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우형을 보내고 돌아오는 파김치 형의 차 안에서 어떤날의 '출발'이란 곡을 오랜만에 들었
다. 그 후 CD를 찾게 되고 오늘은 계속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재우형에게 또 다른 좋은 출발이 되길. 그 말밖에는.
그래도 국문과 출신이랍시고 주워들은 시풍월이 몇 개는 되는 거 같다.
그 중에 유독 기억에 남아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한 번 떠오른 시들은 당분간은 계속 찾아 읽게 되고 되뇌어 보게 된다.
아침에 우연히 듣게 된 옛 노래를 하루 종일 흥얼거리게 되는 것처럼.
요즘은 기형도의 시들을 다시 들춰보게 되는 데 그 중 '그 집 앞'이란 시를 유독 찾게된다.
얼마 전 회원 몇 명과 술마시며 이 시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어떤 내용이었을지는 회원여러분들의 생각에 맡기겠다.
하지만 '그 집 앞'에서 헤매고 사랑을 잃는 일이 모두에게 생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 집 앞
- 기형도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p.s
신뢰하지 않는 시 중의 하나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