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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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대리는 티가나 #4 : 여자답게 퇴근하겠습니다.
"남자답게 퇴근하겠습니다."
한 달째 이어진 야근이 끝나 방심한 탓일까, 감춰왔던 속내를 들켜버렸다. 야근한 티도 내고, 어려운 시기를 씩씩하게 이겨냈다는 것을 생색내고 싶었는데 아뿔싸! 나도 모르게 가장 성차별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인 그것을 꺼내 들고 말았다, 그것도 여성후배 앞에서. 이윽고 이어진 여성후배의 일갈은 내 얼굴을 더 화끈거리게 하였다.
"그럼 전, 여자답게 퇴근하겠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 후배를 알뜰살뜰 챙기기 시작했다. 그날 일이 마음에 걸려서이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여성과 우호적인 관계를 망치지 않으려는 처세술이기도 했다. 우리 회사는 이성애자 기혼 남성 중심의 사고관이 확고하다. 회사 내의 승진과 고과는 `30대 초반에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화목한 가정을 이뤄서 그 덕에 회사 일도 잘하는` 남성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꾸려져 있고, 거기에서 여성은 `능력은 출중하나 끈기가 없어 가르쳐봐야 소용없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이 회사에서도 굳이 감추려 노력하지 않는 유리 천장을 보면서 분개했고, 소수의 여성임원이 그 천장을 뚫고 탄생하자 내 일인 듯 기뻐했다. 어떻게 보면 여성은 훗날 어떻게 될지 모르는 `또 다른 나`에 대한 보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도 요즘 유행하는 일종의 페미니스트이다, 밥그릇을 뺏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면접에서부터 그랬다. 지원자 중 나를 포함한 남성지원자만 뽑혔을 때, 여성지원자들이 했던 실수들을 나열하며 나는 안도했다. 입사 후에도 경쟁 상대로 지목된 `잘나가는 여성동지`가 갖가지 선입견들로 힘들어할 땐 모르는 척했고 심지어 "여성의 탈을 쓴 남성"이라며 스스로 위안 삼은 날도 있었다.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나는 이제껏 "귀한 아들"로 자라왔기에, 이 소황제가 얻는 권력이 얼마나 달콤한지 잘 안다. 커밍아웃했을 때 쏟아지는 차별보다도 더 두려운 건, 소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게이라는 것 이외에도 감춰야 할 표정들이 있다. 자신의 자리를 양보할 사람은 없기에 여러 가지 구호를 앞세워 세를 모으고 누군가와 연대하고 때로는 등을 지며 나에게 가장 유리한 셈법을 고안한다. 서로의 표정을 감출 시간 없이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정권 개혁과 성 소수자 인권 사이에서 자신의 이익을 계산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얼마나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갖췄는지, 그것을 얻기 위해 남들보다 얼마나 더 노력했는지는 사실 내 앞에 놓인 벽 앞에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야근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 시간에 국방부 앞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드는 것을 택했다. 나는 비열하다. 그것을 잘 알기에 조심하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