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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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인간이 미완의 인간에게
: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 약사(1997-2007)
1. "청소년 성소수자"
2.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
1) 동성애자 최초의 단독시위,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 청소년 동성애자 모임
2) 엑스존, 인터넷 검열, 故 육우당
3) 각 단체들의 청소년 성소수자 사업
3.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 청소년 성소수자의 위상 : 규범과 낙인을 둘러싼 복마전
1)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당대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인식
2) 팬픽이반 : 진짜 동성애자, 가짜 동성애자
3) "너는 당장 네 진짜 정체성을 토설해야 한다"
4)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 : 성정체성의 주체적 발견을 위한 '환경'
4. 과연 우리는 완성되어 있을까?
청소년 동성애자를 둘러싼 문제는 늘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뜨거운 감자였다. 그것은 '동성애' 여부를 떠나서 청소년의 성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인식의 한계에서부터 시작한다. 청소년은 성인(만 19세)이 되기 전에는 공부 말고는 다른 것, 특히 성에 대해서는 몰라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의식이다. 청소년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미성숙하며, 나쁜 것에 유혹당하기 쉽기 때문에 보호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 어른들의 머릿속에 내려져 있는 정의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청소년 동성애자는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청소년은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벌써 부터 규정내릴 필요도,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이하 강조-인용자)
- 편집부, 「특집 : 한국 동성애자의 다섯가지 딜레마 | 청소년, 우린 사람 아닌 줄 알아요?」, 『BUDDY』 19, 2001.5.9.,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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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소년 성소수자"
"당신은 언제부터 성소수자였습니까?"
바보같지만 딴은 진지한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당연히 "나도 모르지요. 그럼 비성소수자인 당신은 언제부터 비성소수자였습니까?"가 되겠지요.
그러나 한편으로 남이 호명하는 것이 아닌, 성소수자 개인 스스로 자신의 성정체성에 얽힌 과거를 추억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람은 대개 사춘기 시기에 2차 성징을 겪고, 성소수자 역시 이 시기에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발견'하니까요. 또한 이 때의 일을 추억하는 일은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당혹스럽거나 어지럽기 쉽고, 지금의 기준으로 딱딱 정리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런 성소수자의 '어렸을 적' 이야기, 또는 그 '어렸을 적' 성소수자의 운동에 대한 다소 혼동스러운 과거를 함께 추적해보고자 합니다. 이에 1997-2007년 동안 전개됐던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를 훑은 다음, 그것이 어떻게 당시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접합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더불어 과거의 자료들에서 엿보이는, 당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가깝게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료로는 『BUDDY』 1-24(1997-2004)에 실린 청소년 관련 기사 및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1998-2006) 관련 문서, 그리고 청소년 동성애자 문화집단 '달팽이'(1999-2001)가 발간한 『청소년동성애인권문화지 달팽이』 1호(2000) 등을 참고했습니다.
▲『청소년동성애인권문화지 달팽이』 1, 2000.10.16., 7쪽.
7. 동건이가 언제 커밍아웃 했어? : 아! 저 커밍아웃 알아요. 방학 때 동건이가 전화로 술 취해서 얘기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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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
초창기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여러 활동들 가운데, 청소년 성소수자 이슈는 가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래에서는 이에 대해 최대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1997년 6월 28일 탑골공원 앞,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 주최 "동성애자 차별적 교과서를 개정하라" 집회 현장.
(「핫이슈 : 동성애 비하 고교 교과서 | 자살을 방조하는 교과서를 뒤집어라」, 『BUDDY』 16, 1999.9.1., 34쪽.)
1) 동성애자 최초의 단독시위,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 청소년 동성애자 모임
1997년 6월 28일, 종로3가 탑골공원 앞에서는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동인협) 주최로, 한국 최초의 동성애자 단체 단독 시위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시위에서 내건 슬로건은 다름아닌 "동성애자 차별적 교과서를 개정하라"는 것이었지요. "에이즈, 동성연애, 매춘, 성폭행, 마약, 음란비디오, 저질만화 등이 늘어나면서 성도덕의 문란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1999.3.1.)를 비롯, "동성연애"와 "에이즈"를 직결시키는 고등학교 교련 교과서(1999.3.1.)의 서술, 서울시교육청에서 발간한 '성과 행복' 교과서(1998.3.2.)의 "매매춘이나 동성간의 성관계와 같은 불건전한 성문화" 같은 표현들에 항의한 집회였습니다. 이렇게 한국 최초의 동성애자 단독 집회가 청소년 대상 교과서 속 혐오표현을 주제로 열렸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또한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단체 '친구사이'는 1998년부터 "청소년 동성애 학교"(이후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로 개칭)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행사는 이후 매해 열렸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다른 단체와 연대하여 공동개최하는 형식으로 2006년까지 존속되었습니다. 1999년 제2회 "청소년 동성애 학교" 기획서(1999.8.2.)를 보면, 이 행사를 개최한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학교 기획의 첫 번째 목적은 [...] 서구 게이 공동체가 가능태로서 보여주고 있는 여러 친교 관계들과 같은, [...] '동성간의 친밀한 관계맺음에 대한 성찰과정'입니다. [...] 두 번째로는 청소년 '동성애자'들에게 그들의 '언어'를 되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 세 번째로는 일선 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교육입니다."
▲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단체 친구사이 주최 "제2회 청소년 동성애 인권학교"(1999.8.3-10) 일정표.
