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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 인생의 퀴어 영화 #25 : 개 같은 날의 오후(A Hot Roof, 1995)
2018-02-28 오후 14:03:04
1840 5
기간 2월 

  

[에세이] 내 인생의 퀴어영화 #25

개 같은 날의 오후(A Hot Roof, 1995)
- 그 여자의 주변에서 다시 보기

 

 

 

* 이 글은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A Hot Roof, 1995)>의 줄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이의 감상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읽기 전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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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집으로 돌아오다가 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작은 리어카에 들렀습니다. 기록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시원하게 더위를 가실 수 있는 수박을 사기로 합니다. 사과도 깨끗한 걸로 몇 개 골랐습니다. 리어카 주인에게 값을 치르고 고개를 돌리다가 우연히 어떤 남자와 -그리고 그의 카메라 렌즈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여자는 이런 일을 몇 번 겪어본 것처럼 감정의 동요가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지나치기로 합니다.

“저기.. 죄송합니다. 사진을 전공하고 있거든요..”

 

남자가 당황하며 다가와 변명했지만, 여자는 그런가보다 싶어 그냥 지나치기로 합니다.

 

“유.. 유미씨! 유미씨를 모델로 제 작품에 담고 싶습니다.”
“...내 이름.. 알아요?”

“아파트 건너편 동에 살고 있거든요..”

 

여자는 사실 조금 곤란합니다. 하지만 이 남자가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니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건너편 동에 산다고 해서 이름을 알고 있다니,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서툰 변명입니다. 이런 변명을 자주 해 본 사람은 아닐 겁니다. 무례하지만 용서해주기로 합니다. 사과를 하나 던져주고 돌아섰습니다. 남자가 뛸 듯이 좋아하며 달려가는 모습이 얼핏 보였습니다.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닌 모양입니다.
 

여자는 아파트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여자가 지나치는 아파트 길목에는 더위를 피해 차양 밑 그늘에 늘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녀회 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 중 제법 낯이 익은 아주머니가 여자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합니다.

“아유~ 그 수박 맛있겠다.”

 

여자가 돌아보니 한마디 덧붙입니다.

“아가씨, 그 큰 거 혼자 다 먹을 수 있어?”

 

여자는 그런 너스레가 싫지 않습니다. 몇 년 뒤면 2000년이니,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들 하지만, 여자는 어떤 시대가 오더라도 사람들이 서로 정붙이고 부대끼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생활에 도움을 주시는 분들입니다. 기꺼이 활짝 웃으며 부녀회분들과 수박을 나누기로 합니다.

한껏 수박을 나눠먹고 쉬고 있는데 맞은편 동에서 어떤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옵니다. 그 뒤를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따라와 그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 여자의 얼굴은 이미 멍으로 가득합니다. 피도 흐르고 있습니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는 한쪽 손에 허리띠를 채찍처럼 들었습니다. 남편의 손을 필사적으로 뿌리치고 그 여자는 부녀회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피신합니다. 부녀회장이 옆에 앉은 남자들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고 말했지만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지 말라는 어처구니없는 대답만 돌아옵니다.

부녀회 회원들이 남자를 막아서는가 싶었는데 사태를 보다 못한 어떤 괄괄한 여자가 이 남자와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여자를 도와주는 부녀회원들, 자기 아내를 말리려고 끼어드는 남편들, 지나가다 싸움에 휘말려 배달통을 엎은 식당 아주머니까지, 이 사람 저 사람이 한 데 모여 집단 폭력 사태가 되어갑니다. 여자는 일단 피신해온 여자를 아파트 입구 한 쪽으로 데려가 진정시키기로 합니다.

 

난리가 점점 커져 결국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그런데 부녀회원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쓰러져있던 –아내를 때린- 남자가 구급차에 실려 가고, 경찰은 부녀회원들에게 혐의가 있다고 하면서 곧 경찰서로 연행될 거라고 합니다. 몇몇 회원들이 무서워서 무턱대고 집으로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도망치는 회원들을 잡으려고 경찰들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여자는 한 무리의 회원들을 따라 얼떨결에 아파트 안으로 도망가다가 결국 옥상까지 쫓겨 올라갑니다.

 

싸움을 시작했던 괄괄한 여자가 옥상 문을 걸어 잠그고 경찰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지만, 곧 큰 차가 들어와 많은 수의 경찰들이 내리는 것을 봤습니다. 아무리 집단 폭행이라지만, 동네 다툼에 이렇게 많은 경찰들이 출동할 수 있는 것일까요? 여자는 뭔가 잘 못된 것을 느낍니다. 대장이라는 사람이 확성기에 대고 이야기합니다. 구급차에 실려 갔던 그 남자가 죽었으니 옥상 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인자라고. 경찰들이 옥상 문을 쿵쿵 두드리고 사다리차가 동원되기 시작합니다. 여자를 포함한 옥상 위 부녀회원들은 다들 겁에 질렸습니다. 그 때, 한쪽에서 누군가 소리칩니다.

