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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新 가족의 탄생 #2> 무지갯빛 마음이 모여 사는 곳 – ‘무지개집’ 사람들 이야기
2016-07-18 오후 20: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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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7월 

[新 가족의 탄생 #2]

무지갯빛 마음이 모여 사는 곳 – ‘무지개집’ 사람들 이야기

 

 

 

‘피가 섞이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가족이 될 수 있어.’

2006년 5월 개봉한 영화 <가족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그로부터 10년 간,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가족구성에 대한 이야기는 2006년 가족구성권연구모임부터 2013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결혼식에 이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가구넷)의 출범, 그리고 최근 동성혼 불복 소송에 따른 심리까지 험난하지만 다부지게 계속돼 왔죠.

 

그럼에도 ‘종북게이’, ‘골수 페미니스트’ 등의 용어가 난무하며 혐오가 판치는 게 현실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요원하고, 성소수자를 포함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은 좌초됐으며, 한 지자체의 성평등기본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 조항은 삭제됐습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가시화를 통한 존재 드러내기와 당연한 권리 주장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에 친구사이에서는 성소수자 가족공동체를 위한 제도적, 사회적 변화요구에 앞장서는 가구넷과 함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성소수자 가족공동체 당사자 연재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두 번째로 만난 주인공은 얼마 전 오픈하우스를 개최한, 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집' 사람들입니다!



 

 

한때, 필자에게는 주위 사람들과 달라보이는 성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스러움이 꽤 오래 간 적이 있다. 그때 느낀 두려움 중 하나는 '평생 좋은 사람 못 만나서 혼자 외로이 늙다 죽으면 얼마나 쓸쓸할까'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이제, 벽장문을 열고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지금은 그 생각이 많이 연해졌다. 비단 현재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로를 위하고 걱정해주는 친구들이 있고, 성소수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당당히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인권 쟁취를 위해 목소리 높일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 그러한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함께 사는 꿈을 이루게 된 공동체가 있다. 다양한 젠더와 세대와 구성원이 만나 일상을 공유하게 된 지금,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또 하나의 커다란 가족의 탄생을 곁에서 응원하며 지켜봐온 사람들의 궁금증을 담아, 비온 뒤 갠 맑은 어느 날 '함께주택 2호- 무지개집(이하 '무지개집')' 조합 대표와 거주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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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집 전경 (무지개집 함께주택협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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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집의 시작은 2014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함께주택협동조합의 첫 번째 작품을 성미산마을에 만들면서 야호 조합대표의 고민은 깊어졌다. ‘집’이라는 기본공간에 대한 의미가 시시각각 변하고, 갈수록 주거불안이 심해지는 이 시대 이 땅에서 사람들이 집 때문에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현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시작했던 일이 처음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 후 2호, 3호 등을 마련하려 할 때, 무지개집 입주자 대표인 코러스보이와의 만남은 혼자만의 고민을 함께 만들 꿈으로 바꾸는 촉매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코러스보이의 ‘함께 사는 집’에 대한 갈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처음 시작은 2011년에 친구사이에서 했던 퀴어타운 프로젝트였어요. 공동체와 공간, 그리고 집과 같은 거주문제를 고민했는데, 기존에 소위 말하던 생산, 소비, 출산이나 양육 등 집의 기능 자체가 성소수자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예를 들어 집안 내 커밍아웃 후 가족들의 눈치를 봐가며 살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나, 30대 이후 일반 친구들과는 관계가 자연스레 멀어지며 성소수자 친구들과 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꿈꿀 수 있는 집이 필요하게 마련이에요. | 코러스보이

 

 

그래서 이러한 불안과 걱정들을 모여 살면서 해결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몇몇 그룹들과 함께 사는 집을 꿈꾸게 됐다는 그의 말에 의지가 느껴진다. 집을 돈이나 재산으로 본다기보다, 진정 원하는 욕구를 채워나가는 공간으로 봤기에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집을 짓는 거나 협동조합을 자체 운영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던 찰나, 운명적인 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제가 일하는 직장에 야호님이 방문했길래 바로 붙잡았죠. 이전에 주택조합 1호 건축을 위한 워크숍에 몇 번 갔었거든요. 그 해 11월쯤에 다시 만나서 처음으로 성소수자 친구들과 공동주거를 희망하는데 함께 해줄 수 있겠냐고 제안했어요. 그리고 사실 그 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집을 짓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조합은 돈이 좀 있을 줄 알았죠. [웃음] | 코러스보이