더불어 1998년부터는 청소년 동성애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단체를 조직하는 움직임이 있게 됩니다. 1998년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내에 청소년 레즈비언 모임 '또래끼리'가 발족하였고, 이들은 그 해 처음 열린 "제1회 청소년 동성애 학교"에 참가하기도 합니다. 그 해 10월에는 청소년 이반을 위한 PC잡지 『LIQUID』 1호가 발행되었고, 1999년 6월에는 청소년동성애자모임 '아쿠아'가, 같은 해에 'any79'가 발족하였습니다. 특히 1999년 3월에는 부산경남레즈비언인권모임 안전지대 산하 청소년이반모임 '달팽이'가 탄생하였는데, 이들은 이듬해 모임의 성격을 청소년 동성애자 문화집단으로 바꾸고, 2000년 9월 『청소년동성애인권문화지 달팽이』 1호를 자체 발간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퀴어영화상영회를 단독 개최하고 2001년 창립 2주년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 (좌) 청소년동성애자모임 '아쿠아' 웹사이트(2001.1.14., http://aquas.pe.kr)
(우) 청소년동성애자문화집단 '달팽이' 웹사이트(2001.3.31. http://queersnail.hihome.com)
2) '엑스존', 인터넷 검열, 故 육우당
이렇게 이 시기에 청소년 동성애자 단체 및 기타 성소수자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데에는, 90년대 당시 한국의 정보통신환경의 변화가 맞물려 있었습니다. 초창기 성소수자 단체들이 오프라인이나 '사서함 153' 등 유선전화를 이용하여 결집하였다면, 90년대 중반 들어 모뎀을 매개로 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이 대두되면서 그곳에서의 동호회를 중심으로 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또 1999년을 기점으로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성소수자 단체들은 독립된 인터넷 웹사이트로 이동하였던 흐름이 있었습니다. 가령 1999년 4월 게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웹사이트 '화랑'(http://hello.to/hwarang)이 개장하였는데, 이는 2000년에 '이반시티'(http://ivancity.com)로 도메인을 바꾼 후 현재까지 한국 최대의 게이 포털 사이트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렇게 새로 생겨난 인터넷 상의 컨텐츠에 대해 모종의 검열을 시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도에 맞서 시민단체들은, 2000년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을 창립하여 이에 대응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정부는 동성애 관련 사이트들을 지목하여, 이 곳들이 "청소년에 유해한 매체"라 판단하고, 당시 최대 규모의 동성애 사이트였던 "엑스존"(www.exzone.com)을 2000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고시하기에 이릅니다. 나아가 인터넷 사이트를 유해매체물로 단속할 근거법령들이 2001년 7월과 8월 속속 발효되고, 인터넷 검열을 가능케 하는 행정적 근거가 될 정보통신부 장관 고시가 11월에 발효되자,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들은 같은 해 7월 '동성애자차별반대공동행동(동차공)'을 발족시켜 이에 조직적으로 대응하였습니다.
한편 근거법령의 발효로 '엑스존' 사이트 내에 청소년유해매체물 표시를 심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엑스존'은 이에 항의하여 그 해 11월 무기한 사이트 폐쇄에 돌입하고, 서울행정법원에 고시 철회 행정소송을, 헌법재판소에 청소년보호법시행령과 장관고시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기에 이릅니다. 참고로 당시 '엑스존'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고시하였던 직접적인 법적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청소년보호법시행령 (1997.7.1. 제정, 대통령령 제15419호) 제7조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 [청소년보호]법 제10조제3항의 규정에 의한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은 별표 1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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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한 사이트 폐쇄에 돌입한 2001년 11월 9일 '엑스존'(www.exzone.com)의 게시판.
이렇게 "동성애"를 청소년에게 유해한 행위로 명백하게 규정한 법령을 개정하기 위해, '엑스존'을 비롯한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들은 위 법령 중 "동성애" 부분을 삭제해줄 것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게 됩니다. 이들의 노력 끝에, 2003년 4월 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위 법령(청소년보호법시행령 7조 | 별표1, 2.개별심의기준 '다'항)에서 "동성애" 부분을 삭제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후 정부는 청소년보호법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여, 마침내 "동성애" 문구가 삭제된 동 시행령이 2004년 4월 30일 시행되게 됩니다. 이로써 적어도 한국의 법조문 가운데, "동성애"가 퇴폐나 유해의 대상으로 '적시'되는 일만큼은 막은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을 끌어내기까지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발표되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은 2003년 4월 7일 "국가기관이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를 권장하는가?"라는 성명서를 통해 이를 강력히 비판하였습니다. 한기총의 성명서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의 권고는 "자기 정체성 형성과정에서 갈등과 혼란으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동성애 사이트'를 무제한으로 개방하게" 하고, "'정상적인 성적지향'이라며 '동성애'를 권장하는 듯한 인상"을 주며, 따라서 "청소년"들의 "성적 정체성 형성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는 가운데, 2003년 4월 26일 당시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회원이었던 청소년 동성애자 윤현석(육우당, 19세)씨가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는 비극이 있게 됩니다. 청소년 동성애자에게 쏟아진 보수 기독교의 혐오어린 언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는 故 육우당을 추모하는 행사를 현재까지 매년 개최하고 있습니다.
▲ 청소년 동성애자 故 육우당 10주기 추모기도회 (2013.4.25)
3) 각 단체들의 청소년 성소수자 사업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성소수자 단체들은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연구와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각 단체들은 2005년부터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사업에 착수하여 토론회·간담회를 개최하고, 다양한 형태의 자료집, 지침서를 발간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업에 필요한 기금들 중 일부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주한 사업 신청을 통해 충당되기도 했습니다.
▲ (좌)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교사지침서』, 2005.
(우)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부모들이 알고 싶어하는 37가지 질문』, 2007.
정리하면, 예나 지금이나 이 '청소년'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동성애'에 대한 낙인이 한층 노골적으로 표출되기 마련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청소년 성소수자 이슈는, 당대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최전선에 매번 처해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위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다른 분야의 사회 운동과 자연스럽게 연대를 실천하게 되었던 점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이슈에 대한 보다 상세한 연도별 연혁은 아래와 같습니다.
* 청소년 성소수자 이슈 관련 연혁(1997-2007)
1997.6.6. 한국 최초의 동성애 포털사이트 '엑스존' 천리안 계정에 개설
1998.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내 청소년 레즈비언 모임 '또래끼리' 발족
1999.2.10.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제7조에 의거 성소수자 잡지 『BUDDY』를 청소년유해간행물로 지정
2000.7. 정보통신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을 "개인정보보호및건전한정보통신질서확립등에관한법률"로 개정한다고 발표
2001.3.13.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을 확장한 인터넷국가검열반대를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출범
2002.1.9. 엑스존 및 동차공, 서울행정법원에 정통윤의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청소년보호위원회의 고시 철회 행정소송
2003.4.1. 국가인권위원회, 끼리끼리·동인련의 진정에 대해 청소년보호법시행령 7조 '다'항 동성애 부분 삭제 권고
2004.1.1. 엑스존, 대법원 상고 결정
2005.4. 국가인권위원회, "2005년도 인권증진을 위한 시민실천 프로그램 개발 용역사업"을 통해 「올바른 성 정체성 교육실현과 성 정체성 인식 개선을 위한 사업」 명목으로 동인련에 1,400만원, 「청소년 동성애자 차별방지 프로그램」 명목으로 친구사이에 1,000만원,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교육 프로그램개발 및 매뉴얼 창간」 명목으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에 800만원 지원
2006.8.3-5. 친구사이, 제9회 "이반 놀이터"를 마지막으로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 폐막
2007.4.8-29. 동인련,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 기초 교육 실시(다음세대재단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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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 청소년 성소수자의 위상
: 규범과 낙인을 둘러싼 복마전
다음으로는 당시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팎에서 각자의 삶을 나누었던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실제 목소리를 들어보고, 그들이 처했던 고민들, 그리고 성소수자 정체성에 얽힌 일련의 번뇌의 흔적들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단체 친구사이, 『청소년 이반신문』 1999.8., 1면.
