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5월 |
---|
<친구사이 20년史 톺아보기 #02>
당연한 권리를 위한 운동 - 2007~ 차별금지법 투쟁, 아이다호 캠페인
차별금지법 투쟁 – ‘차별조장법’이 아닌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을 만들자
2007년 10월 31일 저녁, 한 인권 단체의 교육장. 학교 교실보다 조금 더 넓은 그곳이 복도까지 빽빽하게 들어찼다. <성소수자 차별 및 혐오 저지를 위한 긴급 번개>. 보수 개신교계의 압력으로 차별금지법 정부안의 차별금지대상에서 성적지향 항목이 삭제될 것이라는 소식에 마련한 자리였다. 이 ‘번개’를 마련한 단체들이 특별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오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웹홍보물을 보고 모여든 보통 사람들이었다. 친구사이에서도 가장 오래된 회원들부터 신입회원들까지 10여 명이 참석했다. 당시만 해도, 이렇게 한 공간이 넘칠 정도로 모이는 것은 정말 낯선 풍경이었다.
2007년의 열기는 뜨거웠다.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첫 성명서에는 1,280여 명의 개인과 86개 단체가 연명했다.네 차례의 ‘번개’에는 450명 이상이 모여들었다. 몇 주 만에 500만원이 넘는 후원금이 걷혔다. 각종 시위, 캠페인,문화제에 참여한 사람들을 합치면 정말 성소수자 운동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 활동이었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등의 연대체가 만들어졌고, 차별금지법 투쟁은 이러한 연대체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친구사이 역시 주로 이러한 연대활동을 통해 참여했고, 몇 차례 이어진 ‘번개’들에도 회원들이 함께 모여서 참여하고, 청와대 앞에서 인형과 함께 1인 시위에도 누구보다 패셔너블하게 참여했었다. 몇몇은 잘 만나주지 않으려는 국회의원실에도 부지런히 다녔고, 추운 겨울, 따끈한 무지개떡과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외치기도 했다.
▲2007년 11월 13일,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이종걸 사무국장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제2회 지_보이스 공연날이었다. ‘성적지향’이 삭제된 지 며칠 안 된 날이었고, 지_보이스는 ‘금관의 예수’라는 앵콜곡을 급하게 준비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캄캄한 저 차별의 거리,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노래를 부르며 지_보이스와 관객들, 스태프들은 함께 울었고, 함께 부둥켜안고 뜨겁게 싸울 힘을 얻었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차별금지법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2013년 오히려 국회에 발의된 법안을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보수 개신교계의 반발에 밀려 철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금도 차별금지법 제정연대를 중심으로 한 차별금지법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조금 있으면, 또 다른 순간이 올 것이고, 그때도 우리는 다시 울고 웃으며 삔을 꽂고 나설 것이다.
아이다호 캠페인 –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하여
매년 5월 17일은 전세계 성소수자들이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국제적인 기념일인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of Homophobia & transphObia, 이상 ‘아이다호’)이다. 1990년 5월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캠페인은 2007년부터 친구사이에서도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2007년 5월 17일, 첫 아이다호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 사람들이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작전명은 사이버시위 <오바로크>, 작전공간은 바로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 홈페이지였다. 이명박 후보의 “내가 기독교 장로이기 이전에, 인간은 남녀가 결합해서 서로 사는 것이 정상이죠. 그래서 동성애는 반대입장이지요.”라는 동성애 혐오 발언이 공격 대상이었던 것이다.[i] 작전은 1차 오전 10~11시, 2차 오후 10~11시 총 2차례에 걸쳐 계획적으로 펼쳐졌다. 또한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동성애 차별 이명박”이라는 검색어를 반복 입력하여 검색어 순위를 끌어올리는 데에도 일조했다.
▲2009년, 종로 보신각 앞에서 진행한 아이다호 캠페인
2009년 5월 17일, 어김없이 아이다호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 사람들이 종로 보신각 앞마당에 모였다. 이 날은 성소수자 관련 설문조사 진행, 연대발언, 그리고 퍼포먼스로 <차별을 등에 업은 게이의 부활>이 펼쳐졌다. “그때만 해도 친구사이가 단독으로 주최했고, 연극처럼 상황을 준 후에 퍼포먼스를 벌이는 행사였는데 회원들 참여가 저조해서 언니들이 분노했어요. 게다가 당일에 故 스파게티나가 안 와서 분위기가 완전 싸늘했어요. 스파게티나의 변명이 구차해서 우리가 더 눈총을 줬죠. 스파게티나는 자신이 죽을 죄를 지었냐고, 자기는 남자랑 자면 안 되냐며 울고…”당시 사회를 본 박재경 회원이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1년 뒤, 5월 15일에 열린 <게이 프리허그> 행사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인사동과 홍대 앞에서 2시간 가량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날 행사는 많은 관심과 반향을 일으켜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인기 검색어 3위를 했고, 한국에서 이런 행사를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는 메일을 받기도 했다. 천정남 고문은 한 인터뷰에서 “비록 외국인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어색해했지만,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프리허그 진행 소감을 밝혔다.
