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0월 |
---|
[커버스토리 ‘군대’ #2]
존재와 정체성을 위한 시험대, 양심적 병역거부와 군 복무에 대하여 -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성소수자 '이정식'님 인터뷰
대부분 한국 남성들에게 피할수 없는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것, 바로 '군 복무'입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면 군대는 다녀와야지 않겠나"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신념으로, 또한 다양한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병역법에서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제88조 제1항)''라며 병역거부자들에게 죗값을 매기고 감옥에 보냅니다. 하지만 그들은 과연 죄인일까요?
지난해 유엔 자유권위원회를 비롯해서 다수의 유엔 인권 기구들이 수차례 한국정부에 권고한 것처럼,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하면 될텐데 말이죠.
마침 병역거부에 대한 항소심에서 처음으로 무죄판결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이에 소식지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2009년 양심적 병역거부 후 수형생활을 한 '이정식'님을 만나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정식님이 참여한 '국민연금, 확산탄, 그리고 당신 - 확산탄 반대' 캠페인(2013)
우선 이렇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성소수자’라는 타이틀롤로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처음 인터뷰 요청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 사실 인터뷰할 만한 다른 친구가 있긴 한데, 이전에 관련해서 글도 쓰고 인터뷰도 해서 비슷한 말을 하긴 힘들었을 것 같아 나에게 들어온 것 같다. (웃음) 솔직히 얘기하면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당사자에게 경험 같은 걸 듣는 것도 좋지만, 주체는 관련 단체 상근활동가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인터뷰는 그 친구들이랑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말씀하신대로 병역거부를 주제로 얘기를 담아보고 싶었는데, 독자들이 보고 듣고자 하는 바를 생각해보니 당사자의 입으로 병역거부에 대한 생각과 관점을 실감나게 듣는 게 좋다고 판단해 섭외하게 됐다.
정식님은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마음먹게 된 게 벌써 6년 전(24살)인데, 그때 그 기억을 더듬어서 어떤 마음으로 병역거부를 하게 된 건지 알려 달라. (‘전쟁없는세상’ 누리집을 찾아봤는데, 2009.10.13. 입영예정일에 병역거부를 밝혔음.)
- 그때는 정말 말 그대로 거부였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준비할 시간도 없이 병역날짜 나오는 거 자체가 일방적인 통보인 것이다. 화도 나고, 아무 생각도 안 나서 그냥 ‘내가 왜 가?’라는 마음으로 날짜 연기를 했었다. 사실 병역거부라는 개념도 몰랐고 그런 운동에 대한 관심도 없었는데, 주변에 물어봤다가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단체를 소개받아 정보 등을 얻었다.
준비가 안 됐다고 하셨는데, 사실 대한민국에 일반적인 24살 남성이라면 군 복무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하게 되지 않나.
- 에피소드가 있는데, 처음 신체검사를 했을 때 3급 판정을 두 번 받았다. 10대들이 성정체성 혼란을 겪으면 기존의 사회망이 무너지는 것처럼, 나 역시 가출청소년 쉼터에서 생활하는 등 방황을 했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게이인지, 아니면 트랜스젠더인지도 잘 몰라서 수술까지 생각할 정도의 성정체성 혼란으로 인한 부적응, 우울감 등으로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았는데, 그래서 현역으로서 군 복무는 힘들지 않을까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3급 판정을 두 번 받아 확정된 후에는 신검 그만 받겠다고 했는데, 대체복무에 대한 메일도 받으면서 '내가 군대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계속 했다. 결국엔 군대를 가기 전에 내가 나와 내 환경을 이해하고 자세하게 알아가는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입영날짜를 통보받으니 당황했고, 병무청에서는 정체성 혼란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고 생각하니 화도 났었다. 한 사람의 삶의 시간을 누가 감히 허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가에 대한 반감이었던 것이다. 바로 병무청에 전화했고, 그 쪽에서는 "어..? 그래도 한 번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하더라. (웃음)
그 후 자연스럽게 따라온 게 수용소 생활이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병역거부 자체보다 1년 2개월 15일의 빛 없는 교도소 생활이 끔찍했다’고 고백한 걸 봤는데,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
- 뭔가 인터뷰에서 극적으로 표현한 게 있는 것 같다. (웃음) 처음 일주일 정도는 완전 힘들었다. 마침 그때 신종플루가 유행해서 신규 수용자들을 일주일 동안 독실에 격리시켰다. 성인 남성 두 사람이 발 뻗으면 꽉 찰만한 공간에 천장엔 곰팡이가 피고 너무 작은 화장실이 딸린 열악한 환경에서 혼자 지냈는데, 밥이 안 넘어가더라. 그 이후에는 외부와의 통신이 차단돼서 답답함과 무서움을 느끼긴 했는데, 3주 정도 후에는 적응돼서 그런지 행복했다. 사람들에게 쫓기는 것도 없었고, 조용히 내가 읽고 싶은 책 읽으면서 생각을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국가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교도소라고 생각한다. 사실 일상적으로 CCTV나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 등 통제를 많이 받고 있는데, 그런 면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교도소니까 '이게 사람 사는 곳의 실체구나'라고 생각하니까 되게 마음이 편해졌다고 해야 되나. 그리고 무엇보다 수감자 분들이 너무 잘해줬다. (웃음)
뭔가 얘기가 생각과는 다르게 극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웃음) 정말 힘든 게 전혀 없었고 행복했나.