동성에게 향하는 욕구는 날 모르는 상대와 one night-sex를 하게 만들었고 정체성의 혼란 속에 방탕한 삶을 살게 했다. 이중적인 삶은 나를 더없는 outsider로 만들게 되었다. 어느 날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에 '화장실의 이반'을 취재하는 것이 방영됐고 그 장소는 내가 경험한 곳... 엄마와 같이 보면서 거기 몰래 적어 둔 내 연락처가 나오지는 않을까 숨죽였는데 그 화면은 녹화해둔지 꽤 된 듯싶었다. 난 그 화면을 보고 더없이 슬펐다. 어두움 속에서 갇혀진 삶 밖에는 없는 걸까? 너무나도 슬펐다. '헤테로'가 되기 위한 몸부림은 나의 맘 속을 황폐하게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단체들을 알게 되었고 게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이런 게(주: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 일찍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오히려 슬프게 만들기도 했다. (아쿠아, 고2 남)
- 「바보이반」, 『청소년 이반신문』 1999.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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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김살 없는 청소년들의 모습에 오히려 선생님이며 도우미라고 나온 20대들이 부러움을 느낀다. 감히 동성 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커녕 빨개진 얼굴이 들킬까봐 고개도 못 들고 지냈던 시절, 가슴이 답답해 죽고만 싶었던 시절을 보낸 20대들이 그들의 아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만든 학교.
- 「청소년의 방 : 동성애를 말하다 | 제2회 청소년 동성애 학교를 다녀와서 : 20대가 본 너무나도 다른 10대들」, 『BUDDY』 14, 1999.4.1., 6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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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당대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인식
1999년에 열린 제2회 "청소년 동성애 학교"에 참석한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현장스케치를 들어보면,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정도에서 일정한 편차가 드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2차 성징을 청소년기에 경험하며, 이와 연동되어 성소수자들 또한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대개 이 시기에 어떤 형태로든 예감하지요. 그러나 그것을 확실히 발견하는 시기는 개인마다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으며, 발견한 그것을 정체화(identify)하는 시기 또한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일찌감치 받아들이고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반면, 그것을 오래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헌데 이러한 편차들을 묶어 이들을 '청소년'이라 구획지을 수 있는 이유는, 이들에 대한 사회의, 또는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자료를 보면, 막 생겨나기 시작한 동성애자 통신모임·사이트에 청소년 성소수자를 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언급이 보이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청소년의 "몸"만 바라고 접근하는 사람이 많고, 그들이 어른들의 "맛있는 먹이"가 될 수 있으니 우려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먹버(먹고 버림)"를 걱정하는 내용들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저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물론, 내가 이뻐서 그랬겠지만) 제 몸을 바라구 접근하는 사람들이었다. 정말 싫었다. 한때는 정말 내가 잘나서 접근하는 줄 알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까 정말 나쁜 놈(?)들이었군... (고3 남)
- 「사람 조심!!!」, 『청소년 이반신문』 1998.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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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모르는 청소년들이 통신모임에 가입을 한다면 바로 그들의 맛있는 먹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이반 세계의 암세포와 같은 존재들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청소년의 가입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어느 동성애 단체 간부
- 「이야기해볼까요 : 청소년의 성, 청소년의 사랑」, 『BUDDY』 10, 1998.11.25., 60-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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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편으로는, 청소년 스스로 발견하고 정체화한 각자의 성이 그리 굳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 혹은 우려를 나타내는 글들도 눈에 띕니다. 혹여 청소년들이 동성에 대한 순간의 매혹을 과장하여 섣불리 자신의 정체성을 단정지을 수 있고, 그로 인해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일찍 나오는 것이 자칫 "학습"의 결과를 낳게 된다는 우려들입니다. 어찌보면 이는 당시 동성애자 사이트들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목하였던 정부·사회의 시선과 비슷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 이는 당시 법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청소년 동성애자"의 이슈를 피해, 동성애자 '어른'들의 공간을 어떻게든 합법적인 영역으로 남겨두려던 노력의 일환이랄 수도 있을 것입니다.
▲ 남성 동성애자 사이트 "화랑"의 진입화면 문구 (2000.4.9., http://hello.to/hwarang, 현 "이반시티")
하지만, 내가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은 이성애자인데도 동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만으로 자신을 섣불리 이반이라 단정지은 '청소년 이반'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는 이성애만이 당연시되는 사회통념 속에서 이반이 자신을 일반으로, 일반이어야 한다고 가두고 단정짓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 나우누리의 **izzy
청소년을 가입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청소년 회원을 받고 그래서 그들이 이쪽 세계를 접하게 된다고 하면, 일종의 '학습'이 일어납니다. 흔히들 말하는 '사춘기 시절에 빠지는 경우'에 해당되는 청소년들이 아예 동성애를 학습하고 완전히 레즈나 게이가 된다는 겁니다. : HITEL sy***gy*
- 「이야기해볼까요 : 청소년의 성, 청소년의 사랑」, 『BUDDY』 10, 1998.11.25., 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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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욕망은 사회로부터, 또 성소수자 '어른'들로부터 금그어진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당시 진행되던 성소수자들의 운동과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성소수자 잡지 『BUDDY』의 초창기 호들을 보면, 잡지에 왜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다루지 않는가에 대한 의견이 속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BUDDY』 16호(1999.9.1)의 특집 "청소년의 방 : 동성애를 말하다"를 기점으로, 이후 호부터는 꾸준히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기사가 실리게 됩니다.
만 20세 미만은 참여할 수 없다는 기사가 곳곳에서(?) 눈에 띄는 것이 마치 그들과 우리 세대를 갈라놓는 것만 같아서 아직 10대인 우리의 동성애는 인격형성이나 학업에 크나큰 장애나 걸림돌이 될 우려가 있으므로 지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처럼 느껴지거든요. 따라서 나이든 이반 선배님들의 눈부신 활약만을 지켜보며 학교나 사회로 돌아가선 다시 본연의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저희들의 실상입니다.[...]
- 「독자엽서 : 십대들을 위한 공간」, 『BUDDY』 7, 1998.8.20.,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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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원하는 기사 3가지
- 「특집 : 버디를 벗겨라 | 지난 1년간 버디에게로 온 독자편지를 분석했습니다」, 『BUDDY』 13, 1999.2.25.,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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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Y』 1-24(1998-2003)에 실린 청소년 관련 기사 목록.
나아가 앞에서 보았듯이 청소년들은 스스로 '아쿠아', 'any79', '달팽이' 등을 위시한 청소년 성소수자 단체를 만들어, 그들 나름의 친교와 문화를 만들어나가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PC통신 동호회에서, 그 다음에는 웹사이트에서, 이후에는 '다음(Daum)' 까페의 성격으로 모임의 틀을 유지해나갔습니다. 그 중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모임으로는, 2007년 1월에 창립된 청소년 성소수자 모두를 위한 열린 쉼터, '라틴'(RATEEN)을 들 수 있겠습니다.
