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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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세 개의 기억
분명한 건, 예쁜 엽서에서 본 그 풍경은 아니었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지난 겨울, 이 세 사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음 가는 대로 인도, 남미로 떠났다. 결국 여행은 잠시 그곳을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채 스쳐 지나가는 것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신이 꿈꾸는 여행은 어떤 모습인가요?
#1 떠나다
영화 <해피투게더>를 보면서 ‘이과수 폭포’를 꼭 한번 보고 싶었어요. 이유는 제가 고1때 많이 힘들었는데, 그 때 ‘내가 죽으면 날 위해 슬퍼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어요. 그 당시 좋아하던 친구를 통해 구원받으며 본 영화가 <해피투게더>였어요.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면서 언젠가 이과수 폭포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 때부터 남미 여행을 막연히 꿈꾸었던 거 같아요. 이제 거의 15년이나 됐네요. (크리스)
저는 사실 악기를 가지고 해외에서 거리공연을 하자는 목표가 있어서 1년 전부터 준비를 하게 됐어요. 친구들과 여행을 준비하면서 현지에 대한 많은 기대를 했어요. 금방 떠난다기 보다 1년 동안 영화와 책을 보며 인도여행의 환상을 키웠는데,공부도 이론과 현실이 다르듯이, 책에 나오는 인도에 대한 환상들을 가서 깨고 싶었죠. (규환)
나는 크리스 형처럼 거창한 이유도 아니고 규환이처럼 친구들이랑 공연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일 그만두고 나서 아무것도 하기싫은데 ‘여행은 한 번 가야지’ 했어요. 인도는 예전부터 가고 싶었고, 때마침 헤이유가 인도를 간대서, 혼자가긴 싫고 헤이유랑 같이 가려고 했죠. (기로로)
#2 배낭여행
평소에도 그렇지만 뭐든지 계획을 짜고 실행 하는 걸 좋아해서 여행가기 두 달 전부터 계속 계획을 짰어요. 기본적으로 거기에 틀을 맞추고, 변수는 어쩔 수 없지만 우선 비행기는 다 예약해놓고, 숙소도 다 예약 계획은 맞춰놨죠. 나는 시간이 아까워서 숙소 찾아서 헤매는 것 보다, 뭐든지 다 정해놓고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게 좋더라고요. (크리스)
신기하다. 저는 아무것도 예매하지 않은 상태에서 첫날엔 아예 뭄바이 공항에서 노숙을 했어요. 12시가 넘어서 도착해서 어딜 갈 수가 없었어요. 공항에서 박스를 주워서 그 위에 침낭을 깔고 친구들이랑 같이 7시간 정도 잤는데, 생각보다 너무 편하게 잘 잤어요. 생각해보면 그런 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는 거 같아요. 신기한 건 공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 다 한국사람 이었다는 거. (규환)
나는 계획 짜는 걸 못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잘 안하기도 하고 사실 인도는 무섭기도 했어요. 그냥 가서 나는 그 계획이 있으면 그 계획에서 어긋나는 변수를 더 재밌어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생각은 복잡하게 하는데 결국 단순하게 갔어요. (기로로)
인도에서 돌아와서 지인들을 만났을 때 첫 물음은 하나같이 “인도 어땠어?”였다. 나는 그 물음에 한결같이 “가봐, 가보면 알아” 라고 대답했다. 다시 물어도 내 대답은 같다. 모든 여행이 그렇겠지만, 각자가 품고 돌아온 여행지에 대한 생각은 갠지스 강에 띄우는 디아(소원을 담아 띄우는 초)처럼 다양하고 수많을 것이다. 내가 45일간의 인도여행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기로로)
<타이거 힐에서 본 칸첸중가, 뜨는 해에 비친 히말라야 산맥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정말 경이로움을 느꼈다.
