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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1]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의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 『페미니스트 저널 if』를 중심으로
2017-03-24 오후 13: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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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 

[커버스토리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1]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의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 『페미니스트 저널 if』를 중심으로

 

 

 

 

 

1. 『페미니스트 저널 if』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의 여성주의 운동

  1) 『페미니스트 저널 if』의 위치
  2)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여성주의 운동의 시대적 배경
    ㄱ. 여성주의 운동의 세대구분
    ㄴ. 당대 남성들의 낙인섞인 시선과 남성 페미니스트의 등장
  3) 『페미니스트 저널 if』를 둘러싼 당대 여성주의 이슈
    ㄱ. 문화운동에 대한 엇갈린 시선들
    ㄴ. 운동사회 성폭력 가시화 : 100인위원회와 영페미니스트의 등장
    ㄷ. 여성의 고위직 진출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
    ㄹ. 특집 "여자도 군대 보내라!"를 둘러싼 논쟁 
    ㅁ. 기혼중심, 이성애중심성에 대한 비판

 

2. 『페미니스트 저널 if』가 다룬 성소수자

  1) 초창기의 재현 방식 : 은유로서의 성소수자
  2)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길항

    ㄱ. 트랜스젠더 인권운동

    ㄴ. 동성애자 인권운동

 

3. '페미니즘과 성소수자'라는 질문
 

 

 

 

 

 

게이가 여성과 무슨 상관이 있나, 혹은 게이가 여성운동을 왜 알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보통 다음의 두 대답을 준비하곤 합니다. 첫째,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운동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는 1987년에 설립되었고, 1년 예결산액 규모는 8-9억원대이며, 한편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소수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1994년에 설립되었고, 1년 예결산액 규모는 1억원대입니다. 둘째, 만약에 한국에서 동성결혼 법제화가 달성된다면, 그 동성결혼 업무를 관장할 주무부처는, 다름아닌 '여성가족부'가 될 겁니다.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는 깊고, 다양한 계보를 가지는 만큼 결코 무시못할 규모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역사와 현재를 좋게 보든 나쁘게 평가하든, 여성운동은 게이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인권운동에 있어 중요한 참조점이자 반면교사가 됩니다. 그 중에서도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는, 그 전과 비교해 여성운동계에 가장 큰 제도적·문화적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며, 더불어 성소수자인권운동 또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이 글에서는 같은 시기에 출간되었던 『페미니스트 저널 if』를 통해, 당시 여성주의 운동의 여러 논점들을 살펴보고, 여성주의 운동 내에서 성소수자들이 어떻게 재현되고, 또 여성주의 운동과 성소수자인권운동이 어떻게 길항했는지 살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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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스트 저널 if』 1, 1997.5.29. 표지.

 

 

 

이프는 세 가지 색깔의 페미니즘을 지향해 왔는데 그 첫번째가 다양한 페미니즘을 이프 안에서 소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실음으로써 페미니즘간의 경계를 만들기보다는 경계선을 허무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는 유쾌한 페미니즘의 확산입니다. 이프의 스피릿이 '웃자! 뒤집자! 놀자!'인 만큼 재미있고, 유쾌하고, 오락적인 페미니즘을 만들어 여성들을 즐겁게 의식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는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명제에 충실하게 개인의 삶, 그 중에서도 가장 개인적인 부분들, 성과 사랑, 젠더, 가족, 개인의 생각 등에 집중해왔습니다. (박미라)
 

- 황오금희, 「창간5주년기념토론회 | 통념을 뒤집는 배짱이 필요하다 - 지나온 이프, 앞으로의 이프」, 『페미니스트 저널 if』 22, 2002.9., 262쪽.

 

 

 

 

1. 『페미니스트 저널 if』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의 여성주의 운동

 

 

1) 『페미니스트 저널 if』의 위치

 


『페미니스트 저널 if(이하 이프)』는 이른바 '잘나가는' 잡지였습니다. 『이프』는 2001년 제36회 잡지의 날 기념식에서 올해의 우수잡지상을 수상하였고, 창간 수주년 기념호에는 여성부 장차관 및 각 정당대표의 출전과 여성단체·사회단체의 축하 메세지가 실렸습니다. 각 지역에 지역독자모임이 운영되었고, '도서출판 이프'에서는 열몇 권의 단행본이 출간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3년 3월에는 사단법인 문화세상 '이프토피아(iftopia)'가 발족하여 문화운동 기획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2017년 현재는 '문화미래 이프'라는 이름으로 홈페이지를 운영 중이며, '이프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는 『이프』 과월호 PDF가 전권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프』의 모토는 "웃자! 뒤집자! 놀자!"였는데, 실제로 잡지의 논조는 의외로 가볍고, 상업광고도 많으며, 음담패설에 가까운 자투리 코너들도 존재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성 관련 이슈는 경중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다루고 있으며, 민감한 이슈도 좀처럼 피해가지 않고 질러 다루는 모습을 보입니다. 잡지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사회 각 부문에서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 인사의 인터뷰입니다. 더불어 기혼 여성과 남성에 대한 내용이 많이 할애되어있습니다. 또한 잡지에서 다루는 여성은 주로, 남성이 보기에 예쁜, 남성의 눈으로 대상화된 여성보다는, 기혼 여성이라 할지라도 여성 스스로의 삶과 주체성이 돋보이는 여성들을 앞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프』에서 두드러지는 논조는 바로 여성의 '성', 성적 욕망에 관한 부분입니다. 물론 그걸 다루는 방식은 남성 위주의 시선을 벗어뜨린, 여성 본위의 쾌락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90년대에 이슈로 떠올랐던 성폭력, 성희롱 문제도 여과없이 다뤄지는데, 이를 통해 『이프』는 한국의 성문화에 노골적으로, 또는 은연중에 깔린 남성중심성을 집요하게 지적하고 폭로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굴레에서 자유로운 여성상을 문화운동 면에서도 끊임없이 강조하였는데, 이의 일환으로 『이프』는 1999년부터 6회에 걸쳐 '안티미스코리아페스티벌'과, 이를 이어받은 '안티성폭력페스티벌', '안티페스티벌'을 2009년까지 개최하였습니다.

 

『이프』에서 다룬 역대 특집 주제의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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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영화 속 성애)장면들은 여성의 쾌락과 환희, 오르가즘 따위를 남성 욕망의 법칙에 따라 원하는 대로 꾸며낸 것들로, 프레임 안과 바깥의 보이지 않는 남성들을 흥분시키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우리는 수치심과 분노를 통해서도 길들여졌다는 점이다.
 
권력의 역사는 길들이기의 역사이다. 그 길들임의 실천 속에서 시네마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로 우리에게 미학과 에로티시즘을 가르쳐고 세뇌시켰다. 심지어 본능으로 일컬어지는 감각의 쾌락조차도. 

 

- 유채지나, 「특집 : 오르가즘을 찾아서 | 시네마는 여성의 쾌락을 알지 못한다 - 보이는 여자, 감춰진 남자」, 『페미니스트 저널 if』 7, 1998.12.5., 82-83쪽.

 

 

 

비공식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사실들을 '사실로서 드러내는' 작업들이, 그리고 그것을 감추어두고 있었던 이중성의 작동원리를 밝히는 것이, 해방으로 향하는 일차적인 작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분명. 이 이중성은 체제가 '발명'한 것입니다. 마치 여성이 '발명'되었듯이 말예요. 어떤 것이 '음란한 것'인지, 또는 '건전한 것'인지, 어떤 것이 '공식적으로 유통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혹은 '공식적으로는 쓰레기'인지, 지금까지 우리는 그에 대한 판단을 늘 어디엔가 맡겨두었지요. 그러나 '성'과 '질서'에 관한 이데올로기란 본래 쉽게 재생산되도록 '발명'됐다는 게 기정사실인데, 왜 새로운 사실이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아이들의 음란성에 대해서만 한탄하죠? 사실 음란한 것은 현 체제를 유지해 가는 우리 세대 이상의 문제인데 말이죠. 그러니까 까놓고 이야기해보자구요.

 

- 보라거미, 「CROSSOVER 사이버윈도우 | 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음란성'에 대해」, 『페미니스트 저널 if』 7, 1998.12.5., 248-249쪽.

 

 

 

여성을 위한 성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성인 전용 업계의 대세라는데, 과연 어떤 콘텐츠를 개발할지 의구심 반, 기대 반이다.

 

- 소연, 「특집 | 포르나의 요청 : 빨리 포르나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 『페미니스트 저널 if』 35, 2005.11.25.,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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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스트 대통령"은 문재인 씨가 처음 쓴 말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로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한지 사흘만에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설치하였고, 이 기구는 2001년 여성부로 확대·개편되었습니다.

(「WOMAN STREET : 여성계의 '페미니스트대통령 만들기' 작전」, 『페미니스트 저널 if』 4, 1998.3.5., 46쪽.)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세대로 어떻게 묶여질지는 그 계보를 훑는 일이라 만만치 않다. 거칠게 보자면, 이효재 선생님이나 여성단체의 대표 연배인 50-60대,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씨앗을 뿌려 키웠거나 대학에서 여성학을 처음 강의하기 시작한 선배들이 한국 페미니스트 1세대라 불리고 있고, 한국사회 진보의 흐름에 동참하면서 여성단체를 만들고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던 소위 386세대의 여성들을 2세대라 부를 수는 있겠다. 그리고 자신들을 '영'으로 정체화하는 세대, 대학 내 성폭력사건 등 일상의 성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대학 여성운동의 폭발적 에너지를 경험했던 이들을 영페미니스트라 부른다. 물론 386선배들의 래디컬함에 쫄고, 치고 올라오는 '영' 후배들의 래디컬함에 쫄았던 '낀세대'들도 있을 것이다. 여성들만의 조직을 만들어야 했던 세대의 열망과, 일상의 성폭력을 이슈화해야 했던 세대의 열망은 정치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다를 것이다. 남성들보다 더 훌륭하게 일을 해낼 수 있음을 증명해야 여성운동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세대와, 남성주류사회의 기준에 따르지 않으면서 새로운 개념과 정치학을 만들고자 하는 세대는 같을 수 없는 것이다. 

 

- 이프 편집부, 「특집 | 선배노릇 후배노릇 : "페미니스트에게 선배와 후배는 뭐야?" - 세대차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며」, 『페미니스트 저널 if』 25, 2003.6.2., 88-89쪽.

 

 

 

: 오늘날의 페미니즘을 뭐라고 규정하겠는가. 70년대 이래 변하지 않았는가?
70년대에 우리는 여성의 지위가 생물학적으로 또는 프로이트식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시위를 해야 했다. 요즘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제 대중은 불평등이나 차별은 나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변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엄청난 변화다. 

