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사이가 2009년 제작에 참여한 영화 <친구사이?>의 한 장면, 전설(?)의 조합이 된 석이와 민수>
눈 내리던 2009년 크리스마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없어진 당시 명동의 중앙시네마에서 영화를 보았다. 바로 영화 <친구사이?>였다. ‘사람들이 게이로 나를 게이로 보겠지?’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 반,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극장을 찾았다. 그렇게 그 영화는 내가 극장에서 본 첫 번째 퀴어영화가 되었다. 그 당시 청소년 관람불가였던 <친구사이?>를 내가 스무 살이 되었던 해, 군 입대를 몇 달 앞두고 있던 그 때에 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기적으로 운이 참 좋았다. 그리고 영화는 기대했던 것만큼 풋풋했고, 나는 때때로 웃고 울었다. 내 또래의 감성에 잘 맞는 싱그러운 영화였다. 그 후 몇 년 뒤 나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서울LGBT영화제’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아마 현재 친구사이에서 활동하거나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가진 게이들 중에서 상당수는 나처럼 친구사이가 제작에 참여한 <친구사이?>, <종로의 기적>,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을 보고 친구사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거나, 인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테다.
그리고 지난 6월 10일에 폐막한 2014 서울LGBT영화제에서 <친구사이 20주년 특별전>이 열렸다. 영화제 기간 중 4일 동안 친구사이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들을 한 데 모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다들 알다시피 20년 전, 친구사이는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설립된 이후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면서도 성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저항하며 사회의 인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꿔왔다. 그러한 ‘친구사이’의 활동 중에 하나가 바로 ‘퀴어영화 제작’이었다. 대중성과 파급력을 동시에 지닌 영상운동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게이의 존재를 톡톡히 드러낼 수 있는 장이 되었다. 그리고 서울LGBT영화제는 한국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역사이기도 한 ‘친구사이’ 20주년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친구사이’ 20주년 기념 특별전>을 마련했다. 일종의 ‘아름다운 동행’이다.
<2004년 제작된 영화 <동백꽃>의 한 장면, 보길도에서 일어난 세 가지 퀴어이야기를 담았다.>
친구사이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는 <동백꽃 프로젝트 : 보길도에서 일어난 세 가지 퀴어 이야기>, <슈가 힐>, <소년, 소년을 만나다>, <친구사이?>, <종로의 기적>,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등 약 8편이다. <전화기로 만든 나의 첫 영화>를 통해 제작된 영화까지 합하면 손발가락을 다 합쳐도 부족하다. ‘친구사이’의 퀴어영화 제작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당시, 친구사이 결성 1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동백꽃>이었다. 국내 퀴어영화라고 하면 ‘로드무비’를 제외하면 떠올릴만한 영화가 없던 때, 이송희일, 소준문, 최진성 감독이 모여 퀴어옴니버스 영화를 찍었다. 그 당시 파격적인 시도였다. 소준문 감독은 “커밍아웃 이후에 인권에 대해서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들어갔는데, ‘친구사이’가 10주년이 된 해에 프로젝트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그때 첫 작품 ‘동백꽃’을 만들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친구사이가 인권단체로서 영화제작이라는 분야를 개척해나갈 수 있었던 건 우리에게 친숙한 이송희일, 김조광수, 소준문 감독이 친구사이 회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전인 2004년만 하더라도 커밍아웃한 영화감독은 이송희일 감독 혼자였다. 퀴어영화의 특성상 게이 감독이 스스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삶이 영화에 투영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친구사이’의 초기 영상제작의 의미 중 하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현재도 마찬가지다. 10년 전에 비해 지금은 더 많은 감독들과 친구사이의 회원들이 퀴어영화를 연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성소수자들의 자기 욕구 표현의 큰 변화를 실감한다. 그만큼 사회적인 인식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지금의 이런 분위기가 있기까지에 게이의 정체성을 가진 개인으로서, 다들 그래도 ‘내 이야기, 우리 이야기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우리가 더 가슴 펴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감사하다. 그리고 척박했던 과거에도, 또 현재도 묵묵히 그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을 지지하게 된다. 함께 하는 많은 분들의 노고에 10년 뒤, 20년 뒤가 더욱 더 기대가 된다.
<서울LGBT영화제의 모습. 관객들은 언제나 좋은 퀴어영화를 볼 준비가 되어있다.>
한국사회에서 20년 전 최초의 커밍아웃 선언이 ‘동성애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라는 주장이었다면, 10년 전 영상을 통한 두 번째 커밍아웃은 사회적 다양성의 차원에서 동성애자의 ‘다름’을 인정받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의미했다. 그리고 동시대의 인권운동의 흐름은 커밍아웃과 존재의 인정을 넘어 우리의 본연의 삶과 사랑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여년을 돌아보면 성소수자의 움직임이 소극적 대항에서 적극적인 인권운동 차원으로 확대되는 것을 넘어, 적어도 퀴어 영화에서 만큼은 우리들의 삶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들이 같이 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0년 전에는 ‘퀴어영화를 찍는 것 자체가 운동’이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
2014 서울LGBT영화제가 한창이던 지난 6/8일 <친구사이 20주년 특별전>의 <동백꽃> 상영 후 소준문 감독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이 무대에 올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종걸) 벌써 10년 전이네요. 영화를 찍으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소준문) 아무래도 고생이 많았죠. 정말 적은 예산으로 땅 끝 보길도에 가서 찍어야 되는 상황이어서, 나중에 올라올 때는 돈이 없어서 버스기사님이 서울을 안 간다고 해서 중간에 멈추기도 했어요.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 당시에 친구사이 1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져서 매우 뜻 깊었죠. 이 이후에 친구사이에서 활발히 영상 작업들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동백꽃>이 친구사이에겐 더 큰 의미로서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종걸) ‘왜 보길도까지 갔을까?’ 그런 궁금증이 있었어요.
