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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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박 10일의 뉴욕 성소수자 단체 방문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이종걸
이 여행의 시작은 아름다운재단의 활동가 재충전 프로그램 지원에서 비롯되었다. 아름다운재단의 활동가 재충전 지원 프로그램은 시민 사회 인권 단체에서 상근자로 근무 하는 활동가 중 3년 이상 근무한 활동가들에게 스스로 재충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지원비를 제공한다. 나와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장병권 사무국장은 뉴욕에 있는 LGBT 단체 방문과 뉴욕의 자긍심 행진(Pride Parade)에 참여하는 여행을 기획하였고, 운 좋게도 지난 5월 이 기획이 선정되어 지난 6월27일~7월6일까지 뉴욕을 방문할 수 있었다.
뉴욕이었다. 영어 실력도 일천하고,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에 대해서 전문적 지식도 없었지만, 무엇인가 선진 문화를 배운다고 할 때 떠오르는 이름 그것은 미국이 아닌 그냥 뉴욕이었다. 마침 뉴욕에는 레즈비언상담소의 케이 활동가가 공부를 위해 머물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동인련에서 2007년 뉴욕을 방문할 때 관계를 맺었던 ‘노둣돌’이라는 뉴욕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인 이민자 단체가 있다는 점 등. 이를 통해 뉴욕의 LGBT 단체와의 만남을 갖고, 그들의 생생한 활동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뉴욕으로 떠나기로 했다.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고, 한 달 반 동안의 준비 끝에 6월 27일 오전 9시 ‘태평양 넘어 평등의 무지개 잇기’란 이름의 9박10일의 여정이 시작됐다. 일본을 경유하며 20시간이 지나서야 JFK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이번 여행을 위한 큰 도움을 준 레즈비언상담소의 케이, 노둣돌의 이주연씨, 그리고 우리의 숙박을 위해 아파트 사용을 허락해준 케빈이 모여 1주일간의 일정을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단체방문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몇몇 단체에 대해 다시 연락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통역과 세부 역할에 대한 담당을 나눴다. 이 회의에 참석하진 못했지만,뉴욕 현지에서 단체 일정 섭외 등에 도움을 준 트랜스젠더 부모이며, 성소수자 가족으로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클라라 윤씨의 도움도 얻었다. 이 멋진 네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시간을 내어 나누고 싶을 정도니 이번 글에서는 이 정도로 정리하겠다.
첫 주말은 우선 자긍심 행진이 있는 주간. 우리로 치면 퀴어문화축제가 있는 주간이다. 28일(토) 오후 5시에는 Dyke March가 열렸고, 29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는 가장 큰 규모인 Pride March 가 있었다. Dyke March는 Dyke라는 용어 뜻처럼 주로 레즈비언이 중심을 이루는 퍼레이드였다. 차량이 따로 있기 보다는 마칭(행진) 밴드를 선두로 두고, 이 밴드의 신나는 리듬에 따라 각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은 피켓, 엽서 등을 보이며 행진했다. 약속된 다른 일정이 있어 더 오래 행렬에 같이 하지 못했지만, 이 행렬을 참여하는 참가자의 안전을 묵묵히 일하는 담당 스텝들, 행렬을 환호하는 거리의 시민과 행렬 주위의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뉴욕의 6월은 LGBT의 달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29일 열린 자긍심 행진이 가장 큰 행사이기는 하지만, 뉴욕시의 가장 중심 지역 맨하탄 이외에도 브룩크린, 퀸즈 등에서도 각각의 지역에서도 자긍심의 행진이 열리고, 다이크 마치, 트랜스젠더 마치 등 각각의 정체성에 따라 다양한 행진들이 존재한다. 말하고자 하는 이슈나 문제들이 저 마다 다르고, 그 것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 저마다 주체가 되어 문제들을 알리고, 공론화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29일 퍼레이드 전날 우리의 스텝의 케빈의 소개로 방문했던 한 곳은 ‘안티 프라이드 마치’이름으로 자유발언을 공연처럼 하는 현장의 숨소리가 살아있던 곳이었다.이 행사는 자긍심 행진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비판하고, 현재 주류 LGBT 운동계가 외면하고 있는 이슈들을 말하고 비판하는 자리였다. 내 영어 실력이 짧은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그 현장의 열기와 분위기만으로도 뉴욕에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29일 오후 12시부터 모인 우리 행진 참가단은 1시에 시작된 행렬을 3시 30분 정도 되어서야 마칠 수 있었다. 3.5km 정도 되는 거리를 약 2시가 30분 정도 걸었다. 