 

- 류숙렬, 「글로리아 스타이넘 대화록 : "모든 문제가 여성문제이고 모든 여성이 중요하다"」, 『페미니스트 저널 if』 18, 2001.9., 80-81쪽.

 

 

 


2)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여성주의 운동의 시대적 배경

 


ㄱ. 여성주의 운동의 세대구분

 

『이프』의 이러한 편집방향은 당시 여성운동계에서 퍽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러한 흐름이 대두된 것은 여성운동사 속 90년대의 위치와 맞물려 있습니다. 보통 여성운동을 크게 1세대, 2세대, 3세대로 나눌 때, 1세대 운동은 (민법상 친족·상속 조항에서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을 시정하라는)가족법 개정운동을 필두로, 남성이 여성과 동일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여권운동'의 명분 아래 주요 요직의 여성 진출을 독려하는 일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다 70년대 중반부터, 단순히 남녀간 같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 '여성해방', '인간해방'을 내세우는 여성운동의 흐름이 생겨나게 되고, 이는 흔히 '386'으로 일컬어지는 80년대 학생운동권과 보조를 같이하게 되는데, 이것을 흔히 한국의 2세대 여성운동이라 부릅니다. 최초로 '가정 내 폭력'을 이슈화했던 1983년 설립된 '한국여성의전화'나, 같은 연도에 창립된, '성폭력'이 관계 전략이 아니라 엄연한 범죄임을 자각시켰던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모두 2세대 여성운동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갖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당하는 일상의 폭력을 꺼내어 말하지 않고서는 여성의 인간다운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후 80-90년대를 지나오면서, 학생운동권 내에서도 총여학생회 등을 중심으로 여성주의 이슈가 차츰 독립적으로 대두되고, 진보운동권 내에서도 남녀의 차별 및 성폭력 문제가 가시화되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또한 "정치경제의 진보성과 문화감성의 보수성"이 80년대의 한계로 지적되면서, 일상에서 가깝게 부딪치는 성문화에도 진보가 필요하며, 그것의 내용이 기존의 결혼 중심의 관점을 넘어 보다 여성 본위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흐름이 있게 되는데, 이것을 제3세대 페미니즘이라 칭하고, 여기에 동참했던 이들을 흔히 '영페미니스트'라 부릅니다. 이들은 성희롱 이슈를 비롯, 진보진영 내에서의 성폭력 문제를 적극적으로 가시화하는 한편, 여성들 간의 '차이'에 주목하여 그 차이에 입각한 다양한 전선을 부각하고, 각각의 해방에 대한 과제를 제시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레즈비언·트랜스젠더의 인권, 나아가 게이를 포함한 성소수자의 인권이 여성운동의 시야에 들어오게 됩니다. 

 

 

 

"페미니스트 여성 가운데 인간해방 없는 여성해방을 좇는 부르주아가 실재한다'고 김규항씨는 말한다. 인간해방 없는 여성해방이라는 말이 도대체 성립이라도 되는 말인가?
여성이 바로 인간인데 여성이 해방되는 것, 흑인이 해방되는 것, 동성애자가 해방되는 것, 모든 억압에서의 해방 해방 해방 해방들이 합쳐지고 뭉쳐져서 최종적으로다가 인간해방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도대체 인간해방 없는 여성해방을 어떻게 좇는단 말인가? 인간해방 없는 여성해방을 좆는 방법을 알면 좀 가르쳐주라. 한번 좇아보게. 정말 좆같은 소리 하고 앉았다. 

 

- 김미경, 「무식해서 용감했던 김규항에게 꾸벅!」, 『페미니스트 저널 if』 21, 2002.6.5.,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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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별을 놓고 벌인 '미러링' 전략'은, 이렇게 '메갈리아'의 등장 이전에도 활발히 채용되고 있었습니다.

(「세상 밖으로 | 가상리포트 - 미래일보」, 『페미니스트 저널 if』 12, 2000.3., 247쪽.)

 

 

 

 

"월남에서 사창굴에 드나들면서 한가지 배운 게 있어. 그런 데 있는 여자들하고 어울릴 때가 나로서는 가장 인간적이 된다는 거지. 비록 하룻밤 자고는 끝이지만, 그 때마다 나는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어. 나에게는 그녀들의 육체야말로 나혼자만을 위해 피어난 들꽃같았으니까(송기원, 『여자에 관한 명상』)"
 

- 유숙렬, 「특집 |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 : 작품분석 - 예술과 폭력 사이에서 꽃피는 남근의 명상」, 『페미니스트 저널 if』 1, 1997.5.29., 36쪽.

 

 

 

김완섭의 『창녀론』에는 '21세기형 인간을 위한 혁명적 여성론'이라는 거창한 부제가 달려있다. 책에 붙은 소개글에 의하면 그는 미혼이며 서울대 천문학과 82학번이다. 그렇다면 현재 35세 전후의 나이다. 자칭 맑스와 예수의 제자이며 고교 때 광주 시민군 참여, 위장취업, 87년까지 주사파로 활동, 수차례 투옥경험이 있다. [...]


"창녀는 아름답다. 그녀들은 한갓 고기덩어리에 불과한 자신의 몸을 사용하여 모든 남자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짐승의 욕구를 어루만져준다. 그들은 내가 본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보람있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예수들이다."
 

- 유숙렬, 「특집 |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 : 작품분석 - 예술과 폭력 사이에서 꽃피는 남근의 명상」, 『페미니스트 저널 IF』 1, 1997.5.29., 43쪽.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 :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의 정개특위 위원장석 점거를 두고)"남의집 여자가 느닷없이 우리집 안방에 와서 드러누워 있으면 주물러달라는 얘기다"
새천년민주당 유용태 의원 : (새천년민주당 한영애 의원에게)"여자가 여자다워야지, 걸레 같은 게, 싸가지가 없이"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 : (장상 국무총리 지명자에게)"대통령이 유고될 경우 어떻게 여성총리한테 국방 등 국정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겠는가"

 

- 강김아리, 「특집 | 마초의원 블랙리스트 : 마초의원들은 보고 있는가? 하늘을 지르는 여인공노(女人共怒)를! - 여성비하발언 의원들의 행태」, 『페미니스트 저널 if』 28, 2004.3.2., 119,121,122쪽.

 

 

 

 

ㄴ. 당대 남성들의 낙인섞인 시선과 남성 페미니스트의 등장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성주의'가 왜 존재하는지 관심이 없거나 그것을 '자연스럽지 못한 트집'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많았고, 90년대 당시는 그 양상이 한층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90년대 후일담 문학을 빌미로 온갖 종류의 희한한 남성중심적 성 재현이 쏟아지는가 하면, 여성 정치인을 둘러싼 남성 정치인의 막말이 언론에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여성주의는 남성중심의 제도와 성문화가 너무나 당연한 나머지, 그것의 문제점을 공격하는 것이 되레 공연하다는 여론과 늘 맞서야 했습니다. 더불어 이를 겉으로 표현하는 이들 대부분은 남성이었기에, 여성주의는 늘상 남성들의 낙인섞인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는 당대 여성주의 논쟁에 있어서도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한편 같은 시기 여성주의의 문제의식에 동참하는 남성 페미니스트들도 등장했는데, 이들은 남성 모두가 남성적인 규범을 체화하는 것은 아니며, 이런 비규범적 남성성을 지닌 남성의 해방은 곧 여성해방과 연결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남성성=성폭력'의 도식을 상대화하기 위한 남성 스스로의 성문화 성찰과 함께,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경험을 이해하고 체감해보려는 노력이 개진되었습니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이성애자 남성의 동성연애 경험이나, 여성스런 동성애자 남성의 고백이 잡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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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중, 「특집 | 여자에게 밤을 허하라 : 니들이 무서움을 알어? - 치마 입은 남자가 남자에게 들려주는 공포 이야기」, 『페미니스트 저널 if』 30, 2004.9.1., 112쪽.

 

 

나는 여장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치마를 입은 남잔데, 이 밤 시간에 저 사람들이 "야, 너 변태지?" 하면서 나를 괴롭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드니까 갑자기 솜털까지 쭈뼛 일어나면서 무서워지는데, 길목에 남자 서 있는 거 보고 무섭다는 생각 든 거는 어른 되고 나서는 이게 처음이었어. [...]
 

[...] 나는 아무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멀쩡한' 남자처럼 안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린치 또는 봉변당할까봐 막연히 무서워해야 한다는 거... [...] 막상 치마 하나 때문에 그 두려움을 실제 겪고 보니, 상상 속의 흉악한 상황하고는 차원이 다르더라는 거야. 

 

- 김세중, 「특집 | 여자에게 밤을 허하라 : 니들이 무서움을 알어? - 치마 입은 남자가 남자에게 들려주는 공포 이야기」, 『페미니스트 저널 if』 30, 2004.9.1., 116-117쪽.

 

 

 

남성 스스로가 자신의 관계맺기와 성문화에 대해 낯설게 바라볼 때에 성찰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더불어 성폭력 근절을 위한 남성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성폭력에 대해 "성폭력을 하지 말아라!"와 같은 부정적 금지보다는 긍정의 언어를 사용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

 

- 조박선영, 「이프스케치 | 성폭력 근절 위한 남성 서포터즈 컨퍼런스 : 남성성=성폭력의 굴레 벗어나기 - 페미니즘 안에서 살고 싶은 그 남자들의 고군분투」, 『페미니스트 저널 if』 27, 2003.12.1., 63-65쪽.

 

 

 

나는 나이 32살의 게이이다. '게이'라고 하면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장남자'로 알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것이 더 이해가 빠르겠다. 여기에서는 내가 '동성애자'인 모습보다는 나의 여성스러움이 가져다주는 불편함에 대해서 주로 말하고자 한다. [...]
 

나는 아직도 일반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렵다. 그들에게 나의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그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싫다. 지금의 내 생활은 거의가 동성애자들하고 함께하는 삶이다. 어찌보면 내가 접촉을 하고 만나는 유일한 이성애자들은 나의 가족들뿐인가보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며,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현재 우리 나라의 시각이 바뀌기 전에는 나는 이 사회에서 바로 서지 못할 것 같다. 나의 여성스러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이해해 주는 동성애 사회 안에서만 당분간 꽁꽁 숨어지내야 할 듯하다. 무척이나 슬픈 일이지만 말이다. (조민기 / 32살, 카페 운영) 

 

- 「특집 : 남녀의 경계선이 무너진다 : 나의 이름은 아수라(?)」, 『페미니스트 저널 if』 10, 1999.9.5., 114-115쪽.

