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사이 소식지팀에서는 이번 호부터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웹툰 작가님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 첫 순서로, 레진코믹스에서 게이 성인물을 연재하고 계시며 작품에 대한 강고한 팬덤을 형성 중이신 <로맨스는 없다>의 이우인 작가님을 찾아뵈었습니다.
ⓒ 2014. (이우인) all rights reserved. 레진코믹스
(경칭 생략)
터울 : 많이 떨린다. 그림으로만 뵈었던 분을 실제로 뵈니까. (웃음)
황이 : 팬이다. (웃음)
이우인 : 부끄럽다. (웃음)
원래 순정만화를 그렸었다
터울 : 갑작스럽고 어색하게 질문으로 들어가겠다. (웃음) 이 만화가 재밌었던 것이, 게이들이 등장하는 만화의 경우 그 전까지는 BL, 야오이라고 하는, 게이 남성이 타겟이라기 보다는 여성 분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가 많았고, 또 한편에서는 멘타이코(MENたいこ:일본 일러스트레이터 잇토一十의 개인 동인지 서클명) 등 일본 게이 만화가 있기는 했지만, 일상적인 설정과 함께 비일상적인 설정들도 꽤 등장했던 편이다. 헌데 <로맨스는 없다>의 경우 명백히 게이들이 주요 타켓인 만화이고, 또 한국 게이들의 일상적인 설정이 전면적으로 다루어진다는 전에서 이전에는 없던 입지의 작품이라고 생각되는데, <로맨스는 없다>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우인 : 나는 원래 순정만화를 그렸었다. 순정만화 작업을 하다가,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만화를 1년 가까이 그리지 않았다. 쉬는 중에 내가 무얼 하면 재밌을까를 고민하다가, 내가 재미있는 작업을 하자는 목표를 갖고 이 만화를 그리게 되었다.
황이 : 그러면 이전에 공개된 매체에 순정만화 연재를 따로 한 적이 있는가?
이우인 : 서울만화사에서 나온 <wink>라는 잡지에서 데뷔를 하고, 연재를 했다.
터울 : 미리 알고 있었어야 했는데, 죄송하다. (웃음)
▲ 순정만화잡지 <wink>.
<로맨스는 없다>는 워밍업이다
이우인 : <wink>라는 잡지에 "아름답고 싶어서"라는 작품을 냈던 적이 있고, 연재도 했으나 따로 단행본으로 출간되지는 않았다.
터울 : 그 만화들에 게이가 등장한 것은 아니지 않았나?
이우인 : <wink>의 단편집 에피소드 중에 내가 그린 "밀크 앤드 허니" 라는 단편이 동성애 이야기였다. 그 작품이 현재 <로맨스는 없다>의 시발점이 되기는 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구나 하는 착상을 얻었고, 계속 그 단편이 마음에 남아있다가, 아예 게이 성인물을 작품으로 다뤄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착수하게 됐다. 게이 성인물에 대한 국내 시장이 없다보니까, 재밌을 것 같았다.
황이 : 그럼 그 만화도 <로맨스는 없다>처럼 각 화마다 주인공이 다른 식이었나?
이우인 : 그랬다. <로맨스는 없다>도 개인적으로는 아직 본격적이지 않은, 워밍업 격인 작품이다.
터울 : 후속작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후 기대감을 증폭시킨 다음에 여쭈도록 하겠다. (웃음)
'느낌'이 중요하게 반영된다
황이 : <로맨스는 없다>의 에피소드들이, 실화는 아닌 판타지인 것으로 보이는데, 술자리에서 술 먹다보면 들을 수 있는 자랑 식의 이야기랄까, 현실감이 잘 배어있는 것 같다. 연출력의 힘인 것도 같고, 게이들이 사용하는 익숙한 단어들이 나오기 때문인 것도 같은데, 이런 '사실적 판타지'를 위해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이우인 : 게이 친구들과 차나 술을 마실 때, 그런 부분들을 잘 주워담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잘 귀담아 듣고, 메모해두고, 그런 용어를 최대한 쓰려고 한다. 나는 그런 용어를 많이 쓰지는 않는데, "때짜", "마짜"라는 그런 용어들, 많이 쓰시는 편인가?