서울의 거리로 말하자면 동대문역에서 시청역까지 이어지는 거리를 걸었다는 것. 그런데 우리가 행진을 끝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코리아타운 쪽으로 옮겼을 5시정도에도 아직 행진은 계속되고 있었다.총 11개의 섹션으로 나뉘고 총 320여개의 그룹들이 이 각각의 섹션에 참여하여 행진이 진행된다. 각각 진행로 마다 행진을 소개하는 진행자들이 각각의 그룹을 설명하고, 마지막에는 이 행진들의 행렬을 심사하여 가장 멋진 공연 또는 의상 등을 한 그룹에 상도 준다고 한다. 아무래도 규모면이나 참가자면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관중을 봤을 때 우리나라의 석가탄신일을 기념하기 위해 종로에서 열리는 연등 행렬 정도의 규모로 상상하면 얼추 비슷할 것이다. 부럽기도 했지만, 행진의 문화라는 것이 미국의 문화와 연결되는 지점도 많다고 보았고, 앞으로의 행진을 구성하거나 표현할 때 이들의 갖고 있는 체계와 조직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참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시안 퀴어 그룹과 함께하였고, 풍물패의 흥겨운 소리에 맞춰 행진을 끝까지 무사히 마쳤다.
7월 1일부터는 본격적인 단체 방문 일정이 시작됐다. 첫날에는 청소년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두 단체를 방문했다. ‘The Ali Forney Center’(2002년 설립)와 ‘Sylvia’s place’(2004년 설립)라는 이름의 LGBT 청소년 쉼터로 ‘Drop in Center’라는 형식으로 길 거리에서 노숙하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이후 자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도록 돕는 단계의 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커밍아웃 이후 가족 내에서 문제, 약물 중독, 젠더 표현 관련 문제 등의 다양한 이유로 집에 주거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고, 이러한 문제를 본인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무조건 안된다.’는 금지의 원칙이 아닌 스스로 자신이 결정한 행위에 대해 고민해보고 문제점을 파악하고 결정하는 과정으로 맞춰져 있다. 미국이라고는 하지만, 가족 안에서 커밍아웃은 어느 정도의 갈등을 일으키고 시간이 필요한 현실의 문제이기에 이 쉼터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사회복지사 등 전문 상담가들이 꾸준히 청소년과 면담하고, 길거리 현장에서도 그들이 이 공간을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있다고 한다. 이 단체는 한국에서 동인련, 섬돌향린교회, 열린문공동체교회, 차세기연, 다리프로젝트 등이 함께 모여 청소년 쉼터 마련을 위해 모금활동을 하고 있는 무지개 청소년 세이프 스페이스의 활동의 시작을 너무도 반겼고, 언제든지 질문이나 도움을 요청하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단체는 HIV/AIDS 관련 단체였다. 뉴욕에 가기 전 어둠의 경로로 봤던 ‘The Normal Heart’(1981년~1983 미국 뉴욕 게이 커뮤니티에서 HIV/AIDS 발병 초기 상황을 그린 케이블 채널 HBO의 TV영화, 영화 전에 연극으로 더 유명)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갔던 최초의 HIV/AIDS 최초 단체 ‘GMHC-Gay Men’s Health Crisis’(1982년 설립) 와‘APICHA – Asian and Pacific Islander Coalition on HIV/AIDS’(1989년 설립) 라는 단체를 방문했다. HIV/AIDS 관련 분야에서 이름 있는 단체로, GMHC는 예산 규모면에서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단체였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친 경험을 통해 AIDS에 대한 관점, 문제해결을 위한 인식의 변화 등의 과정들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HIV/AIDS 감염인의 취약한 환경을 직시하고, 이 커뮤니티 센터 안에서라도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기 보다는 편안하게 쉬면서, 자신이 원하는 문화 활동을 할 수 있고, 건강문제도 점검하면서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최대한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각각 단체의 활동만을 듣는 것으로도 시간이 부족해 좀 더 세부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상근 근무자와 자원 활동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각자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는 인상에 한국에서의 활동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로운 영감도 얻을 수 있어 복잡한 감정을 설명을 듣는 내내 감출 수밖에 없었다.