 

 

 

황오금희 : 권혁범 교수님은 동성애 경험이나 뭐 그런 느낌 가지신 적 없으세요?
 

권혁범 : 있죠. 당연히 있죠. 그러니까 인간이 해방된 인간이 되려고 할 때는 뭐가 튀어나올지 자기 자신도 모르잖아요. 억압됐다는 것을 느끼고 다 집어던지기 시작하고 정말 자유로운 인간이 되겠다 하면 그때는 뭐가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르죠. 

 

류숙렬 : 정치적 레즈비언이라는 얘기도 있긴 하지만 동성애를 규정하는 개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우리가 여성운동 하면서 모든 부문에서 여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컨셉 때문에 여성에 대한 사랑의 영역을 넓힌 것 같고, 그것은 정말 긍정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남녀사이에 교환되던 애정표현들, 이를테면 끌어안는다던가, 포옹을 한다던가, 사랑고백을 한다던가, 선물을 주고받는다던가 그런 것들을 페미니즘이나 동성애 담론이 넓혀놨기 때문에 삶에서 사랑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나 할까?

 

진중권 :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우리가 영양실조 상태에 있었죠.

 

- 류숙렬, 「희귀종 한국남자 - 페미니스트 논객 : 진중권, 권혁범」, 『페미니스트 저널 if』 21, 2002.6.5.,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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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박선영, 「이프스케치 | 성폭력 근절 위한 남성 서포터즈 컨퍼런스 : 남성성=성폭력의 굴레 벗어나기 - 페미니즘 안에서 살고 싶은 그 남자들의 고군분투」, 『페미니스트 저널 if』 27, 2003.12.1., 63-65쪽.

 

 

 

 

3) 『페미니스트 저널 if』를 둘러싼 당대 여성주의 이슈


『이프』가 발간되었던 시기 동안, 여성운동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호주제 폐지가 달성되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호주제와 관련된 가족법 개정운동은 무려 1950년대부터 여성운동계가 줄기차게 주장한 것으로, 50여년이 흐른 2005년이 되어서야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통해 비로소 폐지되었습니다(헌재 2005.2.3. 2001헌가9·10·11·12·13·14·15, 2004헌가5(병합)). 뿐만 아니라 1999년에는 한국여성재단이 설립되고, 2001년에는 행정부 내에 여성부가 신설되는 등,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는 유달리 여성운동계의 굵직한 조직적 변화가 많았던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시기, 『이프』를 둘러싼 여성운동 내의 이슈와 논쟁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굵직한 것부터 하나씩 더듬어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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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굿바이! 호주제」, 『페미니스트 저널 if』 32, 2005.3., 24-25쪽.


 

ㄱ. 문화운동에 대한 엇갈린 시선들

 

앞서 본 대로 90년대의 문화운동은 80년대의 운동 방향에 대한 비판과 상대화를 통해 나온 것인데, 이러한 흐름에 대해 "중산층 지식인적 문화잔치"이며, "고상하고 여유 있는" "부르주아"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당시 존재했습니다. 운동은 모름지기 제도적, 사회경제적 변혁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일상 영역에서의 성문화·관념의 변화는 무언가 약한 문제의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문제를 다룰 때에도 '섹스'보단 '젠더'를 더 다루어달라는 독자의견도 존재했는데, 이는 『이프』가 주창했던 여성의 성적 욕망이나 성의 주체적 향유가 그렇게까지 운동의 중요한 의제로 될 수 있느냐는 반문에 가까웠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문화운동 노선은 무언가 "한가"하며, "날라리"에 가깝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한편 어떤 논객은, 당초 자신의 이런 생각을 바꾸고 "여성문제라는 건 제도라는 1층, 관념이라는 2층으로 지어진 2층집"이라 평하고, 제도 개선 뿐만 아니라 문화 관념을 바꾸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시인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운동의 과제로서 이 '경제'와 '문화'의 문제가 서로 "분리되지 않을" 이들로 유독 "동성애자"가 호명되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90년대 문화운동의 대두와 함께, 동성애자에 대한 일상적 차별이 폭로되고 비로소 '이야깃거리'가 되는 저간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 문화타령할 만큼 한가한가?
나는 공주파 페미니스트가 싫다. 성공한 그들이 기층여성에게 느끼는 것은 우월감이 아닐까?(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여성들의 문제엔 무관심하거나 적대시하는듯) 지금은 페미니즘혁명이 필요하다. 중산층 지식인적 문화잔치는 그저 유흥일 뿐이다. 왜 문화인가? 고상한 페미니즘 담론들과 문화의 세계에 속하기 힘든 여성들도 있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처절한 생존이 아닐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주파 페미니스트들에겐 유흥일지 모르지만.
촌스럽고 무식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혁명과 피 없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 페미니스트들이여! 당신들은 고상하고 여유있게 문화타령할 만큼 한가한가? (전북 군산 김선영)


- 「if에게」, 『페미니스트 저널 if』 2, 1997.9.1., 268쪽.

 

 

 

: '섹스'보다는 '젠더'에 대해 다루어주세요
제가 if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무 흥미위주의 내용으로 흐르지 않나 싶은 우려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성차별'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게 된 '페미니즘'이지만 '섹스'에 관한 내용이 아닌 사회적 성인 '젠더'에 대하여 다루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겨집니다. (전남 나주시 용산동 김수희)


- 「if에게」, 『페미니스트 저널 if 3』, 1997.12.5., 268쪽.

 

 

 

조선희 : [...] 5년 전에 처음 이프가 창간됐을 때 이프 창간호를 둘러싼 평가회에 패널로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페미니즘 정체성을 표방한 잡지로는 이프가 유일했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하고, 귀해서 더 신랄하게 비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여성문제의 가장 큰 문제가 고용인데 고용의 고자도 안들어가는 중산층 잡지가 되면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웃자, 뒤집자, 놀자라는 컨셉이 웬 날라리 여성운동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 이프가 가지고 있는 자리가 참 소중합니다.  


- 황오금희, 「창간5주년기념토론회 | 통념을 뒤집는 배짱이 필요하다 - 지나온 이프, 앞으로의 이프」, 『페미니스트 저널 if』 22, 2002.9., 264쪽.

 

 

 

그래요. 이프가 옳았어요. 여성문제라는 건 제도라는 1층, 관념이라는 2층으로 지어진 2층집이지요. 관념을 바꾸는 운동이 절반이에요. 이데올로기 싸움이 50%지요. 스타일, 이미지에 변화를 주고 파격을 주는 것도 제도를 바꾸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거예요. 이프는 그런 철학이 분명해 보여요.


- 조선희, 「Blessing IF : 다시 신나게 놀자, 이프야」, 『페미니스트 저널 if』 36, 2006.3., 180쪽.

 

 

 

: 『동성애의 심리학』(윤가현 지음/학지사)
경제 때문에 문화가 실종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더불어 육체적 생존이 버거워 정체성 고민은 부차적 지위로 떨어지려고 한다. 그러나 이 둘이 분리되지 않을 사람들, 동성애자. 


- 「REVIEW BOOK : 히스테리아가 뽑은 봄의 책」, 『페미니스트 저널 if』 4, 1998.3.5.,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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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추방운동에 대한 명예훼손 역고소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장, 2002.7.10.

(조박선영, 「[특별기획] 진보마초 대탐구 | 진보와 마초, 눈 맞다 : 진보마초, 여성의 '적'에서 '동지'로 거듭날까?」, 『페미니스트 저널 if』 31, 2004.11.25., 117쪽.)


 

ㄴ. 운동사회 성폭력 가시화 : 100인위원회와 영페미니스트의 등장

 

이 시기 『이프』를 둘러싸고 무엇보다 활발히 논쟁되었던 것은 바로 진보진영 남성들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였습니다. 이는 3세대 여성운동의 주체였던 '영페미니스트'들이 벌인 핵심 활동이기도 했습니다. 1999년 8월 학생운동 및 각 사회운동계의 44명이 모인 "운동사회 내 가부장성과 권위주의 철폐를 위한 여성활동가 모임"이 결성되었고, 이 조직은 2000년 7월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로 재편되게 됩니다. 이들에 의해 운동사회, 진보진영 내의 일상적 성폭력들이 차례로 폭로되면서 이 이슈는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편 이에 반발한 가해자 측이 피해자 여성을 "역고소"하며 물의를 빚었는데, 이에 맞서 '100인위원회' 소속 여성들 대부분이 법정에 출두하여 증언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진보진영 남성들의 성폭력 폭로를 두고, 조선일보·중앙일보 등의 보수언론에서는 진보집단 전체를 "파렴치한"으로 모는 식의 보도를 일삼기도 했는데, 이러한 흐름은 당시 이 이슈가 처해 있던 곤경이 무엇인지를 일부 설명해줍니다. 『이프』 측에서도 당초에는 가급적 진보진영보다는 보수진영의 "큰 마초들과 맞짱"뜨는 것을 원칙으로 삼다가, 차츰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낙인을 무릅쓰고 내부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데 나섰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진보마초'라는 존재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옳고 그른 것이 분명한 시대였던 1980년대까지는 진보와 마초가 만날 일이 없어보였다. [...] 하지만 1990년대가 상황이 변한다. 학생운동권 내에서 이제껏 보조자 역할에 머물렀던 여학생들이 군대 갔거나, 졸업해버린 남학생들을 대신해 운동을 이끌어나가게 된 것이다.

 

- 조박선영, 「[특별기획] 진보마초 대탐구 | 진보와 마초, 눈 맞다 : 진보마초, 여성의 '적'에서 '동지'로 거듭날까?」, 『페미니스트 저널 if』 31, 2004.11.25., 116-117쪽.

 

 

 

정희진씨는 작년 오끼나와에서 열린 국제인권학술회의에 참석한 한 '진보한다는' 인사들의 성희롱을 목격했다. 정희진씨를 포함해 이 회의에 참석한 여성들은 '진보' 인사들로부터 '여자들이 무슨 역사를 알겠느냐, OO 대학은 서구적이다. 인권이면 됐지, 페미니즘이 왜 필요하냐, 페미니스트들은 한국남자하고 얘기 안하고 서양남자만 좋아한다, 당신들이 미국의 의도를 아느냐, 현대사를 좀 읽어라, 피가 거꾸로 쏟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회의가 끝난 후의 술자리에서 여성활동가들에게 '술 한 잔 따라보아라, 내 무릎에 한번 앉아보아라, 나랑 연애 한 번 하자'는 등의 숱한 인권 모욕을 행사하고 다니면서 성폭력/성희롱으로 국제적인 악명을 떨쳤다고 정희진씨는 전한다. 
 