▲ 청소년 동성애자 문화집단 '달팽이' 웹사이트 진입화면 로고.
(2002.3.30. http://queersnail.hihome.com)
사내놈들, 특히 남자만 있는 학교 다닌 놈들 중에는 너무 오래 남자들 사이에만 있어서 여자들 대하기 힘들어하는 놈도 있지. 그런 놈들 중에 꼭 여자한테 관심 없다는 놈이 있더라고. 다 철이 없어서 그래. 그런 놈들도 다 나이 먹고 보면 여자가 왜 좋은지 알게 된다니깐. : gay K군의 아버지
- 「이야기해볼까요 : 청소년의 성, 청소년의 사랑」, 『BUDDY』 10, 1998.11.25.,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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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팬픽이반 : 진짜 동성애자, 가짜 동성애자
하지만 모든 청소년의 성정체성 결정이 '아직' 임의적인 것이고, 나중에는 (특히 이성애적 규범에 충실하도록)바뀔 가능성이 크며, 따라서 진지하게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사회의 시선은, 그 때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 청소년기 성정체성의 정체화 문제는, 다른 누구보다 청소년 성소수자 단체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청소년인 네가 과연 네 성정체성을 확답할 수 있느냐"는 반문은, 당시 막 발돋움하던 청소년 성소수자 단체의 입장에선 무엇보다 핵심적이고, 또 위협적인 질문일 수 있었습니다.
필자도 방송국에서 연락을 받곤 하는데 대뜸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동성애가 유행처럼 번진다는데, 인터넷상의 회원도 몇 천명 쯤 된다지요?" 하며 묻는다. 그럼, 한마디 한다. "거품이지요. 뭐..."
- 송진희('달팽이' 대표), 「특집 : 한국 동성애자의 다섯가지 딜레마 - 청소년 | 청소년이 이야기하는 청소년 동성애자 : 껍데기는 가라」, 『BUDDY』 19, 2001.5.9.,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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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질문이 중요할 수 있었던 것은, "청소년 동성애자가 진짜 동성애자인지 못 믿겠다"는 의문이 일반 사회, 또는 20세 이상의 동성애자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다름아닌 청소년 성소수자 단체 안에서도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청소년 성소수자 단체들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거나 스스로 칭하는 '동성애자' 중에, '진짜' 성정체성의 차원으로까지 가닿지 못한 '허수'의 동성애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으로, "성에 대해 비밀시하는 성교육" 때문에 성정체성을 진지하게 탐구할 기회가 부족하고, "동성들만 모아놓은 학교"에서 "동성만 접하"게 되는 상황 등을 들었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영향과는 달리 청소년 성소수자 단체들은, 그들 자신, 또는 청소년 성소수자 스스로 결정한 성정체성의 내용은 결코 임의적인 것이 아니며, 자신들의 성정체성이 일순간의 '유행'일 수 없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였습니다. 자신들은 "흥미"거리가 아니고 "씹다버린 껌"이 아니라는 대목에서, 이들의 심정은 극적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 : 어떤 연구 기관에서 그러는데 기성 동성애자로 남는 사람이 4~5퍼센트밖에 안된다고 그러데. 나도 청소년 동성애자이지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봐온 사람들도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없는 것 같다. 동성애자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님 원래 이성애자였는지 모르겠지만....
하나 : 청소년 때에 동성애자였다가 이성애자가 되는 거는 우리나라의 감추려고 하는 성교육에도 문제가 있고, 성에 대해 비밀시하고 남녀공학이면 뭔가 문제가 생길까봐 동성들만 모아놓은 학교에서 동성만 접하다보니까 오히려 동성애가 더 흔하고 접하기 쉬운 거다.
- 「학교시리즈 1. 의문점들 :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얼마만큼 기성 동성애자로 남을까?」, 『청소년동성애인권문화지 달팽이』 1, 200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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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당시 이들의 성정체성을 진지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도록 만들었던 것은, 그맘때쯤 유행하고 있었던 '팬픽'의 존재였습니다. '팬픽'이란 특정 문화컨텐츠의 '팬'들이 만든 2차 창작소설을 뜻하는데, 한국에서는 주로 90년대 말에 나온 H.O.T, 젝스키스 등 남성 아이돌 그룹을 대상으로, 멤버들 간의 이야기들을 가상으로 그린 소설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흔히 '야오이'라 불리는, 미소년 멤버들 간의 동성애적 사랑이 적극적으로 그려지게 되는데, 이 '야오이' 풍의 팬픽을 읽고 나누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자신을 "이반"이라 부르고, 동성애적 감정과 행위를 실천하는 경우들이 발생합니다. 이런 "팬픽 이반"에 대해, 당시 청소년 성소수자 단체들은 이들을 "유행성 이반"이라 일축하고, 그런 "유행"과 자신의 진짜 성정체성과는 다르다고 강조하게 됩니다.
* 팬픽이반의 특징
- 이현정·한채윤, 「청소년 : 팬픽이반, 가짜이반?」, 『BUDDY』 20, 2002.4.6.,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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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마디 한다면?
- 「이동건(17) : '나는 원래부터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아'」, 『청소년동성애인권문화지 달팽이』 1, 2000.10.1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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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미 : 전 개인적으로 팬픽 이반을 좋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팬픽 이반들을 흔히 '피기'라고 부르는데요. [...] 정말 보기 싫습니다. 레즈비언들이 팬픽 이반들 때문에 욕을 먹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피기들이 어서 자기들의 정체성을 찾아서 생활했으면 하구요. 레즈비언 이반! 이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는 것은 알려주고 싶습니다.
- 「특집 : 청소년, 동성애를 말하다 | 4명의 청소년과 함께 한 좌담회 : "감추니까… 그게 더 문제인 것 같아요"」, 『BUDDY』 23, 2003.7.10.,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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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성애자 유행이다, 팬픽이다 뭐다 그러는데 순수한 동성애자들 먹칠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는 사랑은 슬픔을 항상 동반해야 하는 위험하고도 힘든 사랑인데 말이죠. 이런 유행성 이반들이 자꾸 생긴다는 건 정말 달갑지 않습니다. [id:h]
- 「특집 : 청소년, 동성애를 말하다 | 청소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7대 고민 분석 : "우리들의 고민을 해결해주실 준비되었나요?"」, 『BUDDY』 23, 2003.7.10.,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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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희준&장우혁 커플 팬카페, "우혁 품에 희준" 메인화면 (http://cafe.daum.net/junylover)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팬픽' 문화가 10대 특유의 로맨스 지향, 예민한 감수성이 극대화돼 투사된 문화창작물일 뿐이며, 이는 10대에 으레 있을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팬픽 이반"으로 표현되는 동성애적 감정이, 설령 어른이 되어 사라질 임시적 감정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매료되어있는 그 시공간 안에서의 '자신'은 그것대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나아가, '팬픽 이반'들의 동성애적 감정과 진짜 '성정체성'이 애초에 다르다고 한다면, 결국 '팬픽'이 이성애자를 동성애자로, 혹은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 뿐이며, 따라서 '팬픽'은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에게 "역할 모델"을 찾는 용도 정도로 이용될 수 있다는 주장도 눈에 띕니다.