 

 

이 국가와 사회가 이루어주지 못하는 주거의 공공성을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과 여럿이서, 우리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함께주택협동조합도 만들었던 거구요. 넓게는 사회적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작했어요. 그걸 위해 공동으로 주택 자산을 소유해서 운영하는 건데, 그러려면 누군가 주체가 있어야 하는 거라 협동조합이라는 법인을 만들었죠. 건물을 신축 또는 리모델링해서 조합원들에게 거주할 수 있게 하는 건데, 최소 1구좌 5만원씩 출자를 하면 조합원이 되면서 입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요. 거기에 토지 매입과 공사를 위한 입주 출자금과 대출시 원금이랑 이자 상환을 위한 월 사용료가 붙어 전체 주거비용이 되는 거예요. | 야호

 

 

이처럼 집을 사는데 있어 대출이 아니면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 혼자 그 몫을 감당해내기란 만만치 않기에, 조합주택이 입주자들과 손을 맞잡고 부담을 장기간에 걸쳐 분담하는 구조가 됐다. 20~30년 가까이 함께 길을 걸어갈 꿈을 꾸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가. 끈끈한 신뢰 없이는 어렵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멀리 보고, 길게 보고, 다 같이 손잡고 가려하는 그 마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퍼진 것만 해도 반가운 일이다.

 

공동체의 욕구에 따라 거주 형태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함께주택 1호가 성산동 다세대주택을 리모델링해 불특정다수의 1인 가구 중심으로 출발했다면, 2호인 무지개집은 입주를 원하는 사람들이 먼저 제안을 해 주택조합과 입주자들 간의 첫 모임 이후 대상지를 찾고 부지 매입 및 건물 신축까지 함께 한 것이다. 물론 구상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았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리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바로 뜻을 같이 할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었다.

 

 

입주자 대표인 코러스보이님이 근무하시는 병원에 몇 번 다니면서 알고 지내다가, 먼저 같이 할 생각이 있냐고 제안해주셔서 엄청 반가웠어요. 근 18년 동안 9번이나 집을 옮긴 상태에서 경제적으로 꼭 필요한 부분이었고, 쉐어하우스라는 형태에도 끌렸거든요. 술자리에서 몇 번 얘기는 했었는데, 정식으로 제안 받았을 땐 마치 승은을 입은 것처럼 “제가 정말 같이 해도 돼요?”라고 반문했었죠. [웃음] | 오김현주

 

 

저도 입주자 중 한 명인 동하형네 예전 집에 놀러갔다가 소개 받아서 알게 됐어요. 도면까지 나왔다며 알려주시는데 너무 신기한 거예요. 마침 그때가 가족에게 커밍아웃한지 1년도 안 된데다가 집안에서 잘 받아들여주지 않은 상태라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독립하고 싶던 시기였거든요. 앞뒤도 생각 안하고 꼭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동하형에게 푸쉬를 많이 했죠. | 백퍀

 

 

‘혼자 살기 싫다’, ‘독립하고 싶다’, ‘돈이 부족하다’ 등 저마다의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지금까지 오게 됐지만, 그 뒤에는 사람들 개개인에게 입주를 제안하고 각자의 집에 대한 욕구들을 조율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처음 워크샵을 하고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같이 살고 싶다’, ‘부럽다’는 주변 분위기와는 달리, 중간에 개인 사정으로 함께 하려고 했던 분들이 같이 못살게 된 후 결원을 채우기가 생각보다 버거웠던 것이다.

 

 

사실 처음에 그 분들을 염두에 두고 집을 설계했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사람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비용 메꾸는 것도 만만치 않았기에 입주자들이 조금씩 출자를 하고 모자란 건 조합에서 사회투자기금을 통해 융자를 받기는 했는데, 그런 부분들을 함께할 적당한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봐야죠. 공동주거공간을 쓰는 것도 염두에 둬야 했기 때문에, 1인가구 하나가 비었을 때 되게 여러 명이 보고 갔는데도 쉽게 채워지지 않았어요. 결국 마지막 사람이 들어와 10가구가 다 채워진 것도 몇 주 전이에요. | 코러스보이

 

 

