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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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남자의 사생활 #7 – 나는 지금 여기 살고 있습니다
규환(소식지팀)
나는 서울의 부도심 영등포 변두리에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다. 우리 동네는 가끔 나에게 내 생각의 지도를 펼치게 한다. 예전엔 넓어 보이기만 했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이젠 한 뼘처럼 보이고 또래 친구들과 숨바꼭질 하던 담벼락은 내 허리춤에 그치는 건 확인하는 순간, 내 생각의 지도는 이미 어느새 이 동네를 넘어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리가 커버린 탓일까? 나는 무럭무럭 자라 한때는 전부라고 생각했던 우리 동네를 넘어 전 지구적으로 상상력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내 사회적 상상력은 지구적일지라도 여전히 난 동네를 한 바퀴 돌 듯 지역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직 난 지금 여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마레연>
1990년대 후반 시민운동가들 사이에 회자됐던 구호가 있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대표적으로 이 구호와 맥락을 같이 했던 국내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둘러싼 안팎의 움직임을 예로 들 수 있다. 강정마을은 국내평화운동, 국제연대의 상징이 되었다. 작년에도, 올해해도 강정마을의 활동가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분주하다. 그러는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최근 서울 마포구청이 끝내 성소수자 인권 현수막 게재를 불허하면서 성소수자 혐오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달 18일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와 친구사이 및 지역단체, 인권단체 회원들은 마포구청에 현수막 게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지며 적극적인 권리행사에 가담하고 있다. 하지만 마포구청은 현수막 문구를 ‘덜 직설적이거나 혐오스럽지 않은 문구’로 수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현수막의 문구에 대해 ‘성정체성의 혼돈’을 초래할 수 있으며, '청소년들이 인터넷 검색 등으로 직, 간접적인 왜곡된 유해성 내용들을 접할 수 있다' 는 등의 허무맹랑한 이유로“현수막 게시에 대한 심의위원회 결정을 번복할 수 없으므로 현수막을 걸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할 뿐이었다.
국내 특정 지자체에서 노골적인 혐오를 이유로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한 경우는 비교적 드물었다. 이렇게 가시화된 혐오를 확인하게 된 것은 성소수자들이 현수막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라는 표어에서 느껴지듯, 우리의 존재를 지역을 기반으로 적극적 알리고 활동하게 된 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간 국내 성소수자 운동은 외향적으로 진일보하는 듯 보였다. 서울에선 인권친화적인 시장이 선출되었고, 일부 교육청마다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보호의 내용이 담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힘겹게 싸워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안팎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부 장관 등의 LGBT 인권지지 연설이 쏟아졌다. 또한 지난 달 프랑스 하원이 ‘동성결혼 및 동성 커플의 입양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반면 같은 지구 안의 우리나라에서는 고작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는 표현이 혐오스럽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이렇게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내 존재의 이유를 부정할 때 우리는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더 지역적으로 직접행동에 나서야 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의 동네에 무지개가 뜰 때까지
<ⓒGoogle>
“왜 옆 동네는 되는데 우리 동네는 안 되는 거지?” 혹은 “왜 저 나라는 되는데 우리나라는 안 되는 거지?”라는 말은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문장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운동의 외연화’도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더 많은 연대와 안팎의 관심을 이끌어 지자체를 압박해야 할 것이다. ‘외부세력’이든 ‘내부세력’이든 지구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지난 달 친구사이의 정기모임 때는 참석한 회원들이 다 같이 박홍섭 마포구청장 앞으로 항의 엽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작은 연대의 손길이 모여 언젠가 우리가 살고 있는 모두의 동네에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가 뜨는 그 날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