그렇다면 당시 청소년 동성애자 단체들이 가졌던, 이른바 '진짜 동성애자'에 대한 분별의 욕망은 어떤 연유로 나오게 된 것일까요? 거기엔 어떤 사회의 자장이 작용하고 있었을까요? 다음 절에서는 이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선생님, A와 B가 동성연애 한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그래서, 나는 까르르 웃으며 다음 이야길 해주었다.
- 「청소년의 방 : 동성애를 말하다 | 현직 교사 교단 일지 : 선생님, 우린 목 졸린 게 아니예요」, 『BUDDY』 14, 1999.4.1.,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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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청소년 시절을 생각해 보세요. 그 나이 때는 풍부한 상상력과 호기심, 그리고 주위의 모든 것에 쉽게 아픔과 동감을 느끼는 예민한 감수성이 공부와 성적표에 시달리는 무미건조한 삶에 그나마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죠. 자신의 삶을 좀더 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
- 「Dear Buddy : "우리 딸이 팬픽 이반인 것 같아요"」, 『BUDDY』 22, 2003.3.19, 7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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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인 :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억지로 만들 수 없듯이 이성애자를 동성애자로 억지로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상물과 소설이 청소년들을 동성애자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합니다. 오히려 정체성 고민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 소설 속에서 역할 모델을 찾을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합니다.
- 「특집 : 청소년, 동성애를 말하다 | 4명의 청소년과 함께 한 좌담회 : "감추니까… 그게 더 문제인 것 같아요"」, 『BUDDY』 23, 2003.7.10.,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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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너는 당장 네 진짜 정체성을 토설해야 한다"
들어가기 전에 우선, 청소년기에 자신의 성정체성을 정체화하고, 그를 바탕으로 단체를 조직하고 활동을 벌여나가는 것은 움직일 수 없이 중요한 일입니다. 청소년의 성정체성 정체화는 어디까지나 임의적일 뿐이라는,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사회의 낙인에 맞서서, 자신을 당당히 내보이고 활동을 해나갔던 청소년 성소수자 단체의 활약이야말로 우리 사회와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소중한 유산이지요. 우선 이 점을 전제한 다음에, 아래에서는 청소년과 성정체성에 얽힌 좀더 복잡한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 본 '팬픽 이반' 등, 성정체성의 수준으로까지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여러 성적 실천들은, 동성애자 인권운동에서 청소년 이슈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난점을 드러내줍니다. 즉, '자신의 성정체성을 스스로 정체화한 동성애자'라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핵심 전제를, '어떤' 청소년들은 밑바닥부터 흔들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체성과 정체화의 고전적 정의에 관해, 이들 청소년들의 존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정체화 과정은 과연 처음부터 균열없이 매끈히 진행되는가. 그리고 성정체성은 과연 고정적인가, 유동적인가. 만약 고정적이라면 어느 때에 고정적이고, 유동적이라면 어떤 관점에서 유동적인가.
▲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워크, 「전환치료('동성애치유')는 폭력입니다!」 긴급기자회견, 2016.3.9.
이 문제를 파고들기 전에 먼저 짚어야할 것이 있습니다. 성정체성을 '사후 조작'할 수 있다고 믿는 일군의 보수 개신교 세력들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트랜스젠더를 시스젠더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전환 치료"를 일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정체성의 발현이 선천적이든 환경결정적이든,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손쓸 수 없고, 자신의 '결정'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대전제이며, 그렇기에 '전환치료'는 성소수자에게 치명적인 인권유린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2차 성징기를 둘러싼 기간 동안,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성정체성의 조건들을 뒤늦게 '발견'하는 셈이고, 따라서 그 성정체성을 남이 조작할 수 있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에 가깝습니다.
헌데 한편으로, 개인이 성정체성을 '발견'하는 시점, 그리고 그것을 내 것이라 '정체화'하는 시점은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가령 청소년 성소수자들 중에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깨닫고, 그에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성인을 넘긴 나이에야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예감하고, 그것을 예감에서 확신으로 - 확신에서 정체화로 돌려놓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도 있지요. 후자의 경우, 그들의 청소년기는 성정체성을 탐색하는, 그러므로 성정체성 자각이 뚜렷하지 않은 기간이 되는 셈입니다. 이처럼 청소년기는 '실제로' 고정된 성정체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하지 않은 채, 성정체성에 대한 다각도의 탐색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때입니다.
즉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체화/커밍아웃'을 기점으로 한 삶의 변화 모델이, 정체성을 탐색하는 단계에 있는 어떤 청소년들에게는 잘 들어맞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청소년기는 이들의 유보적인 정체성 탐색이 사실 당연히 존재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를 다룰 때, 일찌감치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신하고 이를 실천하는 바람직한(!) 이들 뿐만 아니라, 비교적 오래 자신을 탐색하고 성정체성을 확정짓지 못하는 이들까지 함께 주목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 이성애자로 성향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 「김민정(19) : '이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어.'」, 『청소년동성애인권문화지 달팽이』 1, 2000.10.16.,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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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서는, 우여곡절을 거친 탐색 끝에 마침내 정체화한 성정체성의 내용 '자체'가 유동적인 사람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자신의 성적 지향이 남녀 모두를 향한다고 정체화하는 사람(바이섹슈얼), 남녀 뿐만 아니라 다른 성별정체성 전반을 향한다고 정체화하는 사람(팬섹슈얼), 그리고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젠더) '자체'가 '남녀'로 구분짓기 힘든 사람(젠더퀴어), 성별에 대한 인지가 시시때때 변하는 것 자체를 자신의 성별정체성으로 정체화한 사람(젠더플루이드) 등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기존의 동성애자 인권운동에서 정식화해온, 고정적인 성정체성 모델에 딱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이지요.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과 정체화의 스펙트럼 가운데, 아쉬운 대로 성정체성·정체화에 대해 다시 정의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1. 사람들 사이에 '현상'으로 드러나는 성정체성의 내용은 유동적일 수 있습니다.
2. 그리고 그 성정체성의 모습이 고정적이든 유동적이든, 그것이 개인 스스로 정체화한 결과라면, 이는 개인이 그것을 철회하지 않는 한 남들에 의해 쉽게 유보될 수 없으며, 따라서 굳건한 것입니다.
