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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들의 종로이모 이야기 #3 - 前 물○○○ 이모 정지윤님
2016-09-23 오전 00: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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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9월 

[인터뷰] 우리들의 종로이모 이야기 #3

: OOO 이모 정지윤님

 

 

 

세 번째 인터뷰 손님은 너무도 반가운 얼굴,

추억의 물○○○ 전 사장님입니다.

크게 다치시는 바람에 예기치 못한 이별을 맞은 이래

많은 분들이 이모를 그리워하고 궁금해 했는데요,

함께 오랜만에 불러 볼까요? 이모~!

 

 

 

_이모 독사진.jpg

▲前 물OOO에서 일하시던 모습 (원본사진: 터울)

 

 

 

크리스 : 이모!!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후 그냥 제가 어찌나 이모 보고 싶던지… 못 참고 먼저 연락드렸어요. (웃음)

이모 : 아냐 괜찮아. 연락줘서 고마워.
순재 : 뭔가 예전 가게가 많이 그리워요. 그 가게 그 기억 속 그대로 남기고 싶고. 추억 위에 덧칠하고 싶지 않은 건가 봐요.
크리스 : 그만큼 우리한테 거기는 술집 이상이었던 거 같아요. 아무튼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게 되어 넘 좋아요 이모. 또 흔쾌히 저희들에게 이야기 들려주신다고 한 점도 감사드리구요. 그럼 한 번 시작해봐도 될까요?
이모 : 응~

 

 

# 거기선 내가 제일 성성해

 

 

크리스 : 물○○○ 오픈은 언제였나요?
이모 : 4월 달인데, 몇 년이었을까? 한... 지금 한 해는 그냥 가버렸잖아, 그치?
순재 : 네. 올해가 2016년이고 이모 다치신 게 작년 말.
이모 : 햇수로 거기서 장사한지 3년인가 4년 됐을 걸? 2012년인가? 얼추 그럴 거 같네.
순재 : 교통사고 당하신 게 작년 정확히 언제였죠?
이모 :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웃음). 24일 장사 끝나고 25일 새벽에. 그때 가게는 연말이라 아주 그냥 바쁠 때였는데...
순재 : 영업 종료하고 가게 넘어간 거는 그보다 한참 뒤였죠?
이모 : 올해 3월 20일.
크리스 : 그럼 한 3개월간 이모 없이 일하시던 분들끼리만 영업하고 계셨던 거군요.
순재 : 이모도 한 두 번인가는 가게 보러 나오셨던 거 같아요. 엄청 부은 얼굴로.
이모 : 맞아, 몸 안 좋은 상태에서. 내가 갈비뼈도 다쳤었고 흉추 쪽, 그 여자들 브라자 끈 닿는 데 있잖아. 그니까 앉아 있어도 힘들고 드러누워 있어도 힘들고 그랬었어. 저쪽 병원으로 가서는 아예 보조기를 하고 있었지.
순재 : 얼마나 아팠으까잉...
크리스 : 지금 이만큼이라도 나으신 게 천만 다행이네.
이모 : 다행이지. 지금 있는 병원에는 머리 다친 사람, 고장 난 사람, 아님 다리가 불구라든가 그런 사람이 많아. 왜냐면 시간이 오래 되면 병원에서 퇴출시키기 땜에... 그런 재활, 뭐 그런 병원에 내가 지금 있는 건데, 여긴 장애인들이 참 많아. 내 옆에는 치매 할머니가 있어. 귀여운 할머니야. 초등학생처럼 나한테 그랬어요, 이랬어요, 그러시거든.
순재 : 병실 사람들하곤 다 잘 지내세요?
이모 : 잘 지내지. 거기선 내가 제일 성성해. 다른 분들은 뇌졸중 뭐, 아니면 볼일도 그냥 막 봐 버리고. 그런 거 저런 거 다 지켜보면서 지내 요즘. 그 치매 할머니는 93세이신데 참... 정말 무서운 병이더라구. 음식의 맛도 모르고, 고통도 못 느끼시는 정도인데, 뇌의 기능이 그렇게까지 되더라고.
순재 : 많은 생각이 드시겠네, 거기 하루 종일 그 분들하고 계시면 이런 저런.
이모 : 응, 맞아. 정말.
순재 : 재밌는 일은 없었어요? 병원 생활이라고 해서 매일 어둡고 심각하지만은 않을 거 같은데.
이모 : 일단 요새는 그 옆에 할머니가 너무 천진난만하구, 귀엽구 사랑스럽게 좋아요, 좋아요, 이뻐요, 항상 이렇게 곱게 말씀하시는 게 재밌어.
순재 : 그 할머니가 제일 좋으시구나.
이모 : 해피바이러스야. 할아버지는 3층에 있고, 할머니는 4층에 있는데 할아버지는 파킨슨 그런 저기 장애가 있어.
순재 : 에구, 그 집 자녀분들은 속이 정말... 혹시 이모 친정어머니는 살아 계신가요?
이모 : 응. 걱정 많으시지. 우리 식구들도 다 걱정.
순재 : 그간 병실에 특별히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없었고?
이모 : 어. 다행히.

