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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게이커뮤니티의 컨텐츠' #1] 이반시티 공동대표 박사이먼님 인터뷰 - 1. 이반시티와 한국 인터넷의 동성애 검열
2017-08-31 오후 14: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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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8월 

[커버스토리 '게이커뮤니티의 컨텐츠' #1]

이반시티 공동대표 박사이먼님 인터뷰

- 1. 이반시티와 한국 인터넷의 동성애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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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 : 안녕하세요. 친구사이 소식지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반시티 공동대표를 맡고 계신데요, 워낙에 오랫동안 활동하셨고, 정말 한 일이 많으신데, 생각 외로 언론노출도가 적으셨더라고요. (웃음) 이때다 싶어 찾아뵙고 활동에 대해 여쭤보고자 합니다.

 

박사이먼 : 이반시티를 누가 운영하는지, 몇 명이 일하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저나 이반시티를 만든 파트너나 둘다 성격상 대외적으로 얼굴을 알리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저는 고향이 보수적인 경상도고, 아직 부모님에게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언론 노출에 대해 조심스러웠던 부분도 많았습니다. 또 알려지면 괜한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좀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솔직히 오늘 인터뷰 하는 것도 많은 분들이 보는 친구사이 소식지라서 살짝 걱정도 되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웃음)

 

터울 : 감사합니다. (웃음)

 

박사이먼 : 저도 이번 인터뷰로 그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 정리하고 생각할 기회도 돼서, 저한테도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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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급부상한 인기 웹페이지 '화랑'」, 『보릿자루』 15, 2000.2.5., 70쪽.

 

 

 

 

이반시티 공동대표 역임과 2002년 파워데이팅 서비스 시작

 

터울 : 먼저 이반시티가 1999년 '화랑'이라는 이름으로 발족했고, 2000년에 이반시티로 바뀌었고, 2002년부터 이반시티에 관여하셨다고 들었거든요. 그 때 처음 들어가셨을 때 이반시티를 알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박사이먼 : 제가 이반시티를 처음 만든 사람으로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아니에요. 이반시티는 1999년 5월부터 '화랑'으로 시작했죠. 그 당시만 해도 저는 화랑를 정확하게 잘 몰랐어요. 그 당시 대학 졸업 후 직장일이 바쁘기도 하고 조심스러웠던 시기라 종로나 이태원에 나갈 생각을 못했어요.
우연한 계기로 1999년 8월 경에 이반시티를 직접 만든 분과 만나서 사귀게 되었어요. 그 당시 제 파트너도 이반시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반시티 운영자라곤 생각도 못했었죠. 저도 가끔씩 이반시티에 접속해서 활동하는 일반 회원이었어요.
그런데 2002년 한일월드컵 즈음해서, 홍석천, 이해솔 씨 등 이반 커뮤니티에 영향력 있는 분들이 모여서 동성애자를 위한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딴생각>이었고, 해피이반이라는 웹사이트가 만들어졌죠.
그 당시에 제 파트너가 저한테 처음으로 이반시티 운영자라는 걸 밝혔어요. 그 때 딴생각에서 이반시티를 인수하는 제안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거의 구두로 허락 직전까지 간 상태에서,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나는 그 당시 게이커뮤니티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상태라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상당히 놀랐기도 했고, 왜 그동안 숨겨왔는지 섭섭한 마음도 들었어요.

 

터울 : 그 때 애인분이 동성애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시는 사람이란 걸 처음 아신 거네요.

 

박사이먼 : 그렇죠. 그래서 그 때부터 저도 이반시티를 좀더 유심히 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결정했던 게, 지금 상태에서 이런 조건으로 이반시티를 딴생각에 매각하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거든 게 잡지 <보릿자루>의 발행인 권동철 씨예요. 권동철씨도 그 당시 이반시티를 매각하지 말고 같이 키워보자고 제안했던 터라, 저 또한 이반시티를 독자적으로 한번 키워보자-라는 생각을 같이 하게 된 거죠. 그래서 2002년에 제가 하던 일들을 정리하고, 이반시티 일을 함께 하면서 그때부터 이반시티와의 인연이 시작된 거죠.
그 당시 이반시티는 게시판과 문자채팅이 전부였었는데, 가장 인기메뉴가 편하게 대화할 수 있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채팅이었어요. 그래서 가장 큰 장점인 채팅을 화상채팅도 되는 프로그램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조금씩 투자하기 시작했죠.

 

터울 : 저도 기억나는 게, 지금 화상채팅이 들어오기 전에 자바채팅이 있었잖아요. 제 고등학교 때의 기억이 거기 다 있거든요. "부산고딩"이란 대화명으로. (웃음)

 

박사이먼 : 안돼 안돼. 미성년자였는데. (웃음)

 

터울 : 어쨌든 그 채팅방이 신기했었어요. 방에서 누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바깥에서 볼 수도 있었고, 사람 많으면 튕기기도 하고 했던 것 같거든요. 그러다가 2002년 경에 어쨌든 안 튕기는 채팅이 생겨서 좋아졌던 것도 있었고요.

 

박사이먼 : 그 때 사실 게이 전용 채팅방이 없었잖아요. 거의 게시판 위주였는데, 그 당시에 저도 일반회원일 때 가끔씩 채팅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사실 어떻게 보면 저도 이반시티 채팅방에서 제 파트너를 만났다고 보면 돼요. 물론 그 때는 운영자인지는 몰랐고. (웃음)

 

터울 : 저도 사실 자바채팅 시절 거기서 만난 사람이 족히 10명은 될 거예요. (웃음)

 

박사이먼 : 많이들 만났죠. (웃음) 이반시티는 좀 시기적으로 혜택도 받은 점도 있었죠. 당시 '엑스존'이 문을 닫아서 사람들이 갈 데가 없었는데, 이반시티에서 채팅도 할 수 있으니 사람들이 몰렸던 거죠.

