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산에서 ?하다가 허리 부러진 남자들 이야기'라느니, '결혼피로연의 카우보이 버젼이라느니, 심지어는 짐자무쉬의 '브로큰플라워'랑 헷갈려 이미 소문없이 개봉을 끝냈다는 설까지 다양한 외전을 양산해왔던 브로큰백 마운틴이 드디어 개봉일자를 잡았단다.
원래 예정되었던 시기를 계속 미뤄와서 저러다 개봉 못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는 우려에 그칠 것 같다.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의 입을 통해 '백개관 잡았어요' 라는 다소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직접 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운 좋게도 친구의 시사회 자리에 꼽사리 끼어 민간 관객으로서는 한국최초(가 아닐까?)로 영화를 봤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이야기 하지 않을랜다.
다만 이안감독의 최고 영화로 꼽아왔던 아이스스톰은 브로크백마운틴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듯 싶다.(참고로 이안 감독의 다른 영화들은 결혼피로연, 쿵푸선생, 음식남녀, 와호장룡, 센스엔센서빌러티, 헐크 등이 있다.) 적어도 평범한(물론 미모는 평범하지 않지만.^^) 게이 관객인 내가 보기엔 최고였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엔 아이스스톰 같은 차갑고 신랄한 분위기의 영화가 아닐까 기대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는 푸른 자연을 배경으로 느리게 진행되는 두 남자의 밋밋한 관계에 약간의 의혹도 품었었다. 하지만 시도때도 없이 눈앞에 들이닥치는 푸른 산과 하얀 양떼는 감정이입을 위한 감독의 작전이었던듯 싶다. 영화는 두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딱 보여줄 것만 보여주며 줄타기를 벌이다 결국 눈물 콧물 쏙 빠지게 하는 지독한 사랑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계보를 따져본다면... 신분과 계급의 차이에 굴복하는 연인들의 이야기인 워털루브릿지(애수), 이상과 가치관의 차이에 굴복한 추억(the way we were), 인종차별에 굴복한 파프롬헤븐 등을 잇는 최루성 멜러영화라면 대략 아귀가 맞으려나. 물론 이번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두 남자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사회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동성간의 사랑이다. 그것도 동성애자라는 존재 자체가 모호했던 시절의 폐쇄된 시골 사회에서.
그간 퀴어영화를 보는 마초 남성들의 반응은 '피식'하는 김빠지는 웃음이 대세였다. 스스로의 호모포비아 혹은 불안감을 얼버무리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싶었을 테지. 그리고 극장을 나와서는 여자친구에게 자신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남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영화 자체는 별로였어. 아, 물론 난 동성애에 찬성해. 다만 내 개인적으론 그럴 수 없을 뿐이야.'라 변명한다. (찬성?! 정치적으로 불량한 동성애자인 나도 이성애에 찬성한다. 너, 니 여자친구랑 사랑해도 돼.)
이 영화 역시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인 만큼, 마초남성이 본다면 영 개운치 않을 장면들이 분명 있다. 이런 줸장! 마초남성의 대명사인 땍땍한 카우보이들이 벌이는 '동성연애질'이라니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하지만 우리의 '애니스'와 '잭'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건 대만에서 헐리우드로 건너간지 십여년 만에 냉큼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안'감독의 영화다. 출연 배우들도 제대로 생겼고 연기도 오버하지 않는다. 스토리 역시 완급을 조절해 가며 세월의 흐름에 따른 연인들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노출시킨다. 쉽사리 딴지를 걸 구석이 거의 없다.
음... 이야기가 길어지면 스포일러가 나올 가능성이 더 많아지니 그만 줄여야겠다.
아무튼 결론은 이 영화, 물건이라는 거다.
될수 있는 한 많은 개봉관을 잡아서 이성애자 남자들의 심기를 마구 불편하게 하고, 숨은 게이들의 감성을 팍팍 자극해줬으면 좋겠다.
그다지 진보적이지도 않고 이성애 신파멜러의 공식을 따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순정게이들과 야오녀들이 가슴을 쥐어 뜯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열광할 것임은 분명하다.
# 스포일러 :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갑자기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네'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그리고 '양들의 침묵'이란 영화 제목도...