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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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퀴어자랑 #3] 전라도 전주 - 지역의 성소수자들과 함께, 낯설지만 같이
2015년을 맞이해 친구사이 소식지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 <전국퀴어자랑>. 일요일이면 일요일마다 어김없이 찾아오지도 않고, 송해 선생님도 없지만, 팔도 방방곡곡에 거주하고 있는 다양한 퀴어들, 그리고 곁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의 세상사는 이야기를 신명나게 소개합니다. 그럼, 다 같이 외쳐보아요. 오랜만에 돌아와 더욱 반가운, 전~국! 퀴어자랑-
편집자 주 -
지난 5월 16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T)을 맞이하여 전국에서 무지개 버스를 타고 온 성소수자들이 한데 모여 혐오 반대를 외치던 날, 친구사이 아이다호 행사를 마치고 나는 발빠르게 한 부스를 찾아다녔다. 바로 전라북도 전주에서 올라온, 동향 분들을 뵙고 싶어 찾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부스였다.
비록 늦은 바람에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내가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낸 고향 근처에도 성소수자들이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기뻤던지. 부랴부랴 전주에서 거주하는 성소수자 분들에 대한 글을 의뢰드렸고, 흔쾌히 오케이를 받았다. 그래서 더 두근두근.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다양한 인권운동에 성소수자와 함께 하는 마음이 빛나 더 반가운 단체. 이 단체 활동가를 통해 듣는, 살아있는 전주 퀴어 스토리에 귀 기울여보자.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던 지난 6월 28일, 지역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내고 서류를 정리하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역 성소수자들이 만든 ‘2015년 퀴어문화축제와 함께하는 전북지역 성소수자 선언문’을 저희 단체에서 보도자료로 배포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곳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직접 낼 수 있었던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탠 것 같았습니다. 직접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죠.
저희 단체는 1994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에 출발해 작년에 단체 창립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크지 않은 단체이지만 전북지역 내에서 다양한 인권의제들을 활동 영역으로 하며 인권운동을 해오고 있죠. 최근에는 지역 내의 가장 큰 규모의 장애인거주시설 내에서 시설관계자들에 의해 발생한 장애여성 성폭력사건 문제를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성폭력사건 가해자 2인에 대한 처벌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어 시설을 설립한 복지법인을 폐쇄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인권문제들에 연대하고 지역사회의 의제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친구사이에서 기고 요청을 하셨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지역에서 가장 최근에 성소수자 인권문제로 쟁점이 되었던 사안이기도 했던 전라북도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입니다. 2011년부터 발의된 전북교육청의 전북학생인권조례안이 보수적인 전북도의회 교육위원회의 트집 잡기로 연이어 부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3년 1월 22일, 당시의 전북도의회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인 장영수 도의원이 대표발의한 전북학생인권조례안이 큰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그전까지 전북교육청 조례안에는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이 명시되어 왔는데 이 조항이 삭제된 것이죠. 그밖에도 타 지역의 학생인권조례에 비교하면 후퇴된 내용의 조례안이었습니다. 이전에 전북교육청에서 제출했던 조례안을 도의원들이 마음대로 짜깁기 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부 도의원들의 입장에서는 보수적인 도의회의 반발을 조금이라도 무마하자는 것이었겠지만, 인권이 삭제된 이름뿐인 학생인권조례안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을 비롯하여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교육부와 보수-혐오세력의 공격이 갈수록 높아지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같은 조례안이 통과되면 저희 지역만이 아니라 이후 타지역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불을 보듯 뻔했죠. 저희 단체를 비롯해 지역의 청소년들과 시민들과 함께 후퇴된 조례안을 폐기하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저희 지역만이 아니라 전국의 청소년인권단체들과 성소수자무지개행동에서도 함께 후퇴된 조례안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주셨지요. 다행히 이런 힘들이 모여 조례안은 2월 도의회에서 폐기되었고, 같은 해 6월에 다시 의원 발의된 조례안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차별금지 내용을 포함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이후 전북학생인권조례로 제정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때의 일들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고민을 더 깊게 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죠.