 

터울 : 가끔 지금도 그리워요. 그 채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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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시티 메인화면 (2002.9.24.)

 

 

 

터울 : 그러다가 파워데이팅이 2002년 11월에 만들어지더라고요. 저도 몇번 과금을 하고 눈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웃음) 이건 어떻게 만들게 되셨나요.

 

박사이먼 : 제가 2002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이반시티 일을 하면서 처음 했던 것이 화상채팅 오픈이었고요. 그리고 두번째로 한 일이 파워데이팅 프로그램 개발이었어요. 이반시티 유저들의 가장 큰 방문이유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데이팅 컨텐츠 개발에 주력했던 것 같아요.
그 때 제가 벤치마킹을 한 게 gay.com의 매칭 프로그램이었어요. 채팅을 하면 일일이 소개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한번에 사진과 프로필을 등록하고 나의 이상형을 등록해 두면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가 쉬워진다는 컨셉이었죠.
지금도 생각나요, 사무실도 없는 작은 방에서 파트너랑 머리 짜내면서 개발하고, 프로그램 개발자도 주변에서 찾아서 한 2-3개월 정도 열심히 개발했던 게 기억나요. 그래서 11월에 오픈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게이 전용 데이트앱이 없었기 때문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터울 : 파워데이팅 이후로 이반시티의 재정이 좋아졌다고 들었거든요.

 

박사이먼 : 네. 사실 그 전에는 사이트의 수익원이 전무했죠.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수익이 있어야 일하는 사람에겐 힘도 되고 보람도 더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이후 재투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파워데이팅의 인기로 그때부터 이반시티에도 조금씩 수익이 나기 시작했죠.

 

터울 : 이게 지금으로 치면 Jack'd, Grindr 격의 서비스인 것 같거든요.

 

박사이먼 : 그 당시엔 파워데이팅이 많은 회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죠. 그래서 이용자가 많으니까 기능도 업데이트하고 조금씩 발전시켜 나갔던 것 같아요.

 

터울 : 지금도 사실 중년분들은 많이 이용하시는 것 같아요.

 

박사이먼 : 지금도 여전히 이용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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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HAP 이반시티 여름캠프 에이즈 세미나 (2003.8.21.)

 

 

 

2003-2004년 이반시티 캠프

 

터울 : 그리고 2003년에는 이반시티 여름캠프를 가셨더라고요. 이색적인 것 같아요. 저도 사실 예전에 우이동에 한번 갔는데 천정의 낙서 가운데 이반시티라고 써있던 기억이 나요.

 

박사이먼 : 진짜?

 

터울 : 네. 전 그 때 디나이얼 게이였는데, 자고는 다녔지만, (웃음) 저걸 오래 보고 있으면 내가 게이인 게 들키는 게 아닐까, 그럼 여기에 모였던 사람들은 한데 모여서 그룹섹스를 했던 건가, (웃음) 온갖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나요. 이 캠프에 대해서 좀 얘기해주세요.

 

박사이먼 : 지금 생각해보면 2002년부터, 그 때가 제가 30대 초반의 나이거든요. 그땐 정말 진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동호회 활동도 다양하고 단체 번개방 등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고 엠티도 많이 가고 하지만, 그 당시 2003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단체로 여행을 간다는 게 쉽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그 당시 이반시티 캠프는 회원들에게 특별한 재미와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
불특정 다수의 이반이 한 공간에서 1박 2일, 2박 3일 엠티를 가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면서 즐겁게 준비했는데, 처음 시도하는 행사라 잘 될까,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걱정도 많았지만,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쳐서 기분이 좋았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가장 기억이 많이 나요. 저는 그 당시만 해도 오프라인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몇몇 지인들만 알았는데, 캠프하면서 그 당시에 만났던 사람들과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정도로 그 당시에는 인기가 많았고, 캠프 갔다 와서 계속 그 사람들이 뒷풀이 하고, 따로 모이고,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어요.

 

터울 : 그게 사실 이반시티 캠프라고 하면 '네이버 캠프'같이 들리잖아요. 어떻게 캠프가 가능하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보다는 커뮤니티가 좁던 시절이어서 가능했던 것도 있는 것 같거든요. 프로그램은 어떤 게 있었어요?

 

박사이먼 : 대학교 과엠티 정도의 분위기라고 보시면 될 듯하네요. 첫 캠프는 120여명이서 가평의 수림농원이란 델 갔었는데, 큰 강당을 단독으로 쓸 수 있고, 운동장도 넓고 좋았어요. 지금도 단체로 게이들이 엠티를 가면 눈치도 보고 하는데, 그 당시는 더욱 더 조심하는 분위기였었죠. 큰 강당에서 미스 이반시티 선발대회도 하고요, 여러 가지 게임도 하고, iSHAP과 연계해서 에이즈 상식 퀴즈도 풀고, 밤에는 캠프파이어도 하고, 우리가 보통 수학여행에서 하는 것들을 거의 다 했던 것 같아요. 낮에는 운동장에서 운동회도 하고, 그렇게 놀았었죠.