“사람이 뛰어내리려고 한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사이에 어떤 할머니가 여자가 있는 이 옥상의 다른 쪽에서 뛰어내립니다. 경찰들을 따라와 밑에서 대기하던 기자가 그 모습을 보도합니다. 여자와 부녀회원들은 할머니가 뛰어내리시기 직전에 할머니를 발견했지만 말리지 못했습니다. 부녀회원들은 이 할머니가 왜 뛰어내리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참 좋은 분이셨다고 애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다만, TV에서 할머니가 평생 남편에게 맞고 살았다는 아들의 증언이 방송됩니다. TV와 신문에서 가정폭력에 맞서 싸운 여자들이 경찰의 무력 진압에 투신으로 항거했다고 말합니다. 경찰은 과잉진압으로 사람을 죽게 했다는 비난을 받아 더 이상 과격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상황을 파악한 옥상 위 여자들은 이제 정말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농성하기로 합니다. 사실 틀린 말이 없습니다. 여자들은 그저 남편에게 매 맞는 아내를 구하려다 이렇게 된 거니까요.

 

하지만 이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태양이 노려보는 옥상에서 농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다 경찰들은 수박을 먹고 껍질을 던져 올리거나, 고기를 구워 옥상으로 냄새를 올려 보냅니다. 괄괄한 여자가 장독을 던져 고기 굽는 화덕을 엎었기 때문에 잠시 속은 후련했지만, 사실 1분 1초가 참 견디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여자들 중 한 명이 휴대 전화를 가지고 있어서 방송국 기자와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각종 여성단체들과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절벽을 오를 수 있는 장비를 가지고 있는 몇몇 지지자들이 건너편 아파트 옥상에 줄을 타고 올라가 먹을 것들과 생필품들을 건네주었습니다. 잠시 숨통이 트였습니다. 물론 그렇게 지지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옥상 위 농성을 지켜보는 많은 아내들이 집에서 남편들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하자, 남자들은 식당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여자들이 미쳤다는 둥 그래 한번 해보자는 둥 침을 튀기며 이야기합니다. 옥상 위 사람들은 그런 세상에서 서로 다독여가며 힘겨운 농성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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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3일째, 오후에 경찰 대장이 여자를 부릅니다. 여자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니까, '유미'가 아니라, 등본에 올라있는 다른 이름을 말이지요. 여자는 ‘경석’이라는 그 이름을 싫어합니다. 그건 남자이름이니까요. 대장은 결국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로 시작한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여자는 사과를 던져준 그 남자가 농성하는 내내 던져준 사과를 쥐고 벤치에 앉아 옥상 위를 지켜보고 있었던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남자는 사과를 쥐고 그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여자는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쳐 옥상 난간에 바짝 붙어 쪼그려 앉습니다. 무섭습니다. 옥상 위 부녀회원들도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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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어머 세..세상에..”
“아니 이게 무.. 무슨 소리야?”

“저 남자.. 아니, 저 여자가, 남자래요.”
“뭐? 아니 저렇게 예쁜데?”
“아 게이라니까요 게이!!”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어..”

 

사실 종종 경험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떠벌려지는 것은 처음입니다. 여자는 겁에 질려 더욱 웅크립니다. 그런데 괄괄한 여자가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야, 야! 너 진짜 사내새끼 맞어? 어? 야!”

 

괄괄한 여자는 여자의 옷을 강제로 벗깁니다. 여자는 필사적으로 저항해봤지만 이 괄괄한 사람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브래지어를 들춰내니 남자의 몸이 드러납니다. 맞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몸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단 한 번도 스스로가 여자임을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굳이 변명할 이유도 없는 일이지만,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보겠다는 이 여자에게,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고서라도 말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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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먹이며)전 여자에요.. 속인 거 아니에요.. 난 언제나.. 내가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남자였다면, 여기 있지도 않았을 거에요..”

 

어느새 여자의 옆으로 모인 사람들이 한마디씩 이야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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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뭐가 부족하다고 여자처럼 사냐?”

콩국수를 배달하다가 싸움에 휘말려 옥상까지 함께 올라온 식당 아주머니입니다. 남편보다 몇 배는 더 일해도 내 명의로 된 재산 하나가 없는 것이 불만인 여자입니다.

