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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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퀴어퍼레이드 참여기
6월의 마지막 토요일 이른 아침, 종로의 탑골 공원 근처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는 얼굴을 만나면 밝은 얼굴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이들은 오늘 대구에서 열리는 여섯번째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지난 6월 7일 신촌에서 열렸던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부스행사와 퍼레이드를 함께 경험하고, 이번에는 대구로 갑니다. 친구사이 회원들도 빠질 수 없습니다.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피켓과 깃발을 챙겨들고 졸린 눈을 비비며 대구로 향하는 퀴어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어요.
친구사이의 대구 퀴어퍼레이드 참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어느 해보다 호모포비아들의 퍼레이드에 대한 반대 양상이 거센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탓에 참여의 뜻을 모은 것이죠. 친구사이 회원들은 대구 퀴어문화축제 측에서 조직한 퀴어 버스를 타고 대구를 향하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출발한 버스는 오후 1시 쯤 대구에 도착했습니다. 부스행사와 메인 무대가 있는 장소를 향해 가는 길에 뭔가 불안한 조짐이 보입니다. 곳곳에 이 축제를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들이 주인 없이 놓여있었습니다. 마음이 착잡합니다. 퍼레이드가 예정되어있는 길목에도 정체를 알수없는 집회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모두 이 퍼레이드를 저지하기 위한 조직들이죠. 대부분 보수적인 개신교 집단입니다. 전해 듣기로는, 이번 대구에서 열리는 퀴어퍼레이드를 막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대구까지 와서 반대 집회를 한다고 하니, 저들의 비뚤어진 열정에 소오오름이. 반대 집회 참여자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 참 안어울리는 색입니다. 하지만 퀴어퍼레이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기독교 단체들 역시 적은 수이긴 하지만 이번에도 퍼레이드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지난 신촌 퀴어퍼레이드에서도 힘이 되어준 분들입니다. 이 사회에서 개신교가 종교로서의 순기능을 위한 가능성을 그릴 수 있다면 아마 이런 기독인들 덕분일 것입니다.
친구사이 회원들은 이 축제에 참여하는 성소수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분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한적한 공원 구석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죠. 어디선가 흰 옷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근처로 다가와 우리를 애워쌉니다. 그리고 가만히 노래하는 우리를 쳐다봐요. 기분이 나쁘고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어떤 시선은 때로는 폭력이 되고 맙니다.
어쨌든 부스 행사는 경찰들의 철통 같은 통제 속에서 순조롭게 열렸습니다. 하지만 그 밖에는 동그랗게 행사장을 다시 한 번 애워싼 호모포비아들이 있어요. 찬송가를 불러대는 젊은이들. 그들이 아무리 좋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한들 그 광경이 보기에 좋진 않습니다. 지구 반대편 작금의 이스라엘이 한 손에 들고 있는 성경과 저들이 들고 있는 성경이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혐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성경을 들다니, 어쨌든 주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진 않습니다.
출발 전, 대구의 악명 높은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대구가 초행이 아니라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역시 대구는 더웠습니다. 너무너무 더웠습니다. 반대 세력의 집회가 보기 싫기도 하고, 부스 구경을 잠시 미루고 더위를 피해 쇼핑몰에 들어갔어요. 시원하고 좋습니다. 마침 세일 중이라 옷을 하나 샀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모든 게 늦었어요. 동성로의 모든 매장에 다 들어가 본 것 같습니다. 가난한 알바생의 지갑을 털어가는 정도의 대구 더위입니다.
갑자기 상관없는 이 이야기를 왜 써야 했냐면, 사실 그래서 쇼핑몰에서 허비하느라 시간을 다 썼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정신없이 행사 장소로 돌아가보니 공연은 끝나가고 있고, 각 단체 부스들은 정리 중이더라..하는 어느 동성애자의 양심고백입니다. 이 대목에서 몹시 한심하게 느낄 것을 알지만. 동성로는 정말 쇼핑하기에 좋더라고요. 어쩔수 없었다능. 그래도 조직위 부스에서 예쁜 풍선을 하나 가까스로 얻었습니다. 지난 신촌 퀴어문화축제 때 친구사이 부스의 벼룩시장 이름이었던 ‘럭키 게이 프리티’라고 적었습니다.
