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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신앙, 종교’ #2] 성소수자와 함께 걷는 길, 그리고 '퀴어성서주석'의 의미
2016-09-23 오전 00: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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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9월 

[커버스토리 ‘신앙, 종교’ #2] 

성소수자와 함께 걷는 길, 그리고 '퀴어성서주석'의 의미

 

 

 

며칠 전 교계(敎界)는 물론 한국사회 민주화 운동에 큰 축이셨던 박형규 목사의 빈소에 다녀왔다. 박정희 독재에 저항하며 수많은 고초를 당하셨고, 전두환 군부독재로 이어지면서 당시 보안사의 지속적인 주일예배 방해에 맞선 교인들은 무려 1986년 12월부터 1991년 11월까지 7년을 중부경찰서 앞에서 주일예배를 드려야 했다. 평범한 목사였던 그에게 1960년 4월 19일,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들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사건은 삶의 방향이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커다란 전환점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 조문을 간 날과 성소수자와 함께 걷는 길에 대한 소회를 써달라는 친구사이 소식지 원고청탁이 같은 날이어서인지 조문을 가는 길에 여러 생각들을 떠올렸다.

 

각종 미디어는 물론 논문을 준비하는 연구자들, 학교에서 그룹발표를 준비하는 대학생 등과 종교와 성소수자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빠지지 않는 질문 중 하나가 “계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글에서도 “계기”를 먼저 풀어보고자 한다.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사건” 혹은 “사건의 현장”은 다음과 같다.

 

성소수자 운동이 보다 가시화되고 조직적으로 변화, 성장한 계기가 된 2007년의 차별금지법 발의를 둘러싼 기독교계의 반발에 저항하기 위해 모인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의 초동모임, 그리고 2011년 12월 18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이 원안에 가깝게 통과되기 전날 밤의 서울시의회 점거농성장, 그리고 2010년 12월 4일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이하 <하만동>) 출간기념의 자리가 마련된 향린교회 3층 예배실.

 

차별금지법 발의가 무산되기까지 전체 기독교계가 반발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며, 원안에 찬성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후배 분들이 교회 사무실을 찾아오면서 아닌게 아니라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공감을 했다. 그렇긴 하지만,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기독교인들이 여기 있다는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나 큰 공격을 받게 되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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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무지개농성에서 (사진: 박김형준)

 

 

서울시의회 로비농성은 엿새 동안 지속되었는데, 투표로 결의되기 하루 전날, 농성장에는 일순간 검은 먹구름이 낀 순간이 있었다. 통과가 불투명하다는 소식이 전해져오면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시작으로 농성장이 눈물바다가 된 것이다.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거나, 언급을 해야 할 때면 금새 눈물이 고이고 마는 그런 사건이다. 시의회를 점거하면서까지 목소리를 내었건만 그것이 묻혀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절망감에 곳곳에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고, 그 상황에서 요청받는 기도회를 진행하면서 나 역시도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나의 눈물은 불안감이나 절망감 이전에, 누가 우리들을 억압하고 있으며, 누가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배제시키려 하는 것인지, 신앙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핵심인 ‘사랑’과 ‘환대’를 설파한 예수를 어떻게 배반하고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지를 현장에서 고스란히 목도하면서 분노가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이 분노의 눈물은 앞으로 나는 이곳에서 흘러넘치고 있는 눈물들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게 했다.

 

<하만동> 출간을 알리면서 마련한 자리는 기독교의 성소수자 혐오로 인하여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는 시간으로 시작되었다. 그 자리 역시 눈물바다였다. 특히 육우당을 추모하는 순서에서 당시 발언을 하였던 정욜님이 흐느끼느라 제대로 말을 못 잇는 상황이었고, 청중들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흐느낌과 탄식은 향린교회 예배실을 꽉 채웠다. 저마다 갖고 있던,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던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들이 맨살을 드러내면서 그 드러냄 자체가 강물같은 눈물이 되었고,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을 느끼게 했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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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에서

 

 

 

2016년인 지금, 기독교계의 성소수자 혐오는 더 노골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고도 집요하게 지속되고 있다. 동시에 성소수자 인권운동도 다각화되고 곳곳에서 가시화되고 또 그만큼 일반시민들의 인식도도 높아져가고 있다. 일반시민 범주에는 기독교인들도 포함되는데, 성소수자 혐오가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현실이 있음에도, 동시에 이런 움직임들의 본질인 가부장체제와 이성애중심주의를 기초로 한 기득권 지키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근본적인 기독교 개혁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다각적으로 가시화되고 있기도 하다.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이 내세우는 여러 왜곡된 자료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기독교인들을 자극하는 가장 큰 도구가 ‘성서/성경’이다. 성서/성경이 도구화된다는 것 자체가 서글픈 일이다. 전문적인 의학 정보인양 포장되어 유포되고 있는 노골적인 혐오 행위도 자극적이지만,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성서/성경이 갖는 권위는 절대적이기에 ‘성경적으로’라는 말 한마디로 다양한 신학의 틀거리는 줄곧 거짓, 엉터리 혹은 이단으로 취급되기 일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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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성서주석(The Queer Bible Commentary) 원본 표지

