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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스케치 #2] 담론팀 기획토론 #2 : 동성애인권운동과 HIV/AIDS
2015-04-01 오전 05: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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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3월 

친구사이에서는 단체 발기 20주년을 맞이하여 게이인권운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 담론팀을 조직하였습니다. 반년간 팀 내에서 축적된 논의 끝에, 2015년 상반기에는 총 4차의 기획토론이 계획되었고, '혐오'를 주제로 한 제1차 기획토론에 이어 지난 2월 13일에는 "HIV/AIDS"를 다룬 제2차 기획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동성애인권운동이 태동한 1990년대 전반의 시기는, 공교롭게도 HIV/AIDS에 대한 공포의 확산과 함께 이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들이 태동한 시기와 일치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정부 단체, 감염인 당사자 모임, 그리고 HIV/AIDS 인권운동 단체들이 이 시기 속속 설립되면서, 그들을 중심으로 한국 HIV/AIDS 인권운동의 기틀이 다져졌습니다. 친구사이 또한 초창기 주요 사업 중 하나가 HIV/AIDS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사업, 동성애 및 HIV/AIDS에 대한 편견과 싸우는 캠페인 등이었으며, 2003년에는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한국 남성동성애자들의 성행태와 후천성면역결핍증에 대한 인식이라는 이름의 공동 연구 결과물을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친구사이 내에 감염인(PL) 자조모임 '가진사람들'이 발족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0년간 진행되었던 HIV/AIDS 인권운동과 관련하여, 그간의 활동을 개괄하고, 현재의 문제점을 환기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친구사이 정회원들을 비롯하여 정욜(KNP+), 김현구(iSHAP), 박광훈(나누리+), 호림(행성인(舊 동인련) HIV/AIDS 인권팀), 권미란(前 나누리+), 타리(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등 다양한 단체에서 오신 활동가 분들을 모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아래는 기획토론 때 언급되었던 내용 중 일부를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1. 한국 HIV/AIDS 인권운동의 역사
 
 
기획토론 때 나온 회고를 바탕으로, 지난 20년간 설립되었던 HIV/AIDS 관련단체들과, HIV/AIDS 인권운동의 역대 주요 이슈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1) HIV/AIDS 관련 단체
 
1990년대 이후 설립된 HIV/AIDS 관련 단체는 크게 정부 단체, 감염인 당사자 모임, HIV/AIDS인권운동 단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먼저 HIV/AIDS를 "예방", "퇴치"하기 위해 1993년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및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2003년에는 iSHAP, 즉 동성애자에이즈예방센터가 출범하였습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산하 HIV/AIDS 예방팀에서 활동하던 분들이, 질병관리본부의 사업신청을 득한 것을 계기로 iSHAP이 탄생되었고, 동 단체는 이후 한국에이즈퇴치연맹 산하 단체의 형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콘돔과 젤을 무상 배급하고, HIV/AIDS 검진 서비스를 무료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그 어떤 인권운동단체보다 게이 커뮤니티에서 이름이 알려진 단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감염인 당사자 모임 또한 1990년대 중반부터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일부 단체들만 설립연도 순으로 나열하면, 희망나눔터(1995), 러브포원(1999), KANOS(한국HIV/AIDS감염인연대)(2002), 세울터(2003), KAPF(한국HIV/AIDS감염인협회)(2005)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한편 2011년에는 부산에서 ICAAP(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 대회에서 HIV/AIDS 관련 국내·해외활동가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경험을 갖게 되고, 이에 감염인 자조그룹들이 연합회를 만들자는 욕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2011년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가 출범하였고, 한국청소년·청년 감염인 커뮤니티 '알'도 동일 년도에 창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HIV/AIDS 인권운동단체를 들 수 있습니다. HIV/AIDS인권운동의 여러 이슈들을 중심으로 인권운동가들과 당사자들이 힘을 합쳐 꾸린 단체들인데, 우선 연대체의 형식으로 2003년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가 발족합니다. 나누리+는 감염인의 권리에 대한 문헌 번역 등의 활동과 함께, HIV/AIDS 관련 주요 이슈에서 빠짐없이 투쟁해오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HIV/AIDS 인권운동 연대체로 자리매김되었습니다. 또한 단체가 활동하는 과정에서 감염인임을 커밍아웃하고 운동에 나섰던 윤가브리엘님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나아가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팀이 2010년 발족됩니다. 이슈 중심의 운동도 중요하지만,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이슈화할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창설되었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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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NP+(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홈페이지.
 
