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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람 사이의 터울 #8 : 찜방의 후예
2014-09-26 오후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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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9월 


 

 

 “모든 시덥잖은 도덕으로부터 이탈된 채 찜질방에 누워있을 때는 가끔 철인처럼 무한정 힘이 솟기도 하고 어쩔 때는 한없이 눈앞이 어두워지기도 해. 마치 바닷속에 둥둥 떠있는 것 같았지.”

 

취재 중 필자는 그런 그의 기분이 어떤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쉼없는 자맥질. 그 부침 사이사이로 비늘처럼 아릿하게 박혀오는 질문은 이러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자신의 욕망을 알고 있는가?’ 날카롭게 끝이 선 성적 욕망은 수면 위로 올라올 적마다 금새 햇빛에 부서졌을 것이다. 

 

- 이송희일, “호모 사절 - 사우나와 찜질방의 역사”, <BUDDY> 5호, 1998.6., 53쪽.

 

 

 

 
나는 비교적 찜방에 늦게 입문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한번 ‘맛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예상된 중독의 힘만큼 간절히 가보고도 싶었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실내는 어떤 모습일까. 정말 잘생기고 몸좋은 이들이 많을까. 어떤 날은 찜방에 대해 알아본 정보들이 조합되어 꿈 속에 나타나고는 했다. 그곳에서 배덕감을 가져가며 폭력적인 섹스를 하다 잠에서 깼다. 깨고 나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그리곤 또 가보고 싶었다. 
 
원나잇을 처음 배우고 나서 끊는 데 10년이 걸렸다. 처음 세번 정도 자보면 대충 원나잇이 어떤 것이냐는 견적이 나온다. 적어도 1주일에 걸쳐 알아가야 할 매혹의 길을 30분만에 짓밟는 관계가 성할 수 없었다. 알고서도 많은 사람을 그렇게 허투로 만나고 치웠다. 결과가 뻔하다는 걸 알고 있는 건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몸의 관성이란 무서웠다. 상대를 30분만에 옷을 벗게 만드는 괴악한 스킬만이 늘어가고 섹스 다음날 뻔뻔스러워지는 능력만 더해가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을 생각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앉은지 1시간만에 사람을 고를 수 있는 웹의 권능은 위대했다. 그 시절 MSN 메신저 로그를 지금도 보관 중인데, 한번씩 꺼내 읽을 때마다 멘탈이 박살난다. 어느 날 어김없이 원나잇을 하러 갔는데, 섹스시 그 집의 애완견이 자꾸 발을 핥았고, 끝난 후 상대가 날 보고 짖는 개를 안고는 뭘 어쩌라는 식의 눈빛을 쏘아대던 그제서야, 태어나서 세번째 원나잇 후 머리로만 깨달았던 바들이 가슴으로 내려왔다. 이반시티 챗과 게이 어플을 손에 들고 그것을 내 생활에 성공적으로 끼워넣고 사는 윤리를 갖추는 데 10년이 걸린 셈이다. 
 
