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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람 사이의 터울 #4 : '비연애'의 지분
2014-04-18 오후 1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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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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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관해 무언갈 쓴다는 건 모종의 용기가 필요하다. 연애를 하고 있는 이들은 제 행복에 겨워 글이 눈에 안 들어올 것이고, 연애를 않고 있는 이들에겐 또 너무 많은 뜨내기 말들이 그들을 에우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연애는 본래 조언이 불가능하다. 조언이 불가능하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연애에 대한 (무의미한)조언이 그토록 역설적으로 넘쳐나는 것이다. 연애는 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문제이므로, 둘의 연애에 있어 다른 사람의 훈수는 원칙상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연애는 '논쟁 가능'해야 하는 것 또한 맞다. 섹슈얼리티가 온전히 개인과 취향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은, 현대가 누리고 있는 중요한 성취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지금도 강간과 가정폭력과 같은 문제는 그저 "허리 아래"의 남사스런 이야기로, 영원토록 까발려 논의되지 않은 채 제 부조리를 불려왔을 것이다. 섹슈얼리티가 온전히 개인과 취향에만 속할 문제라면, 가정폭력 시 "둘만의 문제"라든가 성폭행 가해자의 "걔도 즐겼다"는 논리 또한 그 틀 속에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이렇게 문제를 '논쟁 불가능'한 사적영역으로 고착시킬 때, 위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걸 끌어내는 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고, 따라서 현대의 섹슈얼리티는 쉬이 간섭하기 어려운, 너무나 논쟁하기 어려운 문제를 꺼내어 논쟁을 시도하는 어려운 과제를 지고 있다.

 

이는 연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 더욱이 성소수자의 연애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서로 사랑하게 해주세요"라는 한 동성애자 부부의 외침이 작년에 어떤 반향과 '논쟁'을 일으켰는지, 친구사이 회원들이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헌데 이렇게 마땅히 누려야 할 것 같고, 나아가 성소수자의 존재증명처럼 세상에 과시해야 할 것 같은 연애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낯설어하는 광경 또한 커뮤니티 안팎에서 심심찮게 마주한다. 물론 끝내는 "알아서들 할" 문제라는 데엔 동의하나, 그럼에도 이 연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논쟁'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연애를 "알아서들 하"는 데 적잖이 장애가 되는 몇몇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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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하면 좋고, 하면 행복한 것이다. 하여 거의 대부분의 문화 창작물엔 연애의 테마가 다뤄진다. 그러기에 연애는 꽤나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나아가 누구나 하는 것이 전제가 되는, 따라서 누구나 해야 마땅한, 안하고 있으면 이상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개인이 연애를 하고픈 마음을 앞질러, '사회' 전반에 연애를 해야만 한다고 부르짖는 협박이 만연해있다는 인상이 든다.

 

자기와 상관없는 것 같은 사랑의 담론이 창궐할 때 개인은 지극한 소외감에 빠진다. 성소수자라면 거의 누구나, 이성애적 질서로 도배되어있는 연애 담론에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저들에겐 남녀간의 연애가 우주의 탄생만큼이나 지극히 당연해서, 거기에 "내 연애"가 없음을 깨달은 후에도 그들의 배냇짓같은 행복을 웃으며 마주하고 있으면 이내 마음에 병을 입게 되는 것이다.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우리가 어떤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그런 습관적 열패에서 벗어나 연애에 대한 전혀 다른 정의를 공기처럼 호흡할 수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일 게다.

 

