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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 가족모임 - 내가 묻지 못한 물음들
2013-05-13 오전 09:33:54
1902 6
기간 5월 

 

여섯번째 가족모임 - 내가 묻지 못한 물음들

 

 

 

 

 

친구사이 사정전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벌써 여섯 번째 모임을 하게 된 가족모임의 주인공들입니다. 커밍아웃한 자녀 혹은 형제, 자매를 둔 우리의 가족들이죠. 가족분들이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섰습니다. 마련된 자리에 앉아 이번 모임을 준비한 회원들의 간단한 인사와 설명을 들었어요. 그리고서 곧 임보라 목사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요. 모두 차분하게 집중하기 시작했고, 강연이 끝난 후에,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꺼내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지난 나의 커밍아웃 경험을 떠올립니다.

 

 

 

 

몇 년 전,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엄마는, 얼굴이 점점 빨갛게 되더니, 주먹을 쥐고 자신의 가슴을 치기 시작합니다. 엄마의 눈에 비친 나는 여태까지 알던 아들이 아니라, 생전 처음 만나는 낯선 존재가 되고 맙니다. 엄마가 나를 밀어낸 것도 아닌데, 눈앞의 엄마가 뒤로 확.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저만치 멀어지는 것 같은 이상한 경험을 합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큰 충격으로 와 닿더라고요. 그런데 만약 (부모인) 내가 인정해주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인정을 하겠는가. 그런 부분이 앞서서, 어찌 되었든 이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만루 아버지

 

'제가, 게이 엄마가 된 지 두 달 밖에 안됐거든요. 그동안 아들을 제대로 이해를 못 했다는 게, 흔들리고 눈물이 나고 그러는 거예요.'

- 만루 어머니

 

'어느 날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너무나 충격적이었어요. 주님께서는 내게 필요한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이렇게.. 당황스럽고 그래서 계속 눈물이 줄줄 나고..'

- 킴 어머니

 

 

커밍아웃 이후, 달라진 엄마와 나는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야 했습니다. 몹시 힘이 들었어요. 그렇게 묘한 긴장과 불편함은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내 몸을 통해 나온 아이가 저렇게 되었을까 하는 죄책감에도 시달렸구요.'

- 만루 어머니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희석되기는 해요. 서로 익숙해지는 것이죠. 하지만 이제 좀 안정적인가 싶으면, 어느 순간 또 터져 나옵니다. 마치 화산을 품고 사는 것 같아요. 이런 일들이 자주 반복되면, 혹시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자녀분들보다 부모들은 더 힘들어요. 그런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 시기만 넘기면 부모들이, 우리 자식이 힘들었겠구나 생각하는 시기가 분명히 와요.'

- 하늘 어머니

 

 

종종 마찰이 생기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찾아옵니다. 때로 엄마는 여전히, 내가 변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은 기대를 내비치기도 해요. 결국 나는 인정 받지 못하는 아들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마치 어둡고 작은 방에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참을 수 없어지기도 하죠.

 

 

'저는 그냥 불쌍해요. 불쌍하다는 그런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가슴 속에..'

- 승구 어머니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이 아이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나? 근데 뭐 아들도 특별하게 말은 안 하고.. 저도 그냥 똑같이 예전과 다름없이 지내고 싶은데..'

- 만루 아버지

 

'교회에 커밍아웃은 제가 하지 말라고 했어요. 왜냐면 아이가 힘들어 질까 봐. 굳이 그것을 말해서 뭐하러 힘들게 네가..'

- 환희 어머니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게이로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복잡하고 힘듭니다. 내가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도 그렇게 많은 밤을 혼자 고통스러워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가끔 엄마가 이 고통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화가 나기도 해요. 이런 상황에서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 엄마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 되고 맙니다.

 

 

'다른 게 아니라 본인이 힘들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인 거죠. 아무래도 고등학교 때보다 사회 나오고 그러면서 맞닥뜨리게 될 여러 가지 일들, 이해받지 못하게 될 일들, 그런 분위기들이 제일..'