그렇게 해서 가까스로 10가구가 완성되었다. 그 면면을 살펴보자면, 먼저 입주자 구성은 커플(5커플), 싱글(5명), 반려동물 3마리가 살고 있고, 생물학적 비율로는 남자 10명, 여자 5명이다. 젠더 구성은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이 골고루 섞여 있으며, 직업으로 봤을 땐 전문직, 회사원, 인권단체활동가, 취업준비생, 비정규직 청년 등이 두루 살고 있다. 집 형태는 1층은 공동공간과 근린생활시설 (도시락집 '남자가 한밥'), 2층 쉐어하우스, 3층 쉐어하우스+쉼터, 4층과 5층은 단독 3가구로 되어 있다.

 

결국 ‘누구와’ 만들어가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만들어가는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러기에 주택조합과 입주자들은 끊임없이 만나고 소통하며 바라는 점들을 맞춰나갔다. 주택조합에서는 높은 수준의 기술이나 전문성보다는 바람과 이상을 가지고 조합원들과 함께 자생적으로 운영해나갈 수 있는 내적 힘을 만들어가길 원했기에,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주요 목적이었다. 반면 입주자들은 조합에서 알아서 해줄 거라는 기대가 어느 정도 있었기에 조합 자체를 알아가는 과정과, 개인이 아닌 집단 주거형태로서의 집에 대한 욕구를 재조정하는 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한 욕망과 기대를 퍼즐처럼 맞춰나가는 과정이 결코 쉽진 않았지만, 해답을 스스로 찾아보고 만장일치로 결정하려 노력하면서 느슨했던 관계도 더 끈끈해졌고 열정과 의지도 더 탄탄해지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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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한 야호, 복주&코러스보이&, 백퍀&오김현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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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17개월 간의 긴 여정을 거쳐 드디어 오픈하우스 행사가 열렸다.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자기 집에 집들이 초대하듯 편안했던 분위기 뒤에는 소박하고 알찬 시간을 위해 땀흘린 이들이 있었다. 부랴부랴 청소하고 음식 만들고 손님 맞을 준비하랴 바빴을 광경들이 눈에 선했지만, 역사적인 날인만큼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는 주인공들을 보듬어 안아주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그날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바로 조합대표인 야호의 눈물이었다. 다시 없을 기쁜날, 그는 왜 울었을까?

 

 

이유는 딱 집어서 말하기가 사실 힘들어요. 그냥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고, 뭔가 해냈다는 느낌? 나 혼자서 해냈다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풀어냈던 에너지가, 한편으로는 힘들었지만 또 한편으론 그게 힘이었던 거죠. 양가감정이었다고 할까요? | 야호

 

 

이미 공개적으로 발표한 오픈하우스가 목전인데, 계획했던 공사 완료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막판에 받은 스트레스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구청으로부터 준공 허가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 무지개집 사람들의 타들어가던 마음은 겪어보지 않으면 아마 모르지 않을까. 특히나 중간에서 입장이 난처하게 된 조합대표 야호의 속앓이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거고, 그러기에 그러한 복잡한 심정이 그날의 눈물로써 승화된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럼에도 혼자가 아닌, 같이 그 짐을 덜려고 한 이들이 있었기에 오픈하우스는 더 빛났다. 다들 제 일처럼 거들고 제 집처럼 손길이 간 새 집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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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하우스 현장에서 마주한 광경들: 기부자의 벽, 남자가 한밥, 성중립 화장실, 옥상 텃밭(왼쪽부터 반시계 방향)

 

 

 

어디 그 뿐이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마다 모여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더 나은 집을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댄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까지 온 게 자명하다. 워크샵 뒤풀이에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우리가 왜 지금 이 순간 무지개집을 지으려고 하는지 다시 한 번 함께 공감한 순간들이 참 소중했다고 야호 조합대표는 털어놓는다.

