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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 인생의 퀴어영화 #13 - <후회하지 않아>
2016-07-18 오후 20: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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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7월 

[내 인생의 퀴어영화 #13] 

: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결코 <후회하지 않아>

 

 

 

* 수만 개의 삶과 사랑, 아픔과 감동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매력에 빠져,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즐겨봅니다.

특히 영화에서 그려지는 주인공들의 삶이

내 삶과 연결되어 있을 때 그 느낌은 배가 되죠.

소식지팀에서 독자 여러분께 손을 내밀어봅니다.

영화로 만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떤 이야기든 소중하게 담아 함께 풀어내보려고 하거든요.
독자 여러분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영화가 되어 지금, 펼쳐집니다.
(기고글 보내실 곳: 7942newslet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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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민 씨”

 

내 인생의 퀴어 영화라니. 지난날 많은 영화를 보며 공감과 위안을 얻었지만, 내 ‘인생’과 ‘영화’에 대해 단편적으로 털어놓을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어떤 영화적 체험도 그 첫 경험의 강렬함엔 비할 바 없을 터. 18살 때 영화 <후회하지 않아>(감독 이송희일, 2006)를 설렘 반 죄책감 반으로 독서실에 숨어서 본 기억이 스친다. 곧 어른이 되는 나는, 미디어를 통해 마주하던 삶이 나의 그것과 유리되어 있음을 차츰 깨닫고 있었다. 그럴듯한 이성애자의 로맨스도,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도, 슬프게도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단정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인정해야만 했다. 처음 퀴어영화를 볼 때 내 알 수 없는 죄책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나 같은 동성애자의 삶을 마주하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회상한다. ‘내 미래는 이럴 거야’라고 내 삶을 가늠해 볼 기회였을 테니까.

 

 

희망을 품고 서울로 상경한 고아 ‘수민’은 재벌 2세 ‘재민’을 만난다. 둘은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사회적인 신분 차이는 둘의 관계를 가로막는다. 수민은 호스트바에서 몸을 팔고, 재민은 그에게 빠져 그를 갈구한다.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두 사람은 잠시의 행복을 맛보지만 결국 재민은 결국 집안의 반대에 무릎 꿇고 사랑을 외면한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배신하는 흔한 로맨스 영화.

 

 

 

“내가 무식해서 그래? 나 공부 열심히 할게

내가 가난해서 그래? 열심히 일할게

우리 사인 뭐야? 우리 사이는 뭐예요?”

 

마침 첫 동성애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나는, 영화를 보고 한동안 약간의 우울증을 경험해야 했다. 상대는 군 입대를 앞둔 대학생이었고, 나는 보잘것없는 고등학생이었다. 삶에 서툴던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그것뿐이었으니까. 물론 잘 될리가 없었지만. 그때 이뤄질 수 없던 그 감정처럼 내게 <후회하지 않아>는 성장통의 기억으로 남았다. 한편으론 '나와 같은’ 동성애자의 삶을 보는 것 자체가 주는 울림이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뻔한 로맨스에 ‘감정이입’이라는 것을 처음 할 수 있었던 것. 그 후로도 영화가 내 삶과 맞닿아있다고 느낄 때 나는 종종 깊은 위로를 느꼈다. 독립영화라는 매체에도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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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물건이 권총이었으면 좋겠어. 내 안에서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게”

 

물론 그때의 나는 <후회하지 않아>에 드러난 계급 문제를 이해하지 못 했다. 어린 나는 그들의 선택을 납득할 수 없었고 굳이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영화가 절정에 다다를수록 이야기는 말 그대로 ‘산으로’ 가고, 내러티브에 균열이 생길 때 온전한 드라마를 기대했던 내겐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 <후회하지 않아>는 멜로의 화법과 계급의 복화술을 구사한 영화로 읽힌다. 동성애 그 자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내재된 가능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제목의 당돌함이 온전히 느껴진다. 수민과 재민의 사랑은 이상적인 로맨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피 흘리는 비극 속에서 어느새 다시 꿈틀거리는 주인공의 선연한 욕망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나는 묘한 카타르시스, 혹은 희망을 느꼈다. 나는 인간의 군상들이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을 인정한 뒤, 어렸을 때의 우울함을 조금이나마 떨쳐 낼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의 삶은 조금 더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괜히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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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결코 <후회하지 않아>

 

영화를 통해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의 나, 어른이 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었을까. 기대했던 미래가 얼마만큼 현실이 되었을까. 대단한 꿈을 이뤘을까. 밥 먹듯이 땡땡이를 치다가 재수를 한 것. 대학교에 간 것. 제대를 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애를 하는 것. 그리고 불완전하지만 위태롭게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비로소 독립된 내가 된 것.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독립영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영화와 함께 성장하고 있단 걸 느끼게 된 후로, 영화적인 활동들을 이어온 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영화의 힘을 느끼지 못했다면 지금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처음 퀴어영화를 본 10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독립을 하고 영화와 인생을 고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조금 다행인 것은, 내가 지난날 영화 속 세계들로 더 넓은 우주를 채우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로맨스도, 영화도, 인생도 ‘후회하지 않는 마음’은 중요하다.

 

 

#. 영화 속 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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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작은 옥탑방에 산다”

 

이 장면을 100번 정도 돌려봤다. 배우 김동욱의 그 미묘한 표정과 떨림.

서툴게 사랑 고백을 하던 이 한 마디가 첫사랑 중이던 나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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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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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2016-07-18 오후 23:38

캬.. 멋져 규환형 ><
이번 주말에 영화 다시 보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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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환 2016-08-17 오후 12:28

중기 쨔응 ♥ 또 보고 어땠는지 말해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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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쿠샤 2016-07-19 오후 14:37

독립영화 키드 규환, 그 감성 잃지 않길~
그나저나 저 장면, 99번 본 내가 양보한다.
너 해라,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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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환 2016-08-17 오후 12:27

99번 아쉽! 형에게 김남길을 양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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