3. 아직 자신의 성정체성을 온전히 정체화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실은 그러한 탐색의 과정을 길든 짧든 누구나 겪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들이 자신을 보다 잘 탐색할 수 있도록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내가 누구이고 내가 누구에게 끌리느냐는 대답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더없이 자명하고, 고정적인 것입니다. 동시에 그렇게 개인이 굳건히 정체화한 성정체성의 내용 자체는 얼마든지 고정적일 수도, 유동적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개인이 정체화한 성정체성은 남들이 감히 건드릴 수 없이 굳건한 것이되, 그 성정체성의 내용은 사람에 따라 유동적일 수도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성정체성은 각기 다른 차원에서, "유동적"이되 또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닌 속성들을 함께 품고 있는 개념인 것입니다.
나아가 그런 성정체성의 정체화가 처음부터 당연한 것처럼 오지는 않으며, 그것에 다다르는 데엔 일정한 시차가 있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인지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그런 불확정의 시간을 겪는 것이고, 따라서 정체성 탐색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 또한 그에 합당한 방식으로 존중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BUDDY』 23호(2003.7.10.) 표지. 왼쪽은 김경묵 영화감독의 고등학생 시절 모습.
성정체성 자체는 유동적이라고 생각해요.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 이성애자에서 동성애자로 바뀔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정체성이란 게 또 그리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라고 봐요. 아니라면 이성애 매체물이 이렇게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동성애자들이 있을 수 있겠어요. 아무리 부정해도 결국은 자신이 동성애자란 걸 알 수밖에 없죠. (김겸)
- 「커버스토리 : 어리다구요? 하지만 우리 자신에 대해선 잘 알아요」, 『BUDDY』 23, 2003.7.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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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체성은 속일 수가 없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섹스를 할 수도 있고 거짓으로 사랑을 맹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강렬하게 끌리고 진심으로 내 모든 것을 걸고 싶다는 그 느낌은 꾸며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성정체성이다. 내가 누구에게 끌리는가를 아는 것이다.
- 「특집 : 한국 동성애자의 다섯가지 딜레마 - 청소년 | 우린 사람 아닌 줄 알아요?」, 『BUDDY』 19, 2001.5.9.,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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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정체성은 처음부터 고정적인 것이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우선 이성애자들, 혹은 혐오세력들을 향해, 성정체성이란 것은 그렇게 "전환 치료"의 관점에서 손바닥 뒤집듯이 바뀔 수 없는 것이라 강변하고 싶어집니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되지요.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동성애자로 정체화하기 전, 다소 애매했던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때론 괴롭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새로 힘겹게 얻은 '동성애'의 틀과 규범을 드디어 쟁취했으므로 이제 고민은 종료되어야 하고,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동성애자'로서의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동성애자 커뮤니티로 나오고 나면, 그 이전의 나, 뭔가 뚜렷이 정해지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는 묻지도, 말하지도 말아야 할 어떤 것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다보면, 동성애자 개인의 과거 속, 혹은 현실 안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비정형, 불확정적인 성정체성은 매우 낯선 것이 되고 맙니다. 성정체성은 당연히 고정되어야 하는 것이고, 정체화는 어쨌든 가급적 빨리 해결되어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그 규범을 위협하는 바이섹슈얼이나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또는 정체화 이전의 청소년들은 뭔가 이상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지요. 성정체성은 그렇게 유동적인 것일 리가 없고, 따라서 유동적인 성정체성은 자신의 성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며, 제대로 자신을 정체화한 결과라 할 수 없다는 인식, 즉 '바이'나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같은 건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은, 이른바 '바이포비아, 트랜스포비아'의 핵심에 자리하는 논리입니다.
▲ 『청소년동성애인권문화지 달팽이』 1, 2000.10.16., 19-20쪽.
- 니가 그랬잖아,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는 게 아니고, 성적소수자로서 하는 거라고...
- 「달팽이 대표 송진희(19) 인터뷰 : '치열하게 살아아죠, 치열하게...'」, 『청소년동성애인권문화지 달팽이』 1, 2000.10.1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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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게이냐 아니냐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었지. 그래서 동성애자들을 만나면 나의 고민들이 해결될 줄 알았어, 내 말을 모두 들어줄 것만 같았거든. 근데 현실은 그런 게 아니더라고. 지금은 그런 기대 안해. 그래서 지금 절실하게 느낀 건, 그 사람이 이반이냐 일반이냐 따지기 전에 어떤 사람인가 그게 젤 중요한 것 같아.
- 「김치업(20) : '일반이냐 이반이냐를 떠나서,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 같아'」, 『청소년동성애인권문화지 달팽이』 1, 2000.10.16.,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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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군의 동성애자들이 스스로 만든 '동성애'의 규범은 그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눈물과 땀을 통해 쌓아올려진 것입니다. 사회에 만연한 이성애의 규범은, 동성애자들의 섹슈얼리티를 끊임없이 진지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니까요. 같은 성이 같은 성을 사랑할 리가 없으므로, 너의 성정체성은 사실 성정체성이 아니라 임의적인 것이고, 금방 바뀔 것이며, 따라서 중요하지 않다는 암시는 도처에 만연해 있습니다. 이에 맞서 '동성애'라는 정체성을 구축하고 이를 인정받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는 앞서 훑어본 청소년 동성애자 단체들의 '진짜 동성애자'에 대한 분별의 욕망과도 연결됩니다.
헌데 그렇게 힘겨이 '동성애'라는 규범을 반석 뒤에 올려놓았는데, 그 규범을 또 허무는 듯한 불확정적 성정체성의 주체들은 마치, 힘든 탐색을 거쳐 애써 발견해놓은 나와 내 사회를 흔드는 것 같고, 역으로 '너의 굳건함은 결코 진실되지 못하리라'는 낙인처럼 와닿기도 하는 것이지요. 더불어 자신의 성정체성이 오롯하지 않았던 과거의 일과, 실제 그 모호한 과정을 겪어내고 있는 청소년들을 직면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받았던 여러 오해와 공포어린 시선을 복기하게끔 하고, 한편으로 이제는 그만 '단단했으면' 좋겠는 내 '정체성'에게, 이만 부담스러운 어떤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성애를 의식하고 그로 인한 공포에 반응해 힘겹게 쌓아올린 '동성애'의 규범은, 동시에 성소수자 안의 다른 유동성을 위협으로 느끼게끔 만들 수 있습니다.
