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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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BTI는 도대체 어떤 '종족'인가?
-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의 의미와 활용
“연령별로 동성결혼과 파트너십 중 원하는 것이 뚜렷하게 차이가 나.”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기획·발주하고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가 수행한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6월 요약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주요결과 발표회를 가졌고, 친구사이 20주년 행사가 있는 오는 8월 30일에는 최종보고서가 공개된다. 3년의 기간이 걸렸고, 3천여 명의 참여로 만들어진 결과이다.
과거에도 한국 성소수자들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 이번 연구는 가장 대규모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그리고 LGBTI를 아우르는 조사가 없었던 점도 다르다. 그만큼 좀 더 실상에 다가가고, 넓은 시각에서 성소수자들의 삶과 욕구를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의미일 것이다.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사실 커뮤니티의 실체가 있어야, 또 실태를 알아야 욕구의 조사가 가능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실체를 제대로 확인해 본 적도 없었고, 또 그 실태도 많이 알고 있지 않았다. 우리의 몸과 경험으로 알아온 지식들이 이미 많이 있었지만, 객관화된 데이터가 아니었다. 나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오히려 궁금해졌다. LGBTI 커뮤니티가 존재는 하는가? 존재를 한다면 어떤 모습인가? ‘우리’를 묶어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가?
“게이들은 자긍심이 높은 편이지만 일반 사회와 섞이려고 하지는 않아.”
“바이 여성들이 게이들보다 더 많이 온라인 조사에 참여했어. 이것 자체가 바이섹슈얼에 대해 얘기해 주는 게 아닐까?”
“에프티엠 트랜스젠더는 ‘연애의 승리자’인가? 연애를 상대적으로 많이, 오래 하는 편이야.”
나는 ‘일반’들과 이 집단이 구별되고 이를 드러냄으로써 일종의 집단적 커밍아웃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 또 LGBTI 사이에서도 각각 다른 현실과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연구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각 정체성 집단 안에도 자리 잡고 있는 차이, 그리고 각 LGBTI 집단들이 함께 공유하고 교차하는 점들 역시도 존재하고 앞으로 이것에 대한 자세한 분석도 필요하다는 것 역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연구는 이러한 질문의 대답도 담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14일 진행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발표회
이 연구는 공식적으로 두 가지 방향으로 활용해 나갈 계획이다.
첫 번째로는 각 정체성별 설명회 겸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오는 9월 레즈비언을 시작으로 한 달 간격으로 행사가 열린다. 더 의미가 있는 것은 각 정체성별 설명회 겸 간담회가 여러 단체들과 공동으로 주관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더 많은 커뮤니티 구성원들을 만나고, 보다 실질적인 관점에서 연구결과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질 것이다.
“게이봉박두나 지보이스 공연 같은 활동들은 어떤 욕구를 충족하고 있을까? 어떤 의미를 가지는 활동일까?”
두 번째로는 친구사이에서 보고서 읽기 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친구사이 회원들의 눈으로 이 연구결과를 독해하면서 커뮤니티를 보다 객관화해서 살펴보고, 지난 친구사이 활동들이 커뮤니티의 실상과 욕구에 맞춰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은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해 나갈 수 있을지 모색해 볼 계획이다. 친구사이 욕구조사 기획단에서 대중적인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친구사이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성소수자로서의 삶에 대해서 털어놓고,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을 떠올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연구조사를 그저 보고서에 가두고 지나간 기록으로 만들기는 쉽다. 그렇지만 이를 넘어 이것을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성소수자의 삶의 질과 사회적 태도, 관련 제도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수단이자 근거가 될 수 있다. 실천적인 연구로서 이 연구가 기획되고 수행된 만큼, 그 의미를 잘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은 몇몇 연구자나 활동가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해야만 한다.
이 조사는 약점 많은 연구이다. 사실 거의 모든 성소수자에 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 사회구성원을 대상으로 무작위로 표집하는 것과 같은 연구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도 20대의 참여가 두드러졌고, 성별정체성이 여성인 사람들의 참여가 더 많았다. 그래서 데이터 보정이 일부 이루어졌지만, 원자료의 한계는 여전히 있을 것이다.
“맨정신으로 내 얘기를 이렇게 많이 한 건 처음이었어.”
“나 인터뷰한다고 해서 떨렸는데, 오히려 힐링타임이었어.”
그렇지만 애초에 이 연구는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욕구조사였다. 온라인 조사를 통해 적어도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이로써 확인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수십 명에 달하는 면접조사로 보충하고자 했다. 여러 차례의 면접조사를 하면서, 이러한 조사 자체가 말할 수 없었던, 말해지지 않았던 성소수자로서의 삶을 털어놓고 드러내는 기회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이것을 연구에서 아주 잘 드러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내용들과 사연들을 만났고 모았고 분석했다. 이 내용들을 다 실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번의 조사결과 데이터를, 필요하다면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더 많은 문헌들을 생산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기본적인 연구결과 외에도 생각지도 못한 좋은 통찰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적극적인 연구의 참여 역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또 꼭 이 연구데이터를 활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다 잘 설계되고 구체적인 다양한 영역의 연구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최종결과보고서에 앞서 “주요결과 보고서”가 많은 비용을 들여 아주 읽기 쉽게, 예쁘게 잘 나왔다. 보고서를 많이 봐 주시기를,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생각과 실천들을 이어나가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보고서를 받아보실 분은 친구사이 사무실로 문의를 주시면 된다. 책장을 넘기면서, 이 LGBTI ‘종족’들의 알지 못했던 면모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주요결과 보고서
※ 관련기사
- 다르지만, 같고 싶은(한겨레21)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137.html
- 기획연재_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한겨레21)
1. 세대가 달라도 커밍아웃 경험은 통한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707.html
2. “다시 태어나도 레즈비언으로”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761.html
법률지원팀장 /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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