 

 

# 내 젊은 청춘이 다 이 길에

 

 

순재 : 우리가 작별인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잖아요, 이모랑. 다들 진짜 아쉬워했어요.
이모 : 그 즈음엔 내가 한 며칠은 나가 있으려고 그랬었어. 애들하고 마지막으로 얘기도 하고 앞으로 이렇게 될 거다, 그러고 싶었는데 몸이 못 버텨 주는 거야. 그날도 그래 가지고서 나왔다가 그냥 들어갔어.
순재 : 마지막날 지보이스가 가보니까 그 날씬한 이모 있잖아요, 김진숙 이모. 그날 우리 통성명도 했어요. (웃음) 그 진숙이 이모 혼자 계시더라고요. 우리가 시킨 그 많은 요리를 혼자 다 하셔야 되니까 원래도 그랬지만 서빙은 그냥 우리가 다 알아서 했죠. 다른 손님도 꽤 있었던 거 같은데, 그래서 제가 막 옆 테이블에도 술이며 안주며 배달하던 기억이 나요. 근데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며 보니까 그 이모가 막 우시는 거야, 일을 하다가! 주방에서 혼자, 우리 노래하는 거 들으면서 훌쩍훌쩍.
이모 : 정들어서 그랬구나.
순재 : 우리도 이제 마지막이라고 분위기에 젖어서 노래도 실컷 부르고, 그러다 나가면서 그 이모한테 과일이며 뭐 작은 선물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펑펑 우셨거든요. 우리도 막 취해가지구 몇 명이 따라 울고. (웃음) 근데 우리는 사실 솔직히 그 이모는 그 전까진 잘 몰랐죠. 항상 우리 사장님 이모만 보고 왔고, 주인공이셨고. 근데 그러고 보니 그 이모도 항상 우리 옆에 계셨더라고.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 기억의 풍경에 다 함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박수도 쳐 드리고, 한 명 한 명 안아 드리고 하니 내가 너네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내가 뭐라고, 고맙다며 참 많이 우셨어요. 언제 어디서 꼭 또 만나자... 왜들 그렇게 맘이 짠했을까? 나와서 단체사진 찍고 헤어지는데, 몇 번이고 돌아보니 우리 아무도 안 보일 때까지 손 흔들고 계시던 기억나요. 지보이스 단원들에게 그 장소는 정말 매주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을 쌓았던 자리고, 나도 고작 7개월이었지만 쨌든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거기를 갔으니까. 저처럼 지보이스 활동의 시작을 물○○○랑 함께했던 애들이 특히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크리스 : 그냥 딱, 우리가 종로에서 뭘 하고 ‘뒤풀이 가자’ 그러면 너무 자연스럽게 물○○○야. 그냥 알아서 우르르 거기로 갔죠. 물어보고 할 것도 없이 당연히. 그 정도였어요.
이모 :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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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물OOO 영업 마지막날, 김진숙 이모와 함께 한 지보이스 (원본사진: 오웬)