 

“아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야 너 빨리 안내려가 이 나쁜.. 자.. 자식아?”

수박이 너무 크다며 너스레를 떨던 영희 엄마입니다. 남편이 바람이 난 걸 아이의 입을 통해 들어 알았고 배신감을 느껴 같이 살 수 없다고 하던 여자입니다.

 

“그래요, 빨리 내려가세요. 댁이 여기 계속 있으며는 우리들 싸움의 순결성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 됨. 안 그래요 여러분??”

부녀회장입니다. 전직 교사였으며, 전문적인 말을 많이 사용해 배운티를 많이 내려고 합니다. 평소에도 부녀회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인지, 옥상에서도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기자에게 대표로 전달한다거나 하는 일을 하는 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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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 그만 찔찔 짜고.. 뛰어내리든지 없어지든지 어떻게든 해, 이 년아! 아니! 이 자식아!”

괄괄한 여자입니다. 술집에서 일한다고 합니다. 자기소개를 할 때 먼저 술집에서 일한다고 시원하게 말해줘서 유미가 밤무대 가수로 일한다고 말할 때 한결 수월했습니다. 이 여자 덕분에 다른 여자들도 그런 게 뭐 어떠냐면서 넘어가주었습니다. 옥상에서는 경찰 대장을 상대로 훈계를 한다거나 경찰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조롱하던 여자입니다.

 

“저.. 저기..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요, 우리가 유미씨를 이해하고..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매 맞던 여자입니다. 옥상에서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여자입니다.

 

“(표정을 구기며)저런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있어요??”

석이 엄마입니다. 아내를 때리던 남자를 막아서다가 남자에게 큰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때 나에게도 남편이 있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따지다가 싸움에 휘말렸습니다. 옥상에서 특별하게 하는 일은 없는 여자입니다.

 

“아니 이 아줌마가 여태까지 잠자코 있더니만, 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영희 엄마입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여기 올라와 있으면서도.. 줄곧 제 생각에만 빠져있었어요.. 왜 나만 이런 형벌을 받아야하는지.. 저.. 정말 힘들었어요.. 그 누구한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구요.. 그런데, 지금 여기.. 유미씨의 심정도 제가 느꼈던 외로움과 절박함보다.. 더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매 맞던 여자입니다. 오열하는 여자의 옆으로 가서 어깨를 다독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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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영희 엄마의 남편과 바람 난 여자입니다. 혼자 사는 여자가 받는 눈총이 무서워서 더 외롭다고 했습니다. 영희 엄마의 남편이 세탁기를 수리해준다고 와서 갑자기 달려들었고, 강간으로 신고하려다 더 눈총을 받게 될까봐 자포자기하고 가끔 적적함이나 달랬다고 합니다. 옥상에서 태닝을 하다가 어쩌다보니 함께 농성하게 된 여자입니다.

 

“야 니가 왜 나서?”

영희 엄마입니다.

 

“겪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나도 이 동네에서 더 살래야 살 수도 없겠지만.. 혼자 사는 여자라고 손가락질 하고 색안경 끼고.. 무슨 일만 나면 다 자기 죄고 자기 팔자니.. 당신은 바람 난 서방이라도 하나 있지, 내 입장에서 생각은 해봤어? 내 입장에서 생각은 해봤냐고!!(오열한다)”

바람 난 여자입니다.


“아이고 이 미친년..”

영희 엄마입니다.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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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그나저나 아무래도 좀..”

부녀회장입니다.

 

“아 게이라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해요!”

석이 엄마입니다.

 

“밤무대 가수라고 할 때부터 좀 그랬지만.. 좀 께름칙하지 않아요?”

부녀회장입니다.

 

“아니.. 그럼 우리랑 같이 있는 것도 께름칙하단 소리네?”
괄괄한 여자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부녀회장입니다.

 

“우리야말로 다들 천대하는 술집 호스티스니까? 응??”

괄괄한 여자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부녀회장입니다.

 

“아니, 이 옥상에 깨끗하고 잘난 여자들만 있으라는 법 있어?? X발”

괄괄한 여자입니다.

 

“이봐 아가씨,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석이 엄마입니다.

 

“먼저 사람을 가리고 다르게 보려고 하셨잖아요!”

괄괄한 여자와 함께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입니다. 다이어트로 7KG을 감량했지만 키나 몸무게를 취업 기준에 맞추지 못해 취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는 하지 않고 살기로 했습니다. 옥상에서는 마침 가지고 있던 휴대 전화로 도움을 준 여자입니다.

