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아이다호 전시, "엄마한테 차마 못한 이야기 : 성소수자 100명의 어린시절 이야기展"
▲ 퀴어문화축제 전시 @신촌, 2014.6.7.
아이다호(IDAHOT),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은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동성애를 질병 목록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2004년을 시작으로 성소수자의 인권을 생각하는 국제적인 기념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친구사이에서도 2007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5월 17일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캠페인을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친구사이가 기획하거나 참가한 역대 아이다호 캠페인은 다음과 같으며, 2015년 올해 역시 멋진 캠페인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2007.5.17. / 긴급작전 - 오바로크 : 이명박 동성애혐오 발언 / 온라인 사이버시위
2008.5.17. / 퀴어작렬 야유회(무지개행동 출범기념) / 서울숲
2009.5.17. / 아이다호 기념 캠페인 : 성명서 낭독, 퍼포먼스, 설문 등 / 서울 종로 보신각 광장
2010.5.15. / 프리허그, 아이다호 홍보 동영상 상영 / 서울 인사동 북인사마당·홍대 주변, 친구사이 사무실
2011.5.15. / 지_보이스 거리공연 /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2012.5.17. / 걸어다니는 커밍아웃 : 레인보우 액션(무지개행동) / 서울 인사동, 청계천 일대
2013.4.28. / 어느 멋진 날 : “You Make Me Proud” 합창 영상녹화 / 서울 용산 문화체육센터, 유튜브 상설상영
2013.5.17. / “You Make Me Proud” 합창 플래시몹(무지개행동) /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 광장
2014.5.17,26-27,6.7. / 엄마한테 차마 못한 이야기 : 성소수자 100명의 어린시절 이야기展 / 서울 대한문·한양대·신촌, 온라인 상설전시
2014.5.17. / "Speak up! Act up!" 플래시몹(무지개행동) / 서울 대한문 앞
2015.5.16. / 레인보우 런웨이 : Make rainbow space(예정) / 서울역광장
이 중 여기서는 2014년, "엄마한테 차마 못한 이야기 : 성소수자 100명의 어린시절 이야기展" 전시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연초부터 기획된 이 전시에는 총 47명의 성소수자분들이 참가했고(게이 40명, 레즈비언 6명, MTF 트랜스젠더 1명), 그분들이 내어주신 어렸을 적 사진과 과거에 대한 회상들로 풍성한 전시를 꾸릴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과거, 특히 한 성소수자의 과거에는 그가 겪은 삶과 섹슈얼리티의 경험이 응축되어있습니다. 그렇기에 성소수자 47명의 과거는 각기 다른 47개의 소우주와도 같은 것이고, 그 의미는 결코 가벼울 수 없습니다. 이 간단치 않은 성소수자분들의 옛 사진과 회상을 더듬어보며,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과거의 지층과 현재의 조건들을 읽어나가고자 합니다.
아래 인용한 9편의 사진과 글의 주인공들은 모두 게이이며, 사전에 9분 모두에게 인용에 대한 허락을 취득하였음을 밝힙니다.
1. 과거를 질문하는 법
성소수자의 과거를 굳이 캐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성소수자의 과거를 떠올리고자 하는 걸까요. 작년 아이다호 팀이 내놓은 답은, 바로 "살아온 기억이 없다는 것은 이름이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소수자들이 하도 혐오세력들에 의해 "자연스럽지 못한" 존재로 불려지기에, 어린 시절에도 나는 "자연스런" 성소수자였음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전시의 목적이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목표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칩니다. 우리가 대체 왜 우리의 과거 속에서 성소수자의 단서를 찾아내려는 것인지, 왜 우리가 우리 과거를 심문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의문 말입니다. 사실 이 전시에서 많은 성소수자들은 자기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예감하기 시작한 경험을 어렴풋이 고백하고 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어렴풋한 단서일 뿐입니다.
물론 그 경험은 개인에게 인상적인 것이겠지만, 그것이 정말로 성정체성의 징후였는지는 그야말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즉 과거 속에서 "실증 가능"한 성정체성의 징후를 찾아내려는 일은 어쩌면 가능하지 않음을 넘어 부질없는 일이 될지 모릅니다. 도리어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누구'의 시선인지부터 캐물어야 하는지도 모르지요. 사실 성소수자 스스로 "내가 몇 살 때부터 성소수자였는지"를 캐묻도록 만드는 것은, 이성애자더러 "몇 살 때부터 이성애자였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무례한 일입니다.
▲ "사진 속에서 게이가 되었을 법한 여러 징후들을 스스로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곧 불쾌해졌지요.
나는 어째서, 누구를 위해 그런 모습을 억지로 찾아내려고 하는가."
