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친구사이 회원여러분. 이번 지보이스 공연 잘 보셨나요? 이번 공연에선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여서 좋으셨다고요? 그 맘, 제가 잘 알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4명의 지보이스 신입단원들에게 이번 공연의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시화
지보이스의 막내인 시화군은 조그마한 체구에 하얀 얼굴을 무기로, 차세대 비주얼 멤버로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입니다.) 주목받고 있습니다. 작년 지보이스의 막내로 귀여움을 독차지 했던 일지군으로부터 혹독한 특훈을 받아서, 내년이 더 기대가 되는 멤버입니다.
아론 지보이스에 들어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시화 저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친구사이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바빠서 친구사이에 잘 참석하지 못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친구사이 내에도 소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사람들과 더욱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소모임에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보이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워낙에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동갑인 행이도 지보이스 단원이어서 지보이스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와, 저 스스로도 ‘공연까지 활동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어울리다 보니 합창의 묘미도 알게 되었고 ‘퀴어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끝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론 그렇군요! 이번 공연에서 일지군과의 특훈은 어땠나요?
시화 ‘일지형과 썬가드형 두 분이 없었으면, 어떻게 공연에 설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특히 일지형은 공연 막바지까지 틀리는 음을 하나하나 잡아주시고, 연습 시간 보다 일찍 와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지금도 공연 생각하면 테너1 형들이 도와주셨던 것들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네요. 제 옆에서 틀린 음 들으시느라 고생하신 수미형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테너1 형들이 처음부터 잘 챙겨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공연에 설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들 수고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아론 테너1 파트분들의 단합이 정말 뛰어났군요. 시화군은 이번 공연 때, 가족분들이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땠나요?
시화 사실 부모님이 오신다고 하셨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는 말로 공연할 것 같다고 말한 게 전부였으니까요. 부모님께선 우연히 제 컴퓨터를 보시다 제가 게이라는 걸 아셨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게이 아들 시화와 현실속의 게이 시화는 많은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해서 인지 처음에는 겁이 났습니다. 지금까지의 위태로운 관계마저 깨질 것 같은 두려움도 생겼고요. 결국 긴장한 채, 시간은 흘렀고 공연은 다가왔습니다. 정작 공연 당일 날은 공연 시작 전까지 준비하느라, 부모님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공연은 시작되었고 무대 위에서 저는 다음 안무와 가사를 기억하느라 또 지휘자님의 지휘를 따라가느라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 살펴보지도 못했습니다. 간간히 살펴보긴 했는데 제 기억에는 표정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공연은 끝났고 부모님의 반응은 나쁘지 않은 듯 했습니다. (어머니는 만족한다고 레몬청까지 사가셨는데 아버지는 끝나고 나서 소주 1병을 비우고 집에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허허) 그냥 저는 부모님이 와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공연을 즐기고 가셨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에게 부모님과 관련해서 쓸 만한 글은 이정도 밖에 없는 것 같네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오늘도 집에서 저녁 먹으며 이야기 나누면 좋겠네요.
썬
베이스 파트에서 엉뚱함을 맡고 있는 우리 썬님. 썬님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술 한 잔 같이 기울이시면 됩니다. 제가 장담하는데, 썬님의 무한한 매력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아론 썬님은 나오신지 꽤 된 것 같아요. 어떻게 처음 지보이스에 나오게 되었나요?
썬 방송과 인터넷 등 각종언론매체를 통해 성소수자들이 겪는 차별의 아픔을 보면서 마음이 찢어질듯이 아팠습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호모포비아들에게 우리도 대한민국의 국민이기에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각인시켜주고 싶었고 또한, 성소수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많이 접하는 ‘노래’라는 매체를 통해 다가가면 '우리를 조금 더 알아주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클라라님의 소개로, 지보이스 단원들의 노래연습 하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연습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후, 제가 이 공동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고,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지보이스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아론 썬님의 마음이 잘 전해지는 소감이네요. 썬님은 베이스파트시죠. 베이스파트는 멜로디라인이 없어 어려웠을 텐데, 공연 직전까지 잘 되질 않아 힘들었던 곡이 있었나요?
