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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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게 가족이다
- 한국 첫 동성혼 신청사건 각하 결정에 부쳐
[가족의 정의]
최근 있었던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우리나라 첫 동성혼 신청사건 각하 결정에 부쳐, 우리사회에서 ‘가족’의 정의와 의미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족 문화’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고 더 이상 한 마디로 ‘가족’이라는 단어를 정의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규범적이고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 아니라, 저마다 자신들만의 의미를 찾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우리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가족’의 의미는 각기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이를 ‘가족’이라고 부르는 등 모든 ‘가족’에는 어떠한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전적으로 가족이라는 단어는 혈육들로 이루어지는 집단을 뜻했다. 부모와 그들의 자녀들이 함께 사는 경우 또는 같은 조상을 공유하는 후손들의 집단 등처럼 말이다. 이러한 정의는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시작점은 될 수는 있지만 우리사회의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함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은 결혼대비 이혼율 47%로 미국과 함께 전세계 최상위권이다. 이혼 후 혹은 애초에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자녀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도 많다. 자녀를 가지지 않기로 결정한 부부들도 많다. 신체적·정신적 장애나 의료적인 이유 또는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자녀를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하는 부부들도 많다. 혼자 살기로 결정하는 비혼주의와 1인 가정이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우리사회에서 법적으로 인정,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동성부부들도 많다. 매년 결혼하는 커플들 열 커플 중 한 커플 정도는 국제결혼이다. 2005년은 전체 결혼 중 13.6%로 가장 많은 국제결혼이 있었고 이후로는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현재 우리사회의 국제결혼 비율은 전체 결혼의 8-9%정도를 차지한다. 이렇듯 우리사회 가족의 모습은 획일적이지 않다. 현대사회에서 한 여성과 한 남성이 부부가 되어 자녀를 낳고 두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것만이 올바르고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라는 ‘완전가족중심주의’와 ‘정상가족’에 대한 환상은 이미 허구가 되어버렸다.
[가족의 재정의]
‘피가 섞이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가족이 될 수 있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던 2006년 5월에 개봉한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 나온 말이다. 10년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 불편해했고 또한 동시에 신선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어떨까? 제도적으로나 법적으로 바뀐 것은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 가족의 의미는 많이 변했다. 사람들은 무조건 전통적이고 사회적 규범에 맞는 사전적 의미의 가족을 구성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기준을 만들어서 가족의 의미를 확장하고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정말 아름답고 화목한 가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악몽 같은 가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각종 폭력과 억압을 견디며 살 필요는 없다.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고 싶어 하고 다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이러한 가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피는 물보다 진하다’ 등의 말은 매우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
반대로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결혼 또는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가족의 형태라고 해서, 서로 사랑하고 지지하고 아껴주며 헌신하면서 함께 살기로 한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는 이미 많은 커플들이 법적 인정 유무와 상관없이 함께 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 파트너십, 시민연합 등의 이름으로 함께 생활한다.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이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가족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가족이란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태어날 때는 부모와 가족을 선택할 수 없었지만,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시도해 보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도 좋고, 새롭고 특이한 형태의 가족도 좋다. 내가 가장 편하게 느끼고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가족의 모습을 만들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를 위해주고 아껴주며 헌신하며 함께 살겠다고 하는데, 내가 원하는 사람과 함께 가족을 이룰 ‘가족구성권’을 반대할 수 있는 합당한 논리와 이유는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유일하고 올바른 또는 건강한 가족상이란 없다.
[부부에 대하여]
다양한 가족의 형태 중에서 오늘은 동성부부(이하 ‘부부’ 또는 ‘서류상 동성인 부부’라 한다. 단, 인용구에서는 그대로 사용한다. 다양한 성 정체성을 포괄하지 못하는 협소한 의미의 ‘동성부부’나 타자화하는 느낌의 ‘성소수자부부’라는 언어를 대신하여 그저 부부일 뿐인 그들을 ‘부부’로 칭하려 한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다. 필자의 석사과정 지도교수님은 스스로를 백인, 남성, 가톨릭, 게이로 정체화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10년 이상 된 애인이 있었다. 그는 애인을 ‘파트너’라고 불렀으며 둘은 부부로 함께 살고 있었다. 자녀도 한 명 입양했다. 흑인 남자 아이인데 정말 활달하고 귀여웠다. 그 가족은 정말 행복하고 화목해 보였다. 그들의 삶은 다른 어떤 부부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맞벌이 부부였고 저녁과 주말에는 살림을 나눠서 했으며 식사를 함께하고 함께 웃고 떠들었다. 다른 여느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건강, 돈, 여가생활, 자녀교육 등의 비슷한 걱정들을 하며 지냈다. 내가 그 가족과 교제를 하며 지낸 것은 2011년부터 2013년으로, 2015년 미국의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평등결혼)’이 법제화되기 전이었다. 법적인 부부로 인정받지 못해도 부부로 그리고 가족으로 함께 사는 모습은 동일했다.