- 정미경, 「기획 | 그들의 '진보'엔 여성이 없다 : '나이 어린' 여자들의 반란 - "운동사회 성폭력 이제는 말하자"」, 『페미니스트 저널 if』 14, 2000.9.5., 68쪽.

 

 

 

오히려 문제는 경씨의 글로 촉발된 논쟁에서 보인 일부 논객(?)들의 형편없는 발언이었다. 적어도 한씨의 가정폭력 전력만은 사실이었음이 밝혀졌음에도, 그들은 한씨가 투사라는 이유로, 도덕성을 잣대로 운동권을 평가하면 안된다는 이유로 경씨를 비판하는 데만 앞장섰다. 나아가 성추행(확인되지는 않았지만)과 관련해서는 "술 먹고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그렇게 해서 결혼했다고 인정합시다. 뭐가 문제입니까. 책임지고 결혼한 것 아닙니까" 식의 발언을 하기까지 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운동'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고 만다. '성은 개인의 영역'이며 '생활에 대한 무심함은 운동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이니 "제발 도덕을 앞세워 운동(운동권 남자)을 평가하지 말라"는 그들의 절규는 "운동(운동권 남자) 앞에 모든 것은 머리를 숙이라"는 명령으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 박미숙, 「IF&TOUGH : 한 '진보'(?) 인사의 엽기스토리」, 『페미니스트 저널 if』 15, 2000.12.5., 28쪽.

 

 

 

100명의 여성이 법정에 출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바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이하 100인위원회'의 여성들. 100인위원회는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과 함께 가해자 남성에게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한 것이다. [...]

100인위원회는 지난해 연말부터 시민운동, 노동운동 내 성희롱, 성폭력 혐의자들의 실명을 공개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킨 단체. 실명을 공개했다는 점이 지적되기는 했으나 "명예훼손이라기보다는 피해여성들의 '자구력'을 지원해준 정당행위"라는 것이 100인위원회 공동변호인단의 입장이다. 한편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KBS노조부위원장 강철구)강씨는 이후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문순)에서 열린 회의에서 제명처분을 받았다. 
 

- 도라, 「IF&TOUGH : 우리는 모두 출두한다」, 『페미니스트 저널 if』 17, 2001.6.11., 42쪽.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은 한국사회 진보를 이야기하는 운동집단을 성폭력 범죄나 저지르는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웠고, 진보진영은 "보수언론은 '운동권의 도덕'을 말할 자격이 없다"면서 운동권 자체의 정화를 외치면서 맞대응했다.

 

- 정미경, 「기획 | 그들의 '진보'엔 여성이 없다 : '나이 어린' 여자들의 반란 - "운동사회 성폭력 이제는 말하자"」, 『페미니스트 저널 if』 14, 2000.9.5., 63쪽.

 

 

 

우리가 가슴 아파하는 것은 이 글로 인하여 우리의 전통이 깨졌기 때문이다. 이프는 창간 이래로 언제나 사회의 가장 큰 마초들과만 맞짱떠왔다. 우리는 적어도 잔챙이, 애숭이와는 싸우지 않는다. 이것을 또한 마초적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게다가 우리는 항상 어떤 주변부와도 연대하고 대화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고, 더욱이 같은 주변부를 씹어 우월감을 획득하는 짓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 박미라, 「자칭 'B급(실제 D급) 좌파'에게」, 『페미니스트 저널 if』 21, 2002.6.5., 26-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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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진 <일다>는 새로운 "그 여자들의 물결"을 모토로 2003년 5월 1일 창간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정박미경, 「NEWS WOMAN | 여성주의 웹진 일다 편집장 조이여울 - 그 여자들의 새로운 물결」, 『페미니스트 저널 if』 25, 2003.6.2., 36쪽.)


 

 

 

ㄷ. 여성의 고위직 진출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

 

한편 『이프』의 필진 일부를 비롯한 '영페미니스트'들은 당시 여성들이 고위직이 진출하는 방식을 문제삼기도 했습니다. 가령 여성운동계의 명사 중 한 사람이 보수 정당에 입당한 일을 두고, 2003년 5월 창간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웹진 <일다>에서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였습니다. 더불어 이들은 기존의 여성주의 언론이 여성주의 내의 다양한 전선과 이슈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였고, "여성주의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피하"지는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1세대 여권운동 이래 내려오던, 여성의 주요 요직 진출을 지지하고 박수쳐주는 흐름에 반대되는 것이었기에, 여성운동 내에서의 논쟁은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여성운동이 현실정치에 개입한 역사가 짧기 때문에 우선은 여성의 수를 늘리는 양적 팽창이 중요할 수 있고, 그 보직 간의 정치색을 일일이 따지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주요 요직에 단순히 '여성'이 오르는 것만으로 바꿀 수 있는 사회의 지분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 여성이 어떠한 여성주의적 관점을 갖고, 자신이 처한 곳의 정치색이 어떠한지도 함께 묶어 여성주의의 진전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 이는 급격히 주류화, 제도화의 길을 걷는 여성운동이 놓치고 있었던 논점들을 환기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기존 여성주의 언론은 '비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적이다. [...] "지금 초지일관의 논조를 가진 여성주의 언론을 볼 수 없어요. 한쪽에서는 여성노동권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면에서는 그와 전혀 반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한부모가족을 기사화하지만 그 안에서 또 동성애에 대한 비하가 섞여 있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것을 어떻게든 비판하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성주의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피하는 '더러운 연대'는 더 이상 간과하지 않겠다는 것. 

 

- 정박미경, 「NEWS WOMAN | 여성주의 웹진 일다 편집장 조이여울 - 그 여자들의 새로운 물결」, 『페미니스트 저널 if』 25, 2003.6.2., 36-37

 

 

 

검심 : 여성됨을 이용해서 정치적인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그게 남자들이 하는 거랑 똑같을까?
까막 : 제 생각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젠더프리 : 남자가 차 시키면 열받는데 여자가 차 시키니까 화도 못내겠고... 배반감은 더 많이 느끼죠. 호주제 문제로 남자국회의원이 반대하면 '저놈은 원래 저래'라고 하지만 여성국회의원이 그러면 파장이 더 크거든요? 여자가 권력을 가졌을 때 잘못 사용하면 더 무서울 수도 있는 거죠.
까막 : 짜증나는 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계속 양산이 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있으면 아래쪽으로 똑같은 사람이 또 생기고. 결국엔 그게 정당하다는 생각이 계속되잖아요. 자기를 위한 수단, 자기가 올라가기 위한 수단이 여성이라면 그 사람은 이미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실제로 그런 경우를 보고 있어요. 

 

- 송란희, 「특집 | 선배노릇 후배노릇 : 영과 올드, 그 다른 경험은 만날 것인가 - 영페미니스트들의 어퍼컷」, 『페미니스트 저널 if』 25, 2003.6.2., 97쪽.

 

 

 

최보은 : 한국여성의 정치운동사 단계에서 지금의 액션은 외형적으로는 나이브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거라고 봐요. 지금은 세련될 수가 없어요. 세련되려면 내공이 쌓여야 하는데, 그걸 해보지 않았단 말이죠.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방식의 운동이 지금은 거의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세련미를 요구하고, 면면을 따지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오히려 트집잡기식이 될 수 있다고 봐요. [...]

 

이선희 : 여성단체나 시민단체장이 정계진출한다는 게 문제는 아니에요. 정당선택이 문제죠. 현직이든 전직이든 다 어디로 갔는지 아시잖아요. 확약을 받은 형태로 가기 때문에 여성단체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보는 시각은, 일종의 수순이구나 하죠. 속된 말로 잘난 여자들이, 온실속의 여자들이 그런 방식으로 정치권에 안착한다는 것.
최보은 : 그게 사실이긴 해도, 그 사람들은 젊지 않잖아요? 맨땅에 헤딩할 나인 아니죠. (모두 웃음)

 

- 정박미경·송란희, 「특집 | 좌담 : 여성 정치 원년, 무엇을 할 것인가?」, 『페미니스트 저널 if』 28, 2004.3.2., 131-132,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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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가 되었던 『이프』 24호의 머릿글.

(류숙렬, 「if를 열며 | 여자도 군대 보내라! - 양성평등한 군대를 위하여」, 『페미니스트 저널 if』 24, 2003.3.5., 21쪽.)

 

 

 

ㄹ. 특집 "여자도 군대 보내라!"를 둘러싼 논쟁

 

『이프』에서 제기되었던 이슈를 통틀어 가장 뜨겁게 논쟁되었던 것이 바로 여성 징병제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프』 24호의 특집 표제는 "여자, 군대를 말한다"였는데, 여기에는 현역 여군 장교의 여성주의에 대한 입장과 더불어, "여자도 군대 가라"고 주장한 남성들의 인터뷰도 실렸는데, 이 24호의 머릿글 제목은 다름아닌 「여자도 군대 보내라! - 양성평등한 군대를 위하여」였습니다. 한국의 군대는 "여자는 '못' 가고 남자는 '안' 갈 수 없는" 것이며, 이에 군복무의 "양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었습니다.

 

바로 다음 호에서 이 주장에 대한 반박을 담은 좌담회가 실렸는데, 패널 중 한 분은 이 이슈에 다분히 "세대문제"가 끼어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앞선 절에서 본 대로 어떤 사회 조직에 여성이 일단 많이 진출해야 한다는 것과, 그 사회진출의 질적 노선에 대한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는 구도는, 이 '여성 징병제'에 관해서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성 징병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것이 기본적으로 군복무 적격자와 군복무 부적격자의 차이 등을 둘러싼 남성과 남성간의 이슈를, 남성과 여성의 성문제로 전치시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징병제의 다른 대안인 모병제, 혹은 양심적 병역거부 등 군대가 가진 남성중심적 제도·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의식이 결여되어있다고 평가했습니다.

 

2003년에 벌어진 이 논쟁은, 이후 다른 이슈와 얽혀 『이프』의 편집장이 사퇴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이후 2006년 『이프』가 완간될 때까지 편집장 외부영입, 혹은 부재의 상황은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 이슈를 둘러싸고 영페미니스트 논객과 앞선 여성운동 세대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이 『이프』 36호 '완간호'에 일부 실려있어 주목됩니다.

 

 

 

아직까지 군대와 전쟁은 남자들의 것이다. 최근 여성들이 진출이 사회 전분야로 확대되면서 굳이 더 이상 금녀구역으로 남아있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에 대한 금단의 벽이 존재하는 남성 최후의 보루가 군대이기도 하다.