썬 처음 베이스파트에 들어와선, 음정과 박자도 놓치기 일쑤였고, 높낮이 톤도 잡지 못해서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베이스파트 식구들이 친절하게 잘못된 부분을 차근차근 알려주시면서 조금씩 점점 개선이 되었고 실력이 늘게 되었습니다. 가장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곡은 자비송(The Chant Of Metta)이었습니다. 종교(불교)에 관한 노래라서 익숙하지 않은 가사가 많아 다른 곡 보다 훨씬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썬 아무래도 두 번째 공연이 관객의 호응도가 높았습니다. 서서 공연을 관람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특히 19:30공연 마지막 곡 <Go West>를 부를 때에는,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서 열정적으로 호응해주시고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주셨는데, 그 때 분위기가 가장 최고조였습니다. 그 때, 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지보이스와 함께 연습하면서 행복하고 좋았던 수많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날 늦은 밤까지 함께 연습을 하고, 공연당일 아침부터 계속되는 리허설과 첫 공연을 마치고 난 후에도 두 번째 공연 전까지 쉴 틈 없이 연습했던 많은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공연을 통해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같이 고생한 것이고 조금 힘이 들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보이스와 함께한다는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관객과 출연진이 하나가 되어 소통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싸게
지보이스의 패피(패션피플) 중 한 명인 싸게님은 첫 공연이지만, 의상팀에서 단원들의 의상을 제작하고 <Go West>의 MR을 제작 하는 등, 많은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내년 혹은 내후년에 의상팀 팀장을 맡게 된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멤버입니다.
아론 싸게님은 어떤 계기로 지보이스에 나오게 되었나요?
싸게 원래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 올라가길 좋아했어요. 기억나지도 않는 ‘xx어린이집 꾀꼬리 동요대회 최우수상’ 상장이 책장에 꽂혀있고, 학교 다닐 때 기억에도 학교합창단활동이랑 학교축제 등등 나갈 수 있는 공연에는 빠지지 않고 올라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무대에 오르고 나서 생긴 안 좋은 계기로 무대서는 게 꺼려지고 무서워졌었죠. 그래도 머릿속에서는 항상 무대욕심이 가득 했었어요.
그러다가 ‘종로의 기적’이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스파게티나’님의 에피소드를 인상 깊게 봤었어요. 거기서 지보이스를 처음 알게 되었죠. 그때부터 ‘나는 꼭 서울에 살게 되면 저 합창단에 들어가고 말거야’ 하고 생각했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지보이스에 들어온 지금은 서울에 올라온 지 3년이 지나서네요. 이런저런 고민 많이 하다가 얼떨결에 친구 따라서 친구사이 OT에 나오고, 마침 신입단원 모집 중이라고 해서 바로 들어왔어요. 지금은 ‘그때는 왜 고민했던 걸까?’ 싶어요.
아론 이번 공연에 참여하면서 기분이 참 남달랐을 것 같네요.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을 꼽는다면?
싸게 기억에 남는 곡을 딱 하나 고르긴 힘들긴 한데, 이왕이면 이번 정기공연 무대에서 앵콜곡이자 엔딩곡인 고 웨스트(Go West)! 왜냐하면 이번 공연에서 MR을 쓴 곡이 이거 하나인데, 제가 MR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제일 지겹도록 많이 들었거든요. 말 그대로 기억에 남다 못해 박혀버린 것 같아요. 공연하고 나서 3일 정도는 머릿속이랑 콧노래로 계속 “고웨~ 고웨~...”
아무튼 공연 때 어쩐지 거의 긴장을 안 하고 있었는데, 고 웨스트 MR이 나오기 시작할 때는 갑자기 가슴이 막 뛰기 시작하고,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됐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노래와 안무를 자동으로 하고 있더라고요. 공연 보러왔던 친구들이 마지막에 깃발 흔들고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서 박수치고 하나된 것 같아서 감동의 물결이었다고 하는데, 그 노래의 MR을 제가 만들었다는 게 감격스러웠어요. 일주일 지나서 단톡방에 공연 날 녹음된 음원이 올라와서 들었는데, 물론 처음 듣자마자 했었던 생각은 ‘tempo가 왜 이렇게 빠르지?’였지만... 뒷부분에 가면서 무대 때 생각이 나서 또 한 번 울컥 했어요.
그리고 하나 더 고르자면 ‘오빠의 결혼식’이예요. 멜로디도 좋고 개인적으로도 가사가 좋았고, 이날 공연 때 이곡 때문에 아는 지인 트랜스젠더 분을 초대했었거든요. 그래서 더 열심히 이곡을 불렀던 거 같아요. FTM트랜스젠더 남성분이셨는데, 이날 여자친구분과 함께 오셨었어요. 공연이 끝나고 두 분이 다정하게 서서 감사인사를 해 주셨는데, 정말 보기 좋고 초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분 좋았습니다.
