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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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가족의 탄생 #5>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산다 – '성북마을무지개' 사람들 이야기
‘피가 섞이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가족이 될 수 있어.’
2006년 5월 개봉한 영화 <가족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그로부터 10년 간,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가족구성에 대한 이야기는 2006년 가족구성권연구모임부터 2013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결혼식에 이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가구넷)의 출범, 그리고 최근 동성혼 불복 소송에 따른 심리까지 험난하지만 다부지게 계속돼 왔죠.
그럼에도 ‘종북게이’, ‘골수 페미니스트’ 등의 용어가 난무하며 혐오가 판치는 게 현실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요원하고, 성소수자를 포함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은 좌초됐으며, 한 지자체의 성평등기본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 조항은 삭제됐습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가시화를 통한 존재 드러내기와 당연한 권리 주장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에 친구사이에서는 성소수자 가족공동체를 위한 제도적, 사회적 변화요구에 앞장서는 가구넷과 함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성소수자 가족공동체 당사자 연재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5번째 이야기는 서울시 성북구를 기반으로 거주·생활하는 주민들이 만든 성소수자-비성소수자 주민공동체 '성북마을무지개' 사람들의 속마음을 담았습니다!
참으로 각박한 현실이다. 국가는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고, 그것도 모자라 한 무당의 손에 나라의 운명을 맡겨버렸다. 비선실세를 통한 측근정치가 난무하고, 시민들의 반발에는 ‘가만히 있으라’며 무차별적 폭언·폭행을 가한다.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분에게는 ‘병사(病死)’라는 정체불명의 사망원인을 갖다 붙이고, 급기야 유족 동의 없는 시신 탈취 시도까지 서슴지 않는다. 부동산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하루에도 수십 번 터지는 정계비리 사건은 이제 신물 나는 뉴스다.
이렇게 찬바람 부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웃의 어려움이 그/녀만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게 된 순간, ‘같이 함께 해보자’ 마음으로 문을 연 사람들. 성 정체성/성적 지향의 차이를 떠나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가 손을 맞잡고 머리를 맞대니 뜻이 모아지고 열매가 하나둘 맺힌다. 올해는 첫 공동작업으로 ‘마을잡지’까지 내려고 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바로 성북구에 거주·생활하는 성소수자-비성소수자 주민공동체 모임인 ‘성북마을무지개’ 사람들 이야기다.
▲‘성북마을무지개’의 활동 거점공간인 <동네공간> (출처: 페이스북)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성북마을무지개’의 탄생 또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기획한 사업이 무산된 위기에서 꽃피웠다. 성북구 주민참여예산 사업이었던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설립이 보수 개신교 세력의 압박으로 예산 불용 처리된 순간은, 결국 도화선이 되어 주민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 물론 그 국면이 지난 지금이야 차분하게 그때 그 사건을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의 장면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찌릿해오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성북구청 지하 1층 구내식당에서 구청장이랑 면담했던 자리가 사건의 거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했고, 사건 관련 지난한 과정 중 가장 치가 떨리는 순간이었죠. 그때 느낀 건 내가 아무리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녀도, 심지어 저 같은 경우는 커밍아웃도 진즉에 해서 많은 분들이 알지만, 결국 내가 관계 맺고 있는 네트워크 안에서만 나의 정체성과 존재를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것이라는 점이었어요. 지역사회 전반에 걸쳐서, 혹은 지역행정과 연계되는 지점에서 성소수자인 나의 존재가 인식되거나 의미 있고 비중 있게 다뤄지거나 하지 않더라구요. 쉽게 말하면 선출직 공직자들에게는 나는 ‘1표’에 불과하고, 귀 기울이며 살펴볼 만한 유권자가 아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 기민
반면 어떤 공동체들은 그러한 부분들을 잘 드러내고 조직화하는데, 그러니까 공직자의 마음은 갈대같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성북구청장은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민들은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앞으로도 이어질 비슷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우리는 눈물로 호소하고 하소연하며 상황이 끝나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걸까. 지역 내 성소수자 공동체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고민이 여기서 출발하게 된다. ‘우리도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라는 목소리,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하게 누릴 권리가 있다’라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쉽지 않지만 운명적인 선택이었다.