그걸 알았기에 찜방이 무서웠다. 사람 얼굴도 안보고 섹스를 한다는 그곳을 내 생활에 넣고 사는 윤리가 생기기까지는 대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기이하게 나는 대도시 곳곳에 있는 찜방의 위치를 일부러라도 모르려고 했다. 대신 얼핏 들었던 정보를 따라 거기 근처를 배회하고는 여기가 그곳인가 짐작하는 억지 모르쇠짓만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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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부산에 있는 본가가 이사를 했다. 위치는 다름아닌 범일동이었다. 아는 게이의 친절한 소개로, 집 앞 3분 거리에 유명한 찜방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only membership. 신이 주신 시험인가 싶었다.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집보다 그 찜방을 먼저 쳐다보았다. 언젠가는 가게 되리란 예감이 간판을 볼 때마다 끈덕하게 나를 붙들었다. 드디어 첫 입장이 있게 된 날은 술이 많이 취해있었다. 오랜만에 고향친구를 만났는데, 그가 참 부러웠다. 자기 세계에서 일가를 구축한 녀석을 보고, 갑자기 나도 내 세계를 증명받고 싶어졌다. 나는 아무렇게나 남자를 만나 잘 수 있는, 임상적으로 뒤끝없는 원나잇 윤리를 가진, 주체적으로 성을 향유하는 근대적 인간이며, 이것이 나의 일가라고. 그 일가를 완성하기 위해서, 나도 이 바닥의 끝점은 찍어봐야지 않겠느냐고. 술을 먹은 두뇌가 급진적이어졌다. 어떤 욕망이든 그곳에 빠져 허우적대고 나온 후에 그 쾌락에 대한 진정한 윤리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냐고. 나는 무슨 인생의 한 국면을 여는 듯 택시를 타고 결연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곳은 내가 상상하던 곳과 완전히 달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러웠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혹적이었다. 정액과 먼 인분냄새로 찌든 손잡이를 한번 잡은 손에선 그 냄새가 좀체 안 지워졌다. 속호스가 반쯤 노출된 샤워기로 샤워를 하고 가운을 걸쳤다. 베일로만 칸막이돼 있는 각 방에서 보란 듯한 교성이 들려왔다. 술김에 가장 큰 방에 들어갔는데, 세 귀퉁이에서 각자 다른 쌍들이 다른 톤의 교성을 내고 있었고, 나는 나머지 한 귀퉁이에 누웠다. 어떤 낯선 아저씨가 라이터로 얼굴을 확인하더니 애무를 하고 성기를 넣기 시작했다. 사방四方의 교성이 완성됐다. 내 오른쪽에는 40대 아저씨가 섹스 중인 내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왼쪽도 배불뚝이 아저씨가 내 눈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머리와 몸이 빙빙 돌아가는 섹스 후, 나는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수건과 콘돔과 찢어진 젤 봉지를 밟으며 아무 방에나 퍼져 잠이 들었다. 두 시간마다 한번씩 잠을 깨우는 손길이 엄습했다. 그곳은 특이하게 아침 햇살이 비치는 방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방에서 아침을 맞았다. 왠지 저 빛깔로 빛나선 안될 것 같고 영원히 검은 방에 있어야 할 것 같던 얼룩진 침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퀭하고 마른 아저씨가 내 성기를 세우고 뒤돌아 자신의 뒤를 밀어넣었다. 몇 분이 지난 뒤 나는 사정했고, 그는 느린 몸짓으로 내 정액이 든 콘돔을 자꾸 품에 챙기려고 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낚아채곤 그 방을 나왔다. 그제야 술이 깼다. 
 
집에 와서는 숙취와 무리한 섹스로 몸에 내상을 입은 듯한 기분으로 하루종일 자리보전을 했다. 손에 묻은 냄새가 이틀간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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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술만 마시면 찜방 생각이 났다. 10번 중 8번을 참고 2번을 못 참은 것 같다. 원나잇처럼, 그곳에서의 일도 점점 익숙해졌다. 콘돔을 거부하는 상대를 내치는 방법, 핸드폰과 라이터로 얼굴 비추는 이들을 방어하는 방법, 마음에 안드는 상대를 정중히 거절하는 법 따위. 무엇이든 적당히 하면 요령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나는 원나잇 때도 그랬듯이, 그곳에서도 거기 있는 사람들과 섹스 전에 대화를 시도했다. 섹스를 위해서라도 서로를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되리란 계산에서였다. 그리고 그런 이들과는 바깥에서 2번 이상을 만나지 않았다. 오로지 섹스를 위해 모든 인간관계의 미네랄을 투여한 관계가 오래 갈리 만무했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고등학교 후배, 예전 원나잇 때 이미 한번 잤던 사람, 대머리 아저씨, 하루에 입장료를 세번 냈다는 아저씨, 필리핀 조선노동자, 디자인 전공생, 술을 먹고 취한 게 아닌 게 분명한 좀비, 지금은 아는 사람의 애인이 되어 있는, 눈이 말갛고 섹스매너가 좋던 아이 등. 토요일이 되어 사람이 미어터지면, 그곳의 가장 꽃미남이 성기를 세우고 누워있는 양옆으로 몸이 좋고 남자다운 게이 두 명이 그 아이를 독점하여 만지고 있고, 그 위를 핸드폰 액정들이 비추고 있는 영화 세트같은 광경이 벌어지기도 헀다. 
 