하지만 설령 그것이 실증될 수 없고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전시를 통해 수놓아진 과거의 사연들은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그것들은 '진짜 원인'을 말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정리된 '나의 시선'이 드러나는 과거이기에 중요한 것이지요. "실제로 언제부터 게이였냐"는 질문은 무례하지만, 그것에 답하기 위해 준비되는, '진짜'가 아닐 수도 있는 과거에 대한 "서사"는 그래서 유의미합니다.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임을 깨달아온" 이야기를 나름대로 엮으면서, 지금의 나와 내 섹슈얼리티를 정리하고 어루만질 기회를 갖습니다. 그것은 곧 내 정체를 캐묻는 사회에 대한 우문현답이자, 무례하고 서툰 질문에 대한 예리하고 꼿꼿한 대답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전시 속에서 보여진 성소수자들의 '과거 이야기'가 저마다 애틋한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전시에 참가한 성소수자들 또한, 자신의 '이야기'가 자신의 성정체성의 '진짜 기원' 같은 것과는 별반 관계가 없다는 것을, 다들 어렴풋이 짐작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 "이 날은 '네가 게이인 걸 언제부터 알았니?'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대답의 시작이 되었어요."
2. 나 : 가족, 여장/남장, 성별정체성
2014년 아이다호데이에 출품된 47편의 전시 중 반수 이상은 가족과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을 다룬 전시라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당연할 텐데, 그 중 4분은 가족에게 실제로 커밍아웃한 사연을 소개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어렸을 적부터 드러났던 본인의 '색다른' 정체성, 즉 여장 혹은 남장에 얽힌 내용 또한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이 주목됩니다. 전시물에서는 생물학적 남성의 경우 여장을, 생물학적 여성의 경우 남장을 했던 경험과, 그러했을 때 가족들이 취했던 다양한 반응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상식으로 게이와 여장남자는 분명히 다르고, 크로스드레서와 트랜스젠더는 더더욱 다릅니다. 그런데 전시에 참여한 성소수자분들 중 과반 이상이 남장 혹은 여장 경험을 토로하고 있는 점은 이채롭습니다. 어렸을 적 그분들의 옛 이야기를 듣노라면 크로스드레서와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가 마구 섞여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됩니다.
▲"엄마 있잖아, 난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는 모두, 각각의 성별정체성으로 분리 발전해온 데 따른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분리된 저 세 범주의 성별정체성은 각기 매우 중요하고, 저 세 범주를 혼동하여 말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아주 큰 무례를 저지르는 일이 됩니다. 가령 어떤 MTF 트랜스젠더를 '여성스런 남성 동성애자'라 부르는 순간, 당사자 스스로 인식한 젠더를 완전히 무시하는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셈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성별정체성의 현재적 '분리'와는 달리, 성소수자분들의 어린 시절 술회를 들어보면 위와 같은 구별이 잘 드러나지 않고 앞의 경우처럼 서로 엉켜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는 첫째로, 아까 언급하였듯이 그분들의 술회가 성별정체성의 '진짜 원인'이기보다 '이야기'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고, 이는 곧 어떤 성별정체성의 발생론적 맥락을 과거로부터 따져묻는 것이 그다지 현명한 질문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떤 분들은, 여장이나 남장에 국한되기보다 그저 무엇인지도 모를 '평범한 남/녀'와는 다른 삶이 못내 끌렸던 것뿐이라 술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의 경우에 한해, 성별정체성에 얽힌 어떤 구분선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복잡하게 분산된 지향과 욕구가 곧 그 사람의 성별정체성이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 "어려서 난 정말 다른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분석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기 전, 그 섹슈얼리티를 주어진 '사태'로서 살아가고, 여러 난관 끝에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삶의 궤적들이 주목된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과거를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과거 속에서 동성애자가 된 '진짜 징후', 트랜스젠더가 된 '진짜 계기'를 추적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도 별 소득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본인도 무언가 어쩔 수 없었던 '주어진' 상황들 속에, '내'가 누구냐는, 나의 성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일견 가혹한 물음과 싸워나갔던 흔적을, 이 전시는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 "만약 그 이유를 알았다면, 내가 성정체성이 남달라서,
그런 곳에 가면 아직 내 몸이 마음대로 조절이 안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3. 너 : 동성에 대한 끌림, 성적 지향, 금지된 환상
전시물 가운데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어린 시절 내심 좋아했던 동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를 다룬 전시물이 전체의 30%를 차지합니다. 성소수자들 중엔 일찍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신하고 그에 따른 삶을 사는 행운아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동성에게 이끌리는 상황에 닥쳤을 때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한 인정이 쉽지 않아 속을 끓이는 일을 한번쯤 겪게 됩니다. 전시물 중 일부는 이렇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인정하기 전에 만났던 동성과의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동성애자에게 '일반과 맺어지는 일'은 어떤 극진한 환상에 가깝습니다. 여느 이성애자들과는 달리, 좋아하는 동성이 생기는 것과 - 내가 동성애자라는 걸 인정하는 것 사이에 일정한 시차가 있게 되는 동성애자에겐, 자기 성정체성의 인정이라는 고통스럽고 귀찮은 단계를 생략하고도 인연으로 맺어질 수 있는 이야기가 자연히 판타지로 부상하게 되지요. 어쩌면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도 동성에 끌리기는 끌리는 이 불가능성의 조건들 덕택에, 그만큼 더 부푼 환상을 품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이반시티 백일장 게시판엔 늘 "일반 꼬시기"의 서사가 그토록 넘쳐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 "제대 이후도 몇 번 만났지만, 진지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겁이 나더라고요."