(소준문) 보길도에 간 건 순전히 이송희일 감독님의 욕심이었어요. ‘보길도의 동백꽃이 우리들의 처연한 삶 같지 않니?’라며 우리의 삶을 담아야 한다고 그랬죠. 최진성 감독님도 멋모르고 갔다가 고생하고 왔어요. 촬영하러 각자 따로 간 게 아니라, 다 같이 내려가서 장비를 돌려가면서 품앗이처럼 찍었어요. 또 최진성 감독님은 많은 혼란을 겪었어요. 특히 혼자 이성애자감독으로서 이 영화에 참여해서 고민이 많으셨더라고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가장 퀴어적인 색깔이 많이 담긴 것 같아요.
(이종걸) 친구사이 회원들이 영화이야기를 하면 소준문 감독의 영화는 이별의 정서가 있는 것 같다고 해요. 그런 정서가 이 영화부터 시작된 것 같은데 왜 왜 그런지 궁금해요.
(소준문) 10년 전 저때 개인적으로 우울한 상황이었어요. 아무래도 우울함을 표출하다보니 이별에 정서와 맞닿아서 풀게 됐죠. 영화를 보시면 이송희일 감독이나 저의 작품은 게이영화라 더 슬픈 감정이 담겼어요. 최진성 감독님 영화 <김추자>는 비교적 밝고 그래서 옴니버스 영화로서 대비적인 것도 재밌는 것 같아요. 10년 전만해도, 운동으로서 영화의 성격이 짙었기 때문에, 밝은 이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좀 더 우리들의 아픔을 그려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자 했죠. 이송희일 감독은 ‘붉은 멜로’, ‘붉은 신파’ 이 콘셉트이기도 했고, 운동이전에 게이들의 감정을 어필하는 게 또 다른 주된 표현 방식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개인에서 시작되는 퍼져나가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어요. 다음 영화에도 저의 색깔이 됐죠.
(이종걸) 10년 전 영화지만 그 당시 세대 안에서 게이의 삶이나 애정 관계이야기에 집중되어있어서 대중적이었던 것 같아요, 저 같은 활동가 입장에서 보면 운동적인 것 보다 게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이야기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중년세대의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는 걸 보면서 10년 전의 그런 감춰진 이미지들이 잘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돼요.
(관객질문)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항상 춤과 노래가 등장하는데, 이게 게이감성인건가요?
(이종걸) <김추자> 최진성 감독의 개인 스타일이기도 하고, 제 생각으로는, 게이들이 가라오케를 좋아하고 트로트를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한이 있는 감성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런 걸 캐치한 것 같아요.
(소준문) <김추자>는 ‘이성애자 시선으로 우리를 우스꽝스럽게 그렸다’면서 오히려 이성애자 감독의 작품이라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영화기도해요. 지금 보면 ‘진보적인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그 당시에는 ‘이성애자 감독이 퀴어영화를 만들어?’라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최진성 감독이 고민을 많이 했죠. 게이들은 우리 안의 진지함이 소중하다고 생각을 했나 봐요, 최진성 감독님은 제3자의 입장에서 그걸 깨고 싶었던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유독 밝은 이미지를 담았는데, 지금 보면 재밌고 즐거운 영화라고 생각해요
(이종걸) 퀴어영화를 제작하는 단계부터의 이런 과정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가 소통하는 과정 으로서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그 자체가 하나의 운동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요.
(관객질문) 친구사이 10주년 기념영화로서 물론 우리의 삶을 보여주고, 제작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화 속에서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그때 당시 분들은 어떤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소준문) 제가 생각하기에 10년 전에는 퀴어영화를 찍는 것 자체가 운동이었어요. 1년에 퀴어영화가 한편도 안 나오는 상황에서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는 차후였죠. 지금은 이성애자 감독님들도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이송희일 감독님 빼고는 거의 없었죠. 저희가 또 그런 의미에서 10주년 기념해서 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마침 옴니버스 영화 붐이 불기도 했고요. 퀴어영화를 같이 함으로서 퀴어영화 붐을 만들자는 목표가 강했던 것 같아요. 독립영화 쪽에서는 놀라워했죠. 척박한 시장에서 세편이 묶어서 나왔으니까요. <동백꽃>처럼 90분짜리 퀴어 장편은 거의 없었어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10주년과 같이 어울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이종걸) 소준문 감독님 추후 활동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소준문) 얼마 전에 찍은 <애타는 마음>이라는 단편 영화 후반 작업 중이에요. 오랜만에 찍었는데 울고 짜는 영화는 아니고 밝은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일단 밝은 톤의 영화라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마 올해 안에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종걸) <애타는 마음> 살짝 봤는데 영어제목 <I’m Horny, now!>와 걸맞은 느낌이 좋았고, 애타는 감성이 잘 느껴지는 영화였어요.
(이종걸) <친구사이 20주년 특별전>을 통해 퀴어영화를 제작하는 과정과 인권운동의 20년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현재 친구사이가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지보이스 다큐멘터리 <위크엔드>가 있고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를 넘어 영화사로서 야망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웃음) 아무튼 잘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꾸준히 활동할 수 있게끔 성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