터울, 황이 : 많이 쓰는 편이다.
이우인 : 나는 아직 입에 붙는 단어가 아니라 자주 쓰지 않는데, 친구들이 그런 말을 쓸 때 의미를 물어보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써보려고 노력한다.
황이 : 그럼 친구들의 실제 무용담이나 이야기를 엮는 건가.
이우인 : 스토리 상에 그 친구들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포함되지는 않고, 가령 그 친구들이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느낌이 어땠나'는 부분이 중요하게 반영되기는 한다. 어떤 상황에서 기분이 어땠느냐는 것이 나에겐 가장 큰 캐치포인트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이런 저런 일이 있었는데 아무 느낌이 없었다든가, 잠깐이지만 슬펐다든가, 하는 감정을 중요하게 듣는다. 그런 부분들이 각 화의 에피소드들에 흩뿌려져 있다.
ⓒ 2014. (이우인) all rights reserved.레진코믹스
▲ "해변의 대답(중)" 화 中
엉덩이의 선에 신경을 많이 쓴다
황이 : 해양구조대가 등장하는 화의 경우, 주인공이 돌아봤는데 눈 앞에 팬티 앞섶이 있는 장면은 매우 성적인 느낌을 주었다. 혹시 경험에서 참조한 건가?
이우인 : 경험은 아니다. 어떤 목적으로 설정을 연출하는 때도 있지만, 이런 부분이 섹시할 것이다 싶은 장면을 정작 나는 잘 모르고 그릴 때도 있다. 그런 장면들을 전부 의도해서 그리지는 않는다. 아직 그 정도로 달필은 아니다. (웃음) 또 그런 부분들은 각자마다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기도 하다.
황이 : 나도 부끄럽지만 친구사이 소식지에 웹툰을 그린다. 인체를 그리면 그릴수록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인체를 참 맛깔나게 잘 그리시는 것 같다. 체형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신 것 같은데, 말라도 스탠도 뚱도 근육도 섹시하게 그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포인트를 주는 노하우가 있다면?
이우인 : 가슴도 팔뚝도 신경을 쓰긴 하지만, 특히 엉덩이의 선을 그릴 때 신경을 많이 쓴다.
터울 : 엉덩이를 살짝 튀어나게 그리시는 편이다.
이우인 : 그렇다. 일반적인 체형보다 약간 과장되게 그리는 편이다. 예를 들면 Tom of Finland 작가 선생님 그림의 경우, 보다 심하게 과장되어있다. 그것에 비하면 중간 지점이랄까, 그런 걸 지향한다. 타가메 겐고로(田亀源五郎) 등 여타 많은 장미물(수위 높은 남성 동성 성애물) 작가분들이 계신다면, 나는 그에 비해 중간적 입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황이 : "야라나이카(やらないか)"로 유명한 야마카와 준이치(山川純一)의 작풍이 연상되기도 한다. 스탠한 남성을 위주로 그리는.
▲ 왼쪽부터 멘타이코(MENたいこ), Tom of Finland, 타가메 겐고로(田亀源五郎), 야마카와 준이치(山川純一)의 작화.
이우인 : 독자분들 중에 BL물을 소비하는 여성들이 많이 있어서, 그 분들의 수요를 무시할 수 없었다. 또 내가 순정만화를 그렸기도 했고. 게이들이 원하는 그림체가 있다면 그것이 무언지는 알겠으나,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중간쯤이라고 생각했다. <로맨스는 없다>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주변 게이 친구들은 왜 스탠만 그리냐, 베어들도 그리고, 마른 친구들도 그려야 되지 않냐고 하는데, 지금은 말 그대로 평균인 체형을 그리고 있다.