 

 

 

순재 : 요새도 앞을 지나갈 때마다 그냥 밖에서만 슥 보면 아, 여기서 와글와글 하던 시절이 그립고, 저 안에서 노래하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고. 간판이며 뭐며 다 그대로라 맘이 더 묘해요. 이모랑은 그런 충분한 인사도 못 나눴고, 어떻게 지내시는지 문득 궁금해도 어디 물을 길이 없고, 그래서 이모 섭외됐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몰라요. 아직은 몸 불편하신데 오늘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마음에 휑했던 빈자리가 달래지는 거 같아요.
크리스 : 퇴원하고 나서는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
이모 : 9월 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태 봐서. 이왕 있는 거니까 충분히. 나 지금 거기서 운동을 많이 하고 있잖아, 오전 오후.

크리스 : 에어로빅 하신다고 들었어요.
이모 : 응. 오전에 에어로빅, 점심때는 물리치료, 뭐 그렇게 시스템이 잘 돼 있기 때문에 나와서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체력단련을 충분히 해야 돼. 지금 나는 운동만이 살 길이야. 얘(어깨)가 재활이 다 돼야지 나와도 뭐든 할 거 아냐. 근데 또, 맘이 급하다고 무리하니까 얘가 못 버텨서 통증이 막... 혓바늘이 돋고 몸살이 나더라고. 그니까 얘가 시간이 흘러야지, 여유 있게 해야지 되겠더라. 나와서도 그렇게 계속하고. 달래가면서 조금씩...

순재 : 물○○○ 전에 종로에서 장사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이모 : 1997년도.
크리스 : 우와, 97년만 해도 지금 20년 전이야.
이모 : 그렇게 됐어. (웃음) 내 젊은 청춘이 다 이 길에... 나 지금 60이야. 나는 일반하고 보다는 살아온 세월이, 흐름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반들하고 이렇게 있는 시간이 더 편해. 일반 손님들하고는 좀 어색한 거 같애.
순재 : 그래서 다른 곳에서도 장사하시다가 다시 종로로 오신 거예요?
이모 : 어. 취향이 안 맞어. 여기가 편하고 더 좋아.
순재 : 그 정도면 이모 다음에 오실 땐 아예 본격 게이술집을 하셔도 되겠다. 종업원도 다 이쪽으로만 두고.
크리스 : 물○○○란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거예요?
이모 : 그냥 지었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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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어버이날 기념으로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후의 모습 (원본사진: 크리스)

 

 

 

# 게이 친구들한테 고맙지

 

 