그 당시 같이 결합해서 활동하시던 분들도, ‘성소수자 주민공동체 같은 조직이 시작점부터 있었다면 그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견을 주셨어요. 그런 공감대가 있어서 그럼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좀 지역 안에서 거주하거나 생활하는 주민들의 모임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져서 이렇게 탄생하게 된 거죠. | 기민
주민참여예산 사업 무산 위기로 인한 활동 당시 저는 계속 참여하지는 못했고, 막판에 구청에서 ‘못 하겠다’고 했을 때 결합했거든요. 성북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그해 12월 초 서울시 인권헌장 무산으로 인한 무지개농성을 했던 멤버들이 그대로 구청으로 와서 도움을 주신 거예요. 너무 그때 좀 충격과 반성을 느꼈어요. 시청에서는 활동가들이 열심히 투쟁하는 모습 보면서 같이 못해 미안하면서도 복잡한 마음이 들곤 했는데, 성북구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데 이렇게까지 와서 활동해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생겼고요. 그러던 와중에 이 활동이 장기적으로, 정부나 구청 상대의 싸움만이 아니라 지역에서의 성소수자 이슈를 발굴해내고 알리는 작업으로 갈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는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됐어요. | 지성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사업불용 규탄 기자회견 모습
사건 발생 후 9개월 만에 이뤄진 성북구 성소수자 당사자·지지자 모임 결성을 위한 준비회의(Rainbow Meeting)를 통해 ‘성북마을무지개’는 이름을 내걸고 매달 정기모임을 가지며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그 과정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임은 자명하다. 안 좋은 일들이 여기저기 빵빵 터지는 현실에서, 사건 하나가 시발점이 되어 사람들을 모이고 조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안 해본 사람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해본 사람은 더 잘 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건 이후 9개월여 동안, 자발적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모임의 구심점을 찾는 작업은 사건 평가 및 점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면 좋을지에 대한 논의와 함께 계속됐다.
초기에는 사건을 거쳐 성북구 지역단체들과 함께 할 때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가 다 섞여 있다가, 이후에는 당사자와 지지자들이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형태로 간 것 같아요. 당사자들도 당사자 모임이 하나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지지하고 연대해주셨던 분들도 그런 모임이 꼭 필요하겠다는 의견을 주신 거죠. 사실 당사자 조직이 빈약한데 연대로만 그 간극을 채운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낀 게 아닌가 싶어요. | 기민
‘성북마을무지개’의 또 다른 고민은 모임 구성원의 특성을 어떻게 가져가는가였다. 처음부터 당사자와 지지자가 함께 섞여있는 모임으로 할지, 아니면 성소수자 당사자로만 구성된 모임을 먼저 만들고 후에 지지자도 연대하는 형태를 띨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건 일단 당사자 모임으로 가고, 그게 중심이 돼서 필요할 때마다 연대활동을 하자는 식이었지만, 어쨌든 양쪽 다 지지자를 염두에 두고 모임을 꾸려나가려고 했던 건 공동체의 목적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아니었다 싶다.
회원 구성 자체는 그렇지만, 지금 모임이 딱 비성소수자는 연대만 가능하다는 형태는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정기모임 중에 자신을 명확히 정체화 할 수 없었던 어떤 분이 오셨었는데, 이걸 계기로 (자신 정체성의 불명확함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신 분도 있거든요. 그리고 자발적인 모임이긴 해도 누군가는 날짜나 장소 잡고 모여보자고 계속 끌어주는 역할을 해주셔야 하는데 낙타, 기민 두 분이 있었던 게 중요했던 것 같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 지성
하긴, 처음 모임 오신 분에게 당신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웃음] | 기민
▲‘성북마을무지개’의 탄생을 위해 열린 “Rainbow Meeting” (출처: 페이스북)
사람 사는 어느 곳에서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성소수자도 또한 존재한다. 성북구는 특히 올해 총선을 대비해 진행한 ‘평등을 위한 한 표 Rainbow Vote’에서 서울시 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비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성소수자들이 적지 않은 것이 확인됐고(서울시 전체 레인보우 유권자 2,726명 중 성북구 165명(6%)으로 총 25개 자치단체 중 3위), 결국 주민참여예산 불용 사건 후 물 흐르듯 이어진 당사자·지지자 모임은 10여명이 모여 자조모임의 성격을 띠게 됐다. 서로 모여 각자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공동으로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도 해보면서 머리를 굴리다보니 나오게 된 게 바로 ‘같이 지역 안에서 해볼 수 있는 걸 찾아보자’였다는데.
