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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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프로젝트.
엄마한테 차마 못 한 이야기 : IDAHO - 준비 과정
두 달 전, 그러니까 아직은 추웠던 2014년 3월 말에 몇몇 회원들이 카페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바로, 다가올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캠페인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도 좋고, 당일에 플래시 몹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기로 결론을 내렸어요. 그렇게 첫 회의를 마치고는 클럽에 갔어요.
두 번째 회의에는 이런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주야장천 해왔던 것이 드러내기 아니냐. 좀 다른 게 없을까?" 아. 그렇네요. 팀원들이 모두 동의합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이야기가 자긍심을 보여주는 이벤트로 흐릅니다. 그렇게 결정하고 우리는 또 클럽에 갔어요.
세 번째 회의에서는 이런 의견이 나옵니다. "나를 드러내고 자긍심을 보여주는 건 사실 퀴어퍼레이드에서 하지 않아? 여기선 혐오에 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오. 맞다 맞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에서 혐오가 드러나는 순간을 조사해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클럽에 갔습니다.
네 번째 회의 날이 다가오자 우리는 직감합니다. 아. 또 클럽에 가겠구나..하고. 그래서 신이 났어요. 회의를 빨리 마치고 등짝.. 등짝을 보러 가자!! 아. 중요한 이야기가 회의보다는 클럽인 것 같다고요? 맞아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클럽부터 갔죠.
빨래를 하려고 바지 주머니를 뒤졌더니 쏟아져 나온 것은...
사실 우리는 혐오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에는 겪은 게 너무 없었어요.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고, 클럽 가서 놀다 보면 신이 나고 행복하기만 한데 혐오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런데 사실은 인터넷 뉴스 댓글 창만 봐도 혐오는 넘쳐 흐르죠. 우리는 왜 그것이 일상화된 혐오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요.
우리는 그 댓글들을 찬찬히 보기 시작했어요. 이 사람들 대체 왜 이렇게 우리를 싫어하나 생각해봤죠. "우리가 음란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무식해서 그런 거 아닐까. 이상한 것만 주워들어서..", "음. 미디어에서 맨날 희화화만 시키거나, 아니면 우리를 슬픈 존재로만 그리니까 그런 거 아냐?" ..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그니까, 만나서 클럽에만 간 건 아닙니다.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내린 결론은 ‘낯설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더 다양한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자연스럽지 못한 존재로 여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평생 듣도 보도 못하면서 자라왔는데 어느 순간 고개를 내미는 자연스럽지 않은 이상한 존재들. 그들의 세상에 없었던 존재들인 거죠. 난데없이 나타나 막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남자끼리 여자끼리 결혼한다그러고. 이해해요. 혼란스럽긴 하겠죠.
“어릴 때 말이야. 네 옆에서 맨날 그림만 그리던 나야. 내 그림 보고 칭찬해줬던 게 너고. 우린 3년 내내 친하게 붙어 다녔지. 어느 날은 남자 누드를 상상해서 그렸는데, 너 ‘와와’ 거리면서 되게 좋아했잖아. 어떻게 이렇게 상세하게 그리느냐고… 그야 뭐. 이젠 말 안 해도 알겠지만, 아무튼 그때는 너 나한테 엄청 좋은 친구라고 그랬었잖아. 그런데 지금 봐. 지금은 나와 내 친구들에게 쓰레기 같다고 이야기하는 게 너야. 나는 여전히 그림을 좋아해.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남자의 몸도 좋아하지. 나는 그대로 잘 자랐는데, 대체 너한테는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니?”
과거의 경험이 떠오르면서, 문득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을 살아가는 성소수자 개인들의 역사를 끄집어내 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게다가 포비아들은 항상 동성애를 성행동과만 연결 짓잖아요. 아. 그거 좀 피곤하죠. 그게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기는 한데, 그걸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존재 자체를 돌아볼 필요는 없었을까요.
5월 17일, 대한문 앞 길거리 전시 모습
2014년 5월, 그래서 우리는 성소수자들의 기억의 상자를 열어보기로 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무언가를 숨겨야 했거나, 혼자 있을 때만 표현해야 했던 행동이나 말들이요. 그런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서 온라인 전시를 해보기로 했어요. 벌써 마흔 개가 넘는 사연이 모였습니다.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롭고 신나는 일이었어요. 어떤 사연에는 맞아 나도 그랬어! 하면서 공감하고, 어떤 사연에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습니다.
물론, 준비하면서 힘든 부분도 있었어요. 아무리 졸라도 사진을 어마무지하게 안 보내줍니다. 홍보의 문제였으려나.. 어쨌든 좌충우돌하면서도 많은 걸 배웠어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온라인 뿐 아니라 거리에도 이 이야기들을 들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바로 지난 5월 17일, 아이다호 당일에는 시청 앞 대한문에서 무지개 행동이 주관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액션 <SPEAK UP! ACT UP!>’ 행사와 함께했습니다. 많은 분이 전시를 흥미롭게 봐주셨어요.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만족스럽게 클럽에 갈 수 있었죠.
아.. 이건 내 의지로 온 게 아니야. 나는 조종 당하고 있다!!
아 참. 길거리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끝이 아니에요. 6월 7일 신촌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 친구사이 부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그날 밤 또 클럽에 가겠죠? 마음껏 뛰놉시다. 그런데 이걸 알아야 해요. 우리가 신나게 놀 수 있는 이런 공간들이 무엇 위에 서 있는지를요. 이 댄스 플로어가 지금의 한국 사회 속에서 얼마나 불안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인지를요. 이 클럽 안에서 얽히는 시선들은 끈적하고 기분 좋아요. 하지만 클럽 밖에서 우리에게 닿는 시선들은 무엇인가요. 그래요. 그럼에도 저 역시 미래는 우리의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미래를 좀 더 앞당길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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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나의 어린 시절 멋진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고요?
아래 주소를 참고하세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http://helloidaho.chingusai.net
친구사이는 그동안 아이다호를 기념하며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
2007 - 긴급작전 ‘오바로크! 이명박 동성애 혐오 발언’
2009 -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 기념 캠페인 / 종로 보신각 앞
2010 - IDAHO 기념 게이 프리 허그 / 인사동, 홍대 주변
2011 - 지보이스 IDAHO 기념 거리 공연 / 마로니에 공원
2012 - 무지개행동 아이다호 기념 프로젝트 <걸어 다니는 커밍아웃> 참여
2012 - 호주 레즈비언&게이 코러스 '아웃 포스트 콰이어' 아이다호 프로젝트 'You Make Me Proud' 합창 영상에 지보이스 참여
2013 - 아이다호 프로젝트 100인의 합창 '어느 멋진 날'
2014 - '엄마에게 차마 못 한 이야기' 성소수자 100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 전시
마음속에서만 맴돌았던 그 누군가에게도 게이씬에 나오기 전까지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선 아주 높히 평가하고 싶다. 절대 내가 이 프로젝트에 함께 했기때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