- 아마 병역거부로 수형생활 한 사람들 중에서는 내가 제일 잘 지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배제되고 어딘가 고립된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교도소라는 공간이라고 해서 별다를 게 없었다고 할까. 교도소에도 사람들이 있고 뜻 맞는 사람들과는 정서적 교류도 하고 그랬으니까.
실은 대전교도소에서 논산구치소로 이감이 됐는데, 그거 자체가 성정체성 때문이었다. 병역거부한 사람들은 수형자들 중에서 2급 정도(모범수가 될 가능성이 높고, 초범이며 경범죄)의 등급을 받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내게끔 하는데 나는 혼거를 안 시켰던 것이다. 성정체성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겠냐는 우려로 그랬던 것 같은데, 교도관들은 감시나 사고 방지를 위하는 데 있어서 수형자들을 그저 '범죄자'로 바라본 것이다. 노역사동 2인실에 혼자 있으면서 기다려보자고 마음먹었다가 갑자기 논산구치소로 이감됐는데, 어떤 한 교도관이 기존 수형자들에게 제 정체성에 대해 미리 얘기를 해버려서 아웃팅을 당한 상황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불쾌하고 불편했는데, 거기서도 혼거를 안 시켜주니까 명절 때는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외로웠다.
그거야말로 힘들었던 일 같은데, 결국엔 행복했다니 뭔가 반전이 있나 보다.
- 그럴만한 사건이 있었다. 논산구치소는 모범수들만 있는 곳이라 1년에 한두 번 정도 가족들이 면회 와서 식사할 수 있었다. 그렇게 2시간 정도 즐거운 시간 보내고 들어왔는데, 갑자기 알몸검신을 하려고 한 것이다. 구치소 내에 반입 안 되는 물품을 가족으로부터 받아 올 수 있지 않는가라는 의심으로 시작된 것인데, 너무 열 받아서 검신 안 받겠다고 얘기했다. 수형자의 가족들을 다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는데, 논산구치소장이 마침 불러서 지금까지 있었던 부당함을 다 얘기했고 모든 수형자들에게 사과하시라며 사과까지 받아냈다. 면회 시 접견시간도 기존에 12분 정도였던 제한시간이 20분 이상으로 늘어났는데, 그 뒤 난리가 난 것이다. 수감자 분들이 제 방에 막 빵 던져주고 이것저것 막 퍼주고 했다. (웃음) 다른 수형자들과 혼거도 하게 됐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성소수자로서 알몸검신을 당한다는 게 외부로 알려져 이슈로 번지는 것에 대해 교도소 측에서 부담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상황이 반전돼 후에는 이쁨도 받고 편하게 지내다 왔다. 수형자 분들 중에서도 괜히 병역거부에 대해 시비 거는 사람도 있었고 너무 잘해주는 착한 형, 동생도 있었다. 심지어 썸도 탔다. (웃음)
뭔가 얘기 들으니 군 현역 생활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출소할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
- 그냥 '아 이제는 때가 됐구나.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뭔가 나가면 또 무언가를 해야 하고 가족들 얼굴 봐야 하고 했던 게 좀 두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면, 예전으로 돌아가도 병역거부에 대한 마음은 변함없는지.
- 마음은 똑같은데, 오히려 생활은 군대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웃음) 대체복무 같은 경우 지금도 내가 한 달간 훈련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고, 무엇보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으면 거부하게 되지 않을까. '양심'이라는 말도 어쩌면 되게 불필요한 말이고 쓸데없는 논쟁이 아닐까 싶다.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각 개인에게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부에 대해 생각하는 거 자체가 한 개인이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혹시 출소 이후 불이익을 당하거나 소외·배제 등 사회적 차별 경험을 들은 게 있으신지 궁금하다.
