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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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속의 동성애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 현대의 다양한 문화 매체들은 시대를 반영합니다. 동시대의 생활 양식에서부터 폭력, 빈곤, 노동, 계층 등 어두운 사회 문제까지 거의 모든 시대적 이슈들이 다루어지죠. 동성애 역시 하나의 이슈로 종종 등장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른 매체들이 그렇듯이 미술에서도 동성애가 언급됩니다. 이 글에서는 근대 이후의 미술에 등장한 동성애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남성 동성애를 중심으로한 작업을 위주로 소개합니다.)
미술의 역사는 아주 깁니다. 미술사의 시작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그렇게 긴 미술의 역사에서 동성애를 표현한 작업들은 대체 언제부터 등장하는 것일까요. 동성애적 함의가 담긴 작업들을 시간의 축으로 펼쳐 놓았을 때, 이런 작업들은 대부분의 시대에서 발견됩니다. 다만 그 표현 패턴이 늘 일정하진 않아요. 다시 말해, 그것이 언제나 성애적으로만 표현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미술, 특히 회화에서는 여러가지 도식화된 상징들이 즐겨 사용됩니다. 표면적으로 동성애와 관계없어 보이는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화면에 등장하는 상징들을 통해 동성애적인 뉘앙스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동성애적 관계는 그 형태와 당시 사회의 인식에 따라 언제나 다르게 받아들여졌어요. 어떤 시대에는 동성 간의 성애적 관계가 종교적 예식을 통해 수용되기도 했고, 또 다른 시대에는 긍정적 의미의 고귀한 감정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종교 등의 영향을 받아 부정적 의미로 변질되어 인식되는 시기도 있죠. 그것이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든 간에, 미술이 언제나 시대를 반영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종류의 작업들이 미술사에 등장하는 것은 동성애적 관계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존재 해왔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Edgar Degas, Study For Young Spartan Girls Challenging Boys, 1860
이 그림은 에드가 드가의 <소년들에게 도전하는 스파르타 소녀들>이라는 작업이에요. 미술사가들에 의하면 이 작업이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소년들과 소녀들의 성차와 뒤에 서 있는 어른들 사이의 규범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스파르타에서 동성 간의 정신적/육체적 관계를 일종의 교육의 기능으로 활용했다는 문화적 맥락을 떠올린다면, 스파르타인들이 그려진 그 자체만으로도 동성 간의 성애적 함의를 읽을 수도 있을 거예요. 아주 간단하게, ‘아. 이 그림에 등장하는 남자애들도 남자끼리 섹스하고 그랬겠구나. 스파르타인이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죠. 하지만 이 그림을 그린 드가가 동성애자였다는 기록이나 증언은 없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서 동성애적인 무언가가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이 그림에서 그와 관련된 특별한 태도를 읽을 수는 없습니다. 미술사에서 등장하는 이런 많은 작업들에서 우리는 작가가 동성애적인지, 혹은 동성애혐오적인 태도를 가졌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미에서의 ‘미술’과 ‘동성애자’라는 개념과 그 범주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죠. 개념을 포함한 어떤 언어들은 이념이나 관습 등 수많은 요소에 의해 형상이 달라집니다. ‘사랑’이라는 단어 역시 고대와 현대가 갖는 의미의 차이가 존재하죠. 그렇기때문에 고대에서 근대 이전에 이르는 많은 동성성애적 미술 작업들을 지금의 ‘동성애자/미술’의 의미와 무조건 일치시켜 이해하면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시각예술의 의미로 사용하는 ‘미술’과 근대의 가족 이념에 대항하는 ‘동성애자’라는 표현은 모두 19세기 이후에 고안, 정착된 개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걸린 이후에, 미술의 의미와 범주는 계속 변혁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고, 동성애 역시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고 연구되면서 그 인식도 달라지게 된 것이잖아요.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동성애, 미술’과 근접한 뉘앙스를 갖는 미술 작업들은 자연히, 적어도 근대 이후에 등장한 작업들일 것입니다.