아이디어 차원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했고, 마을잡지 만드는 사업을 제가 냈는데 선정이 된 거죠. 이미 저는 성북동에서 주민들과 함께 지역 공동체 활동을 하며 마을잡지를 내고 있어서 친숙하기도 했고요. 사실 면대면으로 만나서 주민들과 교류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커밍아웃 여부도 그렇고,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함께 한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요. 반면에 글은 필자의 존재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서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제안했어요. 마침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에서 사업공모를 하기에 냈는데, 어떻게 만들어질지 무척 궁금하다는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고 사업에 선정됐죠. | 기민
얘기한 대로 올해는 특히 마을잡지 발행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게 다른 안건을 가지고 모임을 진행하기보다 그냥 편하게 같이 만나 밥 먹고 사는 얘기 나누는 걸로 가져가고 있어요. 또 그와는 별개로 잡지 편집위원회가 구성돼 있어서, 편집회의를 사업 추진과정에 맞춰서 계속 정기적으로 하고 있죠. | 지성
물론 공동체가 생기고 모임이 이루어지면서 목적을 위해 함께 하는 건 필요하지만, 반드시 모든 일에 함께 해야 한다거나 강제로 모임을 매번 나와야 한다는 등의 분위기는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나 구체적인 비전을 갖고 밀고나가는 결사체 성격의 모임이 아닌 이상, 더군다나 기존에 살고 있는 지역 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같이 한다는 공동체 특성을 생각하면 느슨한 운영 가운데도 모임이 계속 이어지는 것 또한 당연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지금은 그냥 서로 친분을 가지고 지역 안에서 오고가며 교류하는 성격인 것 같아요. 모임에 못 온다고 해서 왜 못 오냐고 물어보거나, 누군가에게 일을 떠맡기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대신 매달 회비를 내고 있고,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은 제가 맡아 하고 있어요. | 기민
그리고 잡지 만드는 와중에 필자섭외를 추진하다 보니 나름 문화 활동 하시는 분이 이 동네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바로 원고 청탁하는 것보다 마을에 이런 모임이 있으니 같이 사람들도 만나고 이야기도 하며 편안하게 잡지 제작 활동에 결합해 주십사 얘기하는 자리로서 활용하기도 해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성북구 내 단체인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이 매개체가 되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요. | 지성
▲‘성북마을무지개’ 사람들과의 인터뷰
거주하는 지역 기반 공동체의 또 하나의 묘미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만 살지는 않는다는 것일 게다. 모임에 있던 누군가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자연스레 나오지 않게 되고, 반면 다른 마을에 살던 어떤 사람이 성북구로 오게 되면 모임에 합류하기도 하는, 유동적인 공동체의 특성에 따라 운영의 묘를 발휘하는 것도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임의의 모임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대표성 없이 회원들만 소소히 모여 일을 꾸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마을미디어사업 신청에서도 그러한 상황이 있었고, 대표자 3명이 모여 협약서 서명과 기타 운영을 위한 제반사항을 담당하기에 다른 분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다고 그들은 고백한다. 이러한 부분에서 자연스레 지지자와의 연대가 이루어졌으니 이것이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감수성은 기본이고, 아무래도 실무자인 저랑 편하게 수시로 만나서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더 중요한 건 우리가 하려는 활동에 대한 공감과 지지가 가능한 분이어야 했는데, 딱 한 명 떠오르는 분이 있어서 대표자 중 1인 역할과 함께 지금 마을잡지 편집위원장도 부탁드렸어요. 이전에 출판사에서 잡지 제작 경험도 있고, 의료생활협동조합에서 마을관련 활동도 하고 있어서 적격이었죠. 기존에 알고 지냈던 시스젠더 이성애자이지만, 지지자로 함께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 기민
또한 지역에서 성소수자임을 드러내어 활동하는 것 자체가 대사회적 커밍아웃의 일면인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더 큰 의지와 힘이 뒤따라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지역기반 활동의 한계이자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는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어엿한 주민으로서, 또 한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빽을 갖고 있는 기분이 들 것 같다. 비록 자기노출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자기가 사는 곳에 이런 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하고 왜 필요한지가 뚜렷해진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고, ‘성북마을무지개’ 사람들 또한 이 부분을 잘 알고 있어서 배려 및 소통을 통해 함께 하려는 준비가 돼 있었다.