성격은 다르지만 인상 깊었던 몇 곳을 더 설명해야겠다. 하나는 성소수자들의 활동 관련 수많은 자료를 모아서 활용 및 전시하는 아카이브인 ‘Lesbian herstory Archives’ 이다. 40년의 역사를 가진 이 곳은 모든 자료를 현장에서 자유롭게 쓰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이 자료가 세상에 더 널리 쓰일 수 있도록 자료를 보호하기 보다는 활용에 목표를 두고 관리하고 있다.설립 당시 함께 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이 공간을 관리하고 직접 공간을 설명하면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올해70,80대의 정말 큰 언니들이 직접 전 세계에서 오는 관람객들을 맞아 자료를 설명하며, 자료에 대한 중요성을 세심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관람했을 때만 해도 남아공에서 온 관광객 등이 함께 했었다.
다른 한 곳은 1983년에 설립된 The 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Community Center 다. 365일 개방하고, 개방시간은 월요일에서 토요일은 오전 9시에서 밤10시까지. 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 밤9시까지. 한 공립 고등학교 건물을 구입해서 사용한 이 공간은 현재 내부 리모델링 중이었다. 이렇게만 봐도 이 곳은 365일 성소수자 누구나 와서 어려움에 대한 상담도 받고, 문화 활동도 하고, 본인이 스스로 자원활동도 할 수 있는 열려있는 공간이다. 성소수자 단체, 제도, 문화 관련 활동의 시작부터 모든 활동을 이 공간에서 할 수 있다. 그만큼 성소수자 관련 활동을 증진시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던 곳이라 볼 수 있겠다. 뉴욕시 게이남성합창단도 올해까지 이 공간에서 연습을 했다고 하는데, 이제 너무 사람이 많아져서 다른 곳을 찾으려고 한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그랬지만, 공간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강하게 느꼈다.
우여곡절 끝에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뉴욕시 게이 남성 합창단의 예술감독인 CHALES BEALE 이었다. 지휘자 및 공연 기획 등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분이었다. 런던시 게이 남성 합창단에서 5년 동안 지휘했고, 뉴욕 합창단에서는 올해로 7년째 활동하고 있는 임금을 받고 활동하는 지휘자였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것이었다. 이 곳 역시 매주 일요일 저녁에 연습을 하는 데, 일년에 세 번 주요 공연을 하고, 주말마다 연습을 하는 일정이 힘들지 않은가? 그 활동의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냐고 물었다. 그 질문의 답은 결국 노래였다. 너무 뻔한 답으로 보이겠지만, 노래하는 시간이 가장 소중했고, 그 소중한 시간을 같이 하기 위해 모였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힘든 시간을 노래로 이겨냈던 경험이 함께 갖고 있기에 그것으로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예술감독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살짝 눈물을 적셨는 데 이 멋진 런던 출신의 게이 아저씨 시종일관 달콤한 미소로 저멀리 온 우리를 맞이하면서 지_보이스와 화상 연습이나 공연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다큐멘터리 제작을 기대한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를 소개해주었다.
주로 저녁에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시안 퀴어 단체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뉴욕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자신을 퀴어로 정체화 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축인 이 단체들은 성소수자 문제 못지않게 이민자 관련 인권 문제 등에도 적극적이었고, 문제를 이슈화하기 위한 시위 등을 적극적으로 하는 활동적인 단체들이었다. 사무실을 따로 두지 않고, 회원들의 회비 등으로 운영하는 이 단체들은 단체들의 주요 모임 등은 LGBT 센터와 같은 공간을 빌려 활동한다. 단체의 주요 활동가들의 각자의 직장을 갖고 활동하지만, 그 활동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관련 단체 - GAPIMNY (Gay Asian and Pacific Islander Men of New York ), Q-Wave , Salga, 다리 프로젝트.
사실 이 기술적인 방문기로 9박 10일간의 이야기를 다 하기는 쉽지 않다. 그 순간의 일들을 글만으로 해소하기는 아쉽다.이 뉴욕 방문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목표는 앞서 있는 뉴욕의 성소수자 단체들을 활동을 보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원동력을 얻는 계기로 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도 느꼈지만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도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슈가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다. 그들이 해결 했던 경험들이 고스란히 또 우리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고, 고민해서 결정해야할 것들이 많다는 것,물론 우리는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론에서 나는 그럼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 고민은 아직 남아 있다. 이 짧은 여행으로 그 해답까지 얻었다고 하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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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방에 놓인 노둣돌이란 책이
실제 모임이란 이야기는 들었는뎁 신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