 
 
2) 2000년대 이후 HIV/AIDS 인권운동의 역대 이슈
 
ㄱ. 법정전염병 병력자 정보제공방안 반대투쟁(2005)
2005년 보건복지부가 HIV/AIDS 감염인을 포함한 법정전염병 병력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하였고, 감염인에 대한 신상정보가 이미 대한적십자사에 넘어가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나누리+, KANOS, KAPF, 세울터, 러브포원 등의 단체에서는 이러한 감염인 정보 제공이 HIV/AIDS 감염확산을 막는 데 실효가 없으며, 정보제공 자체가 감염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음을 들어 질병관리본부 앞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 때가 나누리+와 감염인 단체가 처음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경험이었으며, 운동의 틀 안에서 감염인 당사자의 경험과 항의가 전면적으로 가시화되었던 점이 의미있었다고 평가됩니다.
 
ㄴ.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개정투쟁(2006)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소위 '에이즈 예방법'은 한국 정부의 HIV/AIDS 정책과 이에 대한 시선이 집약되어있는 법입니다. 무엇보다 전염병예방법이 있음에도 HIV/AIDS에 대해서는 특별법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 상징적이지요. 이에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는, 이 법이 일반 국민과 감염인을 분리시키는 근거로 사용된다는 점을 들어, 2006년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의 전면 개정을 주장합니다. 투쟁결과, 완전하지는 않지만 요청했던 조항 수정이 일부 반영되었고, 강제적인 조치보다는 지원과 보호로 정책의 방향을 트는 법령 수정이 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HIV/AIDS 감염인이 콘돔 없는 성행위를 했을 때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는, 제19조의 '전파매개 금지조항'은 개정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감염인을 일반인에게 HIV/AIDS를 전파시킬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고, 감염인을 '섹스 불가능한' 존재로 만든다는 점에서 당시 인권단체들의 지적을 받은 바 있습니다.
 
ㄷ. 의약품접근권투쟁(2008)
2000년대 중반, 초국적 제약회사들이 특허권 문제, 또는 한국에 AIDS 환자가 적어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국내에 에이즈 치료제를 시판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이 있었고, 이에 '푸제온' 등 AIDS 치료제 신약들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감염인들의 건강권이 침해받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고, 특히 나누리+의 윤가브리엘 활동가의 경우도 신약을 투여할 수 없게 되어 건강이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국내·국외 HIV/AIDS 인권운동단체들이 제약회사에게 해당 의약품의 특허를 포기하고 AIDS 치료에 필요한 신약이 공급되도록 할 것을 종용하였고, 이 결과 현재는 최근에 개발된 AIDS 신약들이 거의 모두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ㄹ. 수동연세요양병원 사태(2013)
AIDS 감염인 환자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요양병원이었던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AIDS 감염인 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고, '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인권침해와 차별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故 김무명씨의 경우 요양병원 측의 방치로 인해 제때 의료처치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같은 일이 발생하자 질병관리본부는 해당 병원의 AIDS 환자 장기요양사업 위탁을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AIDS 환자들이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이 태부족하고, 있는 요양병원조차 인권침해가 자행되는 상황에 맞서KNP+, 나누리+ 등의 단체들은 AIDS 감염인 환자들의 인권침해를 규탄하고, 감염인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요양시설을 설립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사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인권단체에서는 입원환자, 가족들과 접촉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요양병원은 어떤 것인가란 고민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ㅁ. '고위험군'에서 '감염취약군'으로의 용어 수정
HIV/AIDS 인권운동단체에서는 남성동성애자 집단을 AIDS "고위험군"이라고 명명하던 전례에 문제를 제기하고, "감염취약군"으로 용어를 수정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고위험군"은 본래 high risk group의 번역어로서, 의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위험군"이라는 말은, 그것이 가리키는 집단정체성, 즉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성노동자 등에 대한 낙인 효과를 더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 말 속에는 그 사람이 어떤 사회적 상황에 처해있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취약군"이라고 했을 때는, 단순히 어떤 질병에 대한 "취약"의 측면 뿐만 아니라, 법·제도·사회 인식 등, 그 사람이 처한 총체적인 상황과 조건이 "취약"하기 때문에 검사, 예방, 교육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인식까지도 함께 담보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단어의 사용이 보다 선호되었고, 이에 "감염취약군"이라는 말이 점차 널리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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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동연세요양병원 측의 방치로 사망한 故 김무명씨의 1주기 추모제 홍보전단.