터울 : 주위의 건장한 게이 형이 <로맨스는 없다>의 팬인데, 만화 속 남성들의 체형이 점점 슬림에서 건장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체형이 우리의 트렌드로 오고 있다고. (웃음)
이우인 : 그건 나도 많이 느낀다. 친구들이 하도 타박을 했었다, 남성들을 너무 곱상하게 그린다고. 그래서 첫 화의 그림과 지금 화의 그림이 사뭇 다르다. 개인적인 기호랑은 상관없다.
터울 : 그렇다면 개인적인 기호는...?
이우인 : 잡식이다. (웃음)
터울 : 나도 그렇다. (웃음)
황이 : 아닌 것 같은데? (웃음)
이우인 : 두 분 되게 친한 사이인 것 같다. (웃음)
내 욕심으로는 다 그리고 싶다
터울 : 만화를 그리시는 입장에서, BL이나 순정만화의 남성과, 주로 게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의 남성 작풍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을 듣고 싶다.
이우인 : 여성 작가의 시선으로 본 야오이나 BL물의 남성 캐릭터들은 아름답고, 선이 가늘며, 표현들이 섬세하다. 정액에 대한 표현조차 아름답게 그린다.
터울 : 마치 지상의 것이 아닌 양. (웃음)
이우인 : 그렇다. 그리고 얼굴은 쌍꺼풀이 지거나 미남형이 대부분이다. 멘타이코의 경우는 드로잉이 성기에 많이 집중되어있다. 감정선도 물론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보여지는 포르노로서의 기능을 해야 하니까. 또 야오이나 BL물의 경우 털 묘사가 소극적인 편이고, 게이 대상 만화의 경우 털 묘사가 적극적인 등의 차이가 있다.
터울 : <로맨스는 없다>에서는 성기의 표현이 하얗게 처리되어 있는데.
이우인 : 우리나라의 현행법상 출판물에 성기를 그려넣을 수가 없게 되어있다. 모두 블러링을 해야 한다.
황이 : 레진코믹스에 들어오는 일본 만화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우인 : 그렇다. 내 욕심으로는 다 그리고 싶다.
터울 : 가령 외국의 GV들처럼 수출용과 내수용을 따로 구분하여 모자이크를 적용하는 것처럼, 혹시 따로 그려놓으신 것이 있는 건가.
이우인 : 일단 그리기는 다 그려놓았다. 그려놓고 지운 것이다. 원본은 남아있다. 그러나 그걸 유통시키는 것이 아직은 국내법상 불법이다.
ⓒ 2014. (이우인) all rights reserved.레진코믹스
▲"밝은 미래(상)"의 컬러 속표지.
속표지 그리는 것이 즐겁다
터울 : 주위에서 화제인 것이, <로맨스는 없다>의 메인 포스터다. 매번 포스터에서 어떤 패기가 느껴진다. 이번에는 게이들의 어떤 성적인 촉을 사로잡아보리라, 같은. (웃음) 어떻게 이렇게 그리나 싶을 때도 있다.
이우인 : 출판 쪽에서 '도비라'라고, 속표지 개념으로 그림을 넣는 관행이 있다. 처음에는 항상 매 화마다 그리는 것이 습관이 돼서, 컬러든 흑백이든 그걸 그려야 작업이 시작되고는 했다. 그래서 출판 만화 그리시는 분들은 항상 도비라를 신경쓴다. 책 표지가 나오면 그 다음에 속표지가 나오듯이. 나는 그 도비라, 속표지를 그리는 것이 즐겁다. 그런데 웹툰은 보통 모두 컬러로 작업하는데, 나는 시간상, 혹은 역량상 그 컬러링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어시스턴트를 쓰거나 아르바이트를 쓰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말씀드렸다시피 이 작품이 나한테는 워밍업 단계의 작업이다. 그래서 속표지, 도비라 작업만큼은, 딱히 이번엔 이거 보여줘야지 라는 마음으로 그리기보다는, 재미있어서 그렇게 그린다. 마음 같아서는 다 컬러링을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으므로, 이번 만화는 이런 뉘앙스다, 이번 에피소드는 이런 뉘앙스로 상상하면서 봐달라, 만화에 다 컬러링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흑백들을 이런 느낌으로 봐달라는 목적으로 속표지를 그리고 있다.
