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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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정치' #1]
20대 총선, 투표장 안에서 커밍아웃할 준비되었습니까 -
평등을 위한 한 표, 레인보우보트1)
▲레인보우보트 유권자 선언 참여현황
가끔 제가 사는 동네에 성소수자가 몇 명이 살고,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이 존재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없고 이를 적대시하는 차별선동세력이 힘을 키워나가는 상황에서 통계청 인구조사에 개인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묻는 질문이 포함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할 때나 어림잡아 알 수 있을까요? 숫자가 곧 어느 한 집단의 힘이라고 했을 때 그 힘에 따라 움직여지는 선거에서 성소수자는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지역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후보들이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공약을 제시하지 않고 선거 시기 잠깐 등장하는 그 흔한 약속도 없는 것은 성소수자 주민이 있다는 상상도 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인권이슈가 당선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레인보우 유권자 선언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지 드러내고 혐오에 투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저도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을 체크했습니다. 현재까지 등록한 사람이 60명, 전체 유권자의 0.01%입니다. 너무 작은 숫자지요. 하지만 그 숫자의 변화를 확인하고 매일매일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출퇴근길 스치듯 만났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60명이나 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테러방지법을 막겠다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있을 때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보수교계 주최로 개최된 국회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목사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관련법을 막겠다는 ‘차별선동 동맹’을 약속했습니다. 박영선 의원은 한 술 더 떠 목사님들이 걱정하실 일 만들지 않겠다, 누가 이런 법 통과시키겠냐고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당 은수미 의원이 “국민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고, 진선미 의원이 “국가의 의심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고 언급하며 테러방지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이라고 연일 강조하는 상황에서 혐오와 차별이라는 테러를 무차별적으로 성소수자들에게 가했습니다. 박영선 의원과 김무성 대표는 레인보우보트가 진행한 성소수자 혐오에 앞장선 12명의 정치인 투표에서 혐오 중의 혐오 정치인으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습니다. 국회 회기가 더할수록 세상은 조금씩 더 나아져야 하는데, 차별금지가 아니라 차별선동이 자리 잡고 있고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이 아니라 혐오가 그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이 더 나아지고 혐오발언과 폭력에 제재를 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양당 지도부는 차별에 침묵하는 것을 넘어 차별금지법을 서로 제정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 각 당에 보낸 ‘성평등 사회를 위해 요구되는 핵심 젠더과제’ 응답에서도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이 더불어민주당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차별금지 항목이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유보하겠다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소수자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 없고 성소수자들이 벼랑 끝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손을 잡아주는 정치가 아니라 밀어내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19대 국회에서 탈동성애를 선전하는 포럼, 동성혼‧차별금지법을 막겠다고 개최된 토론회와 같은 행사가 아홉 번 이상 개최되었습니다. 행사장에 직접 참여해 축사며 기념사를 한 국회의원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목사들 앞에서 동성애를 반인륜, 비도덕, 비정상, 패륜으로 묘사하는 정치인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한 입법 활동은 낙제점입니다. 김한길, 최원식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보수교계의 압력에 밀려 2개월 만에 철회되었고, 유승민 의원이 발의한 인권교육지원법도 비슷한 운명이었습니다.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안은 법사위에서 단 한 번 논의되었을 뿐입니다. 성소수자 인권을 조금이라도 언급하려고 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낙선 협박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안을 대표 발의했고, 생활동반자법을 준비했던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출마지역 대형교회의 압력으로 2016년 1월 국회에서 개최되었던 주민등록번호 개편방향 토론회 공동주최자에서 빠지게 되었고, 같은 당 김광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출마하는 지역민과 교인들을 대상으로 카카오톡 단톡방을 만들어서 동성애를 조장하는 낙선대상 1번 김광진 영상이 계속 전달되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어려움을 호소한바 있습니다. 혐오와 인권이 공존하는 국회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혐오세력의 강압과 폭력적인 태도로 인권의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19대 국회와 성소수자인권 관련 내용(출처: 무지개행동)