 

터울 : 친구사이 워크샵이랑 어떻게 보면 비슷한 것 같네요. 다른 사람들은 흔히 게이들이 모여 있으면 단체로 뭔가 음란한 걸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웃음) 그래서 갈 때 살짝 기대해보기도 하고, (웃음) 별달리 그런 게 없는,

 

박사이먼 : 밤 늦게까지 술 마시면서 뒷풀이도 하고 100명 이상의 게이들이 모이는데 사건 사고가 없었겠어요? (웃음) 저는 당시 준비한다고 몰랐는데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많은 썸씽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밤에 밖에 나가서 뭘 했다는 친구, 아침에 청소하다가 방에서 콘돔이 나온다든가, 그런 경우는 있었어요. (웃음) 그래서 역시나 게이들은 시간과 장소를 안 가리는구나, (웃음) 처음 준비하는 행사라 힘든 점도 많았지만 성황리에 마무리되고, 회원들도 좋았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고, 캠프 또 언제 가냐는 소리도 많이 듣고 해서 보람있었어요.

 

터울 : 최근에 비슷한 류의 캠프를 꼽는다면, 르퀸 1주년 엠티 때가 비슷한 것 같아요. 어떻게 클럽 사람들이 모여서 엠티를 가지?-싶었는데, 그 전에는 심지어 포털 사이트에서 엠티를 갔던 전례가 있었군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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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 3, 2008.

 

 


iSHAP, 퀴어문화축제 등 인권운동과의 접점

 

터울 : 아까 잠깐 iSHAP 얘기가 나왔는데, 처음으로 인권운동을 하는 게이를 만났던 게 iSHAP의 김현구님이셨다고 들었거든요.

 

박사이먼 : 인권운동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럽고요,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날 오프라인에 데뷔시킨 사람은 구야 형이라고 얘기하거든요.
믿으실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 저는 종로 게이바나 이태원 클럽도 한번 안 가본 순둥이였어요. 김현구씨는 그 당시에 iSHAP을 시작하는 단계였어요. 그래서 이반시티에 iSHAP의 홍보 광고를 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됐어요. 이 커피숍 계단 올라오면서 옛날 생각이 났던 게, 제가 김현구 팀장이랑 종로 첫 데뷔가 아마도 종로 파고다극장 앞쪽에 있는 이반다방인지 카페인지였을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만난 게 인연이 됐어요. 그 때 현구형은 구야홈닷컴 운영자로도 유명했고, iSHAP 일도 하면서 오프라인에서 유명인이였죠. 그러면서 저도 그 형 때문에 오프라인에도 나오게 되고 이반바도 같이 가게 되고, iSHAP에 자원봉사 활동도 하고. 그렇게 저의 첫 오프라인 활동의 시작은 김현구씨 덕분이였죠.

 

터울 : 저도 2002-2004년 이반시티 메인화면이 기억나는데, 인권단체의 배너나 소개가 꾸준히 올라왔던 기억이 나거든요. 지금도 퀴어뉴스에서 인권단체의 소식이 올라오는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박사이먼 : 친구사이, 행성인 등 인권단체에서 다양한 행사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이반들은 무슨 행사를 하는지 몰라서 못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어요. 이반시티의 회원이 약 25만명 정도 되니, 인권단체의 활동이나 소식을 알려주고 홍보해주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퀴어뉴스 게시판이나 홍보 배너 등으로 홍보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터울 : 친구사이도 소식지를 비롯해서 단체 행사 정보가 이반시티에 올라가는데, 그걸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아요. 그러면서 이반방송도 하셨고, 뉴스도 하셨고, 이런 컨텐츠를 계속 생산하셨는데, 포털이면 그런 기획을 구태여 하지 않고도 채팅과 게시판을 열어놓고 운영하셨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욕심을 내신 거잖아요. 그런 것들을 기획하시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박사이먼 : 2002년부터 한 10년간은 저도 30대 한창때라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열정적으로 일한 것 같아요. 그 당시 동영상 컨텐츠 제작에 욕심이 생겨서, 당시 이반시티에 “뉴스소녀”라는 닉네임의 회원이 있었는데, 아주 글이 너무 재미있고 재치있고 좋아서 그 회원에게 직접 쪽지를 보내서 영상으로 한번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하고, 제안을 수락하면서 같이 일하게 되었죠.

뉴스소녀가 2004년부터 작년까지 13여년 함께 일한 정성원이라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작가로 대본을 쓰고, 입담이 좋은 민호씨와 구야 형이 진행을 맡아서 제작한 영상이 이반 뉴스쇼 <렛츠큐>였는데, 열심히 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한국 배우가 직접 출연하는 성인 동영상 제작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열심히 제작했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이반 영화 촬영을 한다면 스탭이나 출연진이 줄을 선대요. 그런데 그 당시는 정말 배우 캐스팅이 정말 힘들었어요. 자기의 얼굴과 몸을 노출하는 것 자체에 부담이 많았던 시절이라 제작하는 데 많이 힘들었지만, 나름의 보람도 있었죠.

 

터울 : 성인 동영상 이야기는 조금 뒤에 나누겠습니다. (웃음) 그러다가 잡지 <GET>을 2007년 11월에 창간하게 되셨는데요. 어떻게 만들게 되셨어요?

 

박사이먼 : 제가 그 당시 겁도 없이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었어요. (웃음) 제가 2006년까지는 영상 컨텐츠에 매달리다가, 3-4년 하다보니 그것도 바닥이 나고, 좀 뭔가 새롭게 시작할 게 없나 하던 찰나에, <보릿자루> 잡지가 생각이 난 거예요. <보릿자루>가 예전에 있었는데 없어졌고, <BUDDY>도 없어지고, 당시엔 이반들을 위한 오프라인 매거진이 없었던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잡지 한번 만들어보자-해서 겁도 없이 뛰어들었죠.
처음에는 욕심을 내서 월간지로 계획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예전에 잡지사에 일을 한 경험도 없고, 몇 안되는 인원이 잡지를 만들다 보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제일 중요한 건, 잡지에 나갈 컨텐츠를 만들고 디자인해서 인쇄하기까지 많은 제작비가 들잖아요, 웹진과는 다르게. 인쇄비, 편집비 등 비용이 많이 드는 데 반해서, 광고 유치가 안되니까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솔직히 매번 적자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게이 잡지를 당당히 구매해서 보는 것 자체가 힘든 시절이었던 거죠.