터울 : 말씀하셨다시피 그릴 때 너무 즐겁다고 하셨는데 독자들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웃음)
황이 : 나머지 부분도 컬러링이 다 된다면 좋겠다.
이우인 : 다 하고 싶은데, 지금 당장으로서는 힘든 일이다. 앞으로 차차 보완해나갈 생각이다.
터울 : 사실 만화 작업 과정 안에서 유서깊은 노가다 작업이 컬러링인 것 같다. 예전의 스크린톤 작업에서부터, 문하생들이 항상 하고는 했던.
황이 : 지금은 그나마 먹칠이라도 안하지만.
ⓒ 2014. (이우인) all rights reserved.레진코믹스
▲ "버블버블(하)" 화 中
진짜 저런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터울 : 내용 이야기로 들어가서, "버블버블" 화에서 중간에 호모포비아에 대한 묘사가 짧게 나온다. 묘사가 재미있는데, 혹시 호모포비아를 마주치신 기억이 있는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신 건가?
이우인 : 포비아 행위를 직접 당해본 적은 없는데, 올해 신촌의 퀴어퍼레이드에 가서 충격을 많이 받았다. 퍼레이드의 길을 막으면서 기도하고 있는 광경을 처음 봤는데, 진짜 저런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그 때의 기억을 살려 그린 것이다. 만화에 그린 피켓 내용 또한 그 때 찍은 사진에서 따온 것이다.
터울 : 퀴어퍼레이드에서도 호모포비아가 있었지만, 친구사이 20주년 행사로 종로 퍼레이드를 했을 때도 정말 많이 몰려왔었다. 그야말로 포비아들이 소리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있다.
이우인 : 정말 고생이 많으시다. (웃음) 감사드린다.
60-70년대 한국 게이문화가 궁금하다
터울 : 내용에 대해 하나만 더 여쭈겠다. "P살롱에서 만나요" 화를 보고 굉장히 재밌고 독특하단 생각을 했다. 만약 만화에서 포르노적 기능만 강조한다고 한다면 굳이 다룰 필요가 없을 수도 있는, 70년대 한국 게이 문화에 대한 취재가 들어가 있고, 또 마지막에 5.18에 관한 내용도 삽입되어있다. '섹스가 반드시 주요 플롯으로 사용되는 게이 만화' 치고 범상치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만화에서 이런 주제들을 보게 될 줄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화의 기획 의도라든가, 70년대 게이 문화에 대한 취재 과정에서 겪으셨던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이우인 : 개인적으로 60-70년대, 혹은 그 이전의 한국 게이 문화가 궁금하다. 지금도 자료를 계속 찾고 있다. 가령 조선 시대 선비 컨셉의 게이물도 꽤 나오고 있는데, 정작 60-70년대 게이 문화에 대한 컨텐츠는 없는 것이 아쉬웠다. 특히 만화는 그런 시대상을 담는 것에 별다른 자본 투자가 들지 않으므로 한번 그려본 것이다. 그리고 광주 이야기는 너무 인위적인 게 아닌가도 생각했는데, 그런 일은 또 어떤 방식에서건 젊은 세대들에게 계속 복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억지스럽더라도 일단 넣었다. 어떤 방식으로건 우리가 계속 기억해야 할 사건이고, 그래서 그런 복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짧은 생각이다. 그리고 60-70년대의 한국 게이 문화가 나는 재미있다. 궁금하기도 하고. 또 한국에 사는 40-50대 게이분들도 계신데,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구상하다가 나온 면도 있다. 이 만화를 소비하시는 분들이 대놓고 50대의 섹스씬을 보고싶어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젊었던 시절을 그려본 것이다.
