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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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군대’ #3]
군대, 커밍아웃, 성공적 - 군대에 간 대한민국 청년의 숨기기와 드러내기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국내의 한 포털사이트에서 "HaGaDa"라는 닉네임으로 성소수자 분들에 대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한 게이입니다. 글의 제목과 걸맞게 불과 몇 개월 전 전역을 하여, 아직 군기가 덜 빠진 파릇파릇한 청년이기도 하죠. 현재는 몇 달간 해외에서 연수를 받는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곳에서 ‘국군의 날을 맞이하여 군대를 주제로 소식지를 꾸미고 있는데, 혹시 글을 한 편 기재해 주실 수 있으시겠냐‘라는 조심스러운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의 생활에 있어서 자유롭게 주어지는 시간이 많지 않고, 또 함께 생활하시는 분들도 저에 대해 모르시는 상황이다 보니 글을 쓰고 편집하는 데에 있어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 순간, 제가 휴가를 나와 올렸던 포스팅에 달린 두 가지의 댓글이 떠올랐습니다.
두 분 모두 ‘자녀를 둔 어머니’이셨는데, 한 분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군대 안에도 이렇게 게이가 있다니 불안해서 내 아들을 어떻게 군대에 보내느냐?'였죠. 반면 다른 한 분은 '이 분도 건강한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군대 내에서 건강하고 모범적으로 생활하고 계시다는 글인데 이런 댓글은 적합하지 않다.'라고 하셨죠. 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에 성소수자 분들을 위한 군생활 지침서를 써 내는 것도, 모든 성소수자 분들께서 공감하실 글을 써 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바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군필자 게이”가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 함으로써 ‘게이는 군생활을 잘 할 수 없고, 남성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 격리되어야 한다.’라는 편견에 의문을 던져 드리는 동시에, 성소수자 분들께는 약간의 용기와 팁을 드릴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을 뿐입니다.
여러분도 예상하시겠지만 군대 안에서 진짜 저의 모습을 드러낼 상황보다는 숨겨야 할 상황이 더 많습니다. 대한민국 각지에서 모인 남성들이 하루 종일 부딪히며 생활을 하는, 사회의 상식에서 조금은 벗어난 운영체계를 갖고있는 곳이기 때문에 제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는 상당한 용기와 준비가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군생활 초반에는 열심히 저를 숨겼습니다. 그럼 제가 사용했던 네 가지 스킬을 보실까요?
첫 번째로 “상남자인 척 행동하기”는 아주 기초적이면서도, 어려운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24시간을 신경 쓴다고 해도 애초에 상남자가 아닌 저의 모든 면을 완벽하게 감출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택한 방법이 바로 두 번째 “걸그룹에 열광하기”였습니다. 물론 저는 다른 전우들처럼 걸그룹에 열광하고 빠져들 이유가 없습니다. 예쁘다는 것은 알지만, 저에게 그 이상의 존재는 될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일부러 더 겉모습에 비중을 두는 척 걸그룹들의 무대와 뮤직비디오에 열광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에 전우들은 “너도 결국 남자구나!?!?!”라는 반응을 보였죠. 가끔 문란한 대화가 오가도 당황하지 않고, 적당히 툭툭 받아 칠 수 있는 순발력까지 갖추셨다면 효과는 더욱 완벽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경험 꾸며내기” 입니다. 군생활을 하다 보면 전우들과 자연스레 가까워지게 되고, 함께 훈련을 받거나 근무를 서게 되면 반드시 대화를 해야 할 상황이 생깁니다. 물론 재미있고 웃긴 경험이나, 무서운 이야기로 대화가 흘러가기도 하지만, 가장 많이 나오는 단골주제는 바로 “성적인 이야기” 입니다. 첫경험이라든지, 여자친구를 사귀었던 경험, 클럽 이야기 등등을 통해 졸음이나 추위를 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럴 때 무작정 없다고 잡아 떼면 재미없는 인물로 낙인이 찍힐 수 있을 뿐더러, 스스로를 숨길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꾸며 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동성과 썸을 타고, 연애하며, 관계를 형성해 나갔던 경험이라 든지, 어떤 동성을 열렬히 짝사랑했던 경험 등을 마치 이성과 있었던 일들처럼 대입시켜 상상 속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었죠. 저의 이런 방법은 주변 전우들에게 기대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단, 몇몇 전우들은 이야기에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제 상상 속 이성의 이름이나 키, 몸무게, 헤어스타일과 색 등등 집요하게 물어 봐 난감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부끄러운 척 하며 머리를 굴려 임기 응변 하는 것이 센스!!