 

터울 : 그 때가 벌써 웹진으로 많이들 넘어가던 때이기도 하고요.

 

박사이먼 : 그래서 무가지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업소 등에 무료 배포도 하고 했어요. 그런데 광고가 붙어야 그 수익으로 계속 발행할텐데 광고도 안 붙고. 그래서 계간지로 돌렸어요. 그러다가 마지막 10호는 영화 <친구사이>에 출연한, 지금은 유명 배우가 된 이제훈, 서지후(연우진)의 인터뷰가 실렸어요. 인터뷰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그걸 마지막으로 웹진으로 돌렸어요.

 

터울 : 지금도 웹진은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박사이먼 : 예, 그런데 거의, (웃음) 요즘 인권단체에서 다양한 웹진이 잘 나오고 있기 때문에 요즘은 솔직히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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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진.

 

 

 

터울 : 그리고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이사를 맡고 계시잖아요. 아까 <BUDDY> 얘기도 나왔는데, 한채윤씨와의 관계와 인연도 되게 궁금하거든요. 퀴어문화축제나 비온뒤무지개재단에 어떻게 관여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사이먼 : 한채윤씨는 퀴어문화축제 때문에 만나게 됐죠. 퀴어문화축제는 2002년에 개인 자격으로 참여를 했었고 이반시티로는 2003년 4회 때부터 후원으로 참여했어요. 그 계기로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했던 한채윤씨나 홍기훈씨를 그 때 처음 뵙게 됐죠. 그게 인연이 돼서 2004년에는 이반시티 참가단을 모집해서, 지금도 생각나요, 큰 트럭에 홍석천씨도 올리고.

 

터울 : 퀴어퍼레이드 트럭을 아예 이반시티에서 하셨군요.

 

박사이먼 : 퀴어문화축제에서 준비해주는 이반시티 참가단 트럭이었죠.
2005년부터는 단순한 참가가 아니라 퀴어문화축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005년부터는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에 스탭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나중에 말할 퀴어문화축제 애프터파티를 그 때부터 기획하게 됐죠. 그렇게 인연이 됐던 겁니다.

 

터울 : 대단하시네요. (웃음) 파티 얘기는 잠시 후에 나누겠구요. 그러면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는 언제부터 맡게 되셨어요?

 

박사이먼 : 퀴어문화축제 같이 하면서, 한채윤씨와 모임이나 뒷풀이 자리에서 퀴어들을 위한 재단의 필요성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는 나눴어요. 우리는 자식도 없는데, 죽고 나면 우리 재산은 누구에게 줘야하나? 어디에 기탁해야 돼? 그런 농담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2013년도에 한채윤씨가 주축이 돼서 재단을 만들었죠. 재단이 만들어지면서 저에게 이사 제안이 왔고 흔쾌히 승낙했죠. 그 때부터 이사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터울 : 해왔던 활동이 정말 다종다양하시고, 업소 문화를 포함한 커뮤니티와 인권과의 접점을 오래 사고해오셨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박사이먼 : 저도 지난 일들을 되돌아 보니 내가 이런 많은 일들을 어떻게 했었지? 스스로도 좀 미친 거 아닌가 싶어요. (웃음)

 

터울 : 정말 불타는 30대를 사셨네요. (웃음)

 

박사이먼 : 그랬던 것 같아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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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 동성애자 사이트 "화랑"의 진입화면 문구 (2000.4.9., http://hello.to/hwarang, 현 "이반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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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시티 메인화면 (2006.7.21.)

 

 


2004-2006년 성인동영상 서비스, 2006-2014년 파일시티 서비스 개시

 

터울 : 뜨거운 감자를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웃음) 이반시티 내에서 성인동영상 서비스를 2004-2006년까지 하셨어요. 저도 본 적이 있고,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지금은 게이봉박두나 이런 것처럼 얼굴을 내걸 배우들도 있고, 당사자가 영화에 얼굴을 내보이기도 하는데, 그 때 당시에는 그런 분들이 드물었기 때문에, 게이들이 영상에 나오는 걸 신기해하면서 봤던 기억이 있거든요. 이반시티는 어쨌든 처음부터 19금 사이트임을 받아안고 시작하신 거잖아요, 엑스존과는 다르게. 전략을 다르게 가져가셨던 거고, 그러다보면 여러 가지 인터넷 검열들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그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박사이먼 : 일단 좀전에도 언급했지만, 제가 영상 컨텐츠 제작이 관심이 많았고 좀 절실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어요. "솔로탈출 대작전"이라고 애인 찾는 영상도 만들고, "이반뉴스쇼" 등 동영상을 제작하면서, 성인영상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죠. 그래서 덜컥 시작했는데, 가장 문제점이 출연할 배우가 없었어요. 그래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리고 일반 성인 에로 비디오는 예전부터 있었잖아요. 그건 심의를 받아 오프라인에서 유통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온라인에 유통되는 영상들은 특별한 규제가 없었어요. 그리고 이반시티는 원래 19세 이상 성인만 입장할 수 있는 사이트고, 성인 에로물 수준의 영상을 만들어서 서비스를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어요. 찍다가 도망가는 배우도 있었어요 중간에. 배우를 어렵게 모집해서 찍고 있는데 중간에 못하겠다고 갑자기 사라진 친구도 있고. (웃음) 그래서 그 촬영분을 전혀 못 쓰게 된 경우도 있고요.

