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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 인생의 퀴어영화 #23 : <이스턴 보이즈>
2017-11-30 오후 17: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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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1월 

[에세이] 내 인생의 퀴어영화 #23

<이스턴 보이즈(Eastern Boys)>

 

 

* 2015년 전주국제영화제, 2017년 서울프라이드영화제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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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퀴어 영화에 대한 글을 의뢰받고 고민이 많았다. 덥썩 하겠다고는 했는데 긴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었고, 어떤 영화를 골라야 할지 고민도 있었다.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2005) 같은 영화는 너무 좋아하지만 많은 사람이 봐서 소개할 의미가 없을 것 같고, <미스테리어스 스킨(Mysterious Skin)>(2004) 같이 혼란스러운 내면을 보여주는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사회, 정치를 소재로 하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에 맞는 로뱅 캉필로(Robin Campillo) 감독의 2014년 작 <이스턴 보이즈(Eastern Boys)>를 소개하려고 한다. 

 

파리에서도 치안 부재로 악명이 높은 북역(Gare Du Nord), 한 무리의 동유럽 출신 소년들이 주변을 서성인다. 중년의 게이인 다니엘은 이 중 한 소년인 마렉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돈을 요구하는 마렉의 요구를 수락하며 다음 날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하지만 다음 날 마렉이 속해있는 무리가 다니엘의 집을 급습하고, 다니엘을 조롱하며 집기를 훔쳐 간다. 매춘했다는 사실을 들킬까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채 집을 정리하고 있는 다니엘에게 어느 날 마렉이 혼자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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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이 인상적인데, 북역 주변을 서성이는 마렉의 무리와 다니엘을 롱 샷(Long shot)으로 멀리서 지켜본다. 한정된 예산에서 사람이 많은 곳을 컨트롤할 수 없어 택한 방법이기도 하겠지만, 연출된 느낌을 자제한 채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고 싶은 의도로 읽힌다. 영화의 주제가 현재까지도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에서 가장 뜨거운 이민자 이슈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에 공감하며 고민하게 하려는 것 같다. 이후 영화는 다니엘과 마렉의 관계를 통해, 현지인들의 희생과 이민자들의 이해와 노력이 있으면 서로 잘 지낼 수 있다는 휴머니즘적인 결말로 나아간다. 하지만 마렉이 점차 안정적이게 되면서, 이를 질투한 무리의 리더와 구성원들이 극단적인 행동으로 도태됨에 따라 또 다른 계층을 형성하는 걸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상황 또한 무시하지 않는다. 

 

사회에 대한 감독의 예리한 시선은 공동 각본 작업을 한 로랑 캉테(Laurent Cantet) 감독의 <클래스(The Class)>(2008)와 <폭스파이어(Foxfire)>(2012) 등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다양한 인종 혹은 계층들이 한 무리에 섞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런 영향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2006),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2016) 등을 연출한 영국의 좌파 감독 켄 로치(Ken Loach)부터 받은 것이다. 그는 데뷔 초기 사회 비판적인 어조의 영화를 찍어 본국인 영국보다는 프랑스에서 먼저 주목을 받고, 칸 영화제를 통해 세계에 소개되어 지금은 프랑스에 켄 로치 키드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그 자신 켄 로치 키드이기도 한 로빈 캉필로의 특이점이라면, 게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작인 <120bpm(120 battements par minute)>(2017)에서도 1980년대 후반 에이즈 단체의 활동가들을 주인공으로, 지금의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감독의 행보는 앞으로도 밝을 듯싶다. <이스턴 보이즈>로 세계 영화제에 주목을 받더니, 차기작인 <120bpm>으로 칸 영화제 경쟁 부분에 올라 언론에서 후보작 중 가장 높은 별점을 받았고,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결은 다르지만 토드 헤인즈(Todd Haynes)와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를 잇는 좋은 퀴어 영화감독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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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게이이지 않을까 몹시 의심스러웠는데, 극중 중년의 게이인 다니엘은 처량한 캐릭터이며 실제로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조롱당하기까지 하는데, 배역을 맡은 배우는 멋있는 사람을 캐스팅해서 조금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스팅 과정에서 감독의 사심이 들어간 거라 의심했지만, 일단 감사한 마음이 컸다. 극 중 마렉에 이입해서 멋진 중년과 파트너십을 맺은 내 판타지가 충족됐기 때문이다. 조만간 감독의 커밍아웃 소식이 들려오길 조심스레 바래본다. 

 

<이스턴 보이즈>는 정식 수입이 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극장 개봉은커녕 DVD나 스트리밍 같은 2차 매체로도 볼 수 없다. 10여 년 전 퀴어 영화에 빠져 P2P 사이트를 전전했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 씁쓸했다. 퀴어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 영화이고, 유명 영화제 프리미어(Premiere)까지 붙으면 곧잘 수입되곤 하는데, 한국은 아직까지 퀴어는 잘 먹히지 않는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 같다. 다행히 감독의 최근작 <120bpm>은 정식으로 수입되어 내년 2월 개봉 예정이라고 하니, 그 기회를 통해 로뱅 캉필로의 작품을 만나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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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일을 하고 있는, 맥주와 영화없이 못 사는 30세 / 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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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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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7-12-01 오전 11:55

좋은 영화 소개해 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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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D 2017-12-03 오후 12:50

ㅎㅎ 저도 작년에 인상깊게 본 영화예요.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소수성' 중 일부를 대변하는 두 인물이 만나 감정을 교류하고 삶을 나누는 모습이, 애틋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저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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