그리하여 고대하던 게이 커뮤니티에 발을 들이고, 이제 무언가 여느 사람처럼 어울리고 연애도 해보려는 찰나, 무언가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성소수자에 우호적인 커뮤니티에 들어오고 나서도, 연애는 여전히 무언가 어렵고 낯선 채로 남는 것이다. 특히 뉴페의 경우 온갖 루트로 연애를 해보자거나 누굴 소개시켜주겠단 거품이 이내 꺼지고 나면, 커뮤니티만 들어오면 뭔가 바뀔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온전히 개인의 몸으로 부딪치고 고민해야 할 연애의 몫이 남는 것이다. 물론 성소수자가 그런 고민에 비로소 다다르게 되었다는 것에는 커뮤니티의 공이 따르는 셈이지만, 고민이 보편적인 것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고민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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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뿐만 아니라 이성애자들도, 어딘가 연애를 강권하는 이상한 사회 분위기에 노출된 채 자기 연애를 꾸린다는 점에서는 같다. 어쩌면 이성애자들의 경우 더욱 그런 분위기에 깊이 영향받는다고도 볼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연애 상황이 24시간 TV로 시연되고, 술자리에서 얘기되는 환경 속에 자기 연애를 고민하다보면, 그런 이야기들을 신경쓰지 않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다보면 쉽게 누구에게 떠밀린 연애 고민을 저도 모르게 떠안게 되고, 거기에 너무 귀기울이다보면 정작 귀기울일 제 마음을 놓치게 되고, 자연스레 우러나올 제 마음의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더 나쁜 것은, 그렇게 떠밀리다보니 연애를 안하고 있는 상태를 스스로든지 남이든지 무언가 비정상적인 상태로 생각하는 버릇이다. 사람은 연애를 하고 있을 때보다, 안하고 있을 때의 자신을 파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연애할 때 상대에게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부당히 떠넘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애를 안하고 있을 때를 연애가 결핍된 비정상적인 상태로 놓고 습관처럼 한탄하는 것은, 앞으로의 연애를 위해서도 무대책한 일이고, 나아가 가장 '반'연애적인 일일지 모른다. 연애를 너무나 갈구할 때는 연애가 잘 안 풀리다가, 욕심을 놓고 제 할일을 하고 있으면 인연이 불쑥 찾아오곤 하는 데엔 이러한 원리가 도사리고 있다.

 

특히 성소수자들의 경우, 일상에서 충족되지 않는 사랑의 열망을 커뮤니티 안에서 집중적으로 해소하길 원하기가 쉽다. 연애가 너무 간절해서 연애가 너무 하고 싶고 연애를 다들 하는 게 너무 부럽고 왠지 나 말곤 다들 잘만 연애하는 것 같고. 하지만 그렇게 더글더글 끓는 열탕같은 사랑은, 다른 사람에겐 지독히 낯선 독으로 가닿을 수 있다. 마음이 너무 뜨거우면 거기에 사람이 들어와 살지 못한다. 연애하고 싶어 잔뜩 충혈된 마음엔 좀체 연애가 찾아오지 않는다. 거기엔 이미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외에, 굳이 깃들지 않아도 될 내 떠밀린 한들까지 상대방에게 덮여씌워질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과도하게 충혈되었는지를 검증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연애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한번 상상해보는 것이다. "나는 동성애가 불편하다"는 차라리(!) 익숙할지언정, "나는 연애가 불편하다"는 얘기는 대체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연애를 안하고 싶을 수 있다는 게 그토록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연애가 얼마나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을 넘어선,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무언가에 떠밀려 연애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방증이다. 연애가 너무나 당연히 회자되기에, 당연히 회자되는 그 연애가 그렇게 간절하다가도 때론 내가 아닌 남에 의해 꼴백번 씌어진 이야기 같고, 무언가 부질없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 까닭도 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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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연애에는 '외부'가 없다. 이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공히 마찬가지다. 연애가 무슨 하나의 시민권의 구실을 한 지가 오래되었다. 16세기 서구에서 마녀를 상상하지 못했고, 20세기 많은 국가들이 동성결혼을 상상하지 못했듯이, 지금 이 시기는 '비연애'의 지분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렇게 '비연애'를 상상 못하는 연애는, 삶 안에서 연애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 연애 자체를 숨막히게 만든다.

 

어째서 '비연애'를 상상 못하는 연애가 숨이 막힌다는 것일까?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동성애를 상상하지 못하는 이성애자의 예를 들어보자. 

1) 이성애자는 종종 그들이 생각하는 사랑 속에 동성애자의 지분이 없다. 

2) 그들의 사랑은 이성애적 문법으로 가득차 있고 그 '외부'를 허락하지 않는다. 

3) 이렇게 머릿속으로 아예 상상되지 않는 성소수자의 지분은, 곧 현실 속 성소수자에 대한 실질적인 배제로 이어진다. 과거 많은 백인들이 그들이 생각한 사람의 범주 속에 흑인의 존재를 상상하지 못했듯이. 