[법적 보호]
우리사회에서 ‘합법적인’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형태로 서류상 동성인 부부가 있다.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받든 인정받지 못하든 서로 사랑하며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면, 왜 지금처럼 동거하며 함께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굳이 ‘결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게다가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 있는 ‘이성커플’들도 결혼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말이다. 일단,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누군가는 당연히 누리는 권리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차별과 억압이라고 부른다. 우리사회에서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부부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 살펴보자.
작게는 휴대폰 요금제부터 시작해서 세금과 보험 등을 가족으로 묶을 수 없기 때문에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직장이나 민간서비스 영역 등에서 배우자의 지위를 얻지 못한다. 국민건강보험상의 피부양자의 지위를 얻지 못한다. 이 말은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을 모두 각자 따로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배우자가 죽은 후에도 유족 또는 가족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보험이나 연금을 수령할 수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상속권이 없으며 유언을 통해서 상속을 받는 경우에는 상속세나 증여세를 감액 받을 수 없다. 둘은 법적으로 인정 받는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둘 사이에 폭력이 일어나더라도 ‘가정폭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신혼부부 국민임대주택, 장기안심주택, 전세자금지원 등 각종 신혼부부 지원 제도와 혜택에서 배제된다. 아이를 공동의 명의로 입양할 수 없다. 게다가 의료법상의 권리가 없기 때문에 수술 동의서에 배우자로서 서명을 할 수 없고 수술실이나 면회실에 출입이 되지 않는 등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줄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말하지 못함’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숨겨야 하고 부부라고 말하지 못하고 가족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아픔이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연구 결과]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리 배지트의 책,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에 보면 서류상 동성인 부부의 법적 인정은 그 사회의 경제적인 혜택을 가져온다고 한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동성 결혼권’ 발표 후에 결혼율이 완만하게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서류상 동성인 부부들이 새로운 양육계층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들을 통해 이 커플들이 결혼비용, 입양을 통한 자녀 양육 비용 등의 지출을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경제적인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질 뿐 아무도 경제적 손해를 입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성 커플 당사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더 나은 경제적 선택들을 하게 되는데 이는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은 성소수자들의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고 경제적 생산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인다.
이들이 결혼을 하고 함께 사는 것까지는 인정할 수 있지만, 자녀 입양하고 양육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이들 부부의 자녀 입양과 양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런 우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이들이 자녀를 양육하면 그 자녀들이 성소수자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성소수자들은 ‘이성애자’인 부모들 사이에서 나왔으며 길러졌다. 그리고 평생을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에서 자랐다. 이는 부모와 환경이 그들의 성별정체성이나 성지향을 결정짓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최근 발단행동소아학저널(The Journal of Developmental & Behavioral Pediatrics)에 실린 연구를 보면, 동성부부에게서 길러진 아이들과 이성부부에게서 길러진 아이들 사이에서 정신적·육체적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그 어떤 차이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콜롬비아 로스쿨에서 진행한 왓위노 프로젝트(What We Know Project)에서는 ‘동성부부가 그들의 자녀들에게 그 어떤 나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논문을 73개나 발견한 반면,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낸 과학적 논문은 단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다.
['동성커플'을 위한 3종 세트]
성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는 한 사회의 인권지수를 나타낸다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도 하루 속히 '동성커플'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모두를 포함하는 사회로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부부들에게 가족구성권연구모임 한가람 변호사는 좀 더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추천하고 있다. 사전의료지시서와 후견계약, 그리고 유언장이다. 이 세 가지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은 부부들은 꼭 더 자세히 찾아보고 온·오프라인을 통해서 한가람 변호사와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기를 추천한다.
한국다양성연구소 / 김지학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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