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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예술’ #2] 놓치기 아까운 퀴어영화를 꼽아보자! - 책읽당 <샘이 나는 세미나 시즌2> 뒷이야기
2015-04-01 오전 0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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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 
[커버스토리] 예술 #2
놓치고 지나가기 아까운 퀴어영화를 꼽아보자!
- 책읽당 <샘이 나는 세미나 시즌2> 뒷이야기
 
 

책읽당에서 진행한 영화 세미나는 나와 같은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하지만 정작 성소수자를 다룬어쩌면 그래서 더 관심이 있을 수 있는 퀴어영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그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겸청탁이 들어온 겸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상적인 퀴어영화들을 소개해보려 한다선정기준이 철저히 개인 취향과 사연에 달려있다는 건 함정이다.



 

 

 

1. Une robe d'été(1996)
 
 
 
1. Une robe d'été.jpg  
감독 François Ozon
출연 Sébastien Charles, Frédéric Mangenot, Lucia Sanchez
 
<Une robe d'été>. 영어제목은 <Summer Dress>. 퀴어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이 작품을 먼저 떠올린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가치전복의 쾌감이 얼마나 짜릿한 것인지를 배웠다.
 
<Une robe d'été>는 프랑스의 시골 해변가 마을로 휴가를 떠난 어린 – 그리고 잘생긴데다 몸도 좋은 – 게이커플 가운데 한 소년이 홀로 해변가에 수영을 하러 나갔다가 섹슈얼한 사건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총 두 번의 정사장면이 나온다. 하나는 남자와 여자의 정사이고 다른 하나는 남자와 남자의 정사다. 나는 꽤나 선정적인 이 두 번의 정사씬을 보고나서 성 역할의 기준이라는 것이 매우 얄팍한 두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삽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삽입을 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두 가지 모두가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또한 거기에는 성별도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본능에 따라 상대방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남녀들의 행동에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판단할만한 이성적 기준도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과 섹스의 어떤 경계 같은 것이 프랑수와 오종 감독의 15분짜리 단편영화를 통해 보기좋게 허물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영화가 이것을 표현하는 노골적인 방식이 마음에 든다.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는 욕망이나 고정관념에 덮여있는 금기를 꺼내버리는 적나라함이 좋다. 속옷에 가려진 남성의 성기를 클로즈 업으로 촬영한 첫 쇼트 부터 규범을 무시하려는 감독의 용기가 엿보이는 것 같다. 등장인물이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느끼한 춤을 추는 첫 씬에서 영화적 치기나 허세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발칙함도 작품 전체의 톤과 매너에 어울린다.

영화의 주요 소재이자 제목이기도 한 여름 드레스는 빨간 꽃무늬가 들어간 여성용 원피스다. 영화에서는 이 드레스를 여자도 입고 남자도 입는다. 누가 입어도 옷은 예뻐보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자가 여자 옷을 입으면 안된다는 기준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그래서일까 친구가 내게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 것 같냐고 물었을 때도 ‘여자 옷 남자가 입어도 되고 여자가 입어도 된다는 것’이라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성에 대해 사람들이 관념 속에 보전하려 하는 가치가 이와 같은 은유 속에 전복될 때 나는 짜릿하고 통쾌하다. 내가 게이이기 때문에 더더욱.
 
* 불법인지 합법인지 모르겠으나 이 작품은 Youtube에 업로드 되어 있다. 물론 자막은 없다.
 
 
2. 열일곱살의 혼돈 Edge of Seventeen(1998)
 
 
 