이모 : 근데 있지, 나는 계속 이 종로구 일대에 살았어도 예전엔 전혀 몰랐어. 그런 데가, 이런 저기가 있는 지를.
순재 : 그럼 게이를 처음 만나신 건?
이모 : 이전에 처음 일할 때.. 그, 너무 수다스럽고 그랬었는데. (웃음) 재밌는 손님이 있었어.
순재 : 마음에 드셨어요? 저 손님 이상해, 징그러워, 이런 게 아니라 호감이?
이모 : 싫다기보다 너무 재미있는 거야. 이바구(주: ‘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를 많이 하니까. (웃음) 너무 재밌어.
크리스 : 어머!
이모 : 근데 그 사람을 나중에 만났는데 '이모, 여기서 장사해 먹을려면 알아야 돼'라고 하면서 이반의 끼와 뭐 때짜, 마짜, 뭐 막 알려줘서... 나 이렇게 적었어. (일동 웃음)
순재 : 받아 적었어. 노트 정리!
이모 : 이런 사람들이 오면 습성과 뭐 이런저런 거를 갖다가 막 알려주길래 난 또 막 적었어. (웃음) 어쨌든 그렇게 지내는데 그 담에 또 다른, 말도 재밌게 하고 그런 애가 있었어. 걔는 ‘이모, 나한테 잘 해, 잘 하면 내가 손님 많이 모시고 올게’, 막 이러는 거야. 그런가보다 해서 비위 잘 맞추고 잘 했어. (웃음) 근데 어느 날 얘가 친구들을 막 데리고 와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지. 근데 그러고 있는 사이에 끝날 때 보니까 우리 가게에 사람들이 막 한가득 차 있는 거야.
순재 : 게이로 가득! 대박, 대박.
이모 :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 이렇게 많이 발달이 되지 않았어. 그때 당시만 해도 은둔형이 대부분이라 옆 사람들 눈치 보면서, 굉장히. 그러다 뭐 시간이 이렇게 흐르다 보니까 인터넷이라는 게 확산이 되고, 번개라는 게 탄생이 되고, (웃음) 이제 종로 사회가 활짝, 크게 오픈이 되어 버리다 보니까 일반화가 돼서 그냥 이제는 당당하고, 대차고, 자기주장 강하게 하고. 옛날에 비해서 지금은 그런 거 같애.
크리스 : 거의 산 증인이시네, 종로바닥의.
이모 : 나는 ‘넌 이러니까 이렇구 너는 이러니까 이렇구’ 하는 거부감이 없었어. 그냥 손님이라면 무조건 이렇게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했지. (웃음) 또 나는 항상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라고 물어봤어. 모르니까. 자꾸 그러면 이렇게 애들이 가르쳐 줘서 내 거를 또 하나 만들고.
순재 : 이모가 먼저 막 그렇게 물어오고 하는 게 믿음을 많이 줬을 거 같아요, 그 언니들한테.
이모 : 응. 물어보고, 다가가고. 그리고 지켜보고. 그러니까 이제 내가 걔네들 지켜봤을 때 사람 사는 거는 비슷하다, 사랑하는 상대가 다를 뿐이지 다 똑같은 느낌으로 한다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세월이 또 많이 흐르다 보니까 그때 20대가 30대 되구, 30대가 40대 되구, 같이 이제 지금 늙어 가는 편이야. 그러다 보니까 지금 난 즐거워 여러분 만나는 일이. 그 속에서 이렇게 나이를 같이 먹어 가며 흘러흘러 사는 게 행복하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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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물OOO에서 친구사이 회원들이 놀던 모습

 

 

 

# 다들 열심히 사는 거 같애

 

 

순재 : 각별히 기억하고 계시는 게이들이 또 있을까요? 혹시 친구사이 중엔?
이모 : 그 사무국장을 가장 잘 알지. 그리구 그 왜 콘돔 돌리는 친구 있잖아.
크리스 : 아, 아이샵 김현구 소장님. 병문안도 갔었다고 들었어요.
순재 : 지보이스 공연은 언제부터 와 주셨어요?
이모 : 작년이지 뭐. 두 번인가, 이태원에서 할 때도 갔었고.
크리스 : 그동안 후원 정말 많이 해 주셨어.
순재 : 친구사이 회원들이랑 다른 게이손님들에서 느껴지는 차이 같은 게 혹시 있었을까요? 특징.
이모 : 좋아, 매너들이. 노는 스타일이야 뭐, 왁자지껄 그런 분위기는 별개고. 매너가 참 좋아, 바르고.
순재 : 하긴 빡세게 노는 것도 아마 지보이스나 그랬겠네요. 우리 어마어마하게 먹었지, 거기서. 무조건 노래 한 곡씩은 부르고. 거의 6~7시간 동안 내리 마신 날도 있는 거 같애.