그리고 올해 들어서 무지개행동으로부터 2015 아이다호 공동행동의 날에 지역 활동을 준비해봤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왔었죠. 제안이 반갑기도 했지만 고민도 많이 들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을 의제로 한 활동의 경험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일단 지역의 여성단체들과 함께 왜 혐오문제에 맞서 같이 해야 하는지 간담회도 진행하고 아이다호 공동행동의 날에는 전남 지역과 함께 무지개버스를 준비했습니다. 미흡한 부분도 있었고 많은 분들이 무지개버스에 같이하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자리를 함께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다호 이후에 소소하지만 여러 반응들이 있었거든요. 지역 방송에서 아이다호 공동행동 보도자료를 보고 당사자들을 취재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다른 단체에선 성폭력예방교육 활동가들과 성소수자들이 함께 모인 간담회를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지역의 당사자들과 아직 자리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런 것들이 변화라면 변화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이다호 이후에 지역의 성소수자들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 지역의 성소수자들과 서울과 대구의 퀴어문화축제에 함께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요. 축제에 참여하는 것 외에도 퀴어문화축제를 훼손하려는 성소수자 혐오 세력에 어떻게 함께 맞설까 이야기를 하다가 퀴어문화축제 동참을 호소하는 선언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이 나왔죠. 비록 지역은 다르지만 우리도 ‘퀴어문화축제와 함께 하고 있음’을,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혐오 세력에게 ‘성소수자가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외치는 것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했죠. 초안을 서로 확인하고 다듬으며 6월 중에 인터넷 상에서 공개적으로 개인별 연명을 받았습니다. 6월 26일까지 총 12명의 전북지역 성소수자가 참여했고 선언에 참여한 개인의 상황에 따라서 본명이 아닌 별칭으로 연명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저희 단체에서는 보도자료 정리와 배포를 담당하기로 했지요. (선언문 전문도 같이 읽어봐 주세요.)
단체에서 이런 활동들을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지역 내에서는 앞으로 어떤 방향의 활동을 만들어야 할지도 고민이 듭니다. 전북지역에서 조직적으로 혐오가 표출된 것은 아니지만 두드러지지 않을 뿐이라고 혐오는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특히 작년 겨울 서울시민 인권헌장 문제를 접하며 그와 같은 일이 언제든 전북에서도 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역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의제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앞으로의 활동에서 고민이 드는 부분이죠. 일례로 전라북도인권조례를 봐도 그런 점을 느낍니다. 2010년에 몇몇 도의원들을 중심으로 조례가 제정되었지만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부분은 미미합니다. 조례 제6조에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한 인권보장 및 증진 기본계획을 도지사가 수립해야 한다고 나와 있지만 정작 성소수자에 대한 명시는 없이 ‘OOO 등’으로만 표시되어 있습니다. 조례제정과 개정에 지역시민사회의 목소리는 담지 않고 대응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성소수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지역사회의 분위기도 영향이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의 성소수자가 유령이 아님을, 지금 이곳에 함께 살고 있음을 알리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희 단체와 인연이 있는 성소수자 역시 극히 적다보니 소수자 인권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활동을 만들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요즘은 혐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작게나마 여러 공간에서 모아보려고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도 아이다호 공동행동 즈음에 <후천성 인권 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와 영화 <종로의 기적>을 함께 읽고 보면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기도 했었죠. 모임에 함께 하는 교사들 중에 한분은 영화에 감동하셔서 지역 월간지에 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쓰시고, 요즘은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뜻에서 무지개버튼을 옷깃에 달고 다니세요. 미미할지 몰라도 이렇게 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조금씩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방향에서 다양한 혐오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더 연대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연대의 손잡기를 계속 만들어 가는 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지역에서 함께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과 함께 혐오에 맞서서 낯설지만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계속 찾아보려고 합니다.
여기에 성소수자가 있다! 여기에 당신의 인권이 있다!