 

 

 

3) HIV/AIDS 인권운동의 변천과 한계

 
HIV/AIDS 인권운동 초창기에는 감염인·비감염인에게 올바른 HIV/AIDS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가, 2000년대 후반 들어 AIDS 후치료 문제가 대두되면서 문제의식이 다양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된 주요 이슈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개진하였습니다. 더불어 감염인 모임의 경우, 초창기는 정부 산하 협회를 중심으로 감염인 자조모임이 생기다가 이후 독자적인 감염인 모임, 또는 인권단체의 속성을 띠는 감염인 모임으로 그 성격이 변화한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감염인 커뮤니티가 점차 활성화되어, 단체 간 관련 정보의 유통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경향이 있고, 이에 따라 초창기에는 나누리+ 등 인권단체가 먼저 HIV/AIDS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 어느 시점부터는 감염인 단체들에게 운동에 대한 제안이 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변화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토론에 참여한 분들은 이 운동이 감염인들의 자긍심과 가시화를 북돋는 단계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무엇보다 HIV/AIDS는 어떤 병이고, 당사자는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매번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앞에서 나열된 HIV/AIDS 관련 역대 이슈들은 대부분 의료, 건강권 등,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감염인의 노동할 권리 등의 사회권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현실인 셈이지요. 또한 이렇게 감염인의 경제적 사정이 주로 어렵기 때문에, 감염인 자조모임의 경우 단체의 활동자금이 축적되기 어렵고, 단체의 향배를 운동가가 강제할 수도 없는 실정이어서, 자조모임의 부침이 다소 존재한다는 점도 지적되었습니다.
 
 
 
 
2. HIV/AIDS 인권운동의 쟁점
 
 
1) HIV/AIDS와 게이정체성의 분리 전략에 대해
 
ㄱ. 분리가 필요하다는 입장
 
기획토론 전반에 걸쳐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주제는 바로, 이 'HIV/AIDS와 게이정체성의 분리 전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남성동성애와 HIV/AIDS가 원리적으로 다르다는 구호는 동성애인권운동 초창기부터 부르짖어왔던 것이고, 이는 액면 그대로의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호가 확산되고 사회 속에서 상식으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게이 커뮤니티 내의 감염인들이 보이지 않게 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먼저 게이인권운동의 초창기에는, 정부에서 게이들 모두를 "위험집단"이라고 부르는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컸습니다. 더구나 '남성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새로이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야 했던 초창기 운동의 과제에 있어, "HIV/AIDS는 HIV/AIDS이고, 게이는 게이이다"라는 분리전략이 게이라는 성정체성을 착근시키고 게이 커뮤니티를 강화한 측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 게이들이 잠재적인 HIV/AIDS 환자로 취급받았던 과거의 혐오, 낙인에 맞설 전략이 필요했던 셈입니다. 이렇듯 '게이'와 'HIV/AIDS'를 분리하는 전략은 주로 커뮤니티 내부보다는, 혐오세력에 대한 대응을 포함한 대사회적인 구호로서 사용되었습니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HIV/AIDS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게이'라는 용어보다는 'MSM'(Men who have Sex with Men), 즉 남성과 섹스하는 남성이라는 뜻의 이 용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전자는 성정체성을 가리키는 용어이고, 후자는 실질적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인데, HIV/AIDS 이슈에 있어서는 후자의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 말은 곧, 'MSM'과 '게이'는 원리적으로 일치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함의가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남성과의 섹스를 즐기는 이성애자(!)들도 있을 수 있고, 그들이 게이가 아니라고 해서  HIV/AIDS의 감염으로부터 자유로울 리는 없는 것이지요.
 