크리스 : 그런다고 우리가 어디 가서 막 깽판 치고 그러진 않잖아.
이모 : 바르게 살고 있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가? 좋아. 일반이든 이반이든 흐트러지거나 막 거친 손님들이 있거든. 근데 친구사이는 반듯하고, 이모들한테 예쁘게 하고, 사는 것도, 열심히들 활동을 하는 거 같애. 내가 바라보는, 느껴지는 분위기는 그래.
순재 : 얼마 전에 지보이스가 ㅂ◇◇에서 놀던 날, 몇 명이 담배 피우면서 따로 떨어져 있다가 ‘너 호모새끼냐?’며 시비를 거는 취객한테 난데없이 폭행을 당한 적이 있어요. 소리 듣고 깜짝 놀라 우르르 가서는 도망가려는 그놈들 잡아 경찰에 신고하고 야밤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저도 현장에 같이 있었는데, 전 그런 혐오범죄를 목격한 게 처음이었어요. 더구나 종로 포차에서, 우리가 다 같이 있는데. 그 씩씩하고 명랑한 형한테. 차라리 내가 맞았으면 모를까... ㅂ◇◇ 이모는 우리가 하도 안 오니까 걱정 돼서 어디 사장님 불러다 가게 맡겨 놓고는 택시 타고 버선발로 종로경찰서까지 따라 오셨어요. 언니들은 공연하다 똥물까지 맞은 적도 있어서 그래도 좀 의연할 수 있었겠지만 그날 저 말고도 그런 경험 처음인 다른 친구들이 많았고, 우리 같은 초짜들은 한동안 많이 힘들었네요. 혹시 이모도 그런 모습을 직접 보시거나 아님 소문으로라도 그런 사고를 들은 기억 있으실까요? 사소한 시비라도요.
이모 : 있었어. 나는 일반들이 이반 무시하고 함부로 하고 그런 꼬락서니를 못 보거든? 그들 인생은 그들 인생이다, 함부로 하지 마라, 그런 거지.
크리스 :그럼 그 일반들이 그냥 알았다고 하고 갔어요?
이모 : 알았다고 하고 가지는 않지. 끝내 싸우지. 그러면 당신 가라고. 그런 거를, 불의를, 너네가 당하고 사는 거를 내가 너무 잘 아니까, 그 사람들이 함부로 하는 게 너무 속상하고 마음 아프니까 못 보는 거 같아, 함부로 하거나 이러면. 난 그게 용서가 안 되더라고.
순재 : 하긴 이모도 말씀하셨듯이 일반 업소인 이상 거긴 게이손님들이 소수인 편이었을 테니까, 생각보다 그런 일에 취약했을 수 있겠네요. 주말이라 할지라도 이태원은 클럽 때문에 일반남녀 또한 엄청 모일 거고. 평일에야 뭐, 게이는 거의 없고.
이모 : 옛날에 장사하면서도 애들이 막 끼를 떨고 하니까 그 옆에 테이블에서 ‘쟤들 뭐예요?’ 막 이러는 거야. 그때는 어쨌든 그 사람들은 일반이고, 너네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이니까 그냥 나도 맘에 안 든다는 듯이, 당신이 이해 좀 해 달라는 듯이 말할 수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처음엔 가만히 있는 거 같더니만 두 병 세 병 먹고 나니까 이제 그게 거슬리나 봐.  ‘아줌마, 나 가서 쟤네들 때려 주고 싶어요.’ 이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깜짝 놀라서 절대 안 된다고 했지.  얘는 또 그냥 막 신나게 옆에서 그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우리 집에 오면 항상 편하고 기분이 좋은 애한테 가서 ‘야, 너 그만해. 지금 옆에서~’ 이럴 수도 없고. 그럼 애가 얼마나 놀라고 또 그게 상처가 되겠어. 그러니까 말도 못하고 나는 그 중간에서 있잖아, 그 사람은 계속 여기 막 째려보고 있는데 나는 끙끙. (웃음)