만약에 잡지 발행이 끝나고 이제 마을잡지 편집위원 모임에서 여기 ‘성북마을무지개’ 모임으로 넘어오라고 했을 때, 본인의 정체성을 오픈해서 마을 활동에 같이 결합할 수 있겠다고 결정하실 수 있으면 그렇게 하실 거고 부담스러워 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당사자나 지지자 구분 없이 활동할 수 있는 ‘서포터즈’ 얘기도 나오고 있고요. [웃음] 아무튼 아직 드러내서 활동하지 않는 게 편하신 분들도 있어서 그런 부분도 배려하고 있어요. | 지성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성소수자 활동은 어찌 보면 무궁무진하다. 각종 마을행사나 전시회, 마을미디어 활동 및 간담회, 심지어 마을퍼레이드 등 생각만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보인다. ‘성북마을무지개’ 사람들 또한 다양한 생각들을 갖고 있고 차근차근 하나씩 이어나가려고 하고 있다. 재밌는 건 최근 성북구에서 성소수자 관련 행사나 이슈가 꾸준히 있었다는 점이다.
2015년에 있었던 ‘성북무지개한마당’ 같은 경우에는 2014년 주민참여예산 사업 불용 사건을 평가·점검하고 후속 작업으로 주민감사청구에 대한 서명 받는 걸 포함해 함께 하시며 지지해주신 단체들이 이 흐름을 계속 가져가면 좋겠다고 해서 이루어진 행사예요. 당시 행사를 꾸린 연대체인 ‘성북무지개행동’에 저희 ‘성북마을무지개’ 사람들도 함께 했고요. 구청의 만행에 대해서 알리고 행동하는 목적으로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취지였어요. 한 번 하기는 했는데 지역에서 이런 행사를 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걸 깨닫는 계기도 됐죠. [웃음] | 지성
이렇게 의미 있는 행사가 마을에서 열리기도 했지만, 주민들을 좌절시킨 일도 여럿 있었다. 작년 6월 ‘띵동’에서는 장수마을 주민협의회과 함께 한양도성 인근마을 주민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성북구 장수마을에 있는 마을박물관에서 성소수자 관련 전시회를 열고자 했지만, 서울시 담당부서 공무원이 사업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업 추진을 승인하지 않아 무산되자 시민인권보호관이 “명백한 인권침해”라며 인권교육을 권고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이슈는 2014년 말, 주민참여예산 사업이 무산된 후 그 대안으로 성북구 인권위에서 성북구청이 직접 사업을 진행하라는 권고안을 냈거든요. 이에 구청 산하기관인 성북문화재단이 주관하는 「2015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문화다양성 사업」의 일환으로 '성북구 청소년 성소수자 실태조사'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인터뷰 참가자 모집을 위한 홍보물에 지원처로 성북문화재단이 기재된 것을 알 재단 측이 교회측으로부터 민원을 받고 있다며 실태조사 사업 담당자에게 항의하며 기관 이름을 빼달라고 한 일이 있었어요. 결국엔 이런 사업에 성북구청 산하기관이 관여했다는 걸 동네방네 알리고 다니지 말라는 얘기 밖에 더 되겠어요. 이런 만행 때문에 그 사업에 참여했던 분들은 사업비 다 반납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죠.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없다는 걸 확인한 씁쓸한 순간이에요. | 기민
▲‘2015 성북무지개한마당: 함께 사니 참 좋다’ 진행 모습
지난 8월에 있었던 ‘성북구 청년·대학생 성소수자 집담회’는 성북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청년들과의 만남을 가진 소중한 자리였다. 지역에 살고 있는 성소수자-비성소수자에게 줄 수 있는 생활 팁을 마련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진행한 모임에서,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로 당사자성과 현재성에 기반한 성소수자로서의 이야기를 쏟아냈다고 한다. 이 또한 지역 거점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하나인 동시에, 세대와 성별을 넘어 함께 어우러져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걸어본다.