-2015년 퀴어문화축제와 함께하는 전북지역 성소수자 선언-
○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긍정하는 날입니다.
올해까지 16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퀴어문화축제는 가족, 친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퀴어(성소수자들)들이 오직 이날 하루, 자유롭게 거리에 나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뜻 깊은 날입니다. 하지만 작년, 보수 기독교과 혐오 세력의 방해로 퀴어퍼레이드가 4시간동안 지연되고, 인권시민헌장이 무산되는 등 ‘혐오’로 ‘사랑’을 짓밟으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올해에도 보수 기독교 세력이 퀴어문화축제를 무산시키기 위해 서울 시내 주요 장소에 동시다발적 집회신고를 하고, 경찰은 서울과 대구에서 행사를 금지하려는 등 퀴어문화축제는 난항을 격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소수자들을 향한 국가 정책과 법제화 상황은 밑바닥 수준입니다. 2014년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 지수('무지개 지수')는 유럽 49개국과 비교하여 45위에 머물렀습니다. 또 성소수자 인권재단 설립 허가 거부, 공공행사 장소사용 불허 등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사건으로 인권지수가 더욱 하락하였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동성애에 대한 관용도’는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등 정작 국민들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인식에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성소수자입니다. ‘함께 사는’곳에서, ‘꼴 보기 싫다’는 이유로, 우리를 향해 ‘죽어라’라고 말할 자유는 없습니다.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퀴어문화축제를 향한 보수기독교세력과 경찰의 행위는 혐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사회로부터 용인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인권은 더 이상 ‘찬반’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 땅에 살아오던, 살고 있는, 살아갈 ‘우리’는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만이 생존은 아닙니다. 존재를 지워내려고 하는 폭력에 맞서는 것이 바로 생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인권은 목숨입니다.
여기 전라북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언에 우리의 이름조차 마음껏 적어 낼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분명 당신의 옆에 존재합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만들어 가만히 있어도 아픈 사람들을 벼랑으로 미는 혐오범죄 때문에, 우리는 가면을 쓰고 숨어들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퀴어문화축제에 함께할 것입니다. 6월 28일 퀴어문화축제와 7월 5일에 열릴 대구퀴어문화축제에 다양한 방식으로 동참할 것입니다.
○ 많은 시민들에게 호소와 연대를 부탁합니다.
전라북도민 여러분, 모든 ‘사랑’할 권리, ‘존재’할 권리를 위해 ‘내가 성소수자다’라는 구호를 함께 외쳐주세요. 우리가 가면을 벗고 마음껏 숨을 들이마시며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게 존재를 위해 함께 해주십시오. 퀴어문화축제를 지키기 위해 우리와 함께 외쳐주세요.
> 편견과 무지의 혐오범죄를 멈춰라!
> 민주주의와 인권의 파괴범들은 각성하라!
> 보수기독교와 경찰은 광장을 열어라!
> 성소수자의 인권은 목숨이다! 우리를 죽이지 마라!
> 개인 선언
· 사랑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 전북에도 동성애자는 살고있다!! 학교에도 일터에도 가정에도 우리는 존재한다!
· 혐오를 멈추어라!
· 존재는 혐오보다 강하다. 너희가 우리를 짓밟으려 한다면 우리의 존재가 곧 너희와의 싸움일지니, 우리는 존재함으로써 끝까지 싸워 세상의 일부임을 인정받으리라.
· 누구도 내 존재를 찬반 할 수 없습니다. 혐오를 멈춰라!
· 나는 이해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 인간의 존엄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2015년 퀴어문화축제와 함께하는 전북지역 성소수자 선언 참여자
(김다이 이으네 은지 박진영 시원 한연화 반이 바라 강지현 스티치 TragicComedy 우쉬고니 이상 12명)
글, 사진 - 채민(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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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이런 이슈들이 있었는지 몰랐네요.
성소수자 문제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함께 해주는
지역인권단체가 있다는 사실에 반갑고 마음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