 

터울 : 어찌보면 그게 배우로서 커밍아웃을 하는 셈이니까요.

 

박사이먼 : 그렇죠. 그리고 촬영 들어갈 때도, 음성 변조해주세요, 얼굴 나오면 안돼요, 이런 식의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제작하고 서비스했어요. 저는 또 한번 하면 꾸준히 해야 한다는, 그 때는 불타는 열정이 있었어요. 그래서 태국도 자주 갔었어요.

 

터울 : 기억나요. (웃음)

 

박사이먼 : 한국에서는 출연 배우를 구하기 힘들 상황이여서 태국 출장가서 촬영해 오고 했었어요. 현장에서 에피소드가 많은데, 길거리에서 캐스팅하고, 타완(Tawan) 클럽의 고고보이도 섭외하고 이반 마사지샵도 가서 섭외하고 그랬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부족한 영상이지만, (웃음)

 

터울 : 저는 "친절한 금자씨"가 기억나요. (웃음)

 

박사이먼 :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웃음) 그래도 그 때는 한국 게이가 나오는 영상이 희귀해서, 꾸준히 팬들이 있었습니다.

 

터울 : 영상당 1,000원 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박사이먼 : 네, 과금은 영상마다 조금씩 달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많이 유치하지만 여러 시도를 많이 했었어요. (웃음) 국내 성인 동영상이니 한국적 정서가 묻어 있는 스토리도 넣고, 하여튼 그 당시로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터울 : 그 영상들, 퀴어아카이브든 꼭 보관을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때 당시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 같아요.
그러다가 성인영상 서비스를 중단하게 되셨는데, 어떤 경위로 중단하게 되셨을까요.

 

박사이먼 : 성인물에서 "음란"의 기준이 애매하잖아요. 음란의 기준이 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고 어디까지 나와야 음란한 건지, 제작 당시에도 음란물의 기준이 모호했었죠.

 

터울 : 그건 사실 지금도 그렇죠.

 

박사이먼 : 그리고 그 때는 온라인에서 성인 회원들만을 위한 서비스였기 때문에, 나름의 기준으로 모자이크도 하고, 문제의 소지가 없도록 자체 검열을 했었죠.
그 때 저희의 경쟁 사이트였던 ㅎ사이트가 있었어요. 제가 사실 더 열심히 했던 이유도 경쟁업체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어요.(웃음) 그래서 경쟁적으로 ㅎ사이트보다는 잘해야 된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상태였어요. 그 당시 ㅎ사이트에서도 국내 성인 동영상을 제작을 했었는데,
군대 내 촬영 영상이나, 지하철 영상 등이 이슈가 되면서 좀 시끄러워졌죠. 그러다 게이 성인영상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고, 저희도 조사를 받게 되면서 변호사를 선임해서 음란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걸 주장했어요. 당시에 변호사가 음란의 기준이 일반과 이반에게 다르게 적용된다는 걸 지적하고, 음란물의 기준에 대한 공방이 붙었습니다. 그러다 심의 기준과 심의 대상도 모호하던 터라, 문제의 소지가 있는 영상이라면 내리는 게 좋겠다고 결정해서 성인 동영상을 자진해서 내리게 됐어요.

 

터울 : 그 얘기를 조금만 더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일반 에로티카보다 이반 에로티카가 훨씬 더 강하게 변태적이고 이상하다고 수사 당국이 생각했던 부분,

 

박사이먼 : 우리가 일반 에로물을 볼 때도 왠지 싫고, 더럽다고 느껴질 때가 간혹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이성애자가 게이 에로물을 봤을 때 싫고 더럽고 더 음란하게 느낄 수 있겠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 부분이 작용해서 게이 영상물이 더 음란하다고 판단됐던 것 같아요.

 

터울 :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싫다는 감정이 상호간에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성애자들은 엄청난 다수이고, 여긴 상대적으로 한 줌인데, 똑같은 노출도를 갖는 성인영상이 그렇게 다르게 평가받았다는 게,

 

박사이먼 : 우리가 비디오로 출시했던 것도 아니고, 온라인으로만 서비스됐던 거고, 성인들만 가입할 수 있는 공간에서 그런 서비스를 하는 게 뭐가 문제가 되느냐고 대응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부분으로 인해 다른 큰 것들을 잃을까봐 걱정이 돼서, 결국은 스스로 꼬리를 내린 격이에요.

 

터울 : 그 영상들 가끔 그리워요. 제 20대가 묻어 있는 영상들이라, (웃음)

 

박사이먼 : 지금 보면 너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웃음) 그래도 그 때는, 저도 영화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열정 하나로 덤볐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감독도 섭외하고 했는데 나중에는 제가 직접 배워서 촬영도 하고 편집까지 다 했습니다. (웃음)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터울 : 그러면 성인영상 얘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고요.
이반시티 내에서 되게 다양한 의견들이 많이 올라오잖아요. 게이계의 DCinside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여과없는 얘기이나 사진들도 많은데, 그것들 중에 문제가 되는 것들을 내부적으로 검열하는 기준도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이 사이트가 소라넷처럼 되면 안되는 거잖아요.

 

박사이먼 : 그렇죠.

 

터울 : 그래서 그런 운영상의 부분이 궁금해요.

 

박사이먼 : 이반시티는 게이들을 위한 커뮤니티 포털 사이트잖아요. 25만명의 회원들이 가입되어 있다 보니, 얼마나 다양한 취향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어요.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하게 웬만하면 규제없이 운영하고 싶지만, 게이 대표 웹사이트이다 보니 주변에서 주목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성매매, 미성년자, 부당한 약 거래, 음란물, 호모포비아성 글 등 문제가 되는 부분들은 철저하게 규제를 하는 편이에요.