터울 : 현재 인권단체에서 40, 50대 게이들에 대한 구술, 채록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조만간에 접하실 수 있는 자료가 생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우인 : 꼭 보고 싶다. 후원하겠다. (웃음)
터울 : 그런 자료들이 발간된다면 꼭 알려드리겠다. (웃음)
ⓒ 2014. (이우인) all rights reserved.레진코믹스
▲ "P살롱에서 만나요(하)" 화
유료결제 만화플랫폼, 레진코믹스
터울 : 레진코믹스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겠는데, 이 <로맨스는 없다>를 보려고 레진코믹스에 처음 가입했고, 유료결제를 계속 하고 있다. 네이버나 다음 웹툰은, 현재 연재분의 경우 무료가 원칙인 듯하고 연재가 끝난 만화를 과금하는 방식이라면, 레진코믹스는 유료결제 만화 플랫폼으로 잘 정착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인데, 작가의 입장에서 체감되는, 여타의 플랫폼과 다른 레진코믹스의 특징이 궁금하다.
이우인 : 일단 이런 게이 성인물을 소재로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들이밀 데가 없었다. 잡지 시장이 활발했던 90년대라면 묘사를 약화시켜서 잡지에 실었겠지만, 현재는 다른 데에서 별로 받아줄 것 같지 않았고,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아는 형을 통해 레진코믹스를 소개받았고, 이런 성인용 만화의 연재에 대해 그곳 사장님이 생각보다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그 때부터 일이 괜찮게 진행되었다. 원래는 딱히 돈을 벌 거라는 생각을 안하고 들어왔고, 돈이 되든 안되든 내가 재밌으니까 시작하자는 마음이었는데.
황이 : 네이버 웹툰의 경우, 도전만화란을 보면 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 중에 BL물이 꼭 있다. 요즘 인터넷 만화 시장에서 동성애를 다루는 만화가 핫하게 부각되는 듯하다.
이우인 : 내가 듣기로, 동성애물을 소비하는 층이 여성분이 많다. 남성분들은 만화를 보는 데에 돈을 쓰지 않고. 만화 뿐만 아니라 문화 컨텐츠에 돈을 쓰는 사람들이 20-30대 여성분들에 집중되어있다.
터울 : 아무래도 작가분 입장에서는 이런 유료만화 플랫폼이 잘 돌아간다는 것이 고무적인 일일 것 같다.
이우인 : 그렇다. 예전에 사서 보는 만화 잡지의 경우, 잡지 연재 시 원고료를 받고, 분량이 쌓이면 책이 출판되면 책의 인세를 받는 식이었는데, 요즘은 책을 많이들 사보시지 않아 그것도 여의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레진코믹스 같은 시스템은 작가 입장에서는 괜찮은 것 같다.
ⓒ 2014. all rights reserved. 레진코믹스
▲ 레진코믹스 메인화면.
'로맨스는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황이 : <로맨스는 없다>라는 제목이 어떻게 보면 선정적이고, 어떻게 보면 냉소적인데, 제목이 만화와 잘 어울리고,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 선정에 얽힌 비화가 궁금하다.
이우인 : 2004년 즈음에 단편 작업을 한 게 있었는데, 그 작품의 제목이 "로맨스는 없다"였다. 동성애 이야기를 다뤘었고, 그걸 어디에 발표하지는 않았고 학교 과제 식으로 했다. 그러고 지나갔다가, 게이 성인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제목을 고민하다가 친한 친구의 추천으로 예전 작품의 제목을 따오게 됐다.
황이 : 그 예전 작품은 어떤 내용이었나?
이우인 : 그 작품은 정체성을 고민하는 고등학생의 이야기였다. 현재는 일반 게이들의 스토리가 되었지만.
황이 : 여러 가지 에피소드에 잘 어울리는 제목인 것 같다.
이우인 : 그 제목과 관련해 생각나는 것이, 그런 심상이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연애를 하다보니, 로맨스가 뭐지? 사랑이 뭐지? 사랑은 없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사랑은 있는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목이 다소 비관적인 어투인데, 내가 꼭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예 "로맨스는 없다"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황이 : "로맨스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약간 투정같은 뉘앙스가 있는 것 같다.
