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중에 보니, 'Little Ashes'가 '리틀 애쉬 : 달리가 사랑한 그림'이라는 제목으로 1월 14일 날 국내 개봉한다고 하네요. 전 이 영화 개봉 못할 줄 알았는데, 스타 티켓팅 파워는 대단하군요. '뉴문'의 로버트 패틴슨의 인기에 힘입어 이 영화가 국내에 결국 개봉하게 되었군요.
하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의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는 대단히 '꽝'인데 말입니다. 영화도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상당히 기대를 했던 영화였는데, 실망이 컸어요. 이 영화, 개봉 안 할 것 같아 몇 달 전에 봤고, 포스팅을 할까 하다가 그냥 글만 썼다가 바로 지웠지요.
이 영화는 로르카, 달리, 루이스 브뉘엘이라는 20세기 초반 스페인이 낳은 거장들의 우정과 사랑이라는 대단한 소재를 가지고 출발했지만, '고증'이 덜 된 데다 너무 게을렀어요. 보면서 대단히 화가 났던. 애정 라인을 주축으로 삼고 싶었지만, 정작 그려 보일 수 있는 '단서들'이 거의 없으니까, 영화가 말도 안 되게 뚝뚝 분질러지더군요. 20세기 초반 이 세 천재가 친구로 함께 동문수학하던 마드리드 시절을 그리고자 했다면, 조금 더 예술적 측면에 관해 공부를 하고 분위기를 살렸어야 했는데, 각본이든 연출이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영화를 찍었더군요. 이안 깁슨에게 감수까지 받은 시나리오가 이 모양이면...... 분위기가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살바도르 달리가 죽기 전에 보스케와의 대담에서 한 치기어린 한 문장을 가지고 영화를 찍었어요. 저도 이 대담집을 가지고 있는데, 달리가 한 말은 별 것도 없었습니다.
질문 : 로르카 얘기로 되돌아가 보자. 그가 [살바도로 달리에 부치는 노래]를 썼을 무렵 당신들 두 사람은 어떻게 같이 지냈는가?
달리 : 모두들 아는 것처럼 그는 동성애자였고, 나를 미친 듯이 사랑했다. 그는 나에게 두 번 달려들어 하려고 했는데…. 나로서는 그게 극도로 싫었던 까닭은, 내가 동성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고 또 그가 내 항문에다 그 짓을 하는 데 대해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건 아프다. 그러니 아무 재미도 없었다. 자랑을 느꼈다. 마음 속 깊이 나는 그를 위대한 시인이라고 생각했고 '성 달리'의 항문에 관한 한 그의 신세를 좀 졌다고 느꼈다. 그는 때때로 한 아가씨에게 그걸 요구했는데, 그녀가 자기 대신 나를 희생물이 되게 했다. 그가 하라는 대로 내가 항문을 제공하지 않자 그는 그녀를 정복했는데, 그녀와 자기가 궁합이 아주 잘 맞았다고 그는 단언했다. 그가 여자와 잠잔 건 그게 처음이었다.
맙소사, 2년 전 가디언지를 보고 이 대담집의 문장으로부터 영화가 출발한다는 건 알았지만, 정말 영화가 딱 이 이야기밖에 없더군요. 물론 달리가 실은 로르카를 좋아했지만, 그 감정 자체가 무서워 피했다는 설정으로, 망년난 늙은 달리의 저 인터뷰 문장을 순화시키고 있으나, 이 영화에는 떨림과 무서움 같은 감정의 응결물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이 세 사람이 마드리드 대학에서 만나고, 달리와 브뉘엘이 파리로 떠난 후에 홀로 스페인에 남은 로르카가 프랑코 정권의 민병대에 의해 살해되는 역사적 순간을 서술하고 있지만, 핵심 축은 바로 저 문장에서 밝힌 사건들일 뿐이에요. 그러니 영화가 빈약할 수밖에요. 달리 이후에 로르카는 연애질도 안 했단 말입니까. 이 영화에서는 로르카가 달리를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으로 나와요. 웃기죠.
역사적 단서가 부실하면 상상력이라도 덧대야 할 텐데, 전혀 그러질 못하더군요. 돈에 미치고 갈라에 미쳐버린 허풍쟁이 달리는 정말 소년일 때 로르카와 사랑에 빠졌을까? 에 대한 의문을 답하기에 이 영화는 진정성이 전혀 없어 보여요. '소재주의'적 접근의 한계가 명확한 영화입니다.
프랑코 민병대에 의해 로르카가 어디론가로 끌려가서 총살 당했을 때 당시 스페인에서는 스페인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인 로르카가 죽기 직전 이런 소리를 들었다는 소문이 팽배했습니다.
"fired two bullets into his ass for being a queer.”
모욕이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로르카의 엉덩이에 두 발의 총알을 박아넣으면서 낄낄거렸던 스페인 프랑코 정권의 호모포비아와 로르카의 비극적 삶은 이 영화에 전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영원한 공산주의자였던 루이스 브뉘엘을 호모포비아의 상징적 인물로 둔갑시켜 당시의 분위기를 자아내려고 했지만, 고증도 안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묘사가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전세계에 타전된 '로르카 처형 사건'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스페인 프랑코 독재 정권의 폭압성을 전면에 드러나게 했던 상징적 사건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의 호모포비아가 파시즘과 결합되어 어떻게 영웅을 살해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아무리 세기적 영웅인 로르카와 살바도르 달리의 '썸씽'에 혹해 덤벼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찾지 못한 로르카의 주검만큼이나 그의 비밀스러운 삶을 영화 텍스트 내에 '부재'로 남겨놓는 건 또다른 호모포비아에 다름 없겠지요.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가 코멘트를 받았다고 하는, 수십 년간 로르카의 시와 생애를 추적한 전기 작가 이안 깁슨의 최근 인터뷰 한 문장이 인상적이에요.
"스페인은 스페인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었던 로르카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2년 전인가 스페인 사회당이 집권하자마자 동성애자 파트너십을 인정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 보면 로르카의 비극이 더 아프게 느껴지죠. 윽, 갑자기 피가 끓는군요. 쓰다 보니, 웬지 슬퍼집니다. 지금도 여전히 찾지 못한, 엉덩이에 두 발의 총알을 맞는 모욕 속에서 죽어간 로르카의 주검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요?
가르시아 로르카 유해발굴 개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946434
201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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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홈피에 썼던. 실제 글은 더 심한데, 몇 가지 문장을 '순화'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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