곧 퍼레이드를 시작하기 위한 움직임이 보입니다. 동성로 주변에 반대세력들이 많으니,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퍼레이드는 시작되었고, 선두 차량이 있는 곳을 향해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할 때마다, 첫 발을 떼는 순간이 주는 느낌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님의 퍼레이드를 위한 축도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퍼레이드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좋은 느낌도 잠시, 아니나 다를까 역시 반대세력이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었어요. 경찰의 비호로 무사히 행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살면서 집회에서 경찰에게 보호를 받는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도 든든한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잘생긴 느낌이 들기도 했.. 아니. 뭐 주관적인 거니까요.
퍼레이드는 좀 복잡했어요. 경찰을 사이에 두고 행진하는 무리와 저 밖에 행렬을 쫒으며 계속해서 반대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동시에 걷기 시작하니까요. 조직위에서 인권침해감시단을 꾸려 대응했지만 그들의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끝없이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도와주겠다는 사람들. 참 괴롭습니다. 안쓰럽기도 했어요. 수준이 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을 ‘아픈 사람’으로 만들어 안쓰러워 하는 것. 그건 당신들이 멋대로 만들어 우리에게 준 병이겠죠. 이 질병은 당신들로부터 온 것이니 곰곰히 생각을 해보는 게 어떨지.
그럼에도 일반 대구 시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인 편이었어요. 커피숍이나 매장 안, 길 위의 많은 사람들이 행렬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줍니다. 그래서 사실 웃음이 나는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 어느 훈남 청년이 행렬을 향해 손을 흔들자, 친구사이 회원들 사이에서는 자기에게 손을 흔든 것이라고 서로 주장하며 잠시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친구사이가 망한다면 아마 남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드디어 동성로를 향해 진입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반대세력이 주저앉아 길을 막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경험이 쌓였는지 자꾸만 치밀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경찰들의 해산 명령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다같이 알아들을 수 없는 통성기도를 시작해요. 방언을 하기도 해요. 아무리 기다려도 움직일 것 같지 않습니다. 아휴. 그들은 사실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더 당당하게 살아간다고 해도, 그들이 우려하며 선전하는 일들은 사실 일어나지 않아요. 그들의 눈과 귀를 이토록 가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누구일까요. 성경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아직 자유로워 보이진 않았습니다.
뭐, 어쨌든 괜찮습니다. 경험이 그들에게만 지혜를 준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에게도 플랜B가 있었거든요. 우리는 퍼레이드 차량을 버리고 뒤로 돌아 다른 루트로 행진을 계속합니다. 마지막 메인무대가 될 정의당 트럭이 이번에는 선두 차량이 되어 동성로 안을 누빕니다. 그렇게 사실 퍼레이드는 오랜 대치 시간 없이 순조롭게 끝났습니다. 마지막 동성로에 트럭 무대가 꾸려지자 몇몇 발언이 이어지고, 신나는 음악과 함께 퍼레이드의 끝을 알리는 댄스타임(…)이 열렸습니다. 덩실덩실 신나는 음악을 마지막으로 퍼레이드는 그렇게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사이 회원들은 다시 부스 행사가 열렸던 곳으로 돌아와, 준비했던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위로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이번에는 아까 공원 구석에서 연습할 때와는 다른 시선들로 우리를 애워쌉니다. 사람의 시선에도 온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이번의 시선은 뜨겁지도 차지도 않게 따뜻했습니다.
대구에서의 퀴어퍼레이드, 서울과는 규모가 다르기에 아직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그만큼 더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점들도 많습니다. 지역에서 이런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고되고 어렵습니다. 이런 행사를 치러내는 것을 보면 지역에서 노력하는 이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해가 갈수록 더욱 풍요로워지는 대구의 퀴어문화축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더불어 다른 지역에서도 퍼레이드가 열려서, 퍼레이드 투어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간절히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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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