그러면 여성과 군대, 무엇이 문제인가? 한마디로 여자는 '못' 가고 남자는 '안' 갈 수 없는 게 군대다 [...]
여성이 군에 진출하게 되면서 후방에서는 물론 전선에서까지 모든 임무를 남성과 똑같이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국가가 필요로 하는 국토방위의 의무를 왜 남자만 져야 하는가? 여자는 군대갈 수 없다는 논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가기 싫은 군대 억지로 끌려가서 2년여를 썩고 나온 남성들은 여성차별 이야기만 나오면 쌍심지를 켜고 나선다. 군대도 안 간 것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입 다물라고. 이제 한국의 여성운동가들도 징병제건 모병제건 병역 의무를 남녀 함께 지자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21세기는 양성평등의 시대이며 군대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 류숙렬, 「if를 열며 | 여자도 군대 보내라! - 양성평등한 군대를 위하여」, 『페미니스트 저널 if』 24, 2003.3.5., 21쪽.

 

 

 

권김현영 : [...] 예를 들면, 남자들이 이미 '여자들도 군대 가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었고, 여자들은 '우리가 너희들을 군대 보내지 않았다'고 말하는 투의 논쟁이 이미 존재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이프가 '여자도 군대 보내라'고 말하는 것은 남성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보여진다는 점에서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또한 이 문제는 핵심적으로 세대문제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즉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평등을 쟁취하는 데에 있는가'에서 그렇다면, 그것이 남자와 똑같이 군대도 가고, 임금도 똑같이 받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맥락을 같이 하는 그런 식의 평등, 혹은 페미니즘의 입장인데요. 그것이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저희 지향과 가치관과 주장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입장을 가진 이들과 같은 자리에서 호명되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긴급좌담 | 여자, 군대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 이프 창간 6주년 기념 좌담회」, 『페미니스트 저널 if』 25, 2003.6.2., 123쪽.

 

 

 

정박미경 : 그래도 유선배에게는 서운한 점이 있다. 완간호의 유선배 원고에서도 봤지만 2003년에 영페미니스트들에게 말하려던 글을 이제야 완성했다고 한다. 선배는 영페미니스트 집단 때문에 잡지를 만들 전의를 상실했을 정도로 그들로부터 상처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왜 그들을 설득하거나 해명하려 하지 않았나? [...]
유숙렬 : 내가 해명을 하지 않은 이유는 그 논란이 페미니스트들간의 갈등으로 비쳐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고, 그들의 페미니즘까지 내가 재단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IF Inner Voice | 완간호 좌담 - "이제는 말하고 싶다"」, 『페미니스트 저널 if』 36, 2006.3., 135-136쪽.

 

 

 

사실 남자들한테서 오는 칼은 얼마든지 받아낼 수 있지만 여자들한테서, 그것도 같은 페미니스트한테서 날아오는 칼은 참 아프다. 
 

- 유숙렬, 「Blessing IF : 내 인생의 주홍글씨,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저널 if』 36, 2006.3.,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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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프』에 실린 동성애 전문지 『BUDDY』의 광고. 『BUDDY』는 1998년 2월 20일 창간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if』 8, 1999.3.5., 243쪽.)

 

 


ㅁ. 기혼중심, 이성애중심성에 대한 비판

 

마지막으로 『이프』의 논조가 기혼여성 중심으로 치우쳐있고, 나아가 이성애를 표준으로 놓고 여성을 재현한다는 점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모성에 대한 부각을 비롯하여 기혼 여성에 대한 내용이 잡지에 많이 할애되어있던 데에서 자연스레 기인한 것이었는데, 이 "평등한 이성애 관계"를 표준으로 놓고 보는 시각은 '결혼' 관계 그 자체의 불평등성과 남성중심성을 꿰뚫어보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여성이 결혼 관계 안에서 느끼는 주관적 행복의 정체가 재고되고 성찰될 필요가 있다는 이러한 주장은, 당시에 차츰 대두되었던 '비혼' 여성운동의 흐름과 맞물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레 이성애자 여성만 재현하는 것을 벗어나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여성주의 운동 안에서 함께 보아야 한다는 주장과 연결되었습니다. 당시 대표적인 레즈비언 인권운동 단체는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현 한국레즈비언상담소)였는데, 한 영페미니스트는 1997년 끼리끼리의 한국여성단체연합 가입 시도가 좌절된 사례를 들면서, 여성주의 운동 내에서 동성애 문제를 "(전체 여성주의)운동을 깎아먹는다"고 본 올드페미니스트들의 반응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페미니즘 운동의 시야가 이성애자 여성, 나아가 생물학적 여성으로 국한될 수 없다는 의식이 차츰 확산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젠더프리 : 제가 보기에는 가족, 결혼 이런 것에 대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학적인 생각이랑 실제 생활에서 부딪히는 갈등을 푸는 방법은 너무 달라요. [...] 이미 그 사람들은 해버렸다고, 결혼을. 그러면 여성주의적인 가족을 만들기보다는, 자기의 활동은 외부문제이고 가정과 가족이라는 건 또 다른 제2의 테두리로 남겨두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자기 변명을 나름대로 하죠. [...] 그분이 하는 얘기는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에 페미니스트들에게 너무 일이 많다는 거야. [...] 그냥 페미니스트 다 떠나서 나이든 직업운동가의 모습으로 느끼는 거죠.
 

- 송란희, 「특집 | 선배노릇 후배노릇 : 영과 올드, 그 다른 경험은 만날 것인가 - 영페미니스트들의 어퍼컷」, 『페미니스트 저널 if』 25, 2003.6.2., 91쪽.

 

 

 

김신현경 : [...] 두 번째는 이프에서 여성의 성과 욕망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프는 '여성 자신의 성과 욕망'을 문제화하는 데 있어서 앞에 말한 30대 기혼 중심성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성애 중심성을 확연히 드러냅니다. 오르가슴, 간통, 사랑에 관한 특집들은 모두 '평등한 이성애 관계'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이 이성애 중심성이 이프가 남성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있다고 봅니다.
 

- 황오금희, 「창간5주년기념토론회 | 통념을 뒤집는 배짱이 필요하다 - 지나온 이프, 앞으로의 이프」, 『페미니스트 저널 if』 22, 2002.9., 261쪽.

 

 

 

한국여성재단은 동정심을 자극하는 자선유도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모여서 1999년 12월 만들어졌다. [...] 아쉬운 점은, 소외계층여성들의 범위가 현재까지 저소득 모자가정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그 범주를 성적소수자와 장애여성, 10대 여성 등으로 확대하고, 여성이 겪는 차별과 편견의 구조와 문화를 바꾸는 활동에 대한 지원과 병행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 권김현영, 「특집 | 세상의 돈 여자만의 돈 : 여자, 여성을 위해 쏘자! - 여성을 위한 기부문화를 꿈꾸며」, 『페미니스트 저널 if』 16, 2001.3., 94-95쪽.

 

 

 

젠더프리 : [...] 모 여성단체에 가입하려는 끼리끼리를 반대했을 때(1997년 한국여성단체연합 가입 시도, 좌절-인용자 주), 그때도 회의가 생겼었죠. 그 선생님은, 영페미니스트들이 우리를 욕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너네 때 고민 안 해 본 거 아니다, 치열하게 고민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운동을 깎아먹는 성과가 있고 운동의 질을 높이는 성과가 있는데 너네는 무모하게 구분을 하지 못한다, 그러시더라구요. 3.8여성대회 때 끼리끼리에서 그 여성단체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리니까 선생님들은 정말 재밌다고,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고 반응하시더라구요. [...]

 

- 송란희, 「특집 | 선배노릇 후배노릇 : 영과 올드, 그 다른 경험은 만날 것인가 - 영페미니스트들의 어퍼컷」, 『페미니스트 저널 if』 25, 2003.6.2., 91쪽.

 

 

 

권혁란 : 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이프는 창간 6주년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이성애중심적이라는 비판이 가장 많았어요. 이프가 결혼과 남편, 즉 관계의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늘 남자와의 관계에서 징징거리고 있는 결혼한 여자들의 입장에서 불평등을 이야기한다는 비판이 있었지요. 그리고 계급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이야기들도 많았고. 
 

- 정박미경, 「특집 | 선배노릇 후배노릇 : "연대의 감성은 여성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지" - 페미니스트 고조할머니 이이효재 선생님을 만나다, 」, 『페미니스트 저널 if』 25, 2003.6.2.,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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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 : 그럼 애매모호맨을 뽑아요. [...] 좋은 남자와 나쁜 남자의 경계선상에 있는 남자, 남자와 여자의 경계선에서 남녀의 성구분을 흐리게 하는 자들로. 누구 또 없나?
경라 : 가수 이광조.
모두 : 아우-.
오윤 : 앙드레 김.
모두 : 와하-.
김나 : 좋다. 경계선에 선 사람들. 좋은 나란지, 나쁜 나란지 애매모호한...
영이 : 그럼 굳맨(good man), 배드맨(bad man), 애매모호맨?
김나 : 재밌다.

 

- 「특집 | 남자 BEST WORST : "아우, 야하면서도 매력적이면서도 지적이면서도 뭐 좀 그런 남자 없나?" - if 수다방이 뽑은 최고의 남자, 최악의 남자」, 『페미니스트 저널 if』 5, 1998.6.5., 114-115쪽.

 

 

 

 

 

2. 『페미니스트 저널 if』가 다룬 성소수자

 


1) 초창기의 재현 방식 : 은유로서의 성소수자

 

 

이 장에서는 『이프』에서 다뤄졌던 성소수자와 성소수자인권운동의 사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프』가 취한 성별 재현 전략 중 하나는,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남성상/여성상이 아닌 남성/여성의 예를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전형적인 남성상/여성상에 남성 우위의 코드, 즉 남자는 와일드하고 여자는 순종적이며, 남자는 적극적이고 여자는 수동적인 등의 요소가 많이 묻어있었기 때문인데, 이러한 성 재현은 『이프』가 집요하게 싫어했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소 여성적인 남성과, 남성적인 여성의 존재가 기사화되게 되고, 그 중에 실제 성소수자들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재현되게 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여성주의적 모토가 강조되다 보니, 성소수자의 실제 모습보다는 그들이 가지는 '젠더 교란'의 의미가 더 앞세워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문제의식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커밍아웃 등 가시화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에 있었던 성소수자들이 사회 속에서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는 비단 여성주의적 문제틀로'만' 접근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남성중심의 사회 외에도 '이성애중심성'이 함께 부각될 필요가 있었으며, 이를 통해 성소수자가 가지는 위치성이 더욱 입체적으로 부각되고, 나아가 성소수자들이 엄연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지되고 가시화되는 것을 바탕으로 그들을 위한 운동 전략이 구성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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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스트가 아닌 레즈비언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페미니스트인가 레즈비언인가 : 동성애 전문지 버디로 오십시오! BUDDY」, 『페미니스트 저널 if』 9, 1999.6.5., 195쪽.)

