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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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극 히 주 관 적 인 게 이 용 어 사 전
"이쪽"
“어머, 진짜? 쟤 이쪽이야?”
아마 “이쪽” 사람들이 게이라는 단어의 언급을 피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이쪽”이 아닌가 싶다. “이쪽 사람”, “이쪽 친구”, “이쪽 모임”…… 굳이 본인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일반들의 듣는 귀가 있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게이들은 “이쪽”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너도 이쪽, 나도 이쪽, 우리는 다 이쪽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게이들은 ‘이쪽’이라는 비밀 점조직의 조직원들.
언제나 이방인
여행기를 보다 보면 “낯선 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는 식의 미담이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물론 요즘은 한국사람을 제일 조심하라는 경고마저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낯선 곳에서 같은 민족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유럽 여행을 갔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 주말이라서 싼 숙소들은 다 만실이었고, 비까지 오기 시작했는데, 밤이 깊어 결국 체크인을 못하는 시간이 되었다. 정처 없이 골목길을(저렴한 ‘유스호스텔’들은 모두 골목길 구석구석에 있었다)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한글이 보였다. 한인 교회였다. (평소 교회를 다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친밀감이 몰려왔다. 그 문을 두드리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당연히 밤이 깊은 관계로 문은 닫혀있었고, 나는 그 문간에서 비를 피하다 잠이 들었다. 일어난 것은 새벽이었다. 누군가 나를 깨웠다. 2주만에 낯설어진 한국어였다. 나는 그렇게 비엔나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간만에 땡큐 갓!!을 속으로 외쳤다. 이렇듯 도움을 구하는 쪽은 부담스러운 마음을 덜 가지게 되고, 도움을 주는 쪽도 경계를 덜 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같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거기에서 동질감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한국의 테두리 밖에서 새삼스러워진다. 한국을 벗어난 순간, 평소에는 (너무 당연한 나머지) 감지하지 못했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갑자기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성분 중에서 위쪽으로 치고 올라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은? 우리는 이성애의 헤게모니 속에서 살고 있다. 동성애적 정체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표출할 수 있는 순간들은 짧다. 그리고 우리의 ‘성분’을 시험하는 순간들은 너무 많다. 우리는 늘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감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마치 외계 행성에 홀로 떨어진 지구인처럼 말이다. 매일 아침 외계인의 탈을 쓰고 집을 나서는 순간, 해가 어느 쪽에서 뜨냐는 질문에 동쪽에서 떠야 한다고 해야 할 지, 서쪽에서 떠야 한다고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순간, 모르는 새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혹시 누가 봤을지 몰라 소름이 돋는 순간, 조악하게 움직이는 셋째 팔을 흔들어 보이며 나도 당신들과 같아요, 라고 쓴웃음을 짓는 순간마다, 지구인은 오히려 자신은 절대 외계인이 될 수 없다고, 자신은 지구인이라는 것을 통감할 것이다.
이쪽 사람들
혼자는 외롭다. 나와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더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는 “이쪽”사람들을 찾는다. 섹스에 굶주려 그 맛을 파고들어, 일회성 만남을 이어가다가도, 어느 순간 허무해지면 찾게 되는 것은 살 냄새가 아니라 사람 냄새다. 같은 성정체성을 공유한다는 것은 큰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 외국에서 갑자기 만난 한국사람이 낯선 사람이 아닌 것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종태원 아닌 곳에서 갑자기 목격한 끼순이 언니 또한, 어쩐지 낯설지 않다. “이쪽”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끼실금한 동창을 새삼 친근하게 느끼고, 종로 이쪽 바에서 마주친 직장 상사의 뒷모습에 묘한 기분을 느끼는 우리들은, 결국 빼도 박도 못하는 이쪽 사람들이다.
우리는 게이들과의 소통을 알게 모르게, 원한다. 정체성이 낯설어지면 낯설어질수록, 그것을 편하게 느끼게 해줄 사람들에 갈급이 난다. 그래서 이쪽 사람과 만나고, 이쪽 친구를 만들고, 이쪽 모임에 나간다. 모든 것이 마법처럼 해결되지는 않지만, 아무튼 삶의 긴장을 풀어주는 고마운 “이쪽” 커뮤니티. 우리에게 “이쪽”은 말하자면 울타리다. 밖의 위협에서 쉴 수 있는,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갇혀있다. 울타리이기 때문에. 울타리는 ‘외부의 위협’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게이들의 커뮤니티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 때문에 더 끈끈할 수 있는 것일까? 보이는 핍박, 보이지 않는 멸시에 움츠러들어 이쪽 그림자에 숨어든 우리의 자화상은, 어찌 보면 따스하고, 어찌 보면 처량하다.
데이팅 어플에서부터 취미 모임까지, 게이들은 다양한 커뮤니티를 찾고, 만들고, 부대낀다. 다 연애질 한다고 짜증을 내면서도 모임에 나가고, 아웃팅을 걱정하면서도 데이팅 어플에 예쁜 사진 올리기는 주저하지 않는 우리들. 따뜻함에 목말라있는, ‘이쪽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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