하지만 실제는 그렇게 환상적이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은 채로 이루어지는 성 접촉은 불꽃튀는 환상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러한 '예외적' 상황으로부터 기인하는 많은 상처를 자신에게 남기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동성에 관한 끌림을 다룬 전시물 가운데 실제로 관계 경험으로까지 나아간 경우는 매우 드문데, 그 드문 데까지 나아갔던 경험을 회상하는 아래의 전시물은 저릿한 구석이 있습니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인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맺는 "장난"같은 성 접촉은, 그 경험을 포함한 자신의 섹슈얼리티 전반이 "장난"처럼 취급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협소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장난"은, 그로부터 새나오는 쾌감과 애정을 매우 도착적인 것으로 만들기 쉽고, 그 속에서 자칫 자기를 "잃어"버리게도 만들지요. 이러한 경험들 가운데 어떤 성소수자들은, 내 성적 지향에 따른 '관계'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그 '관계'를 위해 나는 어떤 준비를 갖추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거칠게 직면하게 됩니다.
▲ "내 모습을 잃어가는 날 더 아껴주지 못했어."
"그래. 널 좋아했었어."
4. 과거에 대답하는 법
이처럼 과거를 되새긴다는 것은 때로 발칙한 행위입니다. 그것을 되새기는 과정에서 현재의 극점들이 예리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과거나 현재나 한결같은 성소수자로서의 내 모습으로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든, 과거에 겪었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은 그 지경을 면했다는 자기 극복 서사의 방식이든, 아니면 어린 시절 겪었던 곤경을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다는 동일시의 방식이든, 사람이 구태여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 수고를 감내할 만큼 현재의 어떤 모습이 그 과정에서 함께 공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과거는 종종 현재보다 더욱 극적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특히 섹슈얼리티와 관련되어 그 나름의 역사들을 가지고 있을 성소수자에겐 과거와 현재 사이의 낙차가 더욱 도드라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소수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스스로 "보통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섹슈얼리티가 그렇게 당혹스럽지는 않은 여느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부질없는 꿈 말입니다. 그러나 그 꿈은 때로 너무나 곡진한 것이어서, 그것 외 다른 인생의 문제를 돌아볼 겨를을 없애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 가운데엔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고, 섹슈얼리티의 문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섹슈얼리티 바깥의 꿈을 꾸고 섹슈얼리티의 바깥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결국 그 지긋지긋한 섹슈얼리티 안으로 거듭 뛰어들어야만 합니다.
▲ "내가 다른 아이들과는 정말 많이 다르다고 느꼈어.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되고 싶은 게 없더라."
그러나 그것이 그토록 고단한 일이겠기에, 우리는 그런 고민일랑 없이 살았던, 혹은 그 고민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섹슈얼리티의 전모를 힘겹게 알아가던, 그러면서 서서히 어렸을 적 웃음을 잃어가던 사춘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그렇게 뜨거울 것도 괴로울 것도 없이 적당히 갈앉은 자신을 살면서도, 이따금 문득 어릴 적 상처받지 않았을 과거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떠올린 과거가 순정하면 순정한 것일수록, 지금의 내가 여태 건너온 감정의 풍우와 경험의 늪이 그리 고단했다는 뜻이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처럼 한 사람이 어렸을 적 해맑은 웃음을 잃었다가 그것을 다시 찾는 과정은,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모든 요소들이 빼곡이 깃들어 작용한 결과입니다. 한 사람이 과거를 그리는 행위에 무시못할 현재적 의미가 담기게 되는 까닭이 이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전시물 속에 드러난 성소수자의 과거는, 그들이 가진 어떤 현재의 모습 못지않게 묵직하고 예리하게 벼려진, 또다른 '총체적인' 현재의 얼굴로 우리 앞에 와닿게 되는 것입니다.
▲ "이 세상에 사는 다른 많은 아이들이 밝은 웃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여러분의 과거는 안녕하십니까. 또 여러분의 현재는 어떠하십니까. 이 47분의 어렸을 적 사진과 과거에 대한 회고를 대하면서, 어느새 잊어버린 각자의 과거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시기를 권합니다. 오래 잊고 있던 과거를 더듬으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던 현재의 내 얼굴에 직면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과거를 통해 현재를, 또 현재를 통해 과거를 보는 여정이, 부디 끝내는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위에 인용된 전시물들은 2014년 아이다호데이 사진전의 오프라인 출력본을 기준으로 하였으며, 책은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열람 가능합니다. 또한 동 전시물의 온라인 전시본은 여기에서 감상 가능합니다.
* 2015년 올해 열리게 될 아이다호데이 캠페인 "레인보우 런웨이 : Make rainbow space" 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소식지에 관한 의견이나 글에 관한 피드백, 기타 문의 사항 등은 7942newsletter@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잘 봤어용.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