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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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정상일까?’
살아가면서 한번쯤 ‘내가 정상일까?’하는 고민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성적 지향이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그것이 ‘비정상’인 줄 착각하고 오랜 시간 고민의 시간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우린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질이나 특징들이 남들과 다르게 구분지어 질 때, 그것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왜일까? 사회화된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고립되길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수의 의견, 혹은 여론에 편승하려는 기질이 있다.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자칫 타인에 대한 소외와 차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말이다.
그 남자의 털털한 사생활
딱딱한 이야기를 하려하는 건 아니고, 다름과 틀림의 차이의 모름에서 오는 시선을 바로 잡아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조금 더 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해보면, 호기심이 넘치던 청소년 시절 나는 유독 내 몸의 변화에 민감했다. 그것의 시작은 바로 ‘털’이었다. 지금도 남들보다 팔다리에 털이 많고, 구레나룻도 유독 긴 나는 학생주임의 두발단속의 주 타깃이 되곤 했다. 이왕 많고 길면 좋은 거라고 지금은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지만 초딩 때는 지금과 정반대였다. 남들보다 일찍 몸 은밀한 곳에 털이 나기 시작한 나는 친구들과 같이 목욕탕 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 당시 난 그것이 ‘비정상’인 줄 알았다.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몰라서 그렇다 치더라고, 내가 수치심을 느꼈던 그 날 이후로 사춘기 시절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고립을 뜻한다는 것도 배웠다. 나중에 성정체성 고민을 하면서는 그것이 열배 백배 커지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한번은 친구네 집에서 잘 일이 생겨서 나와 친구와 남동생 셋이 같이 샤워를 하게 되었다. 그 두 살 터울의 짓궂은 동생이 이 형 꼬추에 털 났다고 그 집 가족들에게 다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그날 밤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밤잠을 설쳤다. 그때의 나는 내 친구들도 이미 몸에 털이 났다거나, 곧 날 거라는 상식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2~3년을 목욕탕 가는 걸 꺼려하는 신세가 되었다. 친구들이 모두 그곳에 털을 가지고 있을 때까지 말이다.
60억분의 1의 나
흥미로운 사실은 20세기 초반 성의 영역에서 세상 사람들을 해방시켜 줄 보고서가 발표되었으니, 바로 그 유명한 ‘킨제이 보고서’이다. ‘킨제이 보고서’는 20세기 당시 사람들에게 성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과 이야기하는 방법을 바꾸어 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적인 영역은 그 무엇보다 숨기고 감추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금기시 되었던 인간 성생활에 체계적으로 접근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한 이 보고서는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곧 바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당시 동성애를 한 차례 이상 경험한 남성이 37%에 이른다거나, 기혼 남성의 절반, 기혼 여성의 25%가 혼외정사를 갖고, 여성의 절반은 혼전에 성관계를 갖는다는 등의 적나라한 연구 결과는 세계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킨제이 박사는 매우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그에 따른 신체적, 심리적인 억압을 느끼며 살아간다. 교육자인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서 힘겹게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을 하게 된 킨제이는 그의 일생동안 수백만의 벌떼를 수집하며 그 작은 생물조차도 한 마리 한 마리 모두 다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킨제이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수많은 미국인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방법론적으로는 수백만 마리의 벌을 채집하듯 양적접근방식 통해 연구를 진행한 사실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킨제이 박사는 직접 증명했다.
‘정상이데올로기’부터의 탈피
‘킨제이 보고서’는 발명품이 아니다. 단지 감추어왔던 것들에 대해 새로이 말하는 것이다. 부끄러워 말고 떳떳하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 킨제이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손바닥을 펼친다고 해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듯이 우리가 부끄럽다고 감춘다고 해서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우리들은 20세기의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성적 해방을 경험하고 나름대로의 성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자신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에 대해 킨제이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각각의 사람들은 독특한 성적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성에 관해 이야기 할 때에는 ‘보편적이다’, ‘드물다’ 는 말을 사용해야 하며 ‘정상’, ‘비정상’ 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해져야 하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이야기 할 줄 알면서도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때로는 과학적으로 다가가려는 시도만이 진정한 성적인 해방을 이끌고 그것이 결국 우리 삶에 대한 태도로 연결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성정체성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단지 조금 드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