엄청난 추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2일을 머물렀던 바라나시. 갠지스 강 주변으로 왕들의 이름을 딴 가트가 형성되어 있고 인도인들은 그곳에서 목욕을 한다. 여행 중 가장 여유로움을 느꼈던 곳.>
<인도 하루는 짜이로 시작해서 짜이로 끝난다. 짜이 한잔이면 언 몸을 녹이기엔 그만. 일출보트 후에 먹었던 짜이집.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에 아버지를 도와 짜이를 나눠주었다.>
#3 로망
아무래도 내가 게이니까 게이를 많이 만나고 싶었어요, 특히 브라질에서 퍼레이드 할 때, (어우~) 애들이 너무 괜찮아. 너무 섹시한 거예요. ‘분명 게이들이 있을거야.’ 그랬는데, 말이 안 통하니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크리스)
뭐 다 그런 거 아니겠어? 게이 만나서, 인도 게이 말고 한국게이, (왜 한국 게이를 인도에서 만나?) 인도 애들이 별로였어요. 한국인들이 여행을 많이 오니까, 어차피 내가 영어를 못해서 어차피 한국인들이랑 친해져야지라는 그런 생각으로 갔어요. (기로로)
저도 인연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영화 <비포 선라이즈> 보면 기차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잖아요. 영화는 영화지만 낯선 곳에서 만나서 더 특별한 인연이 되기도 하고, 영화에 나오는 대사들이 아주 주옥 같아요. 거기에 그 커플이 나누는 이야기들이나 이런 것들이 제가 꿈꿨던 로망이었어요. (규환)
#4 여행의 의미
일탈이지, 언제 또 젊은 날에 일을 안 하고 멀리 떠나서 오랫동안 있겠어요. 직장이란 게 하나 얽매여서 있는 건데 그 공간을 벗어나서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는 거잖아요.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퇴사를 했나? 바뀐 게 뭐지?’ 잘 몰랐는데, 여행을 가서 느꼈어요.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구나.‘ 정말로 내 인생에 앞으로 이런 일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크리스)
일을 하면서 엄청 지쳤어요. 나는 나한테 맞지 않는 일이나 하기 싫은 일은 안하자는 주읜데, 회사에서 나한테 그 일을 맡긴 거예요. ‘해보고 그만 둬야지.’ 해도 너무 안 맞고,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내가 변하는 걸 어느 날 발견했어요. 민원인들에게 짜증내고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일을 그만뒀어요. 일을 그만 둬서 어떻게 보면 후회가 되긴 하지만, 만약 지금이 아니었다면 여행을 갈 수 있었을까. 갔다 와서 재충전이 많이 되고, 누구에게나 에너지가 소진됐을 때, ‘기분 전환 하는 게 좋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기로로)
저는 아직 학생이잖아요. 일탈을 넘어서 마지막 발악이라고 생각했어요. 악기를 가지고 가는 것도 그렇고, 친구들 각자 사정이 다 있었거든요. 한 친구는 학자금 대출 빚이 천만원이 넘고 독립하느라 힘들었었고, 저는 작년 한해 가족들과 커밍아웃 문제 때문에 힘들었고, 어떤 친구는 3년 만난 애인과 헤어졌어요. 다들 이 여행 때문에 버텼어요. 1년 동안 이야기 하면서,우리가 나름대로의 의미부여를 했죠. 그 시간동안 네 명이 모여서 울고 웃으면서 ‘우리 인도 가서 뭐하자’ 하면서 정신을 차리니 다들 졸업 앞두고 언제 가겠냐라는 마음가짐이었어요. 결국 현실을 향한 발악이었죠, 농담으로 ‘가서 돌아오지 말자’고 할 정도였으니까. (규환)
남미 배낭여행은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고, 오랜 소망이었다. 그 열정 그 감흥 속에 빠지고 싶었다. 그렇게 혼자 계획 짜서 떠난 여행. 쉽지 않았다. 무사히 여행을 마친 게 신기하고 대견할 따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았음을 고백하고 싶다. 대자연의 향연 속 벅찬 감정에 울고 웃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맥주 한잔, 춤 한 곡의 여유를 빼놓지 않는 그들이 부러웠다. 어려울 때마다 작은 손길 내밀어준 이들 떠올리면 역시 결론은 사람이라는 걸 실감하게 됐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비록 남들보다 느릴지라도, 느림에서 돌봄이 나오고 나눔이 나오며 더불어 살기가 나온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힘을 얻었다. (크리스)
<고1, 인생 밑바닥에서 건져준 친구를 생각하며 본 영화 <해피투게더>에 나온 아르헨티나 이과수 폭포.