 

 

사실 (무지개집 입주자들한테) 의지하고 있는 게 맞는 거거든요. 같이 해서 만들어간다는, 믿을 구석이 있다는 마음이 저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살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함께 고민하며 살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죠. 마치 부모가 자식 출가해서 잘 사는 거 보면 흡족한 마음처럼 입주자들이 잘 살고 있는 모습 자체에 만족해서 그런 걸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만큼 제가 성숙하진 않은데. [웃음] | 야호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만큼 애정이 있어서 울 수 있는 거잖아요. 그 감정이 전달돼서 그랬는지 입주자들 중 몇몇도 흐느꼈어요. | 코러스보이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이성애자 친구가 생겼다는 게 정말 기뻤고, 그러한 감흥이 저에겐 좀 더 느껴졌던 것 같아요. 마치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님처럼 우릴 도와주고 보듬어주는 그런 친구가 됐다는 게 더 즐겁고. 지나가고 나니까 더 아름다운 건가요? [웃음] | 복주

 

 

모두가 흘린 땀과 눈물들은 오프하우스 때 배포한 자료집에 세세히 박혀있다. 무지개집의 시작에서부터 입주까지, 전 과정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비슷한 공간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시행착오를 그래도 좀 덜 겪게 하고픈 생각에서 있는 그대로를 남기려 한 조합대표와 입주자들의 마음이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들인 세월을 기록한 다큐영상인 <무지개 동거동락>(영문: Rainbow House)도 도전과 경험이 그대로 묻어난 작품이다. 공식 상영회 때의 반응은 어땠을까.

 

 

성소수자 분들에게는 되게 중요한 일인 거잖아요. 이 시도 자체가 의미있는 거 같구요. 공동주택에 사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 스스로 의미부여를 하는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야호

 

 

근데 우선은 집 짓고 난 후 이 집을 어떻게 간수하느냐가 너무 큰 일이어서 그 정도까지는 아직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싶고, 살다보면 자연스레 사람들한테 의미가 다가오겠죠. 오히려 끝나고 나서 무지개집 공사를 지켜보던 지역 사람들이 집 짓고 싶은 마음으로 개별적인 모임을 시작한 경우가 많아요. 반면에 성소수자 그룹에서는 이게 되게 독특하면서 어려운 일이고, 입주자 대표님 같은 리더가 없으면 이뤄내기 힘든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은 좀 조심스러운 느낌이에요. | 오김현주

 

 

관객들이 많이 오지는 않았는데, 오신 분들은 다 좋다고 하셨어요. 어찌 보면 집을 지은 게 끝이 아닌 시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에요. 이미 커뮤니티 중 한 그룹이 비슷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려 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드러난 지금의 모습을 언어화시킨다거나 의미화시키는 과정들을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코러스보이

 

 

이쯤에서 무지개집의 의미를 좀 더 살펴본다면, 무엇보다 사회적 의미에서 '함께주택 2호- 무지개집'은 거주자들이 소유권을 조합으로 이동시켰다는 점이 굉장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집을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사고파는 돈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무지개집 사람들은 안정적인 주거권을 얻는 대신 국내 최초로 거주출자금을 조합에 내면서 재산권을 양도하는 획기적인 구상을 한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의미를 좀 더 살리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공간이 바로 ‘흥다방’과 ‘홍인재’다. 흥다방은 무지개집의 공동공간으로, 각종 세미나, 회의, 파티, 소규모 전시회, 바자회 등으로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같이 사는 사람들 외에 다른 손님들을 수시로 맞이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이렇게 오픈된 성소수자 공간도 안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의미도 있다는 게 입주자들의 설명이다. 홍인재 또한 또 하나의 마음을 잇는 공간이다.

 

 

홍인재 공간을 만든 건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제가 겪었던 상황과 비슷할 수도 있는데, 가족 내 갈등이나 다른 일로 인해 위기상황에 처해있는 성소수자가 일시적으로 안전하게 묵을 수 있게 조성한 곳이에요. 그래서 현재는 띵동(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친구사이, 행성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그리고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와 협약을 맺어 받는 걸로 얘기가 됐구요. 또 한 가지는 지방에서 올라온 성소수자가 지낼 곳이 없을 때 자기 정체성도 편하게 드러낼 수 있고 맘 편히 묵을 수 있는 곳이죠. 가격도 메리트가 있어요. [웃음] 1박에 15,000원이고, 잠깐 쉼터로 이용하시는 건 10,000원이에요. | 백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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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집 1층 흥다방에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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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같은 집에서 함께 살게 된 인연들이 얼마나 소중할까. 서로 다른 15인의 입주자들이 그렇게 지금, 일상을 나누고 있다. 그런데 잠깐, 과연 그들은 처음에 기대했던 바를 어느 정도 만족했을지 궁금해졌다.