순재 : 생각보다 많대요. 지금도 그런 일들이. 근데 대부분 사람들이 그냥 쉬쉬하는 거지. 왜냐면 그걸 가지고 경찰서 가고 하면 그 과정에서 커밍아웃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올까 봐 두렵고. 그래서 많이들 참고 숨기고 있지 의외로 꽤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모 같은 분들이 우리한테 더 소중한 거 같아요.
이모 : 이해하기 싫은 사람은 끝내 못하는 거걸랑...
순재 : 맞아요. 그게 몇 사람이 뭐, 말로 아무리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이모 : 안 돼. 안 되더라고. 시간이 필요한 거지. 그 못하는 사람들을, 막 그냥 대충 둘러대서 이렇게 해서 보내야지, 그 자리에서 ‘이해하십시오’라고는 강요를 할 수가 없더라고.
크리스 : 우리가 바라는 것도 뭐 강요가 아니야. 그냥 때리지나 말라는 거야.
이모 : 그래, 그냥 함부로 이렇게 무시하지는 말라는 거지. 나도 그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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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물OOO에서 이모가 키우시던 새와 함께한 모습

 

 

 

# 곧 돌아올게

 

 

순재 : 자제분들은 이모가 이렇게 게이 손님들과 가까이 지내는 걸 알고 계세요? 내켜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이모 주변 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생각하는 게 이모랑 다 같진 않을 거니까요. 어때요?
이모 : 우리 뭐, 다 알고 있지.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데 다 알고 있어.
크리스 : 가끔 놀러도 왔어요?
이모 :  그럼. 알바도 했었지.
순재 : 아! 나도 한 번 본 적 있는 거 같애. 이모 아플 때 아드님 한 번인가 두 번인가, 가게에서.
크리스 : 정말? 어땠어?? 잘생겼어?
이모 : 아니. (일동 웃음) 우리 아들은 말이 없어. 말이 없고 이렇게 막 사바사바하지를 않아.
순재 : 그럼 딱히 뭐 이 사람들 좋다, 싫다, 그런 얘기 한 기억 없으신가요?
이모 : 우리 딸은 적극적으로 이해를 하는데 아들은 잘 모르겠어. 아들이 처음 와서 이러는 거야. ‘엄마, 왜 이렇게 여기는 남자들만 많어?’
순재 : 이모의 실체를 잘 몰랐구나. (웃음)
이모 : 내가 일부러 ‘야 여기는~ 이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할 순 없잖냐, 내 입으로. 그건 또 예의가 아닌지도 모르고, 너네한테.
순재 : 맞어. 어차피 자연스럽게 만나다 보면... 그리고 첨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안 오려고 했을지도 몰라, 일하러. (웃음)
이모 : 자기도 자연스럽게 이제 보고 느끼고 받아들여야 되는 거지, 뭐. 그래서 이제 나는 그냥 ‘음... 글쎄?’ 그러고 걍 내버려 뒀어. (웃음) 지가 이제 일하다 보니까 아는 거지. 내 입으로는 얘기를 안 하고 자기가 느끼라고 걍 내버려 뒀어. 별 말은 않더라.


순재 : 마지막으로 게이 손님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한 마디 부탁드려요. 이모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편지처럼.
이모 : 각자 일 열심히 하고, 주어진 상황 모두 다르지만 그 안에서 항상 최고로 힘내서 살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자기 조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을 가졌으면 좋겠어. ‘나는 이러니까...’라기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응? 이반으로 살아가는 걸 비관하지 말고 온 힘을 다해서 자기 삶을 꾸려갔으면 해. 이반이라고 해서 괴롭고 우울해야 한다는 법은 없는 거잖아. 월 화 수 목 그렇게 열심히 살고 주말에 봅시다, 종로에서.
크리스 : 감사해요, 이모. 고맙습니다.
이모 : 큰 얘기를 못 갖고 와서 미안해.
순재 : 오늘 해 주신 얘기 다 크고 멋져요. 이모, 꼭 돌아오세요. 빨리 돌아오세요.
이모 : 그래, 만나서 반가웠어. 나를 기억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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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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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2016-09-23 오후 12:19

넘나 잘 읽었어요. 빨리 회복해서 종로에서 다시 뵐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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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경 2016-09-26 오후 15:53

다행이다
사고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실까봐 걱정이었는데
이모 늘 건강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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