공들여 쌓은 이 동성애 규범과, 그로부터 예기치 않게 발생한 비정형적 성정체성에 대한 공포를 어떻게 한데 묶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모든 공포들이 실은, 성정체성이 고정되어있지 않다는 데에서 나온 것이기에 앞서, 자신을 그토록 고정하고 싶게끔 만들었던 이성애 규범의 힘과 그로 인한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진단을 해볼 수 있습니다. 즉,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진짜 동성애자'가 아닌 것만 같은 저 '유동적인 성정체성'이 아니라, 애초부터 지난날 나의 유동성을 그토록 심문하기 좋아했던 '이성애중심주의'의 질서일 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만약 그러하다면, 우리에겐 어쩌면 그렇게 이성애적이지 않음을 공통분모로 갖는 '진짜'와 '가짜'가 모두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성애적이지 않은 모든 로맨스와 성관계와 성정체성이 이토록 서로에게조차 위협으로 와닿는다면, 그 사이의 질적인 차이를 따지고 각자의 정체를 캐묻기에 앞서, 그 위협과 공포가 대체 어디에서 오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따지는 것이 마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성애적 질서를 깨는 데 두 부류 모두가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짜 동성애자'도 "야오녀"도, 그리고 그밖의 다양한 성정체성의 주체들도 모두 제각기 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더불어, 그 사람이 청소년이냐 성인이냐와 상관없이, 자기 성정체성을 정체화하는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 역할은 기존의 이성애적인 사회도, 또는 동성애자 커뮤니티도 자임하거나 대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한 사람이 정체화에 다다를 때까지 자신을 탐색할 기회는, 어느 누구의 강박이나 떠밀림 없이 자유로이 보장되는 편이 옳습니다. 어느 누구도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그 사람의 마음을 앞질러 규정할 권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가짜라고 비난할 때는 자신은 진짜라는 우월감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 우월감이란 무엇일까? 문제는 이것이다. 그 우월감은 실상 얼마나 이성애자의 기준에 부합하는가라는 것에 달려있다. 이성애 중심주의 사회에 사는 동성애자들은 자기 검증을 통해 가능한 한 이성애자들에게 비난받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의 눈에는 청소년이, 도덕성을 따지는 이들에게 게이 사우나를 들락거리는 이들이, 팬픽에 물들어 담배를 피워물고 염색을 하고 성욕을 함부로 발산하는 친구들이 기자들의 사냥감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이것이 곧 동성애자 전체의 비난이 될 때 자신들의 입지마저 좁아지기 때문이다.
진짜와 가짜 모두 중요하다 팬픽이반을 둘러싼 논란은 동성애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의 성적 권리의 문제이다. [...] 청소년들도 분명 사랑을 느끼고 성욕을 가진다. 그리고 성정체성은 칼로 무 자르듯이 단박에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갈등과 고민을 겪기도 하고 또한 한 번 선택을 했지만 번복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결정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자살이나 원하지 않은 임신 같은)를 저지르지 않도록 모든가능성을 열어주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 이현정·한채윤, 「청소년 : 팬픽이반, 가짜이반?」, 『BUDDY』 20, 2002.4.6.,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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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청소년 동성애 학교>에 청소년 참가는 부진했다. 문의 전화와 개인 연락은 상당했지만, 정작 행사 날에 모습을 비친 것은 남자 셋, 여자 다섯. 그것도 레즈비언들은 <끼리끼리>의 청소년 모임에서 전부 추렴된 것이었다. 그곳에 모인 청소년들은 참가 부진의 이유가 듣기에도 소름끼치는 '학교'라는 말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 이희일, 「버디가 간다(2) : 제1회 <청소년 동성애학교>가 열렸다」, 『BUDDY』 7, 1998.8.20.,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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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 : 성정체성의 주체적 발견을 위한 '환경'
다만, 그렇게 각자의 성정체성을 정체화하는 데에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 시간 속에 처해있는 청소년 - 혹은 다른 누구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한 좀더 편하고 공평한 조건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비이성애적인 로맨스나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 당시의 학교나 사회는 대개 호의적인 모습이 못되었습니다. 도리어 어떤 청소년이 비이성애적인 감정이나 로맨스나 성정체성을 갖는 것만으로, 은밀하거나 노골적인 위협을 느낄 수 있는 환경에 가까웠지요. '너는 정상이 아니다'라는 낙인은, 성소수성을 감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예감하고 또 실제로 체감하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 하에서 성소수자 친화적인 교육과, 성소수자 운동단체, 청소년 성소수자 단체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공정하게 편제돼있지 못한, 성정체성의 주체적 발견을 위한 환경 안에서 이들 단체들은 최후의 쉼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처럼 성소수자적 성정체성이나 감정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비이성애적인 성정체성을 좀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자신을 비정상이라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의 존재는 핵심적인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이렇게 이성애가 정상이라는 것이 한점 의심없이 여겨지는 환경은, 성소수자임을 명백히 정체화한 청소년은 물론이요, 자신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모를 청소년들에게조차 결코 공정한 환경이라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비이성애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의 성정체성 탐색 과정 중에 동성애와 여타 성정체성의 존재를 염두에 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애먼 아이들을 '동성애'에 물들게 하는 조치가 아니라, 반대로 청소년기 성정체성 탐색의 조건을 보다 공평하게 만드는 일이며, 따라서 이는 이성애자 및 동성애자로 정체화할 아이들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바로 이 점을 겨냥해 다각도의 활동을 벌여온 셈입니다.
더불어 자신의 성정체성을 그 누구의 떠밀림이 아닌 자신이 찾아가기 위해, 비이성애적 감정과 비이성애적 정체성을 예감하거나 실천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감정적으로 지원하는 '사람'의 존재는 더없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때로, 자신을 몰라 탐색하고 방황하고 있는 자신마저도 지지해줄 수 있는 곁의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단체가 되었든 벗이 되었든, 현재의 자신을 조건없이 받아들여줄, 그 누군가의 존재 말입니다.
'고등학생의 경우는 아직 성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아서'라는 말이 가끔 들린다. 그런 성정체성 확립이 꼭 필요한 것일까? 하긴 난 내가 레즈일지도 모른다는 고민보다는 친구가 이런 날 이해해줄까? 라는 고민에 더 빠졌었는데 : HITEL 'H***23' (60)
- 「이야기해볼까요 : 청소년의 성, 청소년의 사랑」, 『BUDDY』 10, 1998.11.25.,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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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동성애를 접하면 그것 때문에 멀쩡한 아이들도 동성애자가 된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그것은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변죽만 울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청소년 동성애자 주제의 핵심은 한 명의 청소년이 동성애자인지 아닌지에 있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분명 지금 이 순간 동성 친구에게 호감과 애정을 느끼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단지 그 사실 하나 떄문에 자아 존중감을 잃어 버리고, 비정상이라는 오명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거부당할까 두려워하며 고통받고 있다는 점이다.
- 「특집 : 청소년, 동성애를 말하다 : 청소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7대 고민 분석 : "우리들의 고민을 해결해주실 준비되었나요?"」, 『BUDDY』 23, 2003.7.10.,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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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아 : 동성애를 감추니까 그게 더 문제인 거 같아요. 하나 터트리면 막 떠드는 냄비 금성 강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런 거 말고 그냥 교과서에서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가르치면 더 나을 텐데 말이죠. 동성애에 대해 모르니까 혼자 상상하게 되는데 그게 더 안좋은 것 같아요. 많이 가르쳐 주고 편견도 없었으면 좋겠고, 왕따 안 시켰으면 좋겠어요.