 

터울 : 그런 공간이 남아있는 게 어쨌든 중요하니까요.

그럼 파일시티 얘기로 넘어갈 게요. 이반시티 내에서 처음엔 P2P 서비스를 운영하셨고, 그 후에 파일시티 1,2를 운영하셨잖아요. 저도 애용한 서비스인데요, (웃음) 서비스를 발족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박사이먼 : 2006년에 처음 파일시티를 오픈한 것 같아요. 파일시티 오픈 전에는 파일을 공유하는 웹하드가 게이 전용이 아니어서, 게이 영상물을 업로드 하고 다운로드 하는 데 눈치를 보게 되고 불편한 점이 많았었죠.
그래서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파일을 공유할 수 있는 게이전용 웹하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서 오픈하게 되었는데, 많은 회원들이 이용하게 되었죠.
지금은 웹하드 서비스를 개시하려면 절차도 까다롭고 규제도 많고 엄청난 자본과 노력이 필요해요. 2013-14년 즈음 웹하드가 저작권 및 음란물로 문제가 많이 생기면서 웹하드 서비스를 더욱 철저하게 규제 관리하게 되고, 웹하드 업체 설립이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바뀌었어요. 등록 기준이 자본금 3억이 있어야 되고, 설립 요건이 되게 복잡해요.
그래서 웹하드 업체 등록제 시행으로 파일시티 서비스를 끝내고, 이반시티와 분리된 제휴 형태로 '파일맨'이란 서비스를 재오픈하게 된거죠.

 

터울 : 그럼 그 때 이후로 이반시티와 파일맨은 다른 사업자가 운영하고 계신 거죠?

 

박사이먼 : 네. 웹하드 등록제 시행으로 더 전문적이고 독자적인 서비스를 위해 분리해서 제휴 사이트 형태로 운영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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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시티 가입화면 (2017.8.24.)

 

 

 

 


이반시티의 가입 절차와 레즈비언 커뮤니티 사이트 'TG넷'과의 관계

 

터울 : 이반시티를 네이버에 띄우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고민하셨다고 들었어요. 익선동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커밍아웃은 필요하지만 아웃팅은 안되는 딜레마가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 같아요. 그 때 고민하셨던 바들을 말씀해주세요.

 

박사이먼 : 열심히 이반시티 컨텐츠를 개발하고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에, 저는 이반시티 사이트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이반시티의 존재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분명 존재하고, 우리가 파이를 키우려면 다음이나 네이버에 검색이 되게 해서 이반시티를 알려야 하지 않을까, 네이버에서 '에이즈' 치면 iSHAP이 나오듯이, 우리도 '동성애' 치면 이반시티가 나와서 사람들한테 알려지면 좋겠다고 처음에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반들에게도 노출이 되어서 그들이 호기심으로 가입하게 되면 아웃팅에 대한 우려도 있어서,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죠. 그 당시에 네이버에서 연락이 왔던 기억이 나요. 오래된 얘긴데, 검색에서 상단에 노출되게 유료 광고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더라고요. 그 때는 우리가 홍보보다는 아웃팅 위험에 대한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굳이 노출이 안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사양을 했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성인 사이트로 분류가 돼서 그 뒤로는 검색도 안되고 그러더라고요.

 

터울 :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박사이먼 : 네. 이반시티는 커뮤니티 사이트인데, 아예 성인으로 분류가 되어서 왜 검색에서 제외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아마도 많이 알려져서 유명세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직 회원들이 이반시티에 가입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아웃팅에 대한 걱정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자신감인지는 모르지만, 아는 사람들은 이반시티 다 알고 하니까, 굳이 공개적으로 노출은 안 시켜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터울 : 제가 하도 오래전에 가입해서, (웃음) 디나이얼 게이 시절에 이반시티를 한 7-8번 탈퇴했다 다시 가입하고 했거든요. 오래돼서 가입 절차가 기억이 안나는데, 가입 절차가 지금은 어떻게 돼있나요.

 

박사이먼 : 예전에는 주민등록번호만 있으면 됐지만 지금은 실명 인증으로 바뀌었어요. 아이핀과 휴대폰 실명 인증을 거쳐야 해서, 중복 가입이 안 돼요.

 

터울 : 한마디로 예전에 흔히 성행했던 주민번호 생성기 같은 걸 못 쓰게 하는 거군요.

 

박사이먼 : 네. 초창기 가입 절차는 실명인증이 아니어서 주민번호만 맞으면 가입이 되었어요. 그런데 인터넷 실명제가 의무화되면서 이반시티도 본인의 주민등록번호 한 개로 한 아이디만 만들 수 있어요. 대신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저장을 못하도록 돼있으니까 인증 단계에서 인증 회사로만 전송되고, 사이트에서는 최소한의 정보만 저장이 되는 거죠.

 

터울 : 이반시티에 여성은 가입 가능한가요?

 

박사이먼 : 지금은 못해요. 예전에는 사실 LGBT에게 다 열려 있었는데, 예전에 한때 사진 '인증' 붐이 불었어요. 이반시티 자유게시판에 밤이 되면,

 

터울 : 맞아요. 지금도 있어요.

 

박사이먼 : 왜냐하면 밤에 잠시라도 자기를 보여주고 싶은 거죠.

 

터울 : 그렇게 몇 분 올라왔다가 싹 사라지고,

 

박사이먼 : 그러니까 밤에는 올리고, 나 어때요-이러면서, 그랬는데, 호기심으로 들어온 여자들이 사진을 모아서 일반 사이트에 올리고 하는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때 판단을 한 게, LGBT를 지향하지만 게이들만을 위한 커뮤니티로 특화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에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2는 받지 말자, 그래서 현재는 주민번호 뒷자리 2는 가입이 안 되게 돼있어요.