4) 나아가 외부가 없이 꽉 들어찬 그들의 이성애적 연애관은, 이성애자들 안에서도 그 이성애적 '전형'에 미달되는 이들을 끊임없이 '정상'이 아니라 낙인찍는 효과를 가져온다. 

5) 만약 그들이 사랑이란 틀 안에서 이성애의 '외부'를 인정할 줄 알게 된다면, 이성애자들은 굳이 전일적일 필요가 없는 이성애의 전형 대신에, 그들 안에서 발견되는 또다른 소수성에 좀더 주목하게 될 것이고, 종내에는 그들이 정의하고 체감하는 '이성애'의 속뜻 또한 질적으로 달라지고, 또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비연애'와 연애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1) 연애를 고민하는 이들은 종종 그들이 생각하는 삶 속에 '비연애'의 지분이 없다. 

2) 그들의 연애는 사회가 강권하는 연애의 문법으로 가득차 있고 그 '외부'를 허락하지 않는다. 

3) 이렇게 머릿속으로 아예 상상되지 않는 '비연애'의 지분은, 곧 현실 속 연애를 색다른 방식으로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실질적인 배제로 이어진다. 

4) 나아가 외부가 없이 꽉 들어찬 그들의 연애관은, 연애하는 이들 안에서도 그 연애의 '전형'에 미달되는 것 같은 이들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정상'이 아니라 불안해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5) 만약 그들이 삶 속에서 연애의 '외부'를 인정할 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무엇인지도 모를 것들로 가득 채워진 연애의 선입견들 대신에,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뻗어나갈 연애의 길을 보다 자유로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비로소 적당히 식어 따뜻해진 마음에는 좀더 미쁜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그들이 정의하고 체감하는 '연애'의 속뜻은 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이성애 또한 나쁘지는 않은 것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하고 살지 않아도 된다. 그 전제 위에서 누굴 공연히 배제하지 않는 건강한 이성애가 자리잡힌다. 마찬가지로 연애란 좋은 것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하고 살지 않아도 된다. 반드시 연애를 해야만 한다는 강단 위에서가 아니라, 바로 저런 전제 위에서 건강한 연애가 꽃핀다. 연애 바깥의 삶이 상상되어야 연애도 삶도 바로설 수 있다. 우리가 동성'애'자로 개념되지만, 게이 이전의 보통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 섹슈얼리티보다 삶이 광대하다는 말은 이런 맥락으로 되새겨질 필요가 있다.

 

또한 이처럼,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고려하는 것은 이성애자들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고, 마찬가지로 '비연애'의 지분를 고려하는 것은 연애하는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게 된다. 바로 이것이 곧, 퀴어적 감수성이 보편적 의미에서도 그 효용가치가 있을 수 있는 이유이며, 외부의 시선이 곧 내부의 내용을 꾸리는 데에도 유익할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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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임하는 마음은 본래 맨살처럼 예민하다. 그게 때론 과도하게 민감한 것 같아서 차라리 수치스러운 때도 많다. 연애야말로 마음 깊숙한 곳이 스스로 건강한지를 시험하는 시약과 같아, 쉬이 컨트롤되지 않는 마음이 곧 내가 병든 증좌 같아 울적해질 때도 있다. 부디 여러분의 뜨거운 마음이, 바깥바람 들 구멍 하나 없이 상대방의 살갗을 데게 할 만큼의 온도는 아니기를 빈다. 그리하여 뉘게 떠밀린 남의 연애가 아니라, 온갖 한이 마그마처럼 녹아 수풀 하나 살 수 없는 연애가 아니라, 제 호흡 제 페이스 대로 삶의 행복을 추구하다가 그 가운데 만나는 인연들과 나쁘지 않은 연애를 할 수 있는, 내 호흡으로 연애를 숨쉬게 만들 수 있는 지혜로운 게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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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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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2014-04-20 오전 03:53

이번 칼럼은 "터울"이라는 닉과 필자소개가 더 각별하게 다가오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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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이 2014-04-21 오전 00:17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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