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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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리 배지트,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저자 리 배지트는 이 책에서 네덜란드에서 거주하고 있는 게이, 레즈비언 커플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과 각국의 결혼제도 및 결혼관에 대한 설문조사자료를 바탕으로 결혼이 동성애자들에게 미치는 영향, 동성결혼에 대한 이성애자들의 반응, 결혼제도에 대한 동성애자들의 거부감, 종래의 결혼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제도에 대한 요구 등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복잡다단한 결혼제도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총 19개 커플의 사례를 활용하였다.
20세기 들어 구미국가를 필두로 시작된 동성결혼에 관한 논쟁은 수 십 년째 지속되고 있다. 종래의 결혼제도가 가진 효용성에 관한 의문, 대안적 결혼제도에 관한 고민, 동성결혼에 대한 찬반, 동성결혼이 주류사회에 미칠 영향, 동성결혼 법제화를 목표로 한 동성애자들과 그 지지자들의 운동은 시기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유럽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었다. 유럽인들은 대체로 대안적 결혼제도 및 동성결혼과 동성결혼 법제화에 우호적이었고 동성애자들을 포용해야 사회가 진보한다고 믿었다. 저자는 유럽인들이 보인 앞에서 언급한 태도와 자신의 인터뷰에 응한 동성애자들의 혼전 동거생활 및 결혼준비 과정, 결혼생활 중 맞닥뜨린 사건을 잘 융합해 소개하였다. 동성애자들도 결혼제도를 누릴 수 있도록 해 그들을 제도권 내로 끌어들이는 것이 동성애자들에게 더 깊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 스스로 더 높은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는데 크나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동성결혼이 이성애자들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기는 커녕 동성결혼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늘어나는 다양한 선택지가 이성애자들의 결혼생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이성애자 각자가 가장 알맞은 제도를 선택하는데 한층 도움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은 굉장히 포괄적이라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면서도 구체성이 떨어지고 변죽만 울리다 끝나는 인상이 강하다. 새로이 도입한 제도가 선택의 폭을 넓힌다면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질 개연성이 있다는 것은 굳이 논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두에서 다양한 제도와 법리적 용어에 관한 개념설명을 충실하게 했더라면 논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각국이 처한 법제적 조건과 사회적 배경, 정치경제적 상황이 매우 다르므로 동성결혼을 둘러싼 몇 가지 개념과 이슈에 대한 정의와 해석, 뉘앙스, 사회적 맥락이 모두 다를 개연성이 있다는 사실에도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다양한 제도를 사례와 묶어 소개하면서 각각을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는 바람에 독자가 제도와 사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난제도 생겼다. 책에 소개된 제도라고 해봐야 큰 틀에서 보면 종래의 결혼제도와 파트너십 등록제로 대변되는 시민결합 두 제도뿐이지만, 이 제도를 적용받는 결혼당사자들은 세계시민이 아니라 미국시민, 프랑스시민, 한국시민, 일본시민이기에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제도를 세밀하게 봐야만 한다. 저자는 본문에 유럽을 중심으로 각국의 제도에 관한 요약표를 제시하였으나, 각국의 법령이 정한 종래 결혼제도의 뜻과 적용, 시민결합이 허용하는 법적 권리와 의무 등에 관한 세부내용은 빠져있다. 저자의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은 미국인과 네덜란드인이 대다수인데 반해 저자가 소개한 제도는 두 나라 외의 것이 많았다는 점도 독자를 헷갈리게 만든다. 이 때문에 동성결혼이 사회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 자체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성결혼이 각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특히 동성결혼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변화시킬지는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 본서는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가독성이 떨어진다. 특정 서적을 번역할 때 출발언어에 중심을 두느냐, 도착언어에 중심을 두느냐는 번역가에 나도는 케케묵은 논쟁으로, 이 논쟁은 번역물의 소비자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당 번역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가로 귀결된다. 언뜻 보기에 출발언어에 중심을 둔 본 번역서는 한국인 독자가 읽기에 너무나도 불편하게 번역되어 있다. ‘a drop in the bucket’이라는 영어 관용구를 ‘새 발의 피’와 같은 적절한 한국어 관용구로 대체하지 않고 영문 그대로 사용한다거나, 영어권 서적에서나 등장할 ‘물컵의 25%가 찼다’와 같은, 한국어에서는 생략해도 될 비유적 표현을 불필요하게 그대로 옮겨놓았다거나, 영어와 한국어에서 ‘약화하다(약화시키다)’와 같이 두 언어간 단어의 쓰임새가 다른 경우, 차이를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영어를 한국어로 고스란히 옮겨놓는 등 한 문장 한 문장 읽기 벅찬 경우가 많았다.
비록 몇 가지 미흡하기는 했으되, 저자는 본서에서 적절한 압축과 생략을 통해 논쟁거리가 많은 동성결혼에 관한 이슈를 쉽게 풀어내었다.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사안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첫 술에 배부르랴. 감성을 자극하는 책이든 논리적 완결성을 추구하는 책이든 지속적으로 출간되어 많은 이들이 동성결혼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격렬하게 토론하고 동성애자들을 주의깊게 쳐다볼 때 동성애자들의 삶도 조금씩 나아지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동성결혼에 대한 제도적 이해를 증진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동성애자에게는 힘과 위안을 얻을 자양분이 되고 동성애자가 아닌 자에게는 동성애자들이 살아가며 겪을 고민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리 배지트, 김현경·한빛나 옮김,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민음사, 2016.
* 위 책은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의 5월 선정도서로, 당일에 언급된 감상과 토론에 기초하여 쓰여진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책읽당 당원, 친구사이 회원 / 스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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