이우인 : 그렇다. 투정같은 것이다. "로맨스 없어~", "로맨스 어딨어~" 라고 하면서도,
황이 : 사실은 로맨스가 있기를 바라는,
이우인 : 있기를 바라고,
터울 : 실제로 경험도 하고,
이우인 : 그렇다. 심지어 우리가 사랑을 많이 했고, 하고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다 제목 안에 들어갈 것 같아서 쓰게 됐다. 원래는 포르노 제목처럼 가려고 했었는데. (웃음)
향후 3단계의 작품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터울 : <로맨스는 없다>에 나오는 섹스가, 오래된 커플의 섹스 얘기는 사실 아닌 거고, 스파크가 튈 것 같은 상황에서의 섹스에 가깝다. 그런데 그 섹스가 장기지속적인 관계로 나아가지는 않는 것 같고, 해서 게이들의 섹스를 단발적인 형태로만 그린다는 지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흔히 게이들이 연애를 오래하지 못하고, 사귀어도 잘 깨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최근의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의 통계 결과를 보면 게이들 중 42%가 연애 중이고, 연애기간이 평균 2년 3개월로 나타난다. 생각보다 장기 연애를 하는 게이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물론 그들도 만화로 단발적인 섹스 판타지를 대리만족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오래된 게이 커플의 생활이나 섹스 라이프에 대해 향후 작품으로 다루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지?
이우인 : 그에 대해 그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연재는 말씀드렸다시피 향후 작품 계획의 초반에 해당한다. 작품 계획을 3단계 정도로 놓고 있는데, 지금은 한참 초반을 달리고 있다. 물론 단계별로 구상했던 주제가 조금 뒤섞이기는 하겠지만, 앞으로 오랜 연인의 관계에 대해서 하나하나씩 끼워나갈 계획 중에 있다.
터울 : 그럼 그 때는 제목이 "로맨스는 있다"로 바뀌게 되는 건가. (웃음)
황이 : "로맨스가 있더라". (웃음)
이우인 :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웃음) 별 거 있나, 우리가 사는 게 남들과 다를 게 뭐 있나, 그런 뉘앙스로. 오래된 커플들 중에서 open relationship 같은 걸 하시는 분들도 있고, 이야기할 것들이 꽤 있으니까.
터울 : 너무 기대된다. (웃음)
이우인 : 작품을 처음 기획할 때는, 우리가 어렸을 때 비디오방 가면 있는 에로비디오 같은 느낌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심각하게 주제의식을 담기보다, 레진코믹스의 한 화 결제 코인이 3코인이면 한 화를 보는 데 9코인이 드는 셈인데, 900원짜리 성인비디오를 빌려보는 느낌이긴 바랐다. 지금도 그런 방식으로 나가고 있는 것 같고, 너무 무겁지도, 너무 포르노같지도 않고, 성인 에로비디오같은 컨텐츠로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다.
황이 : 그런 입지에 지금 성공적으로 올라있는 것 같다. 그렇게 가볍게 보는 사람도 없고, 딱히 심각하게 보는 사람도 없고. 성공하신 셈이다.
터울 : 야하고 꼴릿하긴 하지만, 적어도 포르노같다는 생각은 안 든다.
이우인 : 친구들이 놀린다, 아직 멀었다고. 아예 "딸용"으로 가거나, 아니면 아예 그리지 말라고, 애매하다는 얘기도 많이 한다. (웃음)
딱히 게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므로
황이 : 이 만화의 주축은 어쨌든 섹스인데, 작가님 주변의 친구들과는 사뭇 다르게 우리 주변에 있는 게이들은 섹스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일부 있다. 작가님은 게이에게 섹스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는지?