 

 

저는 처음에 사실 독립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어요. 돈도 없고, 심리적으로 부모님과 집에서의 독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커밍아웃을 했으니 엄청나게 힘들었던 거죠. 내 멘탈이 뿌리째 흔들리는 기분으로 몇 개월을 살다가 무지개집 얘기를 듣고는 ‘내가 이거 아니면 못 나오겠다’는 다짐이 생긴 거예요. 만약에 돈을 번다고 해도 그 당시에는 부모님과 관계가 단절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결론적으로는 지금 아빠와의 관계도 지키고 내 삶도 지키고 있다고 봐요. 여러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경제적인 부분도 많이 절감하게 되니 믿을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구요. 또 출자를 통해 운영하는 부분들이 얽히고설켜 있으면서 어려움들을 나누는 것만 해도 진짜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백퍀

 

 

거의 2년마다 이사 다니는 게 징글징글하기도 했고, 혼자 살다 외로워하며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도 좀 있었죠. 18년 동안 혼자 혹은 누구랑 살면서 ‘아, 나는 혼자 살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렇다고 결혼할 것도 아니고,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어요. 사실 서른살까지는 돈을 모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집세가 내가 돈을 모으는 것보다도 너무 빠르게 오르기 시작하면서 미래를 꿈꾸기 힘든 거예요. 그래서 막 쓰면서 살았는데, 집이 생기면서는 다시 저축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리고 잘 모르는 사람들하고 사는 것도 재밌고요. 너무 잘 아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부대끼며 사는 게 오히려 힘들 수도 있잖아요. 뭔가 가족은 아닌데 가족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관계가 돼서 참 좋아요. | 오김현주

 

 

그와 더불어 생소하고 복잡했지만 꼭 필요했던 워크샵과 모임의 과정들이 있었기에 집에 대한 애착도 생기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발전했다는 백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보통 일반 부부들은 결혼했다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보호를 받게 마련인데,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끼리 같이 산다고 해서 얼마나 가족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지개집 사람들은 법의 보호나 혜택에 대한 부재를 집 자체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대신해 준다고 느낀다.

 

결국엔 모두가 다 서로 친할 순 없어도, 각각의 친밀 관계 속에서 어려운 일은 다 같이 해결하려 하는 믿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동주택에 입주하겠다고 결심한 그 자체로 통하는 게 생기고, 결코 가볍지 않은 그 결심을 위해 그동안 각자가 걸어온 삶을 서로 확인하는 순간 발견하게 되는 결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다양한 성 정체성/성적 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것 또한 색다른 경험일 것이다.

 

 

예전엔 활동가 외에는 게이들이랑 친한 적이 없었어요. 사실 여기 와서는 좀 편견을 많이 깼어요. 저는 진짜 게이들이 집에서 엄청 깔끔하고 미적 감각이 충만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닌 거야. 백퍀이 의자 사온 거 보고 굉장히 흉물스럽다고 느끼기도 했죠. [웃음] | 오김현주

 

 

제가 어디서 싸게 사온 의자가 있는데, 그걸 보고 흉물스럽다고 한 거예요. 그땐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웃음] 암튼 못도 박아주고 블라인드도 쳐 주고. 더 좋은 것 같아요. 게이로서 레즈비언이나 바이섹슈얼과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건 처음인 듯해요. 뭔가 역할분담 같은 밸런스가 맞는 느낌? | 백퍀

 

 

한편 15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게 낯선 누군가에겐 의문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그대로 존중하고 이해하기 힘든 각박함이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마음은 여지없이 말과 행동 곳곳에 드러나고, 그게 곧 불편함과 어색함이 되어 상대방의 기분까지 헤아리기 힘들게 된 것 또한 입주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인 것일까.

