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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익선동과 젠트리피케이션’ #1] 도시에 대한 퀴어의 권리 - 뛰는 땅값과 상상된 전통 사이
2017-05-31 오후 16: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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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5월 

 

[커버스토리 ‘익선동과 젠트리피케이션’ #1]

도시에 대한 퀴어의 권리 - 뛰는 땅값과 상상된 전통 사이

 

 

 

 

 

"종로의 변화와 위기감"
 
지난 수 십년간 성소수자들이 일구어 낸 낙원동, 익선동, 돈의동 그리고 인사동 일부에 이르는 공간들. 우리는 애정을 담아 '종로'라 부른다. 많은 남성 성소수자들에게 있어 이 종로3가역 일대는 마음의 고향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종로가 변하고 있다. 지난 1월, 종로3가역 5번출구 근처에 있는 ㅌㅈ모텔의 공사장에서 있었던 붕괴사고는 그 상징적인 예일 것이다. ‘종로’를 상징하던 유서 깊은 숙박 업소가 철거되는 장면과, 철거 중의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는 복잡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예쁘게 차려입고 친구와 애인을 만나러 다니던 친숙한 길들에 낯선 이름들이 붙었다. 못보던 표지판이 세워졌으며 멀쩡한 보도블럭이 뒤집혔다. 주거지라 생각해 늦은 밤에는 예의상 가지 않았던 익선동 골목에는 하나같이 ‘힙’하고 낯선 가게들이 들어섰다. 동네에 발걸음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비성소수자 커플들이 눈에 ‘너무’ 잦아진 것인데, 이러한 마주침이 신경쓰이는 건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종로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가 집단적 불안과 위기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종로 일대의 변화가 동반한 위기감의 실체를 짧게나마 조망해보려 한다. 이 위기감은 한편으로는 어둡고 조용한 골목이었던 익선동의 변신으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선별과 배제에 기반한 서울시의 도시계획으로부터 나온다. 물론 변화는 늘상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2, 3년 새 종로3가에 일어난 변화는 우리에게는 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익선동, 젠트리피케이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이른바 ‘뜨는 동네'에 자본과 새로운 인구가 들어오면서 지가가 상승하고 상대적 저소득층과 원주민이 축출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익선동을 이러한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들이 있으나 관찰과 분석이 더 축적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가 제일 먼저 가시화된 곳은 익선동이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대부분이었던 낙원동과 익선동에 법인이 운영하는 힙한 가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 이래 이 지역에서 개업한 가게를 통틀어 ‘법인’은 이비스앰배서더에서 운영하는 식당과 프랜차이즈 카페의 직영점 정도로, 그 수가 적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이 동네에서 개업한 가게들 중에는 ‘주식회사 oo’와 같은 법인의 수가 늘었다. 이미 대중적으로 알려진 ‘주식회사 익선다다’, ‘주식회사 이태리총각’에서부터 ‘브랜드네트웍스(주)’, ‘금보개발 주식회사’, ‘(주) 창화당’, ‘유한회사 테이스티로드’, ‘(주)별천지에이’까지, 모두 2014년 1월에서 2017년 5월까지 이 지역에 가게를 낸 법인들이다(자료출처: 서울시정보소통광장). 
 

이들 법인이 선택한 입지를 살펴보면 5호선 종로3가역 출구 북쪽, 그러니까 오래도록 주거지로 이용되던 익선동 166번지 한옥 일대에 밀집해 있다. 도심부 한옥 밀집지의 가능성을 발견한 ‘주식회사’와 개인들이 앞다투어 이곳에 들어왔다. 익선동 ‘러쉬’로 인한 지역의 변화상은 <그림 1>의 2012-2016년 낙원동-익선동의 부동산 매매 추이에서도 알 수 있다. 근 5년 간 이 지역의 부동산 매매 횟수가 치솟았는데 특히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 지정이 해제된 2014년 이후 익선동의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진 것이 특징적이다. 그 와중에 2011년 한 해 동안 거래된 부동산의 제곱미터당 평균 가격은 798만원, 2016년에는 1,589만원을 기록했다(자료출처: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해마다 매매된 부동산 수와 입지가 달라 일반화가 어렵지만, 익선동에서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낙원동의 부동산도 익선동에 인접한 데서부터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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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 : 낙원동과 익선동의 부동산 매매 추이(2012~2016)