 

 

 

 

- 그럼 남녀관계와 뭐가 다르죠? 난 동성애는 이성애보다 나간, 좀더 성숙한 관계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는데 그래야 한다는 당위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레즈비언 관계가 이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소위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사람들의 도그마라고 생각해요. (상기되어) 두 사람의 관계는 각각 다양할 수 있는데 왜 자기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예요?"

 

- 굉장히 방어적인데 왜 그러죠?
"레즈비언 관계는 '이래야 한다'라고 규정해 버리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은 인정하지 않게 되잖아요. 그러잖아도 사회적으로 설 자리가 없는데 또 내쳐지는 기분을 이해하실는지요?"

 

- 김혜련, 「김혜련의 섹스토피아 | 세월이 흐른 만큼 깊어지는 관계라니... - 레즈비언의 사랑 : 이미나 인터뷰」, 『페미니스트 저널 if』 19, 2001.12., 184쪽.

 

 

 

나는 내가 레즈비언이란 것이 행복하다. 나의 여성성을 정말로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그녀가 있기에. 지금은 남성이라는 생물체들보단 이성애주의라는 커다란 편견덩어리들과 먼저 싸워야 한다. 이런 면에서 곧잘 일부의 여성들이 적군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우리의 아군이 되어주리라 굳게 믿는다.

 

- 한채윤, 「이럴땐 이렇게 | 겨우 그 정도밖에 못 하니? - 음란전화 대처법」, 『페미니스트 저널 if』 9, 1999.6.5., 231쪽.

 

 


 

특히 속칭 '빻은' 마초 남성을 공격함에 있어, 그를 "성전환"시켜 "성희롱"을 당하게끔 하고 싶다는 발언은, 어떤 사람에겐 삶의 핵심이 될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한낱 은유로 소비하는 태도에 다름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성소수자를 성별 표현과 교란의 은유로 사용한 것은,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입장에서 초창기 『이프』가 드러내었던 중대한 실책이라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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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숙렬, 「특집 |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 : 작품분석 - 예술과 폭력 사이에서 꽃피는 남근의 명상」, 『페미니스트 저널 IF』 1, 1997.5.29., 43쪽.

 

 

 

[...] (또한)그가 우희정과 권인숙을 비난하는 근거는 성희롱이 입증 불가능한 범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여성이 당하는 성희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모른다.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는 무지한 가해자들을 교육시킬 의무까지는 못 느낀다. 다만 반드시 김완섭을 성전환수술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또다시 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창녀가 되어 사랑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강제로 '다리를 벌려주고' 돈을 벌어보고 또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되어 온갖 종류의 성희롱을 당해본다면 틀림없이 테러리스트라도 될테니까. 여성운동가들에게 수술비 모금이라도 해볼까?
 

- 유숙렬, 「특집 |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 : 작품분석 - 예술과 폭력 사이에서 꽃피는 남근의 명상」, 『페미니스트 저널 IF』 1, 1997.5.29., 43-44쪽.

 

 

 

저는 비록 돈없고 빽없고 힘없지만, 김완섭 수술비모금활동에는 꼭 참여할 작정입니다. 뼈저린 후회가 뭔지 뼈저리게 느끼도록!!!  (대전광역시 유성구 궁동 우안녕)
 

- 「if에게」, 『페미니스트 저널 if』 2, 1997.9.1., 268쪽.

 

 

 

<레즈비언 성 전쟁>의 저자이며,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는 젊은 동성애자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알버트 케네디 위탁소에서 일했던 엠마 힐리는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가 다른 세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동성애자인 그녀는 "나의 부모들은 나의 성정체성을 불행과 고통, 그리고 실패한 삶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 그들 시대에는 그랬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실제로 당신이 레즈비언이면서도 이성적이고, 분별있고, 지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 이제진, 「세계의 여성들 journey : 미국 여성들의 삶 엿보기 :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부모에게 알릴 것인가?」, 『페미니스트 저널 if』 1, 1997.5.29., 190쪽. 

 

 

 

 

결국 초창기 『이프』에게 성소수자의 존재는 다소 낯설고 당혹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가령 외신 기사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외국 레즈비언 저자의 글 가운데 유독 "(레즈비언의)부모"가 성소수자에 대한 체감의 수준이 현저히 "다른" 세대"임을 인정해야 하고, 따라서 "부모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라는 부분을 발췌하여 실은 것은, 당시 『이프』의 편집위원들이 동성애 문제에 대해 느꼈던 감정이 우회적으로 표현된 결과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다 점차 『이프』에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낸 골딘(Nan Goldin), 바바라 해머(Barbara Hammer) 등, 외국의 성소수자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소개가 꾸준히 이어지고, 인도의 '히즈라' 등 외국의 '제3의 성'에 대한 발굴과 분석이 행해지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당혹감이 차차 걷혀졌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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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메이플소프, 켄 무디, 1984.

(「female gaze : 로버트 메이플소프」, 『페미니스트 저널 if』 5, 1998.6.5., 12쪽.)

 

 

 

성의 이분법적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은 메이플소프의 주요 언술이다. 그에게 여성다움, 남성다움의 정체성을 서로 겹쳐지게 하는 것은 미학적 선택이기보다 그의 생 자체에 대한 선택이다. 그것은 에이즈에 대한 공포, 동성애에 대한 금기, 신체에 대한 두려움을 정면으로 받아쳐낸 그의 생애가 주는 충격이자 감동이다. 실제로 문제는 흔히 말하듯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애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그리고 거부되고 금기시되는 것에 대한 무지나 회피, 그리고 이에 따른 심리적 기제가 공포의 중심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 동성애 공포증은 우리들 자신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동성애 공포증은 동성애자에 대한 단순한 혐오나 적대가 아니다. 오히려 두려운 것은 동성애적인 사회적 관계나 심리적 유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인 것이다. 게다가 아직도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를 특정한 성행위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엉덩이와 항문에 집중하는 육체적인 상상에 기반하여 오로지 동성애를 성애화하며, 이에 따라 결국 동성애를 삶의 제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동성애자를 파악할 때 항문이 눈이며 입이고, 엉덩이는 머리인 것으로 추측한다. 이들이 신체의 금기된 기관, 다시 말해 구토와 불결함을 의미하는 배설기관을 성관계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뭇사람들이 자신의 내부에 있는, 그리고 자신이 연루되어 있는 사회적 관계의 성분별에 대한 복종과 예속을 벗어날 수 없다는 데 있다.

 

- 박신의, 「집중탐색 | 성의 이분법, 그 경계선을 허물다 - 육체의 고정관념과 싸우다 전사한 남성사진작가 메이플 소프」, 『페미니스트 저널 if』 5, 1998.6.5.,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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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낸 골딘, 택시 안의 미스티와 지미 폴랫트, 1991.

(제미란, 「제미란의 여성미술가기행 | I'll be your mirror! -  사진작가 낸 골딘」, 『페미니스트 저널 if』 20, 2002.3.4.,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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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낸 골딘, 정사중의 스킨헤드, 1978. 

(제미란, 「제미란의 여성미술가기행 | I'll be your mirror! -  사진작가 낸 골딘」, 『페미니스트 저널 if』 20, 2002.3.4., 184쪽.)

 

 

 

그의 친구들은, 카메라 앞에서 모든 경계를 푼다.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순간, 땀나는 정사와 내밀한 자위와 걷잡을 수 없는 비판의 순간조차 스스로를 드러내 보인다. 
"내 단 하나의 바람은 그들이 그들인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3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그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상처받기 쉬운 유약함이 내가 사진을 찍도록 하는 힘이었다." [...] 
그는 1973년 드랙퀸을 주제로 했던 첫 번째 전시 이후로 줄곧, 남성과 여성의 젠더에 관해 작업을 해오고 있다. 두 성 사이의 경계와 분리, 몰이해와 분쟁을 경험한 뒤 그는 성의 경계를 허물고 나온 자들의 자유를 보았다고 말한다. [...] 성을 가로지르느라 과장된 그들의 화장과 터지고 흘러내린 존재방식 속에서도, 낸의 카메라가 공유하고 있는 신뢰와 연대가 아니라면 건져낼 수 없는 시선의 깊이, 누군가 이 사진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정치성을 발견한다면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 

 

- 제미란, 「제미란의 여성미술가기행 | I'll be your mirror! -  사진작가 낸 골딘」, 『페미니스트 저널 if』 20, 2002.3.4.,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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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실, 「인터뷰 : 레즈비언의 허스토리를 만드는 바바라 해머」, 『페미니스트 저널 if』 17, 2001.6.11., 48쪽.

 

 

 

 

Q :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질산염 키스>를 보지는 못했다. [...] 처음에 나오는, 나이 든 할머니 레즈비언 여성들의 성행위가 여대생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면서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정체화하던 여대생들이, 레즈비언이 그렇게 이해된다면 커밍아웃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을 들었다. 
A : [...] <질산염 키스>에서 나는 1930년대 말의 게이 레즈비언 커뮤니티를 다루고 또 성애적이라는 맥락에서 늙은 레즈비언이 얼마나 성적인가를 보여준 것이다. 늙은 레즈비언들의 섹슈얼리티가 흑백화면에 아주 섬세하게 묘사되는 것 그리고 잃어버린 혹은 은폐된 퀴어 역사에 대한 재현 자체가 관객에게 도전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Q : 바로 여기에서 한국 관객들이 당황한 것이다. 레즈비언을 인정하지만 그들의 성은 사적인 곳에 가둬두라는 정서였다고 본다.
A : 나는 이런 것에 정말 분노하고 주목해왔다. 바로 이것이 이성애의 특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 레즈비언들은 자신들의 섹슈얼리티를 숨길 필요가 없다. 이성애자들도 자신의 성을 숨기고, 모두가 자신의 성을 숨겨야만 한다면 레즈비언의 성을 숨기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레즈비언의 성만을 숨기는 것이라면 그것은 억압이다. [...] 나는 성적인 여자다. 왜 내가 아닌 어떤 것인 척해야 하는가?

 

- 김은실, 「인터뷰 : 레즈비언의 허스토리를 만드는 바바라 해머」, 『페미니스트 저널 if』 17, 2001.6.11., 53-55.