드러내기의 힘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되고 인권정책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을수록 반 성소수자 세력의 저항은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인권교육지원법‧군형법 제92조의6 폐지안이 발의되는 과정에서, 성북구 주민인권선언이 선포되는 자리에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과정에서, 서울시민인권헌장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사업을 성북구에서 집행하는 과정에서, 대전시 성평등기본조례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확인했듯이 그들은 숫자로 밀어붙이고 있고, 그들이 가진 돈, 언론, 권력을 통해 자극적이고 왜곡된 정보들을 퍼트리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이 공적 공간에서 이야기되는 매 순간들마다 정치인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교회지도자가 등장했고, 차별금지법 입법저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라는 밀약이 체결되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 동성애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낙선’이라는 협박에 의지가 있는 정치인들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인권거버넌스의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지금은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반문합니다.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성적지향 차별금지 조항마저 호시탐탐 삭제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습니다.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집요하게 방해하고,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을 ‘더러운 좌파’로 분류하며 모욕하는 지금은 성소수자 혐오 절정의 시대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드러내기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주요 전략 중 하나입니다. 성소수자 차별선동세력과 첨예한 갈등을 일으켰던 현장을 생각해 보면 퀴어문화축제처럼 공적공간에서 성소수자들이 가시화될 때, 인권헌장과 인권조례처럼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금지 항목이 명시적으로 표현될 때 반발도 훨씬 컸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드러내기는 과거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전략이라기보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오히려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국가와 지방정부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할 것입니다. 정면승부보다는 침묵하거나 비껴 설 가능성이 더 많아졌습니다. 데일만큼 데였고, 잘 못 건드리면 큰 코 다친다는 소문이 팽배해 있을 거라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직접 정치권의 입에서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합니다.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혐오로비에 맞서 국회를 찾아다니며 입법대응을 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한 쪽에서는 탈동성애포럼이 대관되고 그들에 입맛에 맞춘 인사말과 축사를 전하는 의원이 있는 한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적 변화는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가시화도 전략을 달리해 성소수자가 여기 있다가 아니라 성소수자도 힘이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때입니다.
평등을 위한 한 표, 레인보우보트(RAINBOW VOTE)
▲2016.3.8 레인보우보트 발족 기자회견
성소수자 인권단체는 그동안 꾸준히 선거대응을 해왔습니다. 질의서 발송, 정책토론회 개최, 정당과의 정책연대, 유권자운동, 정책요구안 언론기고, 반차별선언 참여요청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진보, 개혁적인 후보를 제외하곤 (때로는 이들 후보조차도) 질의에 대한 답변은 쉽게 무시되기 일쑤고 사람취급조차 하지 않았던 태도를 보인 적도 너무 많습니다. 그 사이 성소수자 혐오는 커졌고,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야 살아남는 정치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유권자, 지지자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레인보우보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을 무시하지 않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된다고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냐고 비웃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두려움의 벽 뒤에 숨어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차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크게 결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2012년 미국 갤럽조사에 의하면 3.4% 성소수자 시민이 존재했습니다. 2014년 미국 중간선거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유권자의 4%가 성소수자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들의 투표결집율은 매우 높다고 합니다. 꽤 오랫동안 선거대응을 해 온 해외에서도 ‘캐스팅보트’는 유효한 구호입니다. 3%, 4%가 미미한 수처럼 보일지 몰라도 수십, 수백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선거에서 힘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의 수라고 확신합니다.
레인보우보트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성소수자 당사자와 지지자가 참여하는 유권자 선언을 1만 명 이상 조직하는 활동을 기본으로 혐오 중의 혐오 의원을 가려내고 그들이 출마하는 지역구에 찾아가 지역구민들에게 성소수자 인권에 투표해달라는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올해는 서울 구로을, 부산중구영도구, 인천연수갑 지역구에 갈 계획입니다. 레인보우보트는 선거 시기 반짝하는 캠페인이 아닙니다. 꾸준히 의정활동을 감시하고,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한 입법활동이 가능하도록 역할을 할 것입니다. 선거 후 변화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투표마저 포기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이번 선거에선 꼭 혐오가 아닌 인권에 투표할 수 있길 바랍니다.
드러내기는 레인보우 유권자 선언 참여부터 시작합니다. 주변에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들도 참여할 수 있게 제안해주시면 더 좋습니다. 유권자 선언 참여활동은 전국 곳곳에 존재하는 우리의 존재와 힘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혐오가 아닌 평등에 투표하는 한 표, 그 한 표들이 모이면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많은 분들이 레인보우보트 활동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시길 바라며 20대 총선, 투표장 안에서 혐오가 아니라 인권에 투표하는 커밍아웃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 레인보우보트 유권자 선언 참여는 http://rainbowvote.org 에서 가능하며 성소수자 혐오에 앞장선 정치인 명단과 다양한 캠페인 활동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이 글은 2016년 3월 5일 개최된 LGBTI인권포럼에서 발표한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평등을 위한 한 표 레인보우보트,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 정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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