸 보면서, 레드파티를 기획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란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박사이먼 : 맞아요. 에이즈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감염인도 편하게 같이 어울려서 노는 파티로 만들고자 기획했지만 심적으로 부담이 많았나보네요. 검사는, 사실 어떤 게이 행사에도 넣을 수 있는 건데, 그게 부담스러웠다면 다음 행사에는 좀 논의가 필요하겠네요.
그리고 기금을 모은 다음에도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많았어요. 처음에는 쉼터에도 기부하고, 감염인들을 위해 사용하고 했는데, 작년부터는 레드파티기금으로 조성해서 배분하고 있습니다.

터울 : 감염인들이 그만큼 낙인이 심해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아요. 그건 경우에 따라 기획에서 안을 수 없는 어떤 것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왜냐하면 어쨌든 즐겁게 올 수 있는 컨셉이 있고, 또 iSHAP 검진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 파티가 HIV/AIDS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박사이먼 : 에이즈 후원행사인데 그 파티의 컨셉을 감출 수는 없는 거죠. 대신 감염인도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우리도 예비감염인이 될 수 있고, 다 함께 모여 즐겁게 놀면서 편견을 자연스럽게 없애는 자리로 만들자고 노력했어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앞으로 더 고민하고 준비하겠습니다.

터울 : 올해도 레드파티 기획을 하시잖아요. 기대가 되는 부분이 있어요.

박사이먼 : 작년에 저희가 4회째를 맞았고, 작년은 클럽 루킹에서 했었는데 Justin이 많이 도와줘서 쉽게 준비를 했었는데 올해는 좀 걱정이 되네요. 상시 조직이 아니고, 11월 말 12월 초에 파티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슬슬 날씨가 추워지면 모여서 준비하는 조직이라, 올해는 어떻게 컨셉을 잡고 어떻게 갈지는 아직 결정된 게 없어요.

터울 : 레드파티에 걸려있는 게 많은 것 같아요. 후원금이 많이 모여야 한다는 게 첫 번째고, 모이는 사람들이 자기가 노는 게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HIV/AIDS 후원파티라는 걸 자각할 필요가 있는 게 하나가 있고, 그러면서 PL들이 최대한 덜 불편할 수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이런 몇가지 요목들이 있는 것 같은데, 올해 어떻게 그것들을 절충하실 것인지에 대한 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올해 가능하다면 스탭으로 참여하겠습니다.

박사이먼 : 꼭 참여해서 같이 해 주세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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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회 RED PARTY (2016.12.3.)

 

 

 

게이·LGBT 파티씬에 대한 소회

 

터울 :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드디어. (웃음) 오랫동안 파티씬을 이끄시면서 느꼈던 소회가 궁금합니다.

박사이먼 : 이번에 I:M 파티 때 서로 만났잖아요. (웃음)

터울 : 개인적으로 정말 즐거웠습니다. (웃음)

박사이먼 : 행사를 준비하는 관계자 입장과, 참가자 입장에서 파티를 즐기는 것 하곤 정말 다르더라고요. 저는 그동안 Velocity, CIRCUIT, 퀴어문화축제 파티, 레드파티까지, 행사 관계자여서 파티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어요. 기획자, 스탭, 책임자였기 때문에, 늘 조마조마하고, 흥행부담도 많았고 운영상 할 일이 많았죠. 그런데 올해 I:M는 그냥 참가자로 참가하니 파티가 더 즐겁고, 부담없이 마음편하게 즐겼던 것 같아요.
I:M 파티가 갈수록 해외 유명 서킷파티에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성장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뿌듯했어요. 예전 벨로시티나 클럽을 하면서 알게 된 고고보이들, DJ들, 같이 일했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보게 되어 반갑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요즘은 예전과는 분위기가 다르게 클럽들끼리 단합이 잘 되더라고요. (웃음) 이태원에 있는 모든 클럽들이 조금씩 도와주고, 함께 공생해야 파티가 원활하게 커지는 것 같거든요. 장소 대관도 서로 도와주고, I:M 파티 하면 서로 홍보도 도와주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국 게이 클럽 전체가 발전하겠다 싶더라고요.
게이커뮤니티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답합하고 윈윈하는 공생관계여야 모두가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분야에서 서로 챙겨주고, 관심가져주고, 응원해주고 하면 모두 상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웃음)

터울 : 네,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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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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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7-09-01 오후 15:50

참 대단한 에너지를 가지신 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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