 

“이봐, 아가씨! 나도 당신 같은 동생이 있어!”

부녀회장입니다.

 

“그래? 그럼 어디 동생뻘한테 머리털 한번 뽑혀볼래??”

괄괄한 여자입니다. 부녀회장의 머리채를 붙잡습니다. 한바탕 싸움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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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좀 하세요! 지금 우리끼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싸워야하는 사람들은, 저 아래 남자들일 거에요! 지금 우리는요, 남자냐 여자냐를 떠나서 외롭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기 있는 유미씨는 여태까지 우리하고 같이 싸워왔잖아요??”

이사 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나이가 많은 여자입니다. 남편에게 죽도록 맞는 생활을 하다가 이혼을 하고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옥상에서는 상황을 정리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일을 하는 여자입니다.

 

“저 아줌마 말이 맞어. 어찌됐든, 저 사낸지 기집인지, 우리 편인 건 확실하잖아!!”

식당 아주머니입니다.

 

“(유미에게 다가가서)야, 시끄러!! 그만 질질 안 짜?? (옥상 밑을 보며)이 개 같은 것들을 그냥..!!”

괄괄한 여자입니다. 옥상 위에 올라와서부터 모두가 차곡차곡 고무 동이에 모아 놓은 배설물을 아래로 부어버립니다.

 

옥상 위의 여자들은 그렇게 유야무야 여자를 받아주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경찰 대장이 여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부를 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오늘은 여자의 생일입니다. 옥상 위의 여자들은 남은 먹거리를 모아 여자의 생일을 축하해줍니다. 괄괄한 여자는, 여자에게 오늘부터 진짜 여자로 태어나는 첫 번째 생일이라고 말해줍니다. 여자는 그런 건 누가 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게이와 트랜스젠더의 차이도 모르는 이 사람들이 정말 뭔가 알고 인정해줬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벤치에서 지켜보던 남자는 사과만 놓고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초 대신에 불타고 있는 성냥개비 하나를 웃는 얼굴로 불어줍니다. 맞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여자는 웃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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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결국 이 옥상 위의 농성은 강제 진압될 처지에 놓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모양입니다. 강제 진압되기 직전 수많은 시민들이 경찰을 막아서고 시위하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옥상 위 여자들은 이제 할 건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때 마침 시원하게 소나기도 내립니다. 그리고 농성은 많은 지지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땅에 설치 된 에어쿠션으로 여자들이 뛰어내리면서 일단락됩니다. 여자들은 수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경찰버스에 올라 연행됩니다. 여자는 버스에 오르기 전 멀리서 여자를 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사과를 던져 줬던 그 남자입니다. 남자의 표정이 어떤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잠깐 고개를 숙인 후 경찰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 여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역경이 다시 이들 앞을 가로막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더 지나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개 같은 날의 오후는, 보란듯이 태양이 뜨고 지는 이상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테니까요.

 

다만 여기에 여자가 함께 있습니다. 나는 그녀가 앞으로도 이들과 함께 할 거라고 장담합니다. 먹지 못하는 수박 껍질이며 고기 굽는 냄새를 함께 견딜 것입니다. 경찰 대장의 무례한 언사를 비웃고 차갑게 노려볼 것입니다. 고무 동이에 볼일을 보고 무더위를 견디는 불편을 감수할 것입니다. 기꺼이 에어쿠션을 향해 몸을 던질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들과 함께 할 여자입니다.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지난다 해도, 이들이 먼저 손 놓지 않는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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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profile

Hayden 2018-02-28 오후 23:31

'설마 설마 저 "개같은 날의 오후"가 내가 아는 그 영화는 아니겠지?' 했는데, 그 영화가 맞네요. 트랜스젠더라는 용어도 잘 모르던 중학생 시절, 영화보면서 가슴이 뜨끔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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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순이 2018-03-01 오후 15:10

으앙... 간만에 다시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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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88 2018-03-02 오전 06:32

정신없게 빠져들었던 영화로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영희 엄마역에 송옥숙님 연기가 아직도 기억나던ㅎ 조금 검색해 보니 유미역에 김알음님이 녹색지대 객원으로 활동하셨었네요ㄷㄷ 네이버 프로필에는 게이 역할로 나왔다고 표기된게 좀 그렇지만ㅋ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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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8-03-05 오후 16:41

영화를 어떻게 다시 봐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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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D 2018-03-06 오전 08:40

예전에 제목만 보고도 신박하다는 느낌을 받았은데,
이런 내용의 영화일 줄은ㅎㅎ
글만 봐도 영화를 꼭 한 번 보고 싶어지네요. 시대를 앞서간 듯한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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