거기서 나는 무얼 느꼈을까. 해방감? 그런 생각이 가끔씩 들긴 했다. 어쨌든 이런 구조는 금전적 진입장벽이 낮고 참여 구성원들에게 비교적 평등한 섹스를 제공해주었다. 제법 하등한(!) 연애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아이들한테는 차라리 강제로 이곳에 넣어보고 싶은 생각도 안들었던 건 아니다. 배덕감? 처음에는 있었지만 드나들며 그 나름의 요령머리가 생긴 후로는 그 요령을 부려보는 즐거움이 그것을 압도했다. 가령 나는 이런 환경에서도 결코 아무와 섹스를 하진 않은 것이다! 나는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주체적인 분별의 묘를 잃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정말로 주체적이었는지는 나중에 판명될 것이었다. 어떤 날은 그래본 적도 있다, 갑자기 세상 사람들이 불쌍해졌고, 특히 그 찜방에 있는 인간들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새벽에 맨정신으로 찜방엘 갔다. 교성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한 귀퉁이에 앉아만 있었다. 앉은 사람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졸음이 와 잠시 눕기만 하면 어딘가에서 손이 덮쳐왔다. 그러고 한 두 시간을 있었던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실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깜깜한 방구석 모서리에 귀신이 서 있을지, 아니면 거기 그러고 있는 이들 중에 귀신이 있을지 누가 알겠으며, 안다고 한들 누가 신경쓰겠나 싶었다. 저렇게 이곳에 와서야 생전의 욕망을 뒤늦게 풀고 있는 귀신들이나, 저러고서야 평소의 욕망을 귀신처럼 드러내놓고 있는 사람들이나 다 한뱃속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맨정신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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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찜방을 끊게 된 계기는 두 가지다. 첫째로 전 애인과 고대하던 장기연애를 했다. 그는 나보다 게이 커뮤니티에 대한 경험이 많았던, 따라서 나보다 고양된 윤리를 가지고 있는 속칭 ‘언니’였다. 찜방이 있는 특정 장소를 지날 때마다 신경이 쓰이던 어느 날 나는 그 애인에게 찜방에 한번 같이 가달라고 얘기했다. 그는 조금 생각하고는 흔쾌히 허락했다. 가서 보란 듯이 그와 섹스를 나눴다. 소리가 떠나가도록 쩌렁대는 와중에 씨발이라고 외치고라도 싶은 심정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 곳에서 진정으로 무얼 원해왔는지 알았다. 그러고 나오니 내가 한때 중독되어 허덕대게 만들었던 그 곳의 모든 구석들이 우스워보였다. 그리곤 그 찜방 주위를 아무런 마음의 동요 없이 지나다닐 수 있게 됐다. 
 
둘째는 그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다. 무척 고통스럽게 헤어지고 나서, 한 날은 마음에 약이 단단히 올랐다. 아무렇지도 않던 그 찜방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갔다. 들어가서 사정 한번 없이 세 명의 바텀과 섹스를 했다. 마지막 친구와 섹스를 하던 도중, 섹스 중에 벗어놓았던 도수 높은 안경이 두 동강이 났다. 그것으로 섹스는 중지됐고, 나는 찡그린 채로 앞을 더듬거리며 긴 복도를 통과해 샤워를 하고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집을 걸어오며 길게 울었다. 속상하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 후론 한번도 찜방엘 가지 않았다. 
 
 
며칠 전에 친구사이에서 만난 한 아이가 찜방에 대해 물었다. 한번도 안가봐서 가보고 싶다는 애를 두고 웬만하면 술번개에서 말이라도 섞어보고 섹스를 하라고 했다. 나는 나의 말에 힘이 없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찜방을 안다녔다면-같은 가정법의 나를 유추할 능력이 없다. 나는 내가 겪은 인생의 부분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모르고, 알았더라도 쉬이 까먹는다. 윤리를 얻기 위해 욕망에 허우적거려보고 난 소회가 어떠냐고? 난 비로소 얻은 윤리와 그것을 가능케 한 엄청난 수의 경험 사이의 무게를 견줄만한 힘이 없다. 그러니 부디, 현명해지길 바랄 뿐이다. 어떤 곳에서건 그것을 버티고 소화할 윤리가 생기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정말로 획득하고 싶고 또 그 긴 경험을 감내한 채로 행복할 것인지는 당신만이 아는 것이며, 바로 그 사실에 대해 당신은 아마 잘 모르고 있을 공산이 크다는 것만 말하고 싶다. 간절히, 이 글을 읽은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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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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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14-09-27 오전 09:43

믿고 보는 터울 칼럼. 오늘도 잘 읽고 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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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14-09-30 오전 00:35

글쓴이 이런 저런 경험에서 비로소 얻었다는
그 윤리들 꼭 잘 유지하시고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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