- 직업이나 관계 특성상 주변에는 없기는 한데, 이것 또한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장애인 활동보조를 4년 정도 했는데, 항간에서 하는 말이 '장애인도 돈이 있으면 장애인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있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시설에서 생활했고,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었고, 그 당시엔 휠체어도 여러 명이 돌려쓰던 때였고, 집에서 생활한다 해도 밖에 나가기 힘든 구조였기 때문에 불편함을 겪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결국엔 범죄기록이 있는 병역거부자도, 장애인도, 성소수자도 한 개인의 문제로 차별을 받는 게 아니라 사회적 환경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인 것이다. 오히려 병역거부를 정치적 이력으로 활용하려 하는 데 뜻대로 안 돼 힘들어하는 걸 보긴 했다.
▲ ‘2016 세계병역거부자의날’을 맞이해 열린 캠페인 (2016.5.14., 출처: 앰네스티)
이제 성소수자의 군 복무와 관련해서 좀 더 살펴보려고 한다. 사실 2006년 군대에 동성애자임을 밝혔다가 강제 채혈을 당한 한 병사의 사건을 계기로 국방부에서 그해 4월 1일부터 동성애자 식별 행위나 기록 행위, 신체적·언어적 폭력행위를 금지하도록 하는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지금은 부대관리훈령 제7장 ‘동성애자 병사의 복무’ 중 252조~257조)을 시행 중이라고 한다. 이런 훈령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 우선 형식적인 보여주기식 교육만 아니라면, 교육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인권이란 건 내가 타인에게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라는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건데, 그러려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알아야 하고 그 사람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정체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해서 강요하는 교육보다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 한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의 교육은 지속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훈령과 교육이 있으면서도 또한 제일 논란이 되는 건 군형법 제92조의6((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이다. 국내에서 동성애 행위를 처벌하는 유일한 법이라는 말도 있는데, 얼마 전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군대에서 이 법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 군대 내에서 어떤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군형법이 있다고 해서 군대 내 성폭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자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며, 성폭력이 일어나도 쉽게 신고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닌데 말이다. 단지 군대 특유의 남성성의 문화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나오는 게 양심적 병역거부이긴 한데, 이에 대한 논란도 사실 여전하다. 악용 소지도 있고, 특히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기도 한 것이다. 통계를 보니 1950년부터 현재까지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사람이 18,000여명이고, 매년 600~700명씩이라고 한다. 이처럼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계속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문제가 있는데 국가에서는 왜 대체복무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는지, 알기로는 10만개가 넘는 대체복무제 자리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아까 신검 당시 병무청으로부터 먼저 대체복무제와 비슷한 걸 제안을 받았다고 했는데, 이처럼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얘기하기도 하고, 얼마 전 한 정치인은 모병제 전환을 언급하기도 했다. 만약 대체복무제나 모병제가 도입되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비율에 영향이 있을까.
- 실은 대체복무제를 하면 한 달만 훈련 받고 나와서 편하게 복무할 수 있었고, 형이 비슷한 유형의 방위산업체에 사무직으로 일해서 편리하게 다닐 수도 있었던 터라 일주일 정도 후회했다. 상상도 못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웃음) 대체복무제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잠깐 말이 나오긴 했는데, 북한을 주적으로 보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는 한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병제도 어려울 것이다. 대체복무도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거부를 한 사람들에게 대체복무랍시고 칼이나 총을 쓰는 일을 시킨다면 그게 되겠나.
▲2005년 7월, 런던 퀴어퍼레이드의 한 장면 (출처: 전쟁없는세상)
일부에서는 한국 내 군복무 제도가 강제징병제이고, 상명하복식 군대문화에 대한 반감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기도 한다. 현재 가장 개선이 시급한 군대문화는 어떤 거라고 생각하는지.
