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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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금요일엔 돌아오렴』
나라가 키워 준 밀실공포
제가 기억하는 참사 가운데 가장 처음은 ‘성수대교 붕괴’였습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고 20세기 끝무렵엔 ‘씨랜드 참사’가 있었습니다. 강산이 절반도 변하기 전에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고, ‘세월호 참사’까지 이어졌습니다.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몇 백, 몇 천의 우주들이 사라지는 일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저에게는 경미한 폐소공포증(밀실공포, 클라스트로포비아 Claustrophobia)이 있습니다. 아주 약하고 드물게 나타나던 증상은 차츰 심해졌습니다. 건물 지하공간을 피하게 되고, 지하철을 타면 문 앞에 서서 다니다가 자리에 겨우 앉게 되었을 무렵엔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은 아예 타지도 못 하거나 가던 길에 내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딘 가에 갇히는 생각만으로도 식은 땀이 나고 숨 쉬기가 곤란해지곤 합니다. 재난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너무 힘겹습니다. 이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참사에서 나의 피붙이나 가까운 이가 피해를 당한 적도 없지만 나에게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트라우마를 키우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불안감을 키운 원인이 참사 자체가 아니라 정부, 이 나라 기득권 세력의 부실한 대처와 책임회피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원인의 핵심에는 돈을 우선으로 하는 시대의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참사 이후에도 비용 절감을 위해 지하철 기관사 인력을 줄이고자 하는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고, 청소년들은 해병대 캠프에 갔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규제’가 경제 발전을 막고 있다며 시작된 규제 철폐는 폐선 직전의 세월호를 다시 바다로 나오게 했습니다.
세월호는 적폐의 일각
최근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국정원과 세월호의 관계가 드러났습니다. 사실 이것은 최근에 드러난 것이 아니라 참사가 발생했을 때부터 제기된 의문입니다. JTBC <뉴스룸> 보도를 통해서는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과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 자칭 보수단체들-이런 세력은 ‘수구’ 또는 ‘극우’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과의 유착관계가 드러났습니다. 탈북자들을 자신들의 집회에 ‘아르바이트’로 동원하는 데 드는 비용을 국내 최대 경제단체인 전경련이 지원해왔다는 겁니다.
여러 차례 공개된 해경과 청와대 간 녹취록에서 드러나듯, 그들에게는 VIP에게 보고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구조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7시간 동안 사라졌던 대통령은 구명조끼를 입었다는 데 찾기가 어렵냐는 어이없는 말을 합니다. 유가족의 손을 잡고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던 대통령이 이제는 유가족을 만나주지도 않습니다.
누군가는 세월호만 큰 일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두 소녀의 죽음이었지만, 나라의 주권문제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 반대 촛불집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순하게 죽음에서 추모로 이어지고 마는 문제가 아니라, 세월호 참사로 지금까지 쌓여온 적폐가 드러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말고도 해결되어야할 문제가 많다고도 하지만, 이것은 사회문제의 경중을 따져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성소수자가 아닌 누군가에겐 노동문제가 더욱 중요하니 성소수자의 인권은 뒤로 조금 미뤄두어도 좋을까요?
모두에게 돌아와야 할 금요일
다른 이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는 일은 우리가 꼭 그 입장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당사자가 아닌 일에 지지와 연대를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요일에 바다 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가족뿐 아니라 이 땅에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보통의 금요일’이 모두에게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금요일엔 돌아오렴』, 창비, 2015.
* 위 책은 친구사이 소모임 '책읽당'의 4월 선정도서로, 당일에 언급된 감상과 토론에 기초하여 쓰여진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책읽당 당원, 친구사이 회원 / 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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