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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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26일 한국에서 처음 열린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의 기획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이하 친구사이)가 청소년동성애자인권학교를 통해 알게 된 당시 주요 대학 내 동성애자인권모임과 당시 버디 편집장이었던 한채윤씨에게 제안하면서 시작했다.그 이후로 올해 15회 째를 맞이한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이 거리에 나와 스스로의 존재를 알리고, 성소수자로서의 자긍심을 알리는 집단적 문화운동,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현장이다. 친구사이는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지지자들이 참여하여 자긍심을 얻고, 성소수자 스스로가 거리에서 당당하게 퍼레이드 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매회 축제에 참여했다. 친구사이는 <퀴어문화축제> 기간을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자긍심의 절정’을 가장 효과적이고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퍼레이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스활동, 특별 이벤트를 기획하여 성소수자가 갖고 있는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뭐니 뭐니 해도 축제의 꽃은 퍼레이드다. 친구사이 퍼레이드는 친구사이 회원들의 힘으로 성장했다. 친구사이의 활동의 큰 자원인 소모임을 통해 퍼레이드는 다양한 모습으로 성장했다. 2002년 이태원 거리를 빛낸 댄스스포츠모임의 라인댄스와 2003년~2006년 종로 거리를 물들인 수영모임 <마린보이>의 라인 댄스. 이때부터 친구사이 퍼레이드 행렬의 라인댄스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2007년 이후 청계거리로 퍼레이드 장소가 바뀌면서 친구사이는 직접 2.5톤 트럭을 꾸몄다. 축제의 지원금과 친구사이의 자체 예산으로 퍼레이드 차량을 꾸몄다. 단체가 직접 퍼레이드 컨셉을 정하고 퍼레이드 행렬을 조직하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새로운 퍼레이드를 해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2007년은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후보의 동성애 혐오 발언을 문제 삼은 ‘이명박 오바로크’ 퍼포먼스를 진행하여 퍼레이드 행렬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2013년 친구사이 차량은 ‘게이창조’와 ‘게이코리아’를 콘셉트로 잡아 퍼레이드 차량을 언론에 모자이크 없이 공개할 수 있도록 오픈했다. 이는 퍼레이드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통해 축제가 성소수자가 참여하는 축제에서 끝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이 축제를 알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였다. 특히 2012년 친구사이 차량에 대한 언론 보도 이후로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게이 커뮤니티의 환호도 있었지만, 좀 더 근육질의 멋진 게이와 세련된 퍼레이드 차량 그리고 노출을 자제하기 바란다는 그전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던 게이 커뮤니티의 비판도 존재했다. 당시 친구사이 축제 기획단은 예상했던 논란이었고, 다시 축제와 퍼레이드가 성소수자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내기도 했다. 2014년 퍼레이드 때 보수 기독교 혐오세력이 그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빤스 퍼레이드’의 기원이 2012년 친구사이 퍼레이드 트럭이었던 것이다.
축제의 또 다른 잔재미는 각각 단체들의 부스다. 축제 부스는 각각 성소수자 단체들의 주요 수익사업 중 하나다. 부스는 단체 기본 간행물, 홍보물을 전시하여 단체의 활동을 알리고 더불어 후원회원을 모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초창기 부스는 친구사이 활동을 소개하는 인쇄물과 게이들이 좋아하는 멋진 게이들의 사진을 인쇄한 엽서들, 무지개 팔찌 및 핸드폰 고리 등이 주요한 수익 아이템이었다. 이를 위해 축제 하루 전날이나 일주일 전날 친구사이 사무실은 가내수공업 공장을 옮겨놓은 듯한 바쁜 삶의 현장이었다. 이후 친구사이는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회원들이 애장품을 내놓은 ‘그 남자의 쓸만한 물건’ 바자회와 몇몇 회원들의 뛰어난 요리 솜씨를 담은 피클, 마늘빵, 토마토 소스와 면, 아이스 커피, 동동주, 핫도그 등을 만들어 부스 판매 물품의 새로운 장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부스 내에 전시회 및 이벤트를 열어 ‘커밍아웃 갤러리’, ‘퀴어타운 전시회’, ‘엄마한테 차마못한 이야기 – 사진 전시회’ 등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축제를 참여하는 비성소수자들이 의미 있게 볼 수 있는 전시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퍼레이드와 부스가 축제를 기획하는 데 주요 활동이라면 축제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스페셜 이벤트다. 2006년과 2007년에는 친구사이의 중점사업이었던 동성애자 가족구성권의 이슈를 알리기 위해 ‘예쁜 가족 대회’를 개최했고 신청을 받아 ‘예쁜 가족 증서’를 발급했다. 2007년에는 ‘게이는 이미지를 입는다.’라는 게이컬처스쿨 사진 강좌 결과물을 전시했고, 지_보이스는 축제를 기념하기 위한 특별공연 ‘클럽 지_보이스’를 선보여 축제의 흥을 돋웠다. 2008년에는 축제 장소에서 커밍아웃 할 수 있는 구역으로 ‘커밍아웃 존’을 만들었다. 2012, 2013년에는 축제 당일날 참가자들의 참여형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플래시몹, 강강수월래, 지_보이스 게릴라 공연, ‘You make me proud’ 플래시몹 공연 등으로 축제를 축제처럼 참가자뿐만 아니라 이를 준비하는 단체 회원들 및 기획단도 즐길 수 있는 자리로 만들었다.
2014년 퀴어문화축제는 앞으로 계속 사람들과 이야기할 거리를 만든 축제가 되었다. 성소수자 혐오세력들이 직접 축제 차량의 행진을 길을 막아 4시간 동안 행렬은 길에서 멈춰있었다. 그 순간 동안 단체 및 수많은 개인 참가자들은 초기 상황에 대해 어리둥절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참가자들은 행진을 위해 자체적으로 서로 이야기하고, 춤을 추고, 힘을 받기 위해 함께 구호를 외쳤다. 당시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 만의 것이 아니라 이 축제를 사랑하고 지지하며 성소수자의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의 자리로 거듭났다. 퍼레이드는 밤 9시를 넘어 원래 진행하고자 했던 코스로 이동하여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첫 야간 퍼레이드였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는 구호가 이곳저곳에서 넘쳐났다. 친구사이가 15년 동안 축제를 참여하면서 얻고자 했던 ‘자긍심의 절정’의 기운이 극대화 된 순간이었다. 이 절정의 기운을 가지고 성소수자들은 다가올 1년을 기다린다. 그 기운을 기대하며 1년을 살아간다. 내년은 서울광장에서 또 이 기운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친구사이 20년史 톺아보기> 연재 순서
#01 성소수자 인권운동, 문을 열다 - 1994~1997 친구사이 발족 및 초기 활동
#02 당연한 권리를 위한 운동 - 2007~ 차별금지법 투쟁, 아이다호 캠페인
친구사이 사무국장 / 이종걸
담에는 꼭 시청에서 해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