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문득 성소수자에게 ‘선거’란 무엇일까 의문이 생긴다. ‘선거’는 바로 승자독식의 게임. 조금이라도 기세가 더 뻗치는 사람이 모든 권력을 갖는다. 누가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 했던가. 말이라는 건 참 뱉기 쉽다.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행동을 규정하니 말이다. 이미 기득권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버린 우리들에게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는 반쪽짜리다. 다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구조적으로 묵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슬프게도 바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다. 성별, 학력, 지역 등 사회적인 차별 요소들이 뒤섞여 이미 비이성적인 투표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저들이 내 권리를 지켜준다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이렇게 배제되어 왔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이른바 보수의 ‘보호주의’다.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대선 등 주요 선거가 치러졌지만 과연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더욱 더 우리를 좌절하게 만드는 건 불과 1~2년 사이에도 많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호모포비아들의 방해로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가 3회에 걸쳐 무산되기도 했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워내려는 시도 또한 계속되고 있다. 또한 작년 11월엔 한 요양병원의 HIV감염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사태도 벌어졌다. 암울한 현실에 대응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 우리는 신중한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공약 이후 10년… 성소수자 공약 얼마나 이뤄졌을까
올해로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이 시작된 지 벌써 20여 년이 흘렀고,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로부터 시작된 정치운동도 어느덧 10년을 맞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에서 처음 내놓은 성소수자 공약들 중 현실화된 것은 거의 없다. 2004년 총선 당시 민주노동당이 내놓은 정책들을 살펴보면 ‘법률상 동성애자 차별조항 삭제’, ‘동성애자 파트너십 제도 인정’, ‘HIV양성·AIDS환자 인권보호 조항’ 등이 포함되어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지자체 기본계획을 수립’, ‘차별을 없애기 위한 캠페인과 교육을 진행’,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상담소와 쉼터를 확대’, ’소수자 인권 전문 상담원을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행‘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당시만 해도 민주노동당은 한국에서 성소수자 모임이 있는 유일한 정당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당에 성소수자위원회를 두고 있는 정당이 셋으로 늘었다. 2014년 5월 현재 각 당의 정책 공약에서 성소수자 부문 공약을 발표한 정당은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등 총 셋이다. 통합진보당은 성적지향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학생인권조례 제정만 언급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과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약엔 성소수자에 대한 언급을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인권-차별금지 조례 제정’, ‘청소년 성소수자 전문 상담 기관 마련’,
‘트랜스젠더, HIV감염인 친화적 보건정책’ 등 지체되는 성소수자 기본정책들
<녹색당이 지난 4월 광화문 광장에서 지방선거 인권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 처음 후보를 낸 녹색당은 "지금 모습 그대로 행복한 세상"을 표방하며 인권 부문 공약을 발표했다. 1) 지자체 조례 성소수자 차별금지 명시와 인권교육 제도화 2) 지자체 인권위원회를 통한 성소수자 인권 실태 조사와 공론화 3)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지원 정책 마련 4) 혐오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 등 총 4가지 주요정책을 내놓았다.
노동당은 소수자 인권이 당연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1) 상시적인 지방자치단체 예산감시를 통해 혐오단체 지원시도를 차단 2) 차별금지 조례 제정 3) 성소수자 친화적 보건 프로그램을 통해 건강권 확보 4) 청소년 성소수자 전문 상담 기관을 마련하고 학교와 지역 내 인권 교육을 강화 등 4대 정책을 내놓았다. 또한 결혼이 의무가 아닌 지역사회를 위해 1)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공 주택 정책을 마련 2) 4인 가구 기준의 지역 행정 음식물 쓰레기봉투부터 고치겠다는 생활 정책을 내세운 게 눈에 띈다.
정의당은 소수자와 함께하는 무지개 사회를 위해 1).광역시·도에 HIV/AIDS 감염인 이용 가능한 장기요양병원 지정 및 자조모임 지원 2) 소수자 친화적 매뉴얼 제작 및 의료진 교육으로 인권감수성 높은 병원 실현 3) 무지개 청소년 세이프 스페이스를 설립하여 성소수자 청소년을 폭력과 차별로부터 보호 4) 인권증진, 차별금지, 인권교육 조례 등 3대 인권조례 제정 등 4대 주요 정책을 발표했다. 더불어 생애 토대가 되는 ‘주거기본선’ 도입을 위해 1) 1인가구 주택비율 5% 의무화로 청년 주거 보장 2) 다양한 가족형태를 고려해 공공임대주택에 사회연대계약제 도입 등 성소수자도 포함되는 주거정책을 내놓은 게 특징이다.
이들이 내놓은 성소수자 정책을 살펴보면 상당 부분 겹친다. ‘인권조례 제정’,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 ‘HIV 감염인 및 트랜스젠더 보건 정책’등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공약들이다. 지체된 공약들이란 뜻이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만큼 제도적으로 성소수자의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정당들과 개인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녹색당은 지난 4월 광화문 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부문의 선거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의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성소수자차별금지 무지개행동’과 정책협약을 맺고 서울시 시의원 비례대표 후보들과 연대키로 했다. 더디지만 조금씩 진전하고 있는 것이다.
실현가능한 차이의 정치, 이제는 소수를 위하여
<하비 밀크>
다수와의 차이로 인해 억압받고, 정치에서 배제당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이성애자의 정치이면서 남성의 정치이자, 자본가의 정치, 엘리트의 정치였다. 그 중에서 특히 정체성의 차이도 엄연히 존재했지만 현실에서 성소수자는 정치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호모포비아들을 대상으로 이제 막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의 우리에겐 권력관이 없다. 억압받는 현실과 집단의 특이성만을 강조할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차이 집단으로서 인정하고 주체들이 권력체 안에서 동등한 지위를 갖고 참여했을 때야만 가능하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에선 어려운 일이다. 5% 내외로 가늠되는 성소수자의 표는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표출 불능의 상태에 처해 있다. 우리들의 정치적 의사를 정치 과정에 반영하지 못하고 대표를 선출할 수 없고 권익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하비 밀크’나 독일의 ‘보베라이트’, 프랑스의 ‘베르트랑 들라노’ 등 서구의 성소수자의 정치에는 형식적 민주주의 안에서 인정받는 정치인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길이 멀다. 차이를 인정하며 형식적 민주주의 안에서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