 

 

 

그림 1.의 거리들은 거리조성사업들이 진행 중이거나 예정되어 있는 곳들이다. 종로17길에는 일명“락희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르신 친화거리를 내세운 것이다. 돈화문로는 조선시대 경관을 따서 “전통문화체험거리”로, 삼일대로는 3.1운동 관련 공간으로 조성된다. 종묘 옆 서순라길은 “귀금속 특화 공예창작거리”로 포차가 많은 돈화문로11길은 "신흥문화 재창조 지역"(일명 버스킹거리)이 될 예정이다.

 

 


물론 익선동에 들어온 분들도 ‘공생’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이를테면 법인이 직접 한옥을 매입함으로써, 동네에서 고유한 장소성을 일궈낸 세입자들이 임대료 증가로 이 곳을 떠나는 일을 방지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가 됐건 젠트리피케이션을 문제라고 인지하고 있는 건물주가 공생 실험을 한다니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우리는 종로3가에서만큼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봄 직하다. 이에 대해서는 이 지역에 대한 서울시의 '재생계획'을 살펴본 후 생각해보도록 하자. 
 

 

"성소수자 역사는 지워진 서울시의 '역사인문재생계획'"
 
익선동의 변신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사실 성소수자들에게 있어 그 못지 않은 위기감이 서울시 도시재생계획에서 비롯되고 있다. 낙원동 일대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당시 도심재개발 사업지구로 지정되었고, 전면 철거 재개발 방식 때문에 당시부터 종로의 성소수자 공간에 대한 위기감이 표출된 바 있다
(행성인 장병권씨 기고를 참조 http://lgbtpride.tistory.com/69). 하지만 개발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충돌로 추진이 지지부진하며 개발은 10년 가까이 진행되지 않았고, 이 기간 동안 우리는 평종과 주종의 평화로운 사이클을 지켜낼 수 있었다. 결국 서울시는 난개발을 막고 보전할 것은 보전한다는 취지 아래 낙원동을 재개발 지역에서 해제시켰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위기는 재개발 대신 “재생”이란 이름으로, 종로에 다시 찾아왔다.

 

서울시는 낙원동 일대에 "역사인문재생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단계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70여 억원을 들인 이 사업이 '재생'하려는 역사와 전통은 상상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사업에 따르면 각 도로는 역사를 테마로 경관을 조성하고 스토리텔링을 가미하여 ‘역사적 콘텐츠와 분위기’를 부각시킨다. 이를테면 <그림 1>의 돈화문로는 왕이 행차했다고 해서 ‘왕의 길’이, 서순라길은 ‘귀금속 특화 공예창작거리’가 되며, 낙원상가를 이유로 포장마차 길(돈화문로11길)은 '버스킹이 열리는 음악거리’가 된다. 친숙하던 거리에는 이미  '송해길', '락희거리' 같은 이름이 붙었다. 행정편의적 도시계획과 장소마케팅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만,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곳에 수 십 년 동안 터전을 일구고 종로의 장소성을 형성한 주체인 성소수자 집단의 존재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의 역사를 살린다는 도시계획에서 성소수자의 도시사(史)는 통째로 삭제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 서울시의 ‘역사인문재생계획' 기자설명회 영상 보기 

 

● 서울시 낙원상가 일대 도시재생활성화지역 사업 자세히 보기 (낙원상가 일대 도시재생활성화지역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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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 : '락희 거리'의 도로공사 현장 (2017년 5월 11일)

 

 