Francis Bacon, Two Figures in the Grass, 1954
이 작업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1954년 작 <풀밭 위의 두 형상> 이라는 그림이에요. 풀밭에 엉켜있는 두 남성의 모습이 거칠게 묘사되어있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동성애자로 알려져있고 당시 그의 이런 작업들은 관객들에게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누가 보아도 성적인 감정의 역동을 느낄 수 있을만큼, 단정하고 일관적인 배경에 비해 인물들을 묘사한 터치는 망설임이 없어 보입니다.
Robert Rauschenberg, Monogram, 1955-59
이 작업은 어떤가요. 좀 더 난해한가요. 이 작품은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모노그램>(1955-1959)이라는 작업입니다. 로버트 라우센버그 역시 동성애자로 알려져있죠. 하지만 작가 자신이 그것을 공공연하게 밝히지 않았다면 그런 사실들은 은폐되기 쉽습니다. 냉전 시대였던 당시의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럴거예요. 미술 작업을 가능한 많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 개인의 역사나 성적 정체성, 작가를 둘러썬 환경 등 작품에 배경이 되는 많은 것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 그렇다고해서 모든 것을 너무 정보에만 의지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 배경 지식이 없다고 해도, 단순히 작업의 형태와 상징들만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충분할 수도 있을 거예요. 이 작업은 동그란 타이어에 끼어있는 수컷 양의 모습입니다. 작가의 정체성도 그렇지만 수컷 양이 자주 남성적 에너지와 남성적 생산력을 상징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동성애적 느낌이 드는 것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남성의 상징이 좁고 빡빡하며 까맣고 동그란, 구멍에 들어가 있는 형태 만으로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여기에 게이/레즈비언 연구가 하나의 학문으로 등장하고, 퀴어 이론이 부상하는 등 이성애적 편견을 깨뜨리는 이론들이 조명을 받게 되죠. 이런 상황과 더불어 많은 성소수자 작가들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반영한 작업들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Catherine Opie, Chicken, 1991
위 사진 작업은 캐서린 오피의 <존재와 소유> 연작 중 하나인 <미소년>이라는 작업입니다. 이 시기에는 동성애뿐만이 아니라, 타자화 되었던('이성애자이며 백인이며 남성'이 아닌.) 거의 모든 정체성 자체가 수많은 미술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로 등장해요. 캐서린 오피의 위 작업은 남장한 레즈비언들을 담은 일련의 작업들 중 하나로, 사진 속 인물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불명확한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시각적 기호를 뒤섞어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지죠.
또 이 시기에 성소수자, 특히 남성 동성애자 집단을 뒤흔들었던 하나의 사건은 바로 에이즈라는 질병의 유행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키스 해링, 로버트 메이플소프 등 동성애자였던, 많은 중요한 작가들이 이 질병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기도 했죠. 당시 사회가 가진 질병에 대한 공포나,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같은 요소들이 결합해 동성애 미술은 더 많은 현실을 포함하게 됩니다.
