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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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퀴어자랑 #9] 강원도 원주 - 강원도의 힘
작년부터 친구사이 소식지에서 연재 중인, 친구사이 소식지의 감초 <전국퀴어자랑>. 일요일이면 일요일마다 어김없이 찾아오지도 않고, 송해 선생님도 없지만, 팔도 방방곡곡에 거주하고 있는 다양한 퀴어들, 그리고 곁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신명나게 소개합니다. 그럼, 다 같이 외쳐보아요. 전~국! 퀴어자랑-
편집자 주 -
"형, 이번에는 꼭..."
간절했습니다. 꼭 담고 싶었던 이야기인지라 더욱 그러했겠죠. 한때 친구사이 대표까지 역임하며 지금도 묵묵히 언니 동생들 곁에서 함께하는 라이카님의 지방게이 라이프를 어찌 아니 실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 글을 쓸 만큼은 아니라고는 하셨지만 그래도 이렇게 썰을 풀어보기로 결심하심에 감사드리며.. :)
전국퀴어자랑, 9번째 이야기는 강원도 원주생활 도합 10년차 라이카님에게서 날아온 소식입니다!
원주는 사실 살다보면 강원도라는 느낌보다 수도권에 위치한 서울의 한 위성도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요즘은 혁신도시니 기업도시니 하는 거대 프로그램 아래 서울에서 공기업들도 많이 이전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많고 다른 강원 지역과 서울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의 역할도 많이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지내는 친구사이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강원도라는 느낌이 있어서인지 비교적 많은 친구사이 회원들이 다녀갔다. 우리집에서 친구사이 LT도 몇 차례 했었고 방학이나 휴가를 맞은 회원들이 나들이 삼아, 혹은 관계가 소원했던 애인들이 관계회복을 위해서, 새로 연애를 시작한 애인들이 밀월여행(?)지로 자주 이용하곤 한다.
이천 몇 년 도인가에 우리집에서 LT가 진행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지금 대표님의 애인이 원주 모 부대에서 신병훈련 중이었다. 많이 쌓인 눈 때문이었는지 지금 대표님과 코러스보이님 그리고 나 셋이서 뭐에 끌린듯 부대 앞으로 가서 신병도 면회가 가능하냐고 물었었고 얘들 뭐냐는 식으로 바라보던 위병소 병사에게 면회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대표님의 눈가는 이내 촉촉해졌었더랬다. 그러나 결국 면회를 하지는 못했다. 그 친구가 그 당시 부대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LT 후에 급 술번개모임 공지(?)를 올리기도 했었는데 마침 예전에 친구사이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회원을 만나 세상은 좁네 어쩌네를 연발하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었다.
친구사이 회원들이 오면 빼놓지 않는 코스가 치악산 나들이다. 뭐 거창하게 등산 이런게 아니라 세렴폭포까지 산책삼아 쉬엄쉬엄 오르고 산 밑자락에 자리한 백숙집에서 백숙을 먹은 뒤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코스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 회원들의 센 언니포스는 장난이 아니다. 하여 친근한(?) 중년 세 분이 스리슬쩍 같이 놀기를 청하다 콧대높은 언니들의 기준에는 미달판정으로 거절당하기도 했었고 한여름에 북적이는 계곡 골짜기는 우리들이 들어가 놀기 시작하면 주변이 홍해 갈라지듯 갈라지는 기적 속에 늘 여유있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전반전
원주가 고향은커녕 아는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였다. 허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 일을 5년 정도 하게 되었다. 서울까지 자가용으로 1시간 반 정도의 멀지 않은 곳인데 그 때는 이상하게 원주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세 번의 연애가 있었는데 애인들이 모두 서울에 거주하는 터라 주말마다 서울로 향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해서 원주도 아는 곳만 다니고 그 외 지역은 잘 모르는 반쪽 뿐인 원주인(?)의 생활이 이어졌다. 그리고 삼십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주말마다 서울로 향하는 이중생활이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혔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일도 점점 자신이 없어졌으며 그 당시 동갑 애인과의 연애생활도 2년여 만에 꽝이 나버렸다. 이 모든 게 답답한 여기에서 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일만 같았다.