- 환희 어머니

 

'게이라는 사실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떻게 어디를 찾아가서 혼자서 짓밟히고 찢겨졌던 그 마음을 치료해줄 수 있을까..'

- 만루 어머니

 

 

내 이야기를 떠올리며 가족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동안에, 마음속에 무언가가 덜컥하고 내려앉는 묵직한 기분이 드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커밍아웃이라는 선언을 한 뒤에, 엄마에게 찾아왔을 그 어떤 고통도, 나는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죠. 어쩌면 당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엄마의 마음 가장 밑바닥에는, 그 누구보다 나를 간절하게 이해하고 싶은 바람이 가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매우 무거워졌습니다.

 

 

'혼자 오랜 세월 동안 힘들었을 그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게 저한테는 제일 힘들었던 거고요. 아직 부모님에게 이야기하지 못한 친구가 있다면 좀 더 일찍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게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 만루 어머니

 

 

어쨌든, 나는 여기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의 지난 경험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커밍아웃은 소통의 시작이어야 하는데, 내게는 소통의 끝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엄마가 내게 등을 돌리거나, 혹시 이 관계가 틀어지기라도 할까 하는 불안의 크기가 커졌죠. 그래서 나는 차라리 묻지 않고 살았습니다. 모른척하기로 한 거죠. 그러면 가끔 덜컥거려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거든요. 아마 엄마와 나의 갈등이 당장 끝나지는 않을 거예요. 여전히 얼굴을 붉히는 일은 생기겠죠. 그래도 작은 노력을 해보기로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만큼, 엄마의 마음에도 귀를 열어야겠다는 것이죠. 때로는 내게 상처가 되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할 겁니다. 그러면 또 물어볼 거예요. 엄마의 그 말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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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핵심 언어는 사랑이고, 특히나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믿고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당장은 자녀가 동성애자인 것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고, 이 사회가, 내가 믿는 종교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내 가족이라는 점입니다.'

- 임보라 목사님

 

 

 

가족모임에 참여한 가족들은 이 모임을 통해, 커밍아웃한 자녀를 대하는 자신감과 또 다른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단순히 자녀의 정체성 문제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녀의 연애와 앞으로의 문제까지 그 시야가 확장되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더 새로운 화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할 거예요. 친구사이의 가족모임은 비정기적이지만 꾸준히 계속 될 것입니다.

 

 

*글에 인용된 가족모임 참가자들의 발언은 구어를 최대한 그대로 옮긴 것이지만, 실제 발언의 시간 순서와는 무관하게 편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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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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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보이 2013-05-13 오후 19:02

좋은 글입니다.
가족분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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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연필 2013-05-14 오전 08:19

용기가 없는건지. 현명한건지 알수 없지만. 가족에게 아직 커밍아웃을 못하고있는데. 이 글을 보니까 많은 생각을 하게되네요. 저도 나중에 저 자리에서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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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aged..? 2013-05-14 오전 10:03

읽기만 해도 공감되고 찡하고 고맙네요 ㅠㅁㅠ
이해하고 싶은 마음, 이해받고 싶은 마음,
과거의 상처에 대한 연민, 장래의 상처에 대한 걱정...
비록 쉽지 않지만, 열린 마음과 끝없는 대화로
오히려 관계가 더 가까워지고 편해질 수 있으리라고 봐요.
커밍아웃을 하셨거나 염두에 두시는 모든 분,
그리고 커밍아웃의 대상이 되신 모든 분께 따뜻함과 힘이 있길 빕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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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U 2013-05-14 오전 10:38

아...정말 좋네요..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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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2013-05-14 오후 19:39

수고하셨어요~ 이글 읽다가 울컥했다는 사람 몇 사람 중 하나가 되었네요...
다음 모임도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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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5 오전 10:42

이 글을 읽으니 가족모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요...
더불어 훌륭한 글을 쓴 샌더에게도 사랑과 위로가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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