마지막 네 번째는 “능구렁이 스킬”입니다. 저는 말년이 될수록 스스로를 숨기려는 마음을 많이 털어내고, 제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내며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우들은 제가 보통 남자들과 뭔가 다른 느낌이 드는 것 같다며 갸우뚱 하고는 했죠. 물론 장난 섞인 말투로 게이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멋쩍게 웃으며 “아.. 아니거든?!”하면 뭔가 더 어색하지 않습니까? 이럴 때 능구렁이 스킬을 쓰는 것입니다. “야 너 막 휴가 나가서 남자랑 하고 온 거 아냐??”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정색을 하고는 그 전우의 손목을 턱 잡으며 말합니다. “그때… 노래방에서… 좋았어…??” 그럼 모두 웃고 소리를 지르며 즐겁게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답니다. 혹은 그런 발언을 한 전우를 응징한다는 명목 하에 달려들어 덮치거나 올라 타 안마인 듯 안마 아닌 간지럼을 태우며 상황을 넘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사실 학교에서도 그렇고,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평소에 스스로를 감추고 생활하시다 보면 너무나 답답해서 확 쏟아 내어 버리고 싶은 때가 있으실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성소수자라는 점이 저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사람들과 수다를 떨거나 상담을 하다 보면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범위가 확 줄어든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하지만 성급하게 본인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반대로군대 내에서 성공적으로 마쳤던 제 다섯 번의 커밍아웃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다섯 번째 커밍아웃은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함께 손을 잡고 끌어주며 모든 훈련 복귀 행군들을 완주했던 그 전우들에게 오랜 기간을 두고, 제 블로그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노출시키며 성소수자 들에 대한 반응을 살펴 보았죠. 셋 다 성소수자들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 때에 기회를 보아 커밍아웃을 진행 했습니다. 특히나 제가 마지막으로 커밍아웃을 했던 전우는 제가 커밍아웃을 하기 직전 제가 머뭇거리자 오히려 “나를 믿을 수 있으면 뭐든 말 해도 괜찮고, 아니면 안 해도 돼. 난 입 굉장히 무겁고, 그런 것 신경 안써.” 라며 저를 안심시켜 주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요즘은 청소년들과 20대 청년들 사이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무작정 마음이 맞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라고 해서 성급하게 커밍아웃을 해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 친구가 성소수자들에 대해 부정적이라면, 그 친구와 당사자 두 분 모두에게 부담과 아픈 상처로 남을 수 있으니까요. 물론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 친구가 부정적인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된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쉽지는 않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저의 이 커밍아웃들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어 군대 안에서도 과격한 스킨십들을 하는 각별한 사이로 지낼 수 있었고, 현재도 연락을 주고 받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대학 과제에 있어서 유용한 팁을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커밍아웃은 제 옆자리에서 생활하던 정말 친한 동기이자 나이로 따지면 형인 전우에게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전우에게 커밍아웃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종종 말도 거칠게 하는 친구이고, 평소 본인의 신념도 뚜렷했으며, 무엇보다 성소수자 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날 밤, 이 형과 초소 근무를 함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상형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이 형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보통 사람들하고 생각이 너무 달라서, 내가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봄. 그래서 그냥 입 다물고 있으려고.” 저는 끈질기게 예를 들어 달라고 하였고, 그 친구는 갑자기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나는 내 아이가 성소수자일지라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줄 거야.” 저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초소 근무를 서며 커밍아웃을 이어 나갈 수 있었죠.
▲북한에서 포착된 군인 커플 (출처: 신문고뉴스)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경험은 후임에게 했던 네 번째 커밍아웃입니다. 이 녀석은 해외에서 오래 거주했으며, 이미 외국인 친구 중에 게이임을 밝힌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분대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커밍아웃을 하기가 굉장히 수월했지요. 제가 전역할 때에는 손편지까지 써주고, 해외에서도 연락하라며 스카이프 연락처를 적어준 아주 기억에 남는 전우입니다. 사실 후임이었지만, 저와 동갑이기에 현재는 더 편하게 반말을 하며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답니다. 해외연수에 대한 조언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군대에서 이렇게 좋은 전우들을 만나, 성공적으로 커밍아웃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정말 행복하고, 축복받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저 편견과 맞서고 싶어하는 대한민국의 한 평범한 게이일 뿐입니다. 군대 내에서 상담병과 이발병과 기수병, 그리고 저만의 주특기까지 도맡아 했던, 전역 후에는 부대에 음식을 잔뜩 사 들고 면회를 갈 정도로 군생활을 재미있고 보람차게 마친 대한민국 건강한 청년이기도 하죠. 제가 군대에 가는 것이 문제가 될까요? 과연 군대 내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이 성소수자 분들일까요? 저는 솔직히 다른 전우들의 성적인 언어사용으로 인해 수치심을 느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군대 내에서도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로 서고 있으며, 종종 받게 되는 인권교육에서는 늘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으니까요. 바로 지금 이 순간도 제 주위의 성소수자 분들께서 탈 없이 군생활을 이어가고 계시며,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수많은 성소수자 분들께서 스스로를 숨기거나 드러내시며 군생활을 마무리 짓고 계십니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의 건강하고 떳떳한 국민임에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하시기를 소원합니다!!
블로거 / HaGaDa (구 '아옹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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