2. Edge of Seventeen.jpg
감독 David Moreton
출연 Chris Stafford, Tina Holmes
 
때는 바야흐로 2000년 즈음. 게이라는 정체성이 내 안에 확고하게 굳어갈 중3 무렵. 서서히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 문화는 수많은 남성의 누드사진과 야동의 세계로 나를 안내했다. 하지만 나이도 어렸고 웹 사이트들도 다양하지 않던 시기에 좋은 정보를 구할만한 곳은 마땅치 않았다. 그 당시 가장 자주 들락거렸던 인터넷 사이트 중 하나는 김현구씨(현 아이샵센터 소장)가 운영하는 구야홈닷컴이라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는 해외 게이 아티스트들의 작업에 대한 소개나 클립들을 볼 수가 있었는데 <Edge of Seventeen>, 번역 제목으로 <열일곱살의 혼돈>이라는 영화는 바로 그 구야홈을 통해 알게 된 작품이다. 당시에는 영화를 구할 길이 없어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짧은 예고편 수준의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던 기억이 있다. 마침내 이 작품을 보게 된 것은 이로부터 수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사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퀴어성장영화다. 자신의 성 정체성에 눈뜨기 시작한 10대 소년이 겪는 혼란을 통해 그 시절의 청춘을 통과하는 소년의 성장을 담아내고 있다. 잘생긴 남자동료에게 느끼는 두근거림, 그런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는 단계, 억지로 맺어보려는 여자친구와의 관계, 그리고 실패, 일탈과 위험한 섹스, 처음 출입해보는 게이바(bar), 엄마와의 갈등과 커밍아웃. 지금보면 진부하다고 느낄 수 있는 대부분의 요소들이 이 작품안에 망라되어 있다. 하지만 이 전형성이 향수 어린 애잔한 감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과해 온 이들에게 <열일곱살의 혼돈>은 유사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재미를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물론 배경이 미국이니만큼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다를 수 밖에 없지만 공유할 수 있는 감정선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게다가 상당한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연출과 촬영, 음악 등의 요소가 무척 매끄러우며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해 이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Lea DeLaria가 부르는 재즈넘버 'Blue Skies'는 꽤나 인상 깊다.

사족으로 이 작품에 출연했던 꽃미남 배우 Chris Stafford는 이후 미국의 유명 TV 시리즈 <Law & Order>의 한 에피소드에 게스트로 출연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할 활동을 하지 않고 배우생활을 접었다. 이 배우가 남자 동료와 첫 관계를 가지는 장면에서 셔츠를 벗을 때 정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던 나는 훗날 이 배우가 현재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해 구글링을 해보기도 했었는데, 미국에도 나처럼 이 배우가 가슴에 불을 지펴놓은 소년들이 많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근황을 추적하고 있었다. 마침내 알게 된 바로는 배우를 접고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또한 Angie로 출연했던 배우이자 재즈뮤지션 Lea DeLaria는 현재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Orange is the New Black>에 출연하고 있는데, 작년 Screen Actor Guild Award에서 이 드라마가 앙상블상을 받자 기자회견장에서 예전과 비교해 달라진 LGBT 커뮤니티의 위상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Orange is the New Black>에는 레즈비언 캐릭터가 등장하며 Lea DeLaria는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다.)
 
 
3. 나쁜 교육 La mala educación(2004)
 
 
 
3. 나쁜교육 La mala educación(2004).jpg 
감독 Pedro Almodóvar
출연 Gael García Bernal, Fele Martínez
 
명작 LGBT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니 누군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모든 영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에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가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자주 등장한다. 이 감독의 영화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한 이들에게는 <나쁜 교육>외에도 <내 어머니의 모든 것 Todo sobre mi madre>(1999)를 추천한다.

이 영화는 영화감독으로 살고 있는 엔리케(Fele Martínez 분)가 어린시절 가톨릭 학교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 이그나시오와 오랜만에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두 남자는 사실 단순한 동성 친구 이상의 관계를 유지했던 사이였기 때문에, 엔리케는 다시 만난 이그나시오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점차 과거에 알던 이그나시오와는 너무 다른 모습의 그를 보면서 의구심을 품게 된다.