 

터울 : 이 맥락을 잘 모르는 사람은 여성 배제적이다, 트랜스젠더 배제적이라는 반응을 할 수 있는데, 사실 그런 방침들의 시초들에는 다 아웃팅 문제가 엮여있는 것 같아요.

 

박사이먼 : 네, 그래서 우리의 제일 큰 문제는 이반시티 회원들을 아웃팅에서 보호하자는 거였던 거죠.

 

터울 : 그러나 결국은 일반 남성이 가입하는 건 사실상 막기가 어려운 거잖아요.

 

박사이먼 : 어렵죠.

 

터울 : 그래서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악의적으로, 국민일보의 ㅂ기자라든지, 그 사람은 이반시티에 아이디가 있는 것 같아요.

 

박사이먼 : 저희도 못 찾고 있어요.

 

터울 : 이반시티 내 게시물을 보고 긁어서 게이들이 부적절하게 논다는 식의 기사를 쓰는 경우가 있잖아요. 굉장히 비윤리적이고 말도 안되는 일인데, 어떠셨어요.

 

박사이먼 : 동성애 혐오 기사만 쏟아내는 기자가, 이반시티에 몰래 들어와서 회원들의 글을 무단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들만 캡쳐해서 기사화하는 걸 보면서 정말 불쾌했어요. 기자라면 제대로 된 진실을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기자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웠어요.
가령 퀴어축제에서의 노출에도 다양한 목소리와 의견이 있잖아요.
반대하는 분도 있지만 찬성하는 목소리도 분명 존재하는데,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 발췌하면 뭐든지 자기가 원하는 논조대로 기사를 낼 수 있는 거잖아요.

이반시티에도 건전하고 건강한 커뮤니티 역할도 분명히 있는데, 그런 부분은 쏙 빼고 섹스 파트너를 찾는 글들만 캡쳐해서 기사를 내보내면, 이반시티를 모르는 사람들은 음란하고 퇴폐적인, 소라넷 같은 사이트로 오해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터울 : 삶을 산다는 게 건전한 것과 불건전한 것이 섞여 있는 게 이상적인 형태인 것이고, 그건 사이트도 마찬가지인데, 후자의 부분만 쏙 빼서 부각하는 방법이 부적절한 것 같아요.

 

박사이먼 :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그 기자를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은 없는지 변호사에게 문의도 해봤는데, 어려울 거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터울 : 어쨌든 일반 남성들이 들어와서 보는 건 어떻게 막을 수가 없는 거군요.

 

박사이먼 : 그렇죠, 온라인으로 회원 가입을 받는데 일반인지 이반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죠. 바이섹슈얼도 분명히 많이 존재하구요.

 

터울 : 주민등록번호 2가 가입이 안됐던 시점이 언제였어요?

 

박사이먼 :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한 3-4년 정도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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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즈비언 사이트 티지넷의 이반시티 인수 공지 (2005.10.1.)

 

 

 

터울 : 다음으로 레즈비언 TG넷 얘기를 좀 여쭤볼게요. 사전 인터뷰에서 이반시티에서 TG넷을 같이 운영했던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박사이먼 : 이것도 얘기하자면 길어요. (웃음)

 

터울 : 이 사실이 나가면 놀랄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웃음)

 

박사이먼 : 사실 TG넷은 이반시티의 전신인 화랑보다 더 먼저 탱크걸이라는 이름의 사이트로 1998년도에 오픈했는데, 그 TG넷을 만든 분이 지금도 이반시티 모니터링을 도와주고 친하게 지내는 게이 형님이예요. 그 당시로는 택시 운전일을 해서 택시맨이라고도 불렸고요. 저는 보스(BOSS)형이라고 부르는데, 그 형님이 레즈비언 사이트를 만들고 초창기에 운영했던 운영자였어요. 원래는 Tank Girl이었다가 TG넷으로 이름을 바꾼 거죠.

 

터울 : 아, TG넷이 Tank Girl의 준말이었어요?

 

박사이먼 : 네. TG넷을 만든 보스형과 제 파트너가 웹사이트를 운영하다보니, 서로 교류하게 되고 기술적인 부분을 이반시티에서 도움을 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거죠. 그런데 2005년 즈음에 보스형이 건강이 좀 안 좋아져서, TG넷 운영을 맡길 사람을 찾아봤는데 마땅히 없었나봐요. 그래서 이반시티에서 운영해줄 것을 제안했고, 그 당시 저희 목표가 LGBT 모두를 아우르는 회사였기 때문에, (웃음) 이반시티는 게이 대표 사이트고, TG넷은 레즈비언 사이트 중에 최고니까, 그래서 그때 TG넷을 인수해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TG넷을 이반시티에서 운영했어요.
인수 이후 티지넷을 리뉴얼하고, <오버 더 레인보우>라고 레즈비언 영화 제작 지원도 했었고, 시트콤 같은 레즈비언 영상 컨텐츠도 제작하는 등 여러 시도들을 했었죠.

 

터울 : 그럼 2008년부턴 어떤 분이,

 

박사이먼 : 하다보니 게이가 레즈비언 사이트를 운영하는데는 어려움도 있고, 한계가 있더라고요. 이반시티도 성장하면서 할 일도 많아지는데 TG넷까지 운영하기가 너무 버겁더라고요. 그래서 주변에서 책임지고 인수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2008년에 엘파티도 주최하고 친분이 있던 레즈비언에게 운영권을 넘겨주게 되었어요. 인수 후에는 투자도 많이 하고 잘 운영하긴 했었는데, 수익아이템을 찾지 못해서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에 또 우여곡절이 많아요. 해킹 협박 사건이라든지,

 

터울 : 예, 최근에 그 사건 때문에 사이트를 임시 폐쇄했다고 들었거든요.