 

 

그동안 민원을 잘 경험 못하다가 여기 이사 와서 정말 많은 민원을 받았거든요. 처음엔 공사를 너무 오래해서 시끄럽다느니, 밤에 불이 너무 밝다느니, 심지어 집들이를 왜 자주 하며 길고양이한테 왜 밥을 주느냐느니 등등 별별 얘길 다 들었어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도 많은데 그런 얘기들을 접하면서 주민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까가 숙제인 것 같아요. 오늘도 ‘화재시 재난대피 훈련’ 때문에 소방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계속 꼬치꼬치 묻는 거예요. 조합원들이라고 얘기하니까 무슨 단체나 조직이냐고 물어보기도 했구요.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까 그렇다고는 하지만, 좀 불편한 게 있죠. | 코러스보이

 

 

무슨 종교단체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웃음] 심지어는 우리를 복지관이나 재활쉼터에 다니는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봤어요. 반면에 중고등학생들은 이 집 예쁘다고 하는데 주변에 얼마나 예쁜 집이 없으면 그럴까라는 생각도 하죠.
얼마 전엔 무슨 일이 있었냐면, 화장실 가려고 문을 두드렸는데 안에서 똑똑똑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니 무지개집 사람들은 다 밖에 있는 거죠. 그럼 화장실엔 누가 있을까 하면서 혹여 귀신은 아닐는지, 같은 층 사람들 5명이랑 손잡고 큰소리로 기도했어요. [웃음]
근데 밖에서 고함소리, 누굴 애타게 찾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가봤더니, 앞집 사람이 자기 누나랑 같이 술 먹고 많이 취해가지고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길바닥에 피를 흘리며 누워있더라구요. 이걸 어쩌나 하다가 다행히도 무지개집 사람들이 총출동해 내려가서 보살펴주고 119 부르면서 걱정하고 그랬어요. 그 누나분이 너무 고맙다고 했죠. | 오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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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집에 살고 있는 반려동물들 - ‘어진이’, ‘하영이’, 그리고 ‘첫눈이’ (출처: 텀블벅)

 

 

 

언제나 반가운 존재들도 있다. 바로 무지개집에 살고 있는 반려동물과 주변의 고양이들이다. ‘첫눈이’와 ‘어진이’, 그리고 ‘하영이’는 3~4층에 머물며 공간을 향유하고 있고, 길고양이 4마리는 무지개집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아 밥을 먹고 있다. 그 중 1마리인 ‘턱시도’는 얼마 전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도움을 얻어 중성화 수술도 받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이웃인 동물들과 어우러져 사는 모습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느끼게 된다. 

 

반면에 천생연분이 아닌 이상, 아니 천생연분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는 부부도 다투는 마당에 서로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한 곳에 살면서 늘 좋은 모습만 보기는 힘들 게다. 서운한 것도 있을 수 있고 불편한 점도 분명 없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살짝 속마음 토크를 펼쳐보기로 했다.

 

 

애인이랑 같이 둘만의 공간에서 생활하다가 공동거주하게 되니까 처음엔 참 불편했거든요. 원래 서로 친하기는 한데 같이 살 때와 밖에서 만날 때 느낌이 너무 다르다 보니까 서로 눈치 보게 되고, 세대 간에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그러다가 ‘앗, 이게 가족이다’라고 느낀 게 언제였냐면, 양보 차원에서 배려하면서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면서도 손해 본다는 생각 없이 남들에게 안 미루고 먼저 하려고 하는 게 보였을 때였어요. 특히 비 왔을 때 등 재난 위기에 처했을 때 엄청난 결속력이 생기더라구요. 살아남야야 하니까. [웃음] | 복주

 

 

서운했다기 보다는 음... 처음 입주자 멤버들은 친구사이 사람들이 중심이고, 워낙 탄탄한 관계라고 보이니까 가끔은 내가 껴도 될까 하는 경계를 혼자 느끼곤 했어요. 뭔가 어려웠다고 해야겠죠. 그리고 약간 살면서 새로 알아가는 것도 있어요. 제 삶의 습관이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힘든 것일 수도 있겠다는 거. [웃음] 그래서 그런 걸 조금씩 고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웬만하면 잘 안 고치는 입장인데, 같이 살려면 그래도 좀 조정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또 공과금부터 해서 하나하나 원칙 등을 세세하게 정하는 게 어려워요. 최근에 같이 쓰는 정수기 하나 고르는 것도 되게 오래 걸렸거든요. | 오김현주

 

 

공간마다의 규칙을 위해 층 사람들끼 또 회의를 하는데, 제가 사는 2층에서 오김 누나랑 다른 가구랑 정수기 때문에 회의를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 맨날 3층에 약수터 갔다 온다고 얘기하고 다녔죠. [웃음] 그냥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적응하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게 생각보다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구요. 나는 쉬고 싶은데 눈치 보여서 맘대로 쉬지 못하기도 했죠. 형들 대하는 것도 조금 어려웠지만, 지금은 ‘어차피 계속 볼 사람인데 이러다가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해요.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약간 이해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거웠던 마음을 많이 내려놓은 것 같아요. | 백퍀