많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가 그렇듯 <나쁜 교육>도 전체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 엄밀히 말하면 하드보일드 –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주인공인 엔리케는 마치 과거 헐리우드 하드보일드 영화의 주인공인 사설 탐정처럼 갑자기 나타난 매력적인 상대에게 마음을 뺏김과 동시에 거짓 정보와 의심들로 인해 혼란에 빠진다. 그는 이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 스스로 사설탐정처럼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나쁜 교육>은 기존 느와르 영화의 아이콘하면 떠오르는 팜므파탈의 자리를 옴므파탈로 대체하고 있다. 따라서 주인공을 뒤흔들어 놓는 심상은 치명적인 미녀의 향기가 아닌 건강한 육체를 가진 남자의 정액냄새 쯤으로 치환해 볼 수 있겠는데, 소위 느와르라 불리는 장르들의 요소를 이처럼 발칙하게 비틀어 놓은 부분들이 몹시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또한 영화의 플롯을 지배하는 범죄사건의 이면에 어리고 멋진 남자에 대한 원초적인 동성애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는 설정도 좋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가톨릭이라는 종교, 권위, 미화된 과거와 환상이 가지고 있는 허구성과 윤리적 문제들을 모조리 드러내어 깨부수는 통렬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허구성을 영화 속의 영화라는 액자식 구성에 녹여내는 테크닉마저 갖추고 있다. 액자식 구성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다채로움도 선사하지만 관객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의 효과를 더욱 커지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결국 관객인 나조차도 허구에 사로잡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깨달았는데 이런 느낌을 받은 관객이 아마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특유의 요란한 색채와 아름다운 노래 선율도 어김없이 존재하고 여전히 매력적이다. 흔히 멜로드라마에서 터뜨리지 못하는 여주인공의 감정이 과장된 색채와 멜로디, 미장센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배우는데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요란한 색채와 선율이 주는 특별한 느낌을 대부분의 관객들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 슬픈 멜로의 특성이 깃들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지금도 엔리케와 이그나시오, 두 남자의 사랑이 슬프고 무엇보다 이그나시오가 불쌍하다. (10년 전, 이 영화를 관람하고나서도 나는 내 영화노트에 딱 한 줄, ‘이그나시오가 불쌍해!’를 적어놓았다.) <나쁜 교육>에 대한 설명을 여기까지 읽고 구미가 당기는 독자라면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세계를 한 번 경험해 볼 것을 권한다. 멜로와 하드보일드를 비롯한 장르 비틀기나 섹스/섹슈얼리티에 대한 낯뜨거울 정도로 적나라한 표현, 관습과 권위에 정면으로 반하는 태도를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짜릿한 일이다.
 
 
4. 결혼피로연 The Wedding Banquet(1993)
 
 
4. 결혼피로연 The Wedding Banquet(1993).jpg 
감독 Ang Lee
출연 Sihung Lung(랑웅), Winston Chao(조문선), Mitchell Lichtenstein
 
<음식남녀 Eat Drink Man Woman>(1994)와 더불어 이안 감독의 초기 걸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물론 퀴어영화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가족드라마 정도로 볼 수도 있다.

대만 출신으로 미국에 살고 있는 웨이퉁(조문선 분)은 사이먼(Mitchell Lichtenstein 분)과 동성연인 관계이다. 웨이퉁은 대만에 계신 부모님이 하루빨리 결혼하여 손자를 봤으면 좋겠다고 재촉을 하시자, 웨이퉁의 아파트에 세를 살고 있는 가난한 여류 화가이자 영주권이 필요한 웨이-웨이(May Chin 분)와 위장결혼을 하기로 한다. 웨이퉁의 부모님은 이 소식에 반색하시며 미국으로 몸소 건너와 뉴욕 한가운데에서 성대한 중국식 혼례를 올린다. 그 과정에서 웨이퉁의 연인 사이먼은 그와 친한 미국인 친구로 위장하여 웨이퉁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하지만 피로연자리에서 과음을 한 웨이퉁과 웨이-웨이가 한 침대에서 잠이 들어버리고 이들의 관계에는 변화가 발생한다.

이안 감독은 이 영화뿐 아니라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2005)에서도 애틋한 동성애를 다룬적이 있었는데 동성애를 자주 다루는 이유를 묻는 어느 기자의 말에 그들의 사랑에 장애물이 있다는 것 때문이라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고 들었다. (출처가 불분명한 점 양해 바람.) <결혼 피로연>에도 물론 가족과 전통규범이라는 장애물을 맞닥뜨리는 동성애가 등장한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살고 있는 동양인이라는 설정으로부터 이민 혹은 불법체류자라는 또 하나의 소수자에 대한 묘사도 담겨있어 담론거리가 풍부한 작품이다.
동성커플과 그의 부모 간의 상충하는 욕망이 대안적 해결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상당한 작품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다뤄지는 여러 종류의 사랑, 즉 연인 간의 사랑이나 부부 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 영화를 한층 따뜻하게 이끌어준다. 감동을 자아내는 후반부의 반전이 백미이며, 눈물이 왈칵할 수 밖에 없었던 라스트 씬의 긴 여운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안 감독의 많은 영화가 그렇듯 미장센과 프레이밍이 교재로 삼아도 될 만큼 훌륭하며 무엇보다 상황과 인물의 감정을 뒷받침하는 조명의 사용이 인상적이다. 스타일 체계와 플롯 체계와 유연하게 결합되어 정서를 자아내는 이안 감독의 방식이 너무하다 싶을 만큼 탁월한 작품이다.
 