 

 

 

 

 

2)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길항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내에 성소수자의 존재를 각인시켰던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2000년 연예인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과, MTF 트랜스젠더 하리수 씨의 2001년 가수 데뷔가 될 것입니다. 『이프』에서도 이 두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다뤘는데, 먼저 하리수 씨와 트랜스젠더의 경우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ㄱ. 트랜스젠더 인권운동

 

먼저 『이프』에서 주목했던 여성상이 전형적으로 여성스럽지 않은 여성이었다는 점은 앞에서 본 바 있습니다. 헌데 『이프』가 트랜스젠더 하리수 씨를 인터뷰하면서 당혹스러워헀던 건, 그녀가 지나칠 정도로 전형적인 여성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프』는 18호의 특집으로 트랜스젠더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는데, 특집 중 한 웹툰에서 재현된 트랜스젠더의 이미지는, 당시 여성운동이 MTF 트랜스젠더 여성 중 어떤 면모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짐작하게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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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프』가 앞서 재현하고자 했던 MTF 트랜스젠더, 혹은 여성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만화입니다.

(「특집 | 트랜스젠더 : 난나의 if세상」, 『페미니스트 저널 if』 18, 2001.9., 163쪽.)

 

 

 

- 트랜스젠더로서 사명감을 느낀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요. 어떤 사명감인가요?
: 트랜스젠더들이 주로 음지에서 활동하잖아요. 그런 친구들에게 저는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사회편견의 벽에 맞서 당당하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저를 통해서 다른 트랜스젠더들이 원하는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래요. 제가 그들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하리수는 핫이슈(hot issue)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하리수는 지금 그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 황오금희, 「특집 | 트랜스젠더 : 집중분석, 하리수는 좋지만, 트랜스젠더는 싫다? - '핫이슈', 그리고 그 '절반의 꿈'」, 『페미니스트 저널 if』 18, 2001.9., 127쪽.

 

 

 

기획사 여러분, 하리수는 이미 지나치게 여자답습니다. 사실 요즘 여자들은 그렇게까지 여자답지 않습니다.
 

- 가무부인, 「IF&TOUGH | 하리수 기획사에 드리는 고언」, 『페미니스트 저널 if』 19, 2001.12. 40쪽.

 

 


하지만 이러한 MTF 트랜스젠더의 과잉 여성성에 대해서, 그들의 양극화된 성별 표현에 선행하여 사회가 성별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이미' 양극화되어 있기에, 더욱이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어려운 트랜스젠더들이 더욱 "오버하여" 성별 표현을 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주목됩니다. 더불어 전형적인 여성을 체현한 것 같지만 실은 이성애규범성의 곤경을 겪는 셈인, 이들 바이너리 MTF 트랜스젠더 여성 또한 '여성'이라는 환기도 있게 됩니다. 여성을 성염색체나 생식기의 유무로 판별할 수는 없으며, 이들의 존재 또한 '여성'이기에 여성운동의 시야에 들어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입니다. 

 

나아가 『이프』는 차츰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에서 핵심이 되었던 성별정정의 문제를 "섹슈얼리티 법률학"이라는 코너를 통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이들의 존엄에 대한 법제도적 장벽에 대해 언급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2002년 부산지방법원에서 성염색체 대신 외성기 수술 유무를 기준으로 하여 성별 정정을 인정한 판례(부산지방법원 2002.7.4. 선고2001호파997,998)에 주목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의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이 높은 비용과 신체적 위험을 감수하는 성전환수술 없이도 성별정정이 가능하게끔 싸우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20년간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이 많은 굴곡과 변화를 거쳐왔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트랜스젠더를 만나보면 여성성 혹은 남성성이 너무 과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고루 갖춘 사람이 인간적인 면에서나 직업적인 면에서도 더 경쟁력이 있다. 이에 비춰 보면 오히려 트랜스젠더들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한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때문에 트랜스젠더 운동과 여성운동이 연대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 애매모호함을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이미지 조작이라고 할 수 있다. B씨는 "수술을 못할 처지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자신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보여주겠어요.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라도 솔직히 오버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트랜스젠더들은 정확히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잣대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것이다. 자신은 분명한 여성 혹은 남성인데 외모만으로는 자신을 드러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수술을 하거나 완벽하게 자신을 숨기고 있는 경우에도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까봐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남성성 혹은 여성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여성과 남성의 좋지 않은 성향까지 답습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 김보미, 「특집 | 트랜스젠더 : "트랜스젠더에 관한 몇 가지 오해들"」, 『페미니스트 저널 if』 18, 2001.9., 143쪽.

 

 

 

만약 당신이 여성이라면 무엇으로 여성임을 확신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유방, 자궁, 페니스... 이런 것들이 한 사람의 성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는가. 신체적인 조건들은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얼마든지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유방암으로 유방이 없어진다고 여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듯이. 또한 호르몬주사쯤으로 가슴이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혹자는 '임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여성이라고 말하며 그런 의미에서 트랜스젠더는 결코 여성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정의에 찬성하는가? 그렇다면 여성은 애 낳는 기계인가?
 

- 한채윤, 「특집 : 남녀의 경계선이 무너진다 :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입니까" - 제3의 성, 동성애자 & 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 저널 if』 10, 1999.9.5.,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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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스트 저널 if』 5, 1998.6.5. 표지.

 

 

 

ㄴ. 동성애자 인권운동

 

다음으로는 동성애자의 사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프』의 표지모델로 남성 동성애자가 등장한 적은 총 두 번인데, 5호(1998.6.5)의 최형준 씨가 누드 촬영을 해주셨고, 10호(1999.9.5)에는 이정우 씨가 드랙 화장을 한 모습이 실렸습니다. 이 두 분은 모두 당시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이후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상했는데, 커밍아웃 이전에도 홍석천 씨는 어딘가 여성스런 남성 캐릭터를 연기했고, 스스로도 여성성을 표현하는 데에 "해방감"을 느낀다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헌데 커밍아웃 후, 그는 한동안 연기자나 연예인으로 섭외되지 못했습니다. 나아가 새천년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고자 홍석천 씨를 참고인으로 출석시키려 했으나, "국회의 품위가 손상"되고 "동성애자는 정신과 치료" 대상이므로 불구하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면에서, 시스젠더가 아닌 성별정체성의 문제와 더불어, 동성애자의 비규범적 성별 표현이 어떻게 대우되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쉽게 말해 홍석천 씨는 당시에 '전형적인 남성상'으로 보여지지 않았던 셈입니다. 『이프』에는 이에 대해 홍석천 씨 스스로 심경을 토로한 글이 실려 주목됩니다. 

 

 

 

"당신들 마음속의 여성을 찾으세요" : <남자셋, 여자셋>의 홍석천
- 남자답다거나 터프하다는 소리 듣고 싶지는 않은지.
왜요? 듣고 싶죠. 좀더 다양한 역할을 통해 변화할 생각도 있구요. 하지만 지금은 제 역할을 사랑해요. 눌러왔던 제 반쪽을 남김없이 보여도 된다는데 얼마나 행복해요? 숨겨왔던 여성성을 표현했을 때의 그 해방감이라는 건... 아마 느껴보지 못한 분들은 모를 걸요? 그 편안함과 짜릿함을 전 사랑해요.

 

- 박선민, 「특집 : 남녀의 경계선이 무너진다 : "나의 무기는 양성성" - 홍석천, 이정섭, 추자현, 이광조가 말하는 '나만의 인기비결'」, 『페미니스트 저널 if』 10, 1999.9.5., 67-68쪽.

 

 

 

11월 3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장에선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홍석천 씨를 참고인으로 출석시키려 했다가 국감 직전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된 것이다. 
유명 연예인으로서 커밍아웃을 한 후에 갖은 고초를 겪었을 홍씨가 이번 일로 또다시 상처를 입은 셈인데, 그 반대 사유란 것이 '국회의 품위가 손상될 우려가 있다', '동성애자는 정신과 치료 대상인데, 국회 출석은 말도 안된다' 등이라고 한다.

 

- 김정민, 「IF&TOUGH : 홍석천을 거부한 의원님들께」, 『페미니스트 저널 if』 15, 2000.12.5., 32쪽.

 

 

 

우리나라 최고의 신문이라 자부하는 일간지 기자에게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다. [...] "항간에 사람들의 얘기로는 홍석천은 커밍아웃을 해놓고도 못생겨서 방송에서 쫓겨나고 하리수는 예뻐서 이것저것 다 하면서 주목받고 인기 얻고 돈도 번다고들 얘기하는데 거기에 대한 홍석천씨 생각은 어떠신지요?" 그래, 결국 그거구나. 그게 듣고 싶은 거구나. [...]

 

커밍아웃한 후에 별 희한한 일들을 다 겪은 나이기에 그 정도로는 눈물짓지 못한다. 많은 분들이 내게 궁금해한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 편견은 홍석천이 다 깨놓고 하리수가 그 모든 이익을 다 챙겨간다고. 그 기분이 더럽지 않냐고.. 솔직히 말해서 더럽지 않다. 다만 많이 부러울 뿐이다. 난 내가 게이라고 해서 내 삶의 터전인 직장에서 내몰림을 당하고 손가락질 받았는데, 하리수는 오히려 소화해 내기 벅찰 정도의 일거리를 가질 수 있으니 그것이 부러운 것이다. 하리수가 예뻐서 부러운 게 아니니 제발 하리수처럼 수술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느냐는 얼토당토 않은 질문 좀 그만 했으면 한다. 난 여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 나와 하리수, 즉 게이와 트랜스젠더의 개념도 모르면서 자꾸 비교하는 건 별로 달갑지 않다. 더 알아보고 물어오라. [...] 

 

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녀'라 부르고 싶다. 그래야만 '그녀'가 진정 행복해하리라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선 어느 누구의 말도 필요없이 본인이 싸워나가야 할 것이다. 주민등록번호 1자에서 2자로의 변화는 '그녀'가 이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완전한 여성'으로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럴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싸워야만 할 것이다. '그녀'를 희망으로 안고 사는 적지 않은 숫자의 또 다른 하리수들이 이 땅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자의든 타의든 이 땅의 동성애자의 대표얼굴 격이 되어버렸다. [...] 오는 9월 말에 처음으로 동성애 인권퍼레이드가 홍대 근처에서 열릴 예정이란다. 난 이미 참가 허락을 했는데 내 옆에 너무 예쁜 여자 하리수가 나란히 서 있으면 어떨까 싶다. [...] 아무튼 많은 분들께 부탁하고픈 것은 '홍석천'이나 '하리수'를 얘기할 때 얼굴 얘기보다는 그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품성은 어떤지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

 

- 홍석천, 「특집 | 트랜스젠더 : "정말 나, 기분 더럽지 않다니깐요!" - 하리수에게 보내는 '게이' 홍석천의 심경고백」, 『페미니스트 저널 if』 18, 2001.9., 135-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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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 IF | 머셔? 이프가 '완간'을?」, 『페미니스트 저널 if』 36, 2006.3., 97쪽.