낙원동을 중심으로 한 종로는 다양한 집단들의 결이 켜켜이 얽혀 만들어진 혼종성(hybridity)의 공간이다. 악기상가나 귀금속 상가의 상인들, 쪽방촌 주민들, 노년층, 외국인들, 그리고 성소수자. 종로는 이들 중 어느 특정 집단의 것도 아니며, 누구도 이 혼종의 공간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서울시의 도시계획은 공공의 입맛에 맞는 삶의 방식만을 지역 재생의 자산으로 선별해 세움으로써 나머지 존재들은 배제하고 있다. ‘사람중심 명품도시’ 종로구의 심장부에 내보이기 자랑스러운 것은 다소 과장스럽게 전시되는 와중에, 남 보기 민망한 것은 세심하게 짜여진 진열장 뒤로 숨겨진다. 지역성과 역사를 살린다는 도시계획 어디에도 성소수자 이야기는 없다. 우리들의 생활 터전 사방이 ‘재생’되고 있는데, 정작 성소수자 공간은 그 과정에 떨어져나가 마땅할 흉터 딱지가 되고 있다. 1980년대 올림픽 개최를 위해 보기 싫은 것들을 ‘도시 미화'라는 이름으로 감추고 내쫓았던 배제의 공간 정치를 지난 세기만의 일로 생각할 수 없는 까닭이다. ‘재생’ 사업을 통해 종로에 들어서게 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상상된 전통의 증강현실일 것이고,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지난 수십 년 간 이곳에 살아 숨쉬던 가장 한국적인 혼종성의 역사일 것이다. 

 


"종로의 가시화, 그리고 도시에 대한 퀴어의 권리!"

 

우리는 익선동의 화려한 변신과 서울시의 재생 계획으로부터 시작된 단상들을 종로의 ‘가시화’ 문제를 짚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비가시성’은 종로 성소수자 공간의 입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이들 공간이 위치한 종로3가 일대는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대로변에서 한꺼풀 들어간 골목에 밀집해 있고, 밤에는 공동화 현상으로 오가는 이가 줄어든다. 한마디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익선동이 일반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면서 종로에는 변화가 생겨났다. SNS 애용자라면 우리가 익히 알던 이반 술집과 레스토랑이 이성애자들의 블로그에 ‘맛집’으로 소개되고 사진이 올라온 일들을 기억할 것이다. 포장마차도 이제 서울에서 보기 힘들어진 종로3가의 명물이라며 관광 책자에 소개된다. 다양한 이들이 ‘맛집’과 포장마차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건물에 가게 이름만 덩그러니 걸려있는 성소수자 공간들의 비가독성도 외부 공간 사이의 버퍼 역할을 했다. 비성소수자들에게는 알 수 없기에 들어가기 힘든 곳이었다. 그런데 요새 힙한 가게들도 간판 이름만으로는 어떤 가게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비성소수자 커플들이 이반바에 발을 들이는 일이 늘어났다. 이제 해가 진 낙원동을 걷는 이들은 우리만이 아니다. 서울시의 ‘재생’사업이 활성화되면 이런 마주침이 더 빈번해질 것이다. 오래간 종로에서 유지되었던 비가시성이 침식당하는 것인데, 성소수자가 사회적 편견을 향해 투쟁하고 있는 사회에서라면 이 침투가 폭력적이지 않기가 어렵다. 서울시의 “역사인문재생계획”이 어느날 ‘락희거리’를 성소수자 친화적인 이름으로 바꾸어 부른다 할지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재생의 과정이 배제의 과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도시 공간을 함께 전유하는 여러 동등한 주체들 중 하나로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사회적 성숙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비판적 사회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the city)’라는 개념을 주창한 바 있다. 단순히 도시 환경과 자원들에 개인이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를 넘어서, 우리가 집합적 주체로서 도시를 향유함으로써 도시의 변화 과정에 참여하고 살아갈 권리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도시권이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권리의 주체로 퀴어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리에서 도시권이 외쳐진지 반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온 길에 남의 낯선 이름이 붙는 걸 보고 안타까워 한다. 도시에 대한 퀴어의 권리(Queer right to the city)를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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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연구자 / 원근

지리학 연구자 / 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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