또한 HIV/AIDS의 전파가 '범죄', 혹은 '책임'의 프레임으로 인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게이'와 'HIV/AIDS'가 별개라는 구호는, '병의 주범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환기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즉 HIV/AIDS 감염이 범죄화되는 방식에 저항하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까닭으로 게이정체성과 HIV/AIDS를 분리하는 전략은 일정한 효용을 갖고 있고, 실제로 이러한 개념은 인권단체들의 노력으로 사회 속에 부족하게나마 자리잡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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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친구사이의 HIV/AIDS 캠페인 전단지.

 
 
ㄴ. 분리가 부적절하다는 입장
 
그러나 문제는, 한국의 경우 90% 이상의 감염인이 남성이고, 집계된 감염경로의 반이 동성간 성관계입니다. 따라서 감염인들 중에 남성 간 섹스를 수행하는 게이들이 많은 것은, 슬프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기실 정부 기관과 공조하여 iSHAP이 출범했던 것도, 적어도 동성애자 커뮤니티 내부적으로는 "HIV가 동성애자의 병"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더불어 게이 커뮤니티 내에는 앞서 말했듯 실제로 감염인이 적지 않음은 물론, 게이커뮤니티가 가지는 HIV/AIDS에 대한 공포 또한 이성애자들의 그것보다 높은 편에 속합니다. 더불어 이렇게 질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기에, HIV/AIDS 문제를 내 지인, 내 커뮤니티의 일로 인지하지 않고, 나와 얽힌 일로는 아예 생각하기조차 싫어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자연히 감염인들 스스로가 게이커뮤니티에서 자신의 감염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극히 꺼려하게 됩니다. 감염인 커뮤니티가 1990년대 초반부터 생긴 이유도, 사실은 그들이 동성애자 커뮤니티와 잘 섞일 수 없었던 까닭이 있었을 것입니다.
 
게이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인식이 확산된 것은 "게이=HIV/AIDS"의 도식을 강조하는 사회 속 혐오세력들의 공격에도 큰 원인이 있지만, 그러한 인식에 맞서 게이인권운동 스스로가 '게이'와 'HIV/AIDS'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대사회적인 구호를 반복하다보니, 그 분리의 효과가 커뮤니티 내에 그어지면서 거듭 예기치 않은 효과를 낳은 것 또한 하나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사회 속에서 동성애자가 없는 것처럼 치부되듯이,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 감염인들이 없는 것처럼 치부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토론에 참석한 한 분이 어떤 감염인이 쓴 글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는데, "동성애자인권운동 하는 애들이 너무너무 싫다, 동성애자와 에이즈가 관련이 없다고 얘기하는데, 동성애자이면서 에이즈에 걸린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글이 HIV/AIDS 인권운동 관련 사이트의 익명게시판에 올라왔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게이 커뮤니티 내 HIV/AIDS의 인식이 변해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공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지인들에게 알음알음 자신의 감염 사실을 밝혀오는 감염인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조금씩 HIV/AIDS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러나 HIV/AIDS에 대해 게이들이 가지는 공포와 혐오감은 여전히 일반 사람에 비해 높고, 감염인들에게 현존하는 게이 커뮤니티가 왜 '죽어도 내 감염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은' 공간이 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할 수 있습니다.
 