 

 

 


한편 레즈비언의 경우, 자신이 동성애자이자 여성임을 새삼스레 깨닫는 과정에서 성소수자인권운동과 페미니즘을 자신의 몸을 통해 소화하는 레즈비언, 즉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흥미로운 것은, 모성과 모녀지간의 서사가 많이 다루어졌던 『이프』에서, 한 모녀와 그 딸의 레즈비언 파트너가 한 집에서 사는 사례 또한 다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이는 기존의 여성운동과 성소수자인권운동의 의제가, 삶 가운데 어떻게 서로 만나고 화합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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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박선영, 「新모녀지간 : 세 여자가 서로 뽀뽀하며 사는 이유 - 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성애커플」, 『페미니스트 저널 if』 22, 2002.9., 94쪽.

 

 

 

끼리끼리에서 내 삶이 '사회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이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삶이 달라졌어요. '내 감정도 정당하다, 내가 특별하고 이상한 변태적 존재가 아니다, 나도 정상이다!'는 자기 긍정을 하게 됐죠. 그건 일종의 대변혁 같은 거였어요. 페미니즘 역시 날 설명하게 도와줬어요. 내가 여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어요. 서른이 넘도록 난 내가 '하나의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운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컸죠.
그런데 애인이 '네가 남자가 아니라서 헤어진다'고 했을 때 비로소 내가 여자라는 의미가 뭔지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 김혜련, 「김혜련의 섹스토피아 | 세월이 흐른 만큼 깊어지는 관계라니... - 레즈비언의 사랑 : 이미나 인터뷰」, 『페미니스트 저널 if』 19, 2001.12., 186-187쪽.

 

 

 

그들 세 명에 대해 처음 전해들은 바는 이렇다. 
둘은 레즈비언 커플이고,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나머지 하나는 레즈비언 커플 중 한 사람의 어머니, 어머니는 딸의 동성애를 인정. 이 셋이 현재 둘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아주 재미나게 살고 있다나?

대체 어떻게 살길래, 어떤 엄마이길래 그렇게 튀게 잘, 심지어 재밌게 산다는 걸까? 궁금증이 밀려왔다. 그야말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마구 자극할 선정적인 모녀를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선정적, 호기심이라는 단어는 이들 모녀를 섭외하면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우린 별로 할 얘기 없어요. 정말로 그냥 평범하게 사는데..." 사람들의 편견을 거뜬히 이겨낼 것 같은 씩씩하다거나 거침없는 말투라기보다는 지극히 사회적인 매너를 갖춘 설득력 있는 어조의 '평범하다'는 말에는 신뢰가 묻어났다. [...]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은 모습으로 살면 '튄다' 하고 그렇게 튀는 사람들은 삶의 모습 하나하나가 남들과 다르고 곡절이 있어야 한다는 건 어찌 보면 오래된 편견이다. 사회가 인정하는 모습으로 살지 않으면 꼭 불행의 쓴맛을 모두 본 다음에 겨우겨우 행복해지더라는... [...]

 

이주경 : 우리 둘이 있고 싶다 그러면 엄마가 비켜주시잖아요. 일부러 "소리 들려도 이해하세요." 그러면 "소리 안들린다~." 그러기도 하시고, 하하. 그래주시니까 되게 편해요.

한미진 : 언니가 농담으로 "우리 둘이 섹스할 거니까 지금 방에서 나가시면 들어오시지 마세요." 그러면 "알았다 고마." 그러세요. 


- 조박선영, 「新모녀지간 : 세 여자가 서로 뽀뽀하며 사는 이유 - 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성애커플」, 『페미니스트 저널 if』 22, 2002.9., 95-97쪽.

 

 

 

 

끝으로 남성동성애자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HIV/AIDS의 문제에 있어, 2004년에는 그것이 드디어 여성 동성애자에까지 옮아갔다는 식의 기사가 한겨레 안종주 기자에 의해 공표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HIV감염인을위한모임 러브포원 등의 단체는 성명을 발표하고, 한겨레 사옥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는데, 『이프』 또한 이 이슈에 대해 한겨레의 보도를 비판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언론의 동성애 혐오적인 기사와 보도에 대해서도 『이프』는 일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성운동의 시야에서 성소수자의 존재와 삶이 차츰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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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채윤, 「채윤이의 달나라 통신 | 에이즈에 관한 몇 가지 추억과 진실」, 『페미니스트 저널 if』 28, 2004.3.2., 246쪽.

 

 

 

한겨레의 안모 기자가 지난 1월 8일 특종을 터트렸다. 여성 동성애자의 HIV 감염이 한국 최초로 보고되었다며 일부분을 조사할 결과이니 더 있을지도 모를뿐더러, 여성 감염인들이 다양한 동성과 잦은 성관계를 갖는다고 하니 참으로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 때문에 HIV 감염인 단체와 동성애자 인권단체는 성명서도 발표하고 한겨레 사옥 앞에서 항의집회까지 했다. 그래도 한겨레와 안모 기자는 절대로 사과할 수 없다고 했다. 안기자는 자신이야말로 인권 보호를 위해 기사를 썼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기사로 여성 동성애자들이 경각심을 갖게 되어 예방에 신경쓰게 된다면 한 사람이라도 감염을 막게 되는 것이니 의미가 있다는 논리였다. 참 위험한 사람이다. 한 사람 살리려고 만 명을 죽여놓고도 한 사람 살렸으니 스스로 의인이라 칭할 사람이다. 


- 한채윤, 「채윤이의 달나라 통신 | 에이즈에 관한 몇 가지 추억과 진실」, 『페미니스트 저널 if』 28, 2004.3.2., 246

 

 

 

언론이 동성애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언론의 관점은 지극히 '일반적'인, 그러니까 이성애가 아닌 다른 형태의 성애는 도무지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언론의 동성애 혐오라고 하는데, 그 증상은 '동성연애' 따위의 표현을 쓰면서 말 그대로 동성애를 혐오하는 저급한 수준부터, 동성애의 원인과 특징을 규명하고자 하는 각종 사회학적·과학적 연구(동성애자의 원인과 특징을 묻는 물음은 '이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에 그 물음 자체가 이성애 중심적 사고방식을 드러내고 있다)와 같은 고급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하다.

 

- 송민성, 「이프 Radar | MBC <뉴스투데이> 이반 관련 허위 보도 : 언론의 호모포비아를 고발한다」, 『페미니스트 저널 if』 34, 2005.8.25., 30쪽.

 

 

 

 

 

 


3. '페미니즘과 성소수자'라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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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주영, 「특별인터뷰 | 유쾌, 명쾌, 상쾌한 페미니스트, 우에노 치즈코를 만나다」, 『페미니스트 저널 if』 31, 2004.11.25., 28쪽.

                                                 

 

 

남성의 언어로 여성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정하는 데에서 여성운동이 시작됐어요. 마찬가지로 누가 누구를 대신해 발언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같은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해요.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문제와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다른 소수자 운동의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안에서 존재하는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나'로부터 고령자 운동이 시작되고, 레즈비언 운동이 시작되었죠.
 

- 고주영, 「특별인터뷰 | 유쾌, 명쾌, 상쾌한 페미니스트, 우에노 치즈코를 만나다」, 『페미니스트 저널 if』 31, 2004.11.25., 31쪽.

 

 

 

여성을 차별화하는 메커니즘은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트랜스젠더, 게이, 레즈비언과 같은 성적 소수자들에게도 적용된다. [...] 젠더규범의 해체는 여성과 성적 소수자들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억압적 관습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다. [...] 규범은 자유와 창조적인 자아실현을 규제하는 폭력적인 권력기제이다. 규범을 벗어나서 비정상으로 낙인찍히게 되면 인권이 유린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사회적 존재가 말살당한다. [...] 남성은 일등 시민, 여성은 이등 시민으로 만들고, 트랜스젠더나 성전환자, 레즈비언, 게이에게는 아예 시민권을 주지 않는 현재의 주민등록제도를 유효하다고 인정하는 헌법은 도대체 어떤 나라의 법인가?
 

- 노승희, 「특집 | 트랜스젠더 : 젠더가 트러블메이커가 된 까닭은?」, 『페미니스트 저널 if』 18, 2001.9.,  153-155.

 

 

 


일본의 저명한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의 말대로, 페미니즘 운동은 성소수자인권운동의 중요한 참조점이자 반면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젠더/섹슈얼리티에 대한 제도적·문화적 억압을 겪었고, 그에 맞선 '인간해방'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두 운동은 많이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그러한 화합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각 운동의 당사자들이 서로를 실체로서 확인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잡는 과정이 필요했던 셈입니다. 

 

페미니즘이 여성만의 것이 아니듯, 게이를 비롯한 성소수자들 또한, 이성애자 여성이 겪었던 것과 같거나 다른 방식으로 저마다의 '여성성'을 자신의 삶 속에서 느끼고 수행해왔음을 앞에서 보았습니다. 이렇게 여성주의운동과 성소수자인권운동이 만나는 지점에서, '여성성', 혹은 '여성주의'는 매번 그 의미가 새로이 구성되었던 셈입니다. 정체성이 정체성과 마주할 때 서로 영향받고 변하는 일은 때론 고단하고, 때론 섭섭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많은 것들이 새로 거두어지는 기쁜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인권운동 또한, 그 당사자가 겪었던 경험과 부조리를 가슴 깊이 공감하고 함께 손잡아줄 시스젠더와 이성애자, 그리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우리 안의 또다른 소수자의 얼굴을 결국에는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지난 페미니즘 운동이 어떠한 영광과 곤혹을 지내왔고, 무엇을 성취하고 음미해왔는지 되돌아보는 일은, 낯설고 골치아플지언정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아니리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타인의 고통은 낯설고 어렵지만, 조금만 살을 맞대어보면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했던 내 고통 역시, 타인에게는 마찬가지로 낯설고 어려운 것이었음을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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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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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17-03-24 오후 19:06

10~20년 전 자료들을 더듬더듬 살펴가며 엿본 논쟁들, 참 유익하고 재미있네요.  덕분에 많이 배워갑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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