하프타임
일을 관두고 어쩌다보니 몽골이라는 나라에 와 있었다. 2년간 몽골의 한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참 뭐라고 단정할 수 없는 기간이었다. 한없이 어둡기만 했던 길고 긴 밤들, 영하 40도가 넘는, 1년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겨울의 강추위, 긴 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오는 값싼 보드카들, 외로움을 견뎌내기 위해 차선으로 선택했던 몽골 현지인 애인, 학생들, 그리고 지금은 나의 가족이 된 두 마리의 고양이.
2년간 몽골에서의 생활을 버텨낸(?) 후에 친구들이 다들 그랬다. 내가 많이 바뀌었다고. 특히 까칠하고 예민해서 다른 생명체(?)와는 같이 살 수 없을 거라는 편견을 깨고 냥이 두마리와 아무 탈없이(?) 지내는 모습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후반전
한국에 돌아온 후 서울 생활도 1년 정도 했었지만 무슨 운명인지 결국 다시 원주에 자릴 잡게 되었다. 부모님도 여기서 자릴 잡은 마당에 다른 핑계는 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몽골생활을 겪은 후 서울은 좀 복잡한 도시로만 여겨졌다. 주말마다 다니던 것에서 한달에 한 번 정도 가기도 망설여지게 되었고 가더라도 이내 원주에 있는 냥이들 생각에 얼릉 돌아오게 되었다.
20대 후반에 친구사이를 통해 흔히 말하는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 뒤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애인님들이 계속 있어왔었다. 완벽한 싱글로 맞는 원주 생활은 전에는 경험하지 못하고 느껴보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
우선 원주에는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게이업소들이 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라오케도 두 개나 있었고 작은 소주방과 휴게텔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서울의 종로나 이태원처럼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는 않았고 나오기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몇 번만 가다보면 다 술친구가 되어 인사를 나누는 친근한(?) 분위기를 자랑했다.
그러다보니 몇 차례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바에서 옛 제자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어떤 녀석은 화들짝 놀라 바를 뛰어나가기도 했었고 어떤 녀석과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었고 서울에서 잠깐(?) 만난 분과 해후하기도 했었다.
친분이 트이고 내가 친구사이에서 활동한 경력이 어찌어찌 알려지면서 우연치 않게 상담 아닌 상담도 몇 차례 해주기도 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비롯된 우울증 환자, 1년 넘게 스트레이트 직장선배를 짝사랑하며 자존감을 잃어버린 친구, HIV에 감염된 사실을 알고 불안해하는 친구, 성향이 겹치는 애인과의 오랜 연애로 갈등에 빠진 커플 등..
얘기를 듣다보면 인터넷 시대니 정보화 시대니 해도 아주 기본적인 정보까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서울에서 기차로 불과 한 시간 거리인데 정보의 격차는 몇 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보를 얻었다 하더라도 정보는 정보고 생활은 생활인데 생활의 실체는 서울의 그것과는 많이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플(?) 등으로 즉석 만남을 가진 분들은 롤모델이 딱히 없는 현실에 굉장히 불안해했었고 아직도 많은 분들이 연극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있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이성과의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에 놀라기도 했었다.
연장전
어쩌다보니 이 곳에서 산 지도 10년이 넘었다. 사실 이 곳에 대해 떠들어대는 게 주제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몽골에서 돌아온 후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이 곳의 여기저기를 알 수 있었다. 서울에서의 생활과 이 곳에서의 생활을 비교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까도 말했듯이 아직은 많은 차이가 난다고 밖에.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들로 외로운 사람들이 있고 정을 나누기를 겁내며, 사랑받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 곳이 서울 게이씬의 과거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 그래서 달라질 것들과 달라져야 할 것들이 많다는 점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겠다.
<전국퀴어자랑> 연재 순서
#02 경상도 부산 - 전라도 상남자 '카이'의 부산 적응기
#03 전라도 전주 - 지역의 성소수자들과 함께, 낯설지만 같이
#04 경상도 대구 - 저항과 연대의 힘으로 함께 만드는 대구퀴어문화축제
#05 경상도 함안 - 길을 잃는 즐거움 : 게이로서 시골에 산다는 것
#07 전라도 광주 – 광주, 낮선 곳에서의 1년 9개월
#08 대전광역시 – It's RAINBOW -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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