 

 

2인 가구 같은 경우에는 출자금을 1인 가구보다 좀 더 많이 내면서도 보통 2인 전셋집보다 적은 규모의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구조인데,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좀 별로라고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달리 생각해서 좀 넓게 보면 공동공간은 다 본인의 거실이요 주방이요 화장실이요 텃밭일 수 있거든요. 또 애인 또는 입주자 간에 사이가 좀 안 좋아지면 다른 사람들이 바로 눈치 챈 후 곁에서 함께 해요. 즉 인간관계의 공허하거나 빈자리를 계속 끊임없이 채워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거죠. 다양한 세대 간에도 정보 공유나 상호 교류 등이 활발하니 좋아요. | 코러스보이

 

 

어쩌면 뻔한 얘기지만 행복은 선착순이 아니고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지도 않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다른 모습조차 서로 안고 갈 수 있는 유대감과 연대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베여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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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퍀이 쓴 “무지개집을 향한 연애편지” (출처: 무지개집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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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서로 허물없이 지내다보니 의도치 않게 남의 속옷(?)도 보게 되고 웬만한 습관도 눈감아주게 된 무지개집 사람들. 그만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자연스레 편해지고 사랑스러워 보이게 된 방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각자가 그리는 무지개집은 어떤 모습일까. 모두가 무지개집의 주인이지만 서로가 꿈꾸는 게 같을 수도, 또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대와 소망들이 맞닿아 더 큰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조합대표와 입주자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별로 크게 바라는 점이 있지는 않아요. 워낙에 훌륭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웃음] 어쩔 때는 제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먼저 제안해주시기도 하거든요. 언젠간 걱정이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하겠죠. 늘 이 사람들이 그대로 있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근데 또 그게 한순간에 딱 터지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있을 거고,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또 풀어나가는 과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련과 고난이 닥칠지라도 항상 옆에 있을 거예요. | 야호

 

 

저는 그냥 계속 이렇게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즘에 처음으로 살면서 미래에 올 어떤 순간을 기다리지 않고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고, 사실 걱정되는 건 어떤 커플이 싸워서 헤어질 수도 있고 멤버도 바뀌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런 일이 안 생기면 참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얼마 전 애인인 킴이랑 얘기하면서 “우리 여기 뼈를 묻자”고 했거든요. 나중에 1인가구 사람들 나가고 너무 어린 애들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걱정하지 마. 저기 옆방에 오김 할머니가 살고 있을 거야.”라고 하더라구요. [웃음] | 백퍀

 

 

사실 지금 사는 사람들이랑 같이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저는 너무 잘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것보다는 ‘내가 죽을 때도 여기 있을까? 나이가 들어도 여기서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좀 있죠. 입주할 다른 사람들은 젊어질 텐데, 그 부분이 나랑 맞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도 들고요. 오히려 실버타운이 된다면 다른 측면에서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 고민인 건 1인가구에선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생애주기에 따라 욕구하는 게 다를 텐데, 나이 들면 누군가랑 어울리고 싶으면서도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더 많지 않을까 싶어서요. | 오김현주

 

 

특별히 바라는 건 없는데, 우리 가까운 곳에 이런 비슷한 성소수자 공동주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더 이상 민원이 들어와도 우리가 다 막을 수 있겠죠? [웃음] 지금도 이 주변이 보통 기운이 아니에요. 근처에 무지개노래방이 있고, 맞은편에 동성카센타가 있어요. 조금 더 가면 무지개빌라랑 TG미용실도 있죠. | 코러스보이

 

 

 

 

무지개집

▲무지개집 주요 공간들 (무지개집 함께주택협동조합 제공)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으니 앞으로도 서로 으쌰으쌰하고 머리를 맞대서 어떻게든 부딪혀보는 순간들 하나하나가 반짝반짝 빛나지 않을는지. 다양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고,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나 또 다른 형태의 성소수자 가족공동체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지금의 무지개집은 처음에 얘기했던 ‘공동체’와 ‘공간’의 조화를 동시에 재현하고 있는 모양새라 더욱 고마운 일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주거공동체를 꿈꾸고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한 마디씩을 부탁했다.