- 「특집 : 청소년, 동성애를 말하다 | 4명의 청소년과 함께 한 좌담회 : "감추니까… 그게 더 문제인 것 같아요"」, 『BUDDY』 23, 2003.7.10.,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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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청소년 동성애자들에게 커밍아웃이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의 커밍아웃에 대한 개념을 떠나 사람에 관해 얘기하기를 시도한다. 그들에게도 꿈이 있고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며 퀴어라는 것을 이해해주는 친구가 있는 것이다. 그런 사소하고 의도한 유치함들을 우리는 관찰하려고 한다.
- 「특집기사 : 나는 대한민국의 건강한 청소년이자 성적소수자이다」, 『청소년동성애인권문화지 달팽이』 1, 2000.10.1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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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연 우리는 완성되어 있을까?
그러나 한국의 법은 아직도 청소년 스스로 성정체성을 주체적으로 정체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2000년대 초반 '엑스존'에 굳이 "청소년유해매체물" 딱지를 달아야겠다면서, 청소년에게 '게이 사이트'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했던 그때의 방침처럼요. '엑스존'이 전개했던 법정 투쟁은 결국, 1심과 항소심, 상고심 모두 패소로 마무리되고 말았습니다. 첫 소송이 있은지 5년 만인 2007년 6월 14일, 대법원에서는 '엑스존'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최종 확정 판결하였고, 이후 '엑스존'은 영구 폐쇄되게 됩니다. 이 때의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청소년이 성정체성을 정하기에 미숙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떠한 것도 결정하게 해서는 안되고, (박제된 형태의 이성애를 제외한)어떤 성적인 정보도 주어서는 안된다는 논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2015년 4월 2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그려진 동성 키스에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심의원들은 징계의 이유로, "동성애를 인정은 하되 권장하지는 않"아야 하며, "성인이 아닌 학생들이 보기에는 저걸 보면서 ‘옳다구나’ 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 그런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파장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청소년의 동성애를 드러내는 것이 청소년의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식의 일차원적인 논리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무언가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청소년의 성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무대책하고 편향된 것인지는, 위에서 본 과거 청소년 성소수자들 스스로의 언급을 재음미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 11회(2015.2.25.) 중 여고생 키스 장면.
동성애는 성적 지향성의 문제로, 동성애 성적 지향성도 인권의 하나로서 인정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며 외국에서는 동성의 혼인을 인정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 그런데 [...] 동성애자로서 인간의 행복추구권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의하여 동성애를 택하는 것은 성적 취향의 차이에 의한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이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나, 성적으로 미숙한 청소년에게 성적 취향의 차이에 의하여 이성애, 동성애를 선택하도록 하는 결정을 성인이 아닌 청소년기에 위 결정을 강요하는 것은 성적으로 미성숙 단계에 있는 청소년에게는 선택의 전제가 되는 정신적 완숙도가 갖추어져 있지 아니하므로 성적 취향 자체를 결정하는 것이 무리라 할 것입니다.
- 청소년보호위원회,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제7조 관련 별표 1의 제2호 다목 해석에 대한 질의 회신」, 200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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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유해한 것으로 취급해 정보의 생산과 유포를 규제하는 경우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의 인격권·행복추구권에 속하는 성적 자기결정권 및 알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는 견해도 있으나, 청소년들에게 성적 자기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상상이나 호기심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야기해 인격형성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 대법원, 「청소년유해매체물결정및고시처분무효확인」 판결문 (대법원 2007.6.14, 선고, 2004두619,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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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미성숙'이 과연 청소년기에, 혹은 나이에 긴박된 문제일까요?
앞에서 보았듯이, 어떤 사람들은 청소년기가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야 자신의 성소수자적 성정체성을 뒤늦게 인정하고 정체화하기도 합니다. 성인이 되는 나이는 임의적인 것일 뿐, 스무 살이 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성숙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든 완전하지 않고, 미숙함은 평생 나와 함께 살 벗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른바 '성인'들이 청소년의 문제를 생각할 때 염두에 둘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숙은, 결코 남들이 정해놓은 나이에 맞춰 줄지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요.
▲ (좌) K.J.H/부산, 「우리들의 이야기 : 청소년 이반들에게」, 『BUDDY』 11, 1998.12.25., 52쪽.
(우) 파이브·서울, 「우리들의 이야기 : 10대의 끝에서」, 『BUDDY』 13, 1999.2.25., 64쪽.
누구도 동성애자를 해부학(?)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의 주장이요 의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당신이 거부하든, 어떤 계기로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든 언젠가는 당신의 '삶'이 됩니다. '삶'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엄청난 거지요. 그것은 생활입니다. 당신을 지탱해주고, 때로는 여러 때로는 여러 고민 속에서 방황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상대이지요.
- K.J.H/부산, 「우리들의 이야기 : 청소년 이반들에게」, 『BUDDY』 11, 1998.12.25.,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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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저마다의 미숙함과 성숙함은, 그 사람이 이미 처해있고 경험하고 있는 삶 안에서 이미 소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본 저 수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토로에서처럼, 우리는 성숙의 문제를 보다 삶에 육박해오는 무엇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살아본 생을 사는 사람은 그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에 놓인 생 앞에 서툴 수밖에 없지요. 청소년들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도 다만 그러할 뿐입니다. 따라서 청소년이라고 모두가 미숙한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되었다고 성숙이 종료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정체성을 발견하고 그것과 화합하며 사는 일 또한, 단계적으로 획득되는 라이센스가 아니라 생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는 과제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앞의 미래에 서툰 만큼, 우리는 종종 우리 과거에도 서툴 뿐인 것입니다. 한켠에 끝내는 청소년인 채 남아있을, 결코 나이들지 않는 우리네 마음의 일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과거를 쏙 빼닮거나 빼닮지 않은, 서툴거나 서툴지 않은 우리 곁의 청소년들에게 이제는 손을 잡아줄 준비가 되었는지, 우리의 인생은 살아온 모든 시간을 회돌아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 파이브·서울, 「우리들의 이야기 : 10대의 끝에서」, 『BUDDY』 13, 1999.2.25.,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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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일련의 움직임들은, 이후 2008년 이후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거쳐 2010년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에서 소기의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보수기독교의 온갖 방해를 뚫고,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차별금지조항을 포함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안이 2012년 1월 26일 공포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 조례안 제정 운동 과정에서, 위에서 언급한 논점들이 어떤 식으로 소화되고 극복되고 운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차후의 글을 기약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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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문제가 혐오자들이 공격하기 딱 좋은 우리의 약한 고리라고 생각하는데, LGBT 쪽에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