이우인 : 일단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예 배제될 수 없다. 딱히 게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므로. 물론 개중에는 섹스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딱히 게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어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나는 섹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예 이 만화에서 섹스가 빠진 이야기를 그릴까도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려면 다른 것들, 농밀하게 대화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넣어야 할텐데,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 작품, 다음 시리즈를 하게 될 때 더 신경을 쓰게 될 것 같다. 지금은 일단 애초에 에로비디오 컨셉으로 출발했고, 우리가 에로비디오를 넣었는데 전혀 다른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뭐야, 이럴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최대한 안 들어갈 씬에도 에로같은 요소들을 더 넣으려고 한다.
터울 : 개인적으로 이 만화가 섹스를 다루는 방식이 좋다. 또 만화를 보면서 다음 작품을 겨냥할 것이라는 암시를 받지는 못했기에, 이 만화와 연동된 향후 계획이 있는 줄은 사실 몰랐다. 말씀을 들으니 향후 작품이 굉장히 기대된다.
이우인 : <로맨스는 없다>가, 서사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아니라 에피소드끼리 딱딱 끊어지는 구성인데, 크게 놓고 보면 내가 구상한 계획의 흐름 속에 있다. 그래서 마지막 엔딩 에피소드도 정해져있고, 연재가 끝날 때쯤에는 사람들이 에피소드를 골라서도 볼 수 있지만, 완전히 다 봤을 때 말 그대로 "로맨스는 없다"에 대해 독자 스스로 각자의 감상을 곱씹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황이 : 향후 작품들도 <로맨스는 없다>와 유사한 독자층을 상정하고 있는 건가. 혹시 더 폭넓은 독자층을 노리고 싶으신 생각은 없는가.
이우인 : 특정 독자층을 겨냥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 지금의 <로맨스는 없다>도 구태여 게이 독자층만을 노리고 그리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이게 먹히겠어?", 혹은 "게이들이 지갑을 열까? 돈 주고 보겠어?"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반응이 없지 않으니까 나도 놀라고 있는 중이다.
터울 : 핑크머니를 끌어들일 수 있는 컨텐츠를 생산하고 계시다. (웃음)
게이용 컨텐츠가 좁게만 유통되는 것이 아쉬웠다
이우인 : 작가 입장에서는 만화에 대한 피드백이 궁금하다. 트위터로는 일정하게 받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작화의 방향을 제시받기도 하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알게 되기도 한다.
황이 : 실제로 작화 구상에 반영하신 경험도 있는지?
이우인 : 작풍에 대한 건의가 들어오는데, 가령 더 육덕지게 그리라든가, 지금은 너무 미소년 터치라는 지적들에 대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또 섹스씬이 너무 짧다는 피드백이 오면, 원래 목적이 에로비디오였으므로 조금 길게 그려본다든가,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것 같다.
터울 : 피드백에 대해 궁금해하시기에 기억나는 부분 하나를 말씀드리겠다. SM을 다뤘던 "지배와 복종의 감정" 화에서 어떤 점이 재미있었냐면, SM을 다루는 다른 만화의 경우 더 극단적인 묘사, 현란한 기구, 촛농 칠갑 등이 나왔을 텐데, 그 화가 SM에 대해 접근한 방식은 '상황'이 주는 흥분이었다. 가령 사거리에서 커다랗게 뒤에서 박히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SM플레이에 임하는 심리의 한 속성에 대해 핵심적으로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우인 : 사실 스스로 재밌으려고 그린 것이다. (웃음) 욕망이라는 게 한번 고삐가 풀리면 계속 커지게 되는데, 그런 SM적 호기심이 빵 커져서 커다랗게 변해버린 자기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걸 표현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더 다가가기 쉬운 형태로 풀어내고 싶었는데. 그러나 어쨌든 그런 의도는 있었다, 저건 내 모습인데, 내가 이렇게 처음 SM을 시도해봤는데, 저렇게 커진 내 욕망이 있구나, 이런 걸 표현하고 싶었다.
황이 : 피드백을 따로 드리기보다는, 나는 만화가 너무 재밌고, 이런 게이 관련 컨텐츠가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 같다.