Felix Gonzalez-Torres, Untitled(Beginning), 1994
이 작업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무제(시작)>이라는 작업입니다. 곤잘레스 토레스는 그의 연인을 에이즈라는 질병으로 인해 잃었습니다.(후에 자신도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합니다.) 이 작업을 포함한 그의 많은 작업들은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요구합니다. 이 작업은 반드시 전시장의 출구나 입구에 설치되어있기 때문에 전시장에 입장하는 모든 관객은 위로 부터 늘어뜨려진 이 작품을 통과하는 신체적 접촉을 해야하죠. 당시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공포로 생겨난 감염인과의 신체 접촉에 대한 강박은 또한 그들의 많은 권리를 박탈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업은 그런 지점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할 때 신체적 접촉은 그만큼 숭고한 어떤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부제인 ‘시작’이라는 의미는 한번은 망설여지지만 그것을 통과하려는 욕구와도 닿아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인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2001
마지막으로 살펴볼 작업은 오인환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이라는 작업입니다. 아마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작가겠죠. 작가는 꽤 오래 전부터 동성애적 함의가 충분한 작업들을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이라는 작업은 각 지역에 있는 게이바와 업소들의 이름을 향 가루를 이용해 바닥에 쓰고, 전시 기간동안 향 가루를 태웁니다. 바닥에 쓰인 이 게이 업소의 이름들은 이 지역을 자주 방문하는 남성 동성애자들만 알아볼 수 있는 기호가 됩니다. 반대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알수 없는 기호가 되는 것이죠. 이는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채 살아가는, 남성 동성애자들의 은폐된 공동의 공간인 동시에 그들을 구속하는(그곳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들을 펼쳐보임으로써 남성 동성애자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가능하게 합니다.
실제로 동성애 미술과 관련해서는, 이 글에서 언급한 다섯개의 작업 이외에도 훨씬 더 많은 작가와 작업이 존재합니다. 위에 언급한 미술 작업들은 단순히 동성애를 다룬 것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미술은 통일된 하나의 방식으로만 다뤄지지 않아요.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현대의 동성애가 개인의 정체화 문제나 섹스 문제에만 국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동성 결혼이 가능한 반면, 지구 반대편에서는 동성애자들을 처형하기도 하죠. 그리고 그것들은 특정 사회의 이념이나 종교, 그밖에 다른 많은 요소들과 함께 이해가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에 관한 미술도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를 다소 반영하게 되는 것이죠. 맨 처음 에드가 드가의 그림의 예처럼 그것은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자연스럽게 반영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현대의 미술은 단순히 2차원의 평면이나 3차원의 조각을 벗어나,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텍스트 등 많은 매체를 수용하며 확장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현대적 개념의 미술은 그 실체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미술이 다른 매체들에 비해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이처럼 너무나 다양한 표현 방식 때문이겠죠. 매체는 물론이고 시간과 장소,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 미술은 때로는 아주 난해한 방식으로도 표현되기도 합니다. 관객들은 이런 미술 작업을 접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진입 장벽을 느끼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작업을 이해하는 것은 온전히 관객의 몫입니다. 미술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한 만큼, 미술을 이해하는 것도 특별히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에요.
아마 모든 미술 작업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각각 다를 것입니다. 모든 영화나 드라마가 내 취향에 맞을 수 없듯이, 어떤 미술 작업은 나와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애석하게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우리가 익숙한 뉴스나 드라마, 인터넷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지겨워지면, 미술관이나 전시장에 가서 미술을 통한 미술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낯선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일은 분명 즐거운 일일 거예요. 동성애 역시 그 안에 포함 된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될 수도 있겠죠.
친구사이 정회원 / 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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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업을 가능한 많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 개인의 역사나 성적 정체성, 작가를 둘러썬 환경 등 작품에 배경이 되는 많은 것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 그렇다고해서 모든 것을 너무 정보에만 의지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 배경 지식이 없다고 해도, 단순히 작업의 형태와 상징들만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충분할 수도 있을 거예요."
사실 미술관이나 작업공간에 가서 누군가의 작품을 볼때, 사전 정보 없이 보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때가 참 많았는데 그 역시도 무지하다고 자각하는 제 스스로의 벽을 통해서 작품을 감상했기 때문이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무제(시작) 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에요. 결국 무제로 시작되지만 알고 보면 의미있는 행보가 되는....그리고 나의 어떤것을 작품으로 녹여내는 것에 대해 막연하게 배운 느낌이였습니다.
여러가지 예술에 동성애적 의미들이 함구되어 있고 표현되고 있지만 특히나 미술에선 좀 더 은밀하고 내밀하게 녹아 있는 것 같아 재밌네요 ㅎ 흥미로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