 

 

 

이런 흐름 속에서 2015년 초부터 시작된 퀴어성서주석(The Queer Bible Commentary, 이하 QBC) 작업은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 반성소수자 혐오 운동의 한 지류라고 할 수 있다. QBC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의 성서/성경 66권을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성서신학 해석의 틀로 들여다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이는 현재 한국사회뿐 아니라,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사회에서도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종교를 베이스로 한 성소수자 혐오사회에서 LGBT와 종교, 기독교, 성서/성경의 연결고리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여성신학이 자리를 잡는 것도 한국사회에서는 여러모로 척박한 현실에서 퀴어신학은 더 말할 나위 없이 불모지이다. 원문에 참여한 신학자들 중 한국에 알려진 분은 테드 제닝스 박사 정도이지만 현재 해외에서는 널리 알려진 30명 정도의 학자/목회자가 저자로 참여했다. 현재 이 주석서는 국내외에 거주하는 20여명이 번역 작업에 참여했거나 참여하고 있으며 80% 진행된 상태이다.


반동성애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측은 종종 언급되는 퀴어신학을 경계하면서 허접한 신학 또는 신학 축에도 못 드는 이단 취급을 하며 폄훼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미 해외 신학교 중에는 정규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엄연한 신학의 한 분야이다. 1년여를 넘는 지난한 번역과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희망의 빛을 자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와 성소수자, 하느님/하나님, 그리고 예수와 성소수자는 배제되거나 연관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번역이라는 작업을 통해 증거하고자 한 분들의 열정 덕이다. 번역은 새로운 창조라고 하지 않았던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도 잘 읽을 수 있도록 어떻게 문장을 다듬어야 하고, 다양한 층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보조 자료들을 찾고 모으면서 종교인, 혹은 비종교인 성소수자는 물론 성서/성경을 새로운 빛으로 재조명하는 것에 목말라 있는 비성소수자 기독교인들이나 비기독교인에게까지 시원한 생수 한그릇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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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아이다호(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행사에서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무수히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언어로 정의를 내려왔다. 종교와 연결되는 열쇳말 중에서 나는 ‘경험’과 ‘실천’에 방점을 찍고 싶다. 신의 존재는 관념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체험은 우연한 득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것을 내 일상에서 그대로 행(行)하는 것에까지 이어져야 한다. 하나님/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은, 내 일상에서도 그 사랑을 경험하는 사건의 한복판을 지나는 것이며, 그 사건의 경험은 내가 사랑받는 것과 같이 그 누군가에게도 사랑을 전하는 실천으로 이어지게 한다. 하나님/하느님의 그 사랑은 퀴어신학자인 페트릭 첸 신부의 표현대로 너무나 ‘래디컬(radical)’하여 경계와 분리의 벽을 허물어트리고 마는 사랑이다. 여전히 이 사회는 계급을 만들고, 편 가르기를 하며, 배제와 소외를 당연시 하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에 의한 횡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긴 인류 역사에 늘 존재해 온 성소수자는 힘겨루기의 각축장을 해체하고 래디컬한 사랑이 무엇인지 그 자체로 증명해주는 존재이다.


다만, 성소수자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만으로 지워지거나 억압의 대상이 되어 온 또 다른 존재들이 있음을 기억하며, 연대하여 함께 나서는 것, 즉 래디컬한 사랑의 ‘실천’이 늘 동반되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서 깊은 존재의 의미가 새로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을 사는 퀴어들에게도, 하나님의 다스림은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확신을 심어 준다. 그것은 비록, 우리가 어느 곳에선가는 2등 시민처럼 살기도 하고, 결혼도 못하고, 우리 아이들을 빼앗기기도 하고, 어디선가는 우리의 사랑을 나누고 드러내는 것조차 범죄시 되지만,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에는) 온누리의 모든 이들을 위한 자유와 해방이 있다는 확신이 있다. 우리가 퀴어로서 다른 이들을 격려하고 힘을 내게 하려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바로 이 복된 소식을 들려줘야만 한다. (마태복음 주석 중, 토마스 보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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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돌향린교회 / 임보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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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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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6-09-23 오후 19:23

늘 건강과 평화가 임보라 목사님과 함께 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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