터울 : 사실 한국 게이씬이 좀 그렇듯이, 아직까진 뭐가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좋고 그런 느낌이다.
이우인 : 나도 그런 게 좀 답답했던 것 같다. 왜 안나올까, 하는. 이제는 앞으로 계속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게이용 컨텐츠가 동호회나 동인지에서만 머무는 것이 속으로 아쉽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이 만화를 시작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연재중인 4컷만화 <네쪽의 관점>.
나는 커밍아웃이라는 게 그렇게 나한테 심각하지 않다
터울 : 더 많은 사람이 만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은 저희가 준비한 마지막 질문인데,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네쪽의 관점>이라는 4컷만화 연재를 시작하셨는데, 주위의 베어들이 귀엽다고 난리다. (웃음) 이 만화는 극화가 아니라 일상툰인데, 동거 중인 게이 커플의 실제 일상 이야기가 웹툰으로 나온 것은 거의 처음이지 않나 싶은데,
황이 : 가령 다음 웹툰의 <이게 뭐야>(지지 작가) 등이 있지만, 그런 작품이 드물었던 것은 사실이다.
터울 : 그렇다. 작가분 입장에서는 <네쪽의 관점>을 통해 공개적으로 '게이 만화가'임을 커밍아웃하신 셈인데, 그래서 굉장히 의미가 큰 것 같다. 친구사이에서도 커밍아웃 인터뷰를 웹으로 올리는 등의 활동을 한 바 있는데, 작품을 통해 이렇게 커밍아웃을 하기로 하신 계기가 우선 궁금하고, 특히 <로맨스는 없다>와 같은 극화를 그리실 때와는 완전히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떠신지.
이우인 : 나는 커밍아웃이라는 게 그렇게 나한테 심각하지 않다. 알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고. 그래서 그런 것보다는, "이 일상툰이 재밌을까", 이런 주제에 대해 고민했다. 커밍아웃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되는 게 없었고, 이 만화가 보는 사람에게 재밌을까, 별로 재미없게 살고 있는데 (웃음) 이걸 만화로 만든다고 재미있을까, 이런 고민을 했다. 그리고 딱히 이건 '게이' 일상툰을 표방한다기보다는, 그냥 '나'라는 사람이 사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내 연인이랑 같이 그냥, 우리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그런 삶을 산다는, 그런 의도로 일상툰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딱히 커밍아웃을 의도하고 이 일상툰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게 보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는 모르겠다. (웃음)
터울 : 말씀하신 부분에서,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요즘 커밍아웃을 좀 그렇게들 느끼시는 것 같다.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냥, 이것이 나인데 어떡할 것이냐, 이런 느낌으로 다가가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이우인 : 그렇다. 나도 느껴지기에, 이미 다 이렇게 살고 있는데 뭐 어떡하라고, (웃음) 약간 이런 느낌이 있다.
터울 : 그래서 그게 구태여 강조될 필요가 역설적으로 없어지는,
황이 : 그런 까닭으로 일상툰의 마지막 장면이 '특별할 것 없는' 연출로 마무리된 것이었나.
이우인 : 그렇다. 그래서 최대한 나레이션도 자제하고, 전지적 작가 시점의 요소도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
황이 : 그러니까 독자가 한쪽의 시선인 것처럼,
이우인 : 예를 들어 생각을 다 적어놓고, 상황을 다 정해놓은 만화들도 있는데, 이 일상툰은 상황을 방목시켜놓고 "이런 하루였어, 어떻게 보이니"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별히 썸타는 그런 것도 없고, 그냥 일상적인 커플의 모습을 담으려고 한다. 이런 걸 풀어놓기에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좋은 것 같다.
터울 : 저도 지난 주부터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지금의 닉과 동일한 필명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정체성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체가 불편하고 겁나는 게 아니라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작가님의 경우 성정체성을 드러낸 일상툰을 올리면서 그것이 본인에게 별다를 게 없이 여상스러운 것이라고 하시니 인상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