아론 싸게님은 신입단원이지만 MR도 작업하고, 또 의상팀에서도 활동했죠. 의상팀에서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싸게 의상팀... 이번 의상팀 하면서 어려웠던 점 하나 있어요. 의상팀과 운영진의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안 된 거. 특히 이번에 공연에 오른 PL상징의 빨간 리본이 사실 좀 다른 모양이었거든요. 디자인하고 시안을 올리고 의견 수렴한 다음, 수작업으로 정성들여서 제작까지 다 끝냈었죠. 그런데 운영진에서 이미 통과된 줄 알았던 리본 디자인이 리허설 때 운영진에 처음 공개되었던 거라니... 황당하고 솔직히 화도 났어요. 그 리본은 PL 상징성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수정을 해야 했어요. 그래도 수정이 어렵지 않아서 다행이었다는 후문.
그래도 이번 지보이스 정기공연에서 의상팀으로 의상과 소품제작까지 참여하게 된 건 신입단원으로서 굉장히 뜻깊은 일이고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어릴 때부터 미술이나 공예 같은데도 관심이 정말 많았는데, 그냥 평소에 좋아하는 거라서 취미활동 하듯이 재밌고 즐겁게 관심 갖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까 갑자기 뜨개질이 하고 싶어지네요.
우리 의상팀, 의상팀장님이신 아론형, 그리고 석이형, 백팩형, 오웬형, 일지까지. 신입이라 어색했던 저와 대화도 많이 하고, 밥도 먹고, 놀기도 하고, 같이 의상 작업도 하고 이것저것 함께 하는 일들이 많아서 지보이스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솔직히 적응하기 많이 힘들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더 고맙고 정말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그 외에도 많은데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요.
그리고 MR 못지않게 의상도 무대에서는 정말 큰 요소인데 신입 같지 않게 뭔가 큼직큼직한 것들 할 수 있었던 거에 크게 감사해요. 저를 믿고 뭔가 맡겨 주셨다는 사실 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백순재
아마 소식지 9월호를 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하실 이름이죠. 바로 <내 인생의 퀴어영화 - 헤드윅>을 써주셨던 백순재님 입니다. 글에서 느껴지는 진지함이 순재님의 매력일 텐데요. 큰 눈망울을 가진 백순재님은 이번 정기공연때 스텝으로 참여해 주셨고 앞으로 지보이스 베이스파트에서 활동하실 예정입니다.
아론 백순재님은 어떻게 지보이스에 나오시게 되셨죠?
백순재 ’00년쯤부터 친구사이 홈피를 눈팅했고 ’06년쯤 사무실에 처음 가 봤습니다. 그때 지보이스 음반을 사다가 날마다 베갯잇을 적시며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용기 내고 시간 만드는데 15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다면 어려서 조금이라도 한가할 때 일찍 도전할 걸…. 여러분의 오랜 팬입니다. 이제라도 함께하고 있는 게 한없이 감사합니다.
아론 베갯잇까지 적실 정도라니, 그 앨범 저도 들어봐야겠네요. 이번 정기공연의 스텝으로 활동하셨는데, 어떠셨나요?
백순재 많은 분들이 제가 무대에 서지 않기 때문에 서운하거나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해 주셨지만 밑에서 지켜보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더구나 바람잡이라는 핑계를 들어 응원단장이라도 된 것 마냥 객석에서 제일 신나게 놀았습니다. (자막을 했는데 왜 목이 아플까요?) 그러느라 실수를 X번 정도 했는데, 이제 상영회 날 구박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자막을 틀기 위해 샌더 형 노트북을 넘겨받았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해야 할 일’ 메모를 보는데, 아니 이걸 한 사람이 다 한다고? 쓸 데 없이 노래만 따라 부를 게 아니라 이왕 스탭을 할 거면 좀 더 많은 일에 나서야 했는데….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공연 한 편 올리려면 상상 이상으로 많은 일손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기획단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서 돕고 싶습니다.
백순재 그동안의 귀동냥 덕분에 (정기공연) 다음날 대한문 공연에는 설 수 있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데뷔는 이미 치른 셈인데, 그래도 기억 속엔 대만이 첫 무대로 남을 것 같습니다. 커밍아웃을 많이 해서인지, 이미지트레이닝을 10년이나 해서인지 대한문에서는 하나도 안 떨렸습니다. 지보이스 단독(으로 선 무대)도 아니고 두 곡밖에 안 불러서 그랬을 거 (같습니다.) 대만에서는 분명 기분이 많이 다를 텐데, 그래도 쫄지 않고 KBS 어린이 합창단마냥 노련하게 잘 하고 오겠습니다.
아론 네. 시화님, 썬님, 싸게님, 백순재님, 인터뷰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내년 공연 뒷풀이 때 이 기사를 제가 직접 읽어드리겠습니다. 이맘 변치말길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 소식지에 관한 의견이나 글에 관한 피드백, 기타 문의 사항 등은 7942newsletter@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