이번 여행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볼리비아의 숨은 명소, 코파카바나 태양의 섬. 티티카카 호수를 바라보며 마냥 쉬고 싶은 곳이었다.>
<여행 중 가장 유쾌했던 순간, 브라질 쌈바 카니발 퍼레이드.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거리에 모여 열정과 자유를 만끽했다.>
#5 다시 여기에서
여행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 결국 여행은 ‘일탈’이잖아요. 그 이상 될 수 없어요. 여행자는 여행자일 뿐이고, 우리가 그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가 본 것은 정말 일부분이고 누구나 가는 곳에 간 거더라고요. 내가 누구에게 ‘그 나라를 안다’고 이야기 하는 게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언젠가 그곳을 가더라도 결국 내가 있는 곳에서 나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느끼는 행복은 진짜 행복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행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행복은 과거에 있는 게 아니고, 또 멀리 인도에 내 행복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시 여기에서’, 그런 여운을 가지고 싶었어요. 여행이 단지 ‘일탈’을 넘어 의미를 남기려면 여기서 잘 살 수 있는 여지를 가져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형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규환)
나는 혼자 여행을 갔는데, 생각해보면 좋았던 순간이 누군가랑 같이 있었다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거나 했을 때였어요. 결국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구나.’ 한번은 해변에서 놀다가 핸드폰 잃어버리고 집에 가는데 지하철을 못타는 상황이었어요, 미치겠는 거예요. 사람들이 많아서 지하철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데, 그런데 다행히도 어떤 분이 자기가 카드로 찍어주겠다고 그러는데 별거 아닌 것에 눈물이 나는 거에요. 다행히 그 친구 덕분에 집에 무사히 귀가를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 거 생각해보면 결국 사람들 덕분에 도움을 받고 치유 받는 그런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바로 날 일상으로 돌아오게 해주는 친구사이 사람들에게도 고맙고,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겠다. 챙겨야겠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크리스)
나도 크리스 형이랑 비슷해요, 친구사이의 친구들의 내가 인도에 가있을 때도 연락을 해주며 계속 날 걱정해줬어요.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형 없으니까 빈자리가 너무 커.’, ‘형이 보고 싶었어,’ 라고 해주는데, 뭐든 되게 고마웠어요, 나한텐 그 인간관계가 힘들었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는데, 신경 쓰는 것들이 버겁게 느꼈던 순간들이 인도에 갔다 오니까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있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기로로)
마음이 답답하고 슬픔이 밀려올 때 돌이켜보면 위안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안녕하지 못한 삶을 사는 나를 위로해주는 친절한 앨범을 가지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에서의 60일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시간이었다. 인도의 장식품들처럼 화려한 기억들은 아니더라도, 2월의 어느 날, 사막한가운데서 처음 본 나만의 조용한 우주처럼 적어도 그 순간만큼 어느 때보다 반짝 반짝이는 나를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된다. (규환)
<인도 뭄바이에 있는 빨래터 '도비 가트'는 대도시 뭄바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어쩌면 이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옳은 일 인가라는 고민에 빠져도, 리얼한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머리가 어질해진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도비 가트>를 다시 보며 많은 여운을 남겨준 곳.>
<인도 남부 고아의 안주나 해변의 석양, 히피들의 성지인 이 곳의 하루는 내게 얼마 간의 자유를 주었다. 단지 히피문화를 소비했을 뿐이지만 나에겐 그걸로도 충분했다.>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 강에서 우리들의 마지막 풍물 공연>
동감!
두서없이 이 얘기 저 얘기 한것 같은데, 규환 덕분에 멋진 한 편의 여행기가 된 듯 :)
글 보면서 그 때의 감흥이 다시 느껴져 미소가 번지고.. 울컥하기도 하고 ㅎㅎ
여행, 떠나기는 쉽지 않아도 떠나 보면 분명 좋아요!! 많이많이!!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