모임 자체도 서울시NPO지원센터로부터 지원 받았고, 장소도 상징적으로 성북구 인권센터가 입주해있었던 안암동 주민센터로 잡았어요. 성북구에서 안암동 주민센터를 인권 친화적인 공공청사로 만들고자 리모델링을 했었고, 처음에는 인권센터도 안에 입주해 있었거든요. 지금 인권센터는 다시 본청으로 들어갔지만, 상징성은 남아 있으니까 예약 시도했는데 덜컥 된 거죠. 아무런 비용 들이지 않고. 성북구에서 관리하는 공공건물에서 성소수자들이 이런 얘기를 나눴다는 전례를 남겼으니 앞으로도 괜찮겠죠? [웃음] | 기민
생각보다는 지역 기반 활동에 대한 얘기를 끄집어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내가 그 지역에 살면서 활동하는 거랑 잠시 머무는 거는 또 다르잖아요. 생활권자와 거주자의 차이도 있었고, 게다가 요즘은 SNS가 워낙 발달해서 꼭 본인의 지역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구요. 그래도 각 학교에서 발행하는 간행물이나 곧 나올 마을잡지 같은 걸 속해 있는 곳에만 배포하지 말고 마을도서관, 각 기관 등에 놨으면 하자는 얘기 등이 나와서, 기회와 한계를 동시에 확인한 자리였죠. | 지성
▲‘성북구 청년·대학생 성소수자 집담회’ 모습 (출처: 페이스북)
점점 마을과 마을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온라인 공간의 활용과 생계에 따른 이동이 자연스러운 시대에서 자신이 거주하고 생활하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자체가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내가 어디 있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유동성이 너무나도 당연한 세태에서, 그럼에도 지역기반 운동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지역사회의 역동성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큰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제 올해 주력사업이자, 공동체의 첫 공동작업인 ‘성북, 무지개와 함께 마을잡지’는 11월 발행을 앞두고 있다. 다양한 논의 끝에 만들어보기로 한 마을잡지의 모습은 어떨지, 초반에 들어본 탄생 배경 외에 그 동안의 제작 과정과 소회가 궁금해졌다. 사실 요즘 마을잡지가 생소한 건 아니고, 성북구에서는 특히 기민님도 직접 참여하고 있는 성북동 마을잡지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지역 매체로서의 마을미디어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마을잡지는 무엇을 담으려고 하는 걸까?