 
2) HIV/AIDS 관련 정보 제공의 문제와 그 너머의 문제
 
ㄱ. HIV/AIDS에 대한 정보 제공과 실태조사의 필요성
 
HIV/AIDS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권운동 초창기부터 줄곧 강조되었던 바이지만, 지금도 그 중요성은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콘돔을 착용하고 세이프 섹스를 해도, 아니면 가벼운 키스를 하거나 아예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HIV/AIDS에 감염될 수 있다는 '괴담'들이 적지 않게 퍼져있기 때문이지요. 제대로 된 정보를 아는 것과 그것을 전파하는 것은 백번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이 이슈에 있어 중요합니다.
 
또한 HIV/AIDS에 대한 게이 커뮤니티, 혹은 사회 내의 인식이 정확히 어떤지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어렴풋한 공포와 혐오의 인상 외에,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양적·질적 연구에 기반한 데이터 구축은 필요합니다. 조사를 해본 결과 생각보다 혐오가 없을 수도 있고, 아주 심할 수도 있겠지요. 어떤 이슈에 대해 접근할 때도 막연한 인상보다는 이렇게 조사된 데이터를 가지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연구사업을 학계로 의탁하거나, 운동단체들 내에서 연구역량을 키우는 방안이 고민될 수 있습니다.
 
 
ㄴ. 감염인에 있어 HIV/AIDS 관련 정보 제공 이상의 문제들
 
그러나 이런 정보가 충분히 알려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HIV/AIDS에 감염된 사실을 알았다고 했을 때, 그 순간 그에겐 무엇이 필요할까요. 물론 HIV/AIDS에 대한 정보들은 여러 단체들의 홈페이지에 무수히 게재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거기에 찾아 들어가서 관련 정보를 알아보면 된다"는 것으로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을까요.
 
검진결과 HIV/AIDS 양성 판정을 받는 그 때의 심정은, 그런 정보를 찾을 수 있고 말고의 문제 이전에,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이 내 병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막막함일 것입니다. 그 절벽같은 심경이 어느 정도 추스러진 후에야, 무슨 다른 정보라도 찾아볼 마음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올바른 정보에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감염인 스스로 느끼게 될 수 있는, 주위의 게이 커뮤니티가 자신을 받아들여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어째서 생겨나는지에 대해 더 고민할 필요가 있는 셈입니다. 
 
더불어 감염인은, HIV/AIDS에 감염되어있다는 사실 이외에도, 여느 사람처럼 다양한 욕구와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 또 한 명의 '인간'입니다. 물론 HIV/AIDS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감염인의 존재를 단순히 'HIV/AIDS 지식을 알아야만 하는' 사람으로 요약하지는 않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감염인이 그 안에서 자신을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게이 커뮤니티의 조건들을 고쳐나가고, 커뮤니티 속에서 감염인이 다른 이들과 어떻게 '사람'으로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날 기획토론에 참석한 한 HIV/AIDS 감염인의 다음 발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HIV/AIDS에 대해 상담할 때, 보건소에서는 그냥 대한에이즈협회에 가서 상담하라고 해요. 저는 친구사이에서, 그래도 같은 게이 단체니까, HIV/AIDS 감염인 게이들에게 상담역할도 해주고, 그런 역할이 좀 대내적으로 알려지고 했으면 좋겠어요. 첫단계가 가장 중요해요, 감염 사실을 알고 난 직후가. 자기가 자포자기 상태에서 지내는 것 하고, 모든 정보를 알고 나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하고 굉장한 차이가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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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팀에서는 제1‚2차 기획토론에 이어, 지난 3월 20일 동성결혼 제도화와 시민권을 주제로 한 제3차 기획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다음 달 소식지를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향후 열릴 제4차 기획토론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제4차, "커뮤니티" : 친구사이와 게이 커뮤니티 (2015.4.18.)
 
 
 
요약 및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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