 

박사이먼 : 네, 아마 재작년으로 기억하는데, TG넷 운영자로부터 연락이 왔었는데 해킹 협박 메일이 왔다는 거예요. 회원정보를 다 해킹을 해서 가지고 있는데 돈을 주지 않으면 회원정보를 다 팔아 넘기겠다는 내용이었던 거죠.
TG넷은 이반시티보다 더 폐쇄적이잖아요. 회원가입 시 목소리 인증까지 받을 정도로 철저하게 회원 관리를 했었죠. 그런 상태에서 그런 협박메일을 받으니까, 운영자가 그 상황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사이트를 당분간 문을 닫는 것으로 결정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길어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 이후 운영자분이 다시 우리에게 운영을 맡아 달라고 요청한 상태인데, 지금 여건이 안돼서 못하고 있어요.

 

터울 : 많은 레즈비언분들이 재개장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박사이먼 : 최초의 레즈비언 사이트인 TG넷이 없어져서 아쉬워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재오픈하려고 운영을 할 사람을 찾고 있지만 적임자가 아직 없는 상태입니다.

 

터울 : 책임지고 운영할 분이 안 계신 거군요.

 

박사이먼 : 네. 안타까운 현실이죠. 사실 TG넷을 처음 만든 보스형님도 많이 아쉬워 하고 있어요.

 

터울 : 이 기사가 나가면 많이들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게 사실은 레즈비언 사이트가 성소수자 억압과 여성 억압이 같이 작용하는 어려움이 있고, 또 메갈리아 등에 대한 반격이 오던 시점과 사이트 폐쇄 시점이 좀 겹쳐있기도 해서, 좀 당당히 재오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박사이먼 : TG넷이 이대로 없어지는 건 너무 아깝고 안타까워요. 그래서 이전 사이트 DB를 잘 보관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이나 책임지고 사이트를 운영하실 분이 있다면, 제 메일이나 지금의 TG넷 대표에게 연락하시면 조율해서 재오픈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터울 : 지금 TG넷 대표가 어떤 분이시죠?

 

박사이먼 : '고백'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을 하는데요. 현재 파트너와 의류 사업을 크게 해서 많이 바쁘다고 하더라구요. 티지넷을 인수한 후에 리뉴얼도 하고 사이트에 투자도 많이 하고 했지만, 수익 모델을 못 찾아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터울 : 아무튼 TG넷 DB가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능력자 레즈비언분들이 오셔서 TG넷이 재개장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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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지넷 메인화면 (2008.8.16.)

 


터울 : 그리고 이반시티 관련해서 마지막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 아까 사이트의 수익성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인데요. 사이트 관련해서 많은 제언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게시판의 가로축이 넓어졌으면 좋겠다든지, 맥에서는 채팅이 안되는 점이라든지. 그런데 이반시티가 현재 몇 명의 직원으로 운영되세요?

 

박사이먼 : 직원은 현재 3명이고요. 디자인 외주, 모니터링 요원까지 하면 5명 정도 돼요.

 

터울 : 그러니까 이 사이트가 3-5명으로 운영된다는 게 너무 충격이거든요. 왜냐하면 어쨌든 동성애 사이트 중에서는 제일 큰 포털 사이트인데, 그렇게 적은 인원으로 운영하신다는 게. 그러다 보니 리뉴얼이 잘 안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고요.

 

박사이먼 :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기보다는 좀 부족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배워서 직접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필요한 인원들만으로 운영을 해 오고 있는데, 이제 저도 나이도 있고 15년 이상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좀 힘이 빠진 상태입니다.
인터넷 환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글로벌 시대에 사이트를 아시아권으로 확대하고 새로운 컨텐츠도 개발하고 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네요. 최근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반시티를 재도약하는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요. 주변에 믿을 만하고 감각 있고 열정적인 사람 있음 소개 좀 시켜주세요. (웃음)

 

터울 : 어쨌든 오래된 게이 사이트인 만큼 뭔가 새로운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그누보드 기반으로 사이트가 제작돼 있는데, 요즘은 모바일과 데스크탑의 웹디자인 경계가 흐려지는 등 트렌디한 웹환경이 있잖아요. 거기에 맞추어서 좀더 업그레이드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물론 이반시티가 이제까지 재무적 상황이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지금까지 운영되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긴 한 것 같아요.

 

박사이먼 :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으니, 이제는 장기 플랜을 세워서 이반시티가 재도약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터울 : 그래도 왕년의 기획력이 있으시니까, 기다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2부에서 계속)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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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7-09-01 오후 15:36

으왕 ^^ 긴 글이지만 뭔가 신기하고 궁금하고 좋았어요.
이반시티가 재 도약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비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씀에 지지와 연대의
박수를 쳐 드리고 싶네요.

어려운 시대에 많은 성소수자들에게 숨 구멍을 내는 존재로서 역할을 했을 것 같아요.
친구사이 활동에도 늘 관심 가져 주시고 늘 흔쾌히 부탁 들어 주셔서 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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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긔 이반시티 2022-08-30 오전 03:14

Ivancity 쓰레기 site 성소수자 대표? ㅋㅋㅋ 지멋대로 회원 강등시키고, 강퇴시키는 관리자가 있는 대표 얼굴도 관상이 과학이란 소리가 딱 어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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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sh Ivancity 2022-08-30 오전 03:22

Ivancity has got no rights to talk about LGBT. They ban you from using the website all of sudden. I will never support this horrible website ever. It's gross and full of hypocrites, especially managers in there. Look at the face only his mother could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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