우리 역량을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다들 자기 일 하면서 지역 활동하는 게 어렵다는 걸 깨달았지만 어떻게든 잡지는 나올 거구요. ‘띵동’ 등을 통해 얘기 들어보면, 2014년말 사건 이후 여러 가지 액션, 기자회견 등 우리 성소수자가 이 성북구에 살고 있다는 걸 알리는 활동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달라지는 게 별로 없고, 변화는 힘들다는 걸 느껴요. 그럴수록 뭔가 계속 더 해나가야 될 수밖에 없겠다는 자극은 계속 받고 있어요. | 지성
저랑 같이 지역 활동 하는 분들 가운데 올해 상반기에 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리신 분이 있거든요. 그분들의 혼인 신고서에 증인으로 서명을 해주었어요, 결혼식을 올리기 전 결혼선언문에 저에게 성소수자로서 어떤 문구를 넣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더라구요. ‘모두를 위한 결혼을 지지하고, 그게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 부부는 노력하겠다’는 발언을 부탁해서 실렸고, 결혼식장에는 무지개 현수막을 걸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그와 관련된 얘기도 이번 잡지에 담았고,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공동체주택의 입주자에게도 글을 부탁해 성소수자와 같이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싣기도 했어요. | 기민
어렵사리 시작한 마을잡지, 그 안에는 성북구에서 일어난 성소수자 관련 이슈들과 비성소수자를 위한 인권가이드, 성소수자 관련 생활정보, 당사자가 직접 창작한 작품 등 지역에서 살아가는 당사자인 성소수자와 지지자인 비성소수자의 이야기가 적절하게 들어간다고 한다. 마을미디어야말로 그 특성상 만드는 사람도 지역 주민이고, 보는 사람도 지역 주민인 만큼, 만들면서 서로 간에도 활발하게 교류하며 관계 맺음과 동시에 밖으로도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조만간 세상에 얼굴을 내밀 결과물을 기대해보기로 한다. (많이 찍지는 않을 예정이라 희소가치가 있다는 소문이!)
▲기민님이 증인을 선 지인들이 직접 준비한 마을 결혼식에 내걸린 현수막 (출처: 페이스북)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처럼, 함께 만들어낸 첫 결실을 앞두고 있는 이들. 잡지 제작이나 마을활동 자체가 처음이라 새롭고 소중한 마음이 들 수도 있고, 현재 상황에 맞게 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아서 뭔가 무리하게 추진한 건 아닌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큰 발걸음을 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성북마을무지개’가 나아갔으면 하는 길을 물어보았다.
가깝게는 지역에 있는 공공도서관에 성소수자 관련 도서를 구입 신청 및 배치하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작년에도 나왔던 아이디어인데, 일단 접근하기 쉽고 당장에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또 언젠가는 이 동네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작업으로 퍼레이드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장기적인 과제고 꿈같은 얘기이긴 한데, 망원동 ‘무지개집’이 생겼듯이 쉐어하우스나 공동체주택도 생기면 좋겠고, 따로 살되 서로 인접한 집들에 거주하면서 정말 이웃에 성소수자가 살고, 다른 이웃에는 비성소수자가 사는, 삶의 환경 자체가 성소수자 친화적인 동네가 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었으면 해요. | 기민
사실 마을잡지 만드는 걸 지금 우리가 해보니까 하나 하기도 너무 벅차서… 조금씩 하나씩 뭔가 소소하게 천천히 해보자고 마음먹고 있어요. 중요한 건 제가 성북구에 계속 살 것 같다는 거죠. [웃음] 성북구에서 태어나 살다가 독립도 성북구 내에 있는 임대아파트로 했고, 그래서 성북구를 못 떠나는 상황인 거예요. 공부나 일은 다른 지역에서 하고 서울시나 전국을 대상으로 활동하다가 이런 마을 모임도 갖고 ‘띵동’에 자원 활동도 시작했는데, 좀 더 배워보고 싶고 잘 꾸려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구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같이 해 나가면서 키워봐야 할 것 같아요. | 지성
결국에는 각자가 발붙이고 사는 이 땅 위에서 ‘마을잡지 제작’ 같은 공동작업이 구심점이 되어 작은 꿈을 하나하나씩 키우고, 따로 또 같이 살아가며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주민공동체로서 ‘성북마을무지개’를 더욱 빛나게 하는 포인트라고 여겨진다. 각자의 존재들을 지지해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환경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안전함과 평안함을 가져다주지 않을는지.