 
5. 타임 투 리브 Le Temps Qui Reste(2005)
 
 
 
5-1. 타임 투 리브 Le Temps Qui Reste(2005).jpg
감독 François Ozon
출연 Melvil Poupaud, Jeanne Moreau
 
마지막 작품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 春光乍洩>(1997),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말라노체 Mala Noche>(1986), 퀴어영화는 아니지만 소재가 마음에 들었던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필로미나의 기적 Philomena>(2014), 영원히 팬들의 기억에 남을 토드 헤인즈의 <벨벳 골드마인 Velvet Goldmine>(1998). 하지만 역시 프랑수와 오종 감독의 장편영화를 얘기하고자 한다. 금기를 허무는 용기와 노골적이고 적나라한데다 퇴폐를 통해 윤리를 다루는 방식까지 갖춘, 이보다 더 취향 저격일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로맹(Melvil Poupaud)이라는 잘나가는 사진작가가 있다. 물론 게이이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가게 되는데 난데 없는 시한부 암 선고를 받게 된다. 그것도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단다. 이후 로맹은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선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삶을 정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메인이 되는 사건은, 로맹이 자주 들르는 카페의 여주인에게 임신을 시켜달라는 부탁을 받는 일이다. 카페 여주인은 이미 결혼한 여성으로 임신을 하기 위해 남편과 부단히 애를 써봤지만 남편 쪽에 문제가 있어 결국 아이를 갖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이를 너무나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남편과의 합의 하에 정자를 제공할 조건이 좋은 – 잘생기고 키 큰 – 남성을 찾다가 가게에 종종 오는 로맹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카페 여주인은 로맹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부부를 위해 한 번만 자신과 섹스를 해달라는 엄청난 부탁을 하기에 이르고 로맹은 고민에 빠진다.

<결혼 피로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타임 투 리브> 역시 남성동성애자가 아이를 가질 기회를 얻는 어떤 사례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안적인 인간관계, 대안적인 섹스 등 여러 대안적인 요소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게이의 자녀(혈육)이라는 것이 애당초 이성애적 세계관의 가치로는 성립할 수 없는 단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게이도 자신의 정자로 자식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휴머니즘으로 귀결되는 스토리라인은 이성애 사회의 기준과 가치를 타파하는 여정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또 한번 가치전복적인 영화에 흥분하고 말았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섹스 장면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가늠할 수 있겠는가!

위 단락에서 작품의 줄거리를 설명하며 ‘아름다운 방식으로 삶을 정리’한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로맹의 여정의 마지막엔 모종의 아름다움 혹은 휴머니즘이 있다.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연인이나 가족, 혹은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은 같다는 것, 그 사랑의 성질 역시 같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끝이 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넓혀보자면 내가 이렇게 무언가를 노골적으로 타파하고 적나라하게 뒤집으며 쾌감을 얻는 것도 결국에는 그 모든 표현이 동성 간의 사랑이나 이성 간의 사랑도 그 모습이 같고 성질이 같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항변과 다름없다고 여기는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렇게 숨김없이 보여주는 정신이 좋다. 보여주는 용기를 높이 산다. 나는 퀴어영화 가운데 종종 노골적이고 급진적인 표현을 담은 작품들을 만나면 일반 관객들이 물론 불편해할 수 있겠지만 그 표현들이 출발한 시작점을 찾아나가는 담론이 수반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자의 발기된 성기가 여성의 성기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사회의 안전망 안에 가둬두면서 두 남자의 발기된 성기가 맞닿아 있는 모습은 왜 경계 밖으로 밀어버리는가.
 
무엇이 창작자로 하여금 이러한 표현을 하게 만들었을까. 그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들 말이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누군가는 이성애 중심적인 세계 속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오류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 땅에서 게이로 살고 있는 ‘나’의 성향을 존중하고 이성애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한 사람의 관객이 탄생한다면? 창작자에게 그만큼 보람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타임 투 리브>는 내게 그런 항변과도 같은 작품이다. 광화문 씨네큐브에 앉아 이 영화를 보던 10년전 그 순간에 느꼈던 황홀함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분명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섹시한 미남배우 Melvil Poupaud의 전신 누드 때문에 황홀했던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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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회원, 영화감독 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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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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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1988 2015-04-01 오후 22:37

시간내서 이렇게 감사한 글을..시간내서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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