- 군대에만 국한된 건 아니고, 군 입대를 한 개개인에게 필요한 부분인데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한 여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집단에서든 정부의 제도나 시스템에 대해서 한 개인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건지, 사실 군대 내에서 뭘 해봤자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고, 사건사고 얘기하자면 끝도 없지 않나. 계속 생각하고 질문하려고 하는 태도가 더 필요하다. 결과적으로는 교육시스템에 대한 문제이기도 한데,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은 누군가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과는 거리가 멀다. 공감능력을 키우는 걸 아이들이 알 수 있도록 한다면 서로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나 자기와는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군복무에 대한 문제는 일반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MTF트랜스젠더, HIV감염인에게도 큰 이슈일 수밖에 없다. MTF트랜스젠더 분들 중에는 헌법소원을 통해 병무청의 군복무 집행 취소 소송을 하기도 한다. HIV감염인 또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군복무에 배제되는 것 자체가 예민할 수밖에 없을 텐데, 당사자로서 보시기에는 어떤가.
-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군대라는 조직과 군 복무라는 시스템 자체가 한 사람, 한 시민, 한 개인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강요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러면 어쨌거나 한국에서는 군대가 정상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가야만 하는 곳으로 인식되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 부분으로 인해 이슈가 되는 것 자체가 한 개인에게는 엄청난 폭력인 것이다. 군대를 빨리 해체하는 게 답이 아닐까. (웃음) 전세계에 군비 지출이 세계 10위권이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걸 보면 군대야말로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사회악이다.
계속 얘기 나왔지만 군대 내 인권침해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고, 또 괴롭힘으로 인해 자살이나 사망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 그래서 일부에서는 ‘반군사주의운동’을 주장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군사주의는 엄격한 젠더 규범을 영속시킨다’는 등의 이유로 퀴어운동과의 연계성을 얘기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반군사주의운동’과 ‘퀴어운동’은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것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연결고리가 있듯이, 한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겪는 취약한 문제들이 본질적으로는 비슷하다. 이주민, 노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시선, 그 기저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다 깔려있다. 그래서 유사한 처지의 소수자들 사이에서도 벽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소수자 권익보호 단체들 간의 연대도 이러한 걸로 봤을 때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단지 공동성명서에 단체 이름만 올리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찾는 게 더 필요하고 힘을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거 할게, 너네는 이거 해' 이런 식의 역할분담이 아니라, 같이 뭔가 갈 수 있는 지점을 찾고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하는 게 어떤 집단이든, 어떤 운동이든 필요한 게 아닐까.
2003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병역거부 선언한 임태훈님(현 군인권센터 소장) 이후, 많은 성소수자들이 저마다의 명분으로 병역거부를 하신 걸로 알고 있다. 사실 성소수자 모두가 성적 지향을 근거로 전면에 내세워 병역거부를 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작용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군입대를 앞둔, 성정체성과 가치관의 충돌로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소수자로서 법적이나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 주장하고 증명하며 많은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것 같다. 아까 얘기했듯이 '거부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과 맥락이 다를 수 없는 것이다.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면서 권리를 쟁취해 가고 싶다면, 거기에 병역거부까지 고려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되게 좋은 시간이자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준비는 필요한데, 성소수자 병역거부자로서 수형생활을 하고 온 선배들에게 얘기를 미리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사실 정식님은 ‘노랑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시면서 2014년에 ‘4+HIV 감염 토크 콘서트’, 공연 <한 이불 덮고 만져줄게> 등 HIV감염에 대한 이슈를 많이 다루시고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이후에는 뵙기 힘들었다.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면 알려달라.
- 우선은 제일 중요한 얘기, 즉 '평화'에 대한 부분을 빼놓은 것 같다. 평화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이 조용하고 고요하고 수동적인 인간상 등을 떠올리는데, 평화주의가 뭔가. 내가 생각하는 평화는 잘 싸우고 잘 화내고 잘 욕해야 쟁취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에 얘기했던 '거부할 수 있는 권리'에 덧붙여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중요하며, 우리가 그동안 배웠던 인간에 대한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잘 싸워나가는 거, 이게 사실 평화이다.
끝으로 계획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잘 사는 것이다. (웃음) 실은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병역거부 이전으로 마음이 돌아간 상태다. 병역거부로 수형생활 마치고 나왔을 때는 사람으로서 회복된 느낌을 받고 나왔는데, 요즘은 사람들로부터 피로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뭔가 고립시키는 것 같다. 약간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고 해야 하나. 요즘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쉽지 않긴 한데 되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도 종종 얼굴 비춰달라.
- 알겠다. 시간되면 책읽당에도 나가고 싶다. 아무튼 인터뷰 감사드린다.
* 소식지에 관한 의견이나 글에 관한 피드백, 기타 문의 사항 등은 7942newsletter@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 소식지 정기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해당 게시판에서 신청해주세요. ☞ 신청게시판 바로가기
*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친구사이의 활동을 후원해주세요. 후원참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