▲‘성북마을무지개’가 속한 성북구 내 연대체인 ‘성북무지개행동’의 2015 아이다호 행사 참가 모습
가족/공동체의 기능이 구성원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소속감과 안정감을 가져다주고,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공동의 목적을 가지는 개념이라면, 주민공동체 또한 비슷한 형태로써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각자가 속해 있는 원가족의 테두리나 기존 소속단체의 이념을 뛰어넘어, ‘성북마을무지개’라는 공동체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또 다른 무언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공동체라는 말 자체도 최근에 생긴 것 같아요. 기존에는 가족이라는 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그냥 태어나서부터 평생 없어지지 않는 정체성 중 하나였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보면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가족이라는 단위의 구속력이나 표식이 점점 더 약해질 거라고 보는데, 그렇다고 사람들이 어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소속되지 않고 온전히 개인으로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거든요. 더 이상 예전의 기능을 발휘하기 힘든 가족이라는 존재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혼자 살 수 없다는 간극을 공동체가 메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가치와 지향점, 목적 등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지역 기반이든, 아니든 공동체는 계속 늘어날 것 같아요.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 기민
이미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있고,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자신이 고립되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방법을 고민하고 능동적으로 찾는 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가족이라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기득권’을 넘어 공동체라는 ‘스스로 노력해서 쟁취해내는 취득권’을 위해 노력한다면 개인의 삶에 있어 내용이나 방향 또한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민은 말한다. 반면 지성은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성북마을무지개’ 사람들과의 인터뷰
공동체라는 구성은 좋은데, 모임의 유지나 지속적인 운영 등 구조적인 측면에서 저는 아직 회의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공동체 안에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서로 부딪혔을 때 이상만큼 잘 해결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건 공동체만 으쌰으쌰 해서 될 것도 아니고 사회 인프라, 구성원들의 의식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한 것 같거든요. 하지만 희망은 당연히 갖고 싶죠. 이제 마을활동을 시작하면서 만난 분들이 우연히도 보면 기존부터 활동하던 마을활동가였어요. 평생 살았지만 사실 몰랐던, 마을에 관한 다양한 역동들을 듣고 나니 그 전과 후의 마을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요. ‘띵동’이라는 단체가 주는 느낌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기도 해요. 이전에 내가 다른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이 성북구가 이제는 그 성북구가 전혀 아닌 거죠. | 지성
바쁜 삶 가운데 우리는 막상 가까운 주변에 관심을 두기가 힘들지만, 조금만 더 눈을 돌려보면 다르게 다가오는 마을의 모습, 이웃의 면모들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다. 마음가짐에 따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그 시선이, 그리고 그러한 시선이 모이고 모아 모임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부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견고하게 이어졌으면 하고 바랐다.
어딘가에 존재할, 주민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되게 지난한 과정일 거예요.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도 않고.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데요 뭐. [웃음] 같이 으쌰으쌰 마음을 모으고 뭔가 해나간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 근데 중요한 건 시작했을 때 분명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요. 그 마음을 계속 간직해나가면 좋겠어요. 초심을 유지하면 가끔은 모임이 어렵고 힘들어도 어떻게든 계속 갈 것 같거든요. | 기민
제가 은평구에서 직장생활 할 때 봤더니, 마을활동이 엄청 활발하더라구요. 살림의료협동조합이라는 존재가 중요한 발판이 되어 마을 사람들을 엮고 조직하는 모습을 봤거든요. 그걸 옆에서 보면서 우리 마을에도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제가 ‘성북마을무지개’ 활동을 하는 데에는 그런 욕구도 있는 것 같아요. 마을 내에서 발생하는 역동과 다양한 네트워크가 좋아 보였고, 그래서 롤 모델이 되게 중요한 거죠. 저에게는 그 은평구에서의 관찰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성북구에서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갖게 하거든요. 같이 무언가를 하면서 서로 배우며 함께 커 가는 형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성소수자라는 모토를 가진 모임이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이 마을, 저 마을 등에 있으면 되게 다른 느낌일 것 같아서요. 같이 합시다! | 지성
두 사람의 기대처럼, 지역 곳곳에 비슷한 모임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들이 이런 모임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살아온 환경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新 가족의 탄생> 연재 순서
#01 사랑에 차별이 있나요 – 레즈비언 부부 '낮잠과 유다' 이야기
#02 무지갯빛 마음이 모여 사는 곳 – '무지개집' 사람들 이야기
#03 별처럼 반짝이는 인연을 맺다 – 게이 부부 '플플달 제이&크리스' 이야기
#04 닮은 듯 다른, 믿음 안의 사랑 – 퀴어 커플 '도플+갱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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