▲2011년 아이다호 기념 거리공연을 펼친 지_보이스
지금은 리모델링 공사로 모습이 달라졌지만, 2011년 당시만 해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야외 공연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공연을 구경하는 곳이었다. 그 자리에 지_보이스가 아이다호 기념 거리공연을 펼쳤다. 5월 15일 오후 5시,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G_Voice 거리공연’이라는 현수막과 ‘G’문자가 새겨진 검은티를 입은 남자들에게로 꽂혔다. 지_보이스가 처음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직접 나아가 노래로 세상과 소통하는 순간이었다. 지_보이스 단원인 민이 당시를 회상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게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어요. 게릴라 형식의 공연이었지만 200여명의 지나가던 행인들이 발을 멈추고 공연을 봤어요. 엄마랑 함께 온 아이도 있었어요. 떨리고 무서워서 객석은 단원들 머리 너머로 겨우 봤던 거 같아요. 사람들이 무언가 던지지는 않을까, 누가 해코지 하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불안감으로 정신 없이 노래가 끝났는데 예상외로 사람들이 미소와 함께 큰 박수를 쳐줬어요. 바들바들 떨면서 내려왔는데 그렇게 모험 같던 아이다호 행사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2012년 아이다호 캠페인은 ‘걸어다니는 커밍아웃’ 컨셉으로 진행되었다.
빨간 드레스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2012년 5월 12일은 그해 대표였던 박재경 회원과 이종걸 사무국장이 빨간 드레스를 입고 인사동에서 청계천 광장까지 자태를 뽐낸 날이었다. 무지개행동 내 단체 회원 및 참여자들과 함께 아이다호 기념 거리행진을 한 것이다. 이종걸 사무국장은 “드렉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감을 조금은 없애고자 했어요. 드렉의 이미지를 좀 더 익숙하게 하고자 했는데, 부족하다면 더 자주해야겠죠 ㅋㅋ”라며 단호히 소회를 밝혔다.한편 5월 17일 당일, 광화문 광장에 있는 이순신 동상 앞에서는 아이다호를 기념하고 한국사회의 성소수자 혐오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펼치기도 했다.
이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비단 성소수자만의 것이 아니다.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하나 되어 노래할 때 그 힘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2013년의 아이다호 캠페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4월 28일 일요일, <어느 멋진 날> 프로젝트에 동행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였다.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합창 영상을 위한 이날 자리에는 목표인 100명을 훌쩍 넘긴 116명이 함께‘You Make Me Proud’를 열창했다. 계속되는 촬영에도 사람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고, 촬영 후에는 성소수자 비성소수자 할 것 없이 참가자들 모두 벅찬 감정을 느낀 순간이었다. 5월 13일 공개된 이 영상은 큰 호응을 얻었고, 2014년 5월 15일 현재 16,446회라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ii]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아이다호 캠페인은 계속될 것이다. 올해 5월 17일에는 성소수자 자신의 어린시절 사진과 이야기를 담은 캠페인이 펼쳐질 예정이다. 혐오의 시대, 다름을 드러내지 못한 삶을 살아 온 성소수자들의 어린시절 모습을 통해 차별과 혐오를 넘어 하나의 공통된 추억의 공간을 공유하려는 목적의 이 캠페인은 아이다호 데이 이후에도 100명의 사진과 이야기가 모일 때까지 지속될 전망이다.[iii] 지금,망설이지 말고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의 상자를 펼쳐보자.
[i]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3791§ion=sc1§ion2=
[ii]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sQ8uSQQ1OPU
[iii] http://helloidaho.chingusai.net/
<친구사이 20년史 톺아보기> 연재 순서
#01 성소수자 인권운동, 문을 열다 - 1994~1997 친구사이 발족 및 초기 활동
(차별금지법 투쟁 글) 법률지원팀장 / 가람
(아이다호 캠페인 자문) 2014 아이다호 캠페인 팀장 / 민
(정리) 소식지팀 팀장 / 크리스
또 크리스야 ㅋㅋㅋ 고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