 

 

어렵지 않아요. 쉬워요. 충분히 할만 하고요. 특히 함께주택협동조합과 함께라면 더 좋을 거예요. [웃음]  | 코러스보이

 

 

여기 살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왜 같이 사냐”는 것이었어요. 괜히 불편하고 불안할 거라 지레짐작한 거죠. 같이 사는 게 이렇게 행복한 줄도 모르고. 또 커뮤니티에서는 게이는 게이들이랑 살고, 레즈비언은 레즈비언들이랑 사는 게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하나 봐요. 가장 먼저 우선시되는 게 주위의 시선들, 그리고 두 번째가 같은 성향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끼리 살면서 어떤 불상사가 생길까봐 걱정하는 것 같아요. 근데 여긴 찜질방이 아니거든요. 우린 살기 위해 들어온 거고 생각을 서로 공유하기 위해 함께 있는 건데, 일부 숨어있던 친구들은 같이 사는 거 자체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같이 살다보면 또 다른 답안이 나오니까 먼저 실행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 복주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 집 짓는 걸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한번 할 때 거기에 모든 걸 다 쏟아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고, 자신이 이 집에서 평생 살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또 여기서 살다가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집을 지을 수도 있구요. 그렇기 때문에 결정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게 끝이 아니니까 너무 망설이지 말았으면 해요. | 야호

 

 

어릴 때 꿈이 미국에서 사는 거였거든요. 개방적인 곳에서 살고 싶어서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워킹홀리데이도 가려고 했죠. 무지개집 들어오면서 워킹홀리데이 가겠다는 생각은 접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엔 공동체를 꿈꾸지 않았나 싶어요. 어찌 보면 저는 가족도 꾸리고 애기도 입양해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 꿈을 이룬 것 같거든요. 또 다른 헝태의 가족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한편으론 내가 외국 가서 살아도 지금처럼 평안하게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결국에는 어디에 살든 친밀감이 중요한 거죠. 아직 제도적으로 보호를 받을 순 없어도 그걸 우리가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게 나중에 또 많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봐요. | 백퍀

 

 

저 같은 경우는 “게이들 중심이라서 이런 집을 만들 수 있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돈이 있다는 거죠. 그건 현실적인 것 같아요. 사실 레즈비언들은 같이 살아도 빈곤한 삶을 사는 모습도 많이 봤거든요. 나이가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궤도에 올라있는 사람들 위주라서 가능했던 것도 같고요. 이후에 예를 들면 비정규직으로 살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이런 프로젝트를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많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꼭 집 문제뿐만 아니라 1차 병원인 의료협동조합 같이 안정감이 들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안전장치들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 오김현주

 

 

 

_기록다큐 '무지개 동거동락' 사진.jpg

다큐영상인 <무지개 동거동락> 상영회 후 사진 (출처: 터울)

 

 

 

결국엔 신뢰가 쌓여야 예측 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고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월세’가 아닌 ‘월 사용료’라는 용어를 쓰는 것도 누군가는 더 좋은 공간을 꿈꾸며, 지금의 무지개집에 살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대가를 지불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한다는 입주자들의 무지갯빛 마음이 더욱 고와 보였다.

 

지금, 우여곡절 끝에 막을 올린 무지개집의 티격태격 알콩달콩한 행보에 사랑의 기운이 가득하길 바라며, 조만간 또 다른 성소수자 공동체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新 가족의 탄생> 연재 순서

#01 사랑에 차별이 있나요 – 레즈비언 부부 '낮잠과 유다' 이야기

 

 

 

사진  / 낙타(친구사이 상근자, 가구넷)

글,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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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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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빈카 2016-07-18 오후 22:31

'평생 좋은 사람 못 만나서 혼자 외로이 늙다 죽으면 얼마나 쓸쓸할까'
도입부부터 마지막 마무리까지... 정말 동감되지 않는 내용이 없었던 ㅠㅠ
제가 평소에 입버릇처럼 모쿠 형에게 털어놓던 고민이었는데... 이번 글 읽으면서 많이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무지개하우스 화이팅! 저도 졸업하고 직업을 갖게되면 꼭 입주에 도전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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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2016-07-18 오후 23:57